항목 ID | GC004035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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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愼采等上書 |
영어의미역 | Memorials to the Throne by Jeong Sinchae, etc. |
이칭/별칭 | 진주단목리당산고택소장 효행관련문헌 및 고문서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74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정은 |
성격 | 고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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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 | 정신채 |
제작연도/일시 | 1824년(순조 24) |
용도 | 진정서 |
소장처 | 하택선 |
소장처 주소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746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
문화재 지정일 | 2004년 7월 1일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단목리 담산고택 소장 효행관련 고문서.
[개설]
하진태의 효행 정려를 위한 상서문은 1791년 하진태의 생존시에 「단동촌동장수본」이나 「사죽집강서목」 등 이미 행정계통에 따라 보고된 바 있었고, 1800년 하진태의 사망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추진되어 수십 차례에 걸쳐 진정서가 올려졌으나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경향은 하진태 뿐만 아니라 다른 효자나 열부에게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만큼 조선왕조에서 정려제도를 엄격하게 운영했음을 뜻한다.
이 문서는 하진태의 효행이 매우 자세하게 기술된 것이 특징이고, 경상우도의 여러 유생이 연명한 점에서 형식상으로 등장(等狀)에 속한다. 이 진정서를 받아보고 진주목사는 공의를 모아 감영에 보고하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내리고 있지만, 정작 하진태에게 정려가 내려지기까지는 이로부터 70년에 가까운 세월이 더 요구되었다.
[제작발급경위]
하진태의 효행 정려를 위해 수십 차례에 걸쳐 진정서가 올려졌으나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자, 창주가와 세의가 깊었던 연일정씨 집안의 유생 정신채(鄭愼采) 등이 진주목사에게 진사 하진태의 포증을 건의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구성과 형태]
종이에 먹으로 쓴 문서이다. 크기는 96㎝×121㎝이다.
[내용]
하진태의 효행 정려를 위해 작성된 건의서 중에서 「정신채등상서」는 하진태의 효행 행적이 매우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먼저 하진태의 인물 됨됨이부터 조희맹의 문하에서 학업에 정진하던 모습, 그리고 학문의 방도를 어느 정도 알자 스승에게 눈물로 호소하면서 이제는 노모를 모시기 위해 스승의 곁을 떠나겠다는 일화 등이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또한 노모를 정성으로 모시는 동시에 학문에 정진하는 모습 또한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노모가 이름 모를 병환에 걸려 위독할 지경에 처하자 몇 번이나 손가락을 단지하여 그 피를 먹게 함으로써 소생시킨 일, 노모가 드실 죽과 약을 직접 달이고, 대변을 손수 맛보며 간병한 일, 추운 겨울날에도 병든 노모의 쾌차를 비는 축원을 드린 점, 강이 얼어 붕어를 구할 수 없는 지경임에도 마침내 얼음을 깨고 붕어를 잡아 약탕을 한 일, 40여 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계속 시병한 점, 그리고 노모가 돌아간 후에는 상례, 장례, 제례에 있어서 예법에 어긋나지 않게 임한 점 등 매우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하진태의 효행 정려를 위해 작성된 「정신채등상서」는 조선왕조의 정려제도 및 당시 효행을 백행의 근본으로 삼았던 선조들의 효행사상을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