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5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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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以興 |
영어공식명칭 | Nam Iheung |
이칭/별칭 | 사호(士豪),성은(城隱),충장공(忠壯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충장1길73-5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남기은 |
출생 시기/일시 | 1576년 - 남이흥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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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02년 - 남이흥 무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24년 - 남이흥 이괄의 난 진압 |
몰년 시기/일시 | 1627년 - 남이흥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36년 - 남이흥 정려 받음, 영의정 추증 |
추모 시기/일시 | 1667년 - 남이흥 충신 정려 및 충장사 건립 |
추모 시기/일시 | 1667년 - 남이흥 불천위 제향 |
추모 시기/일시 | 1677년 - 충민사 건립 |
추모 시기/일시 | 1989년 - 당진시 남이흥 장군 숭모제 개최 |
추모 시기/일시 | 1998년 - 당진시 남이흥 장군 문화제 개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4년 - 남이흥 용산 전쟁 기념관 이달의 호국 인물로 선정 |
출생지 | 남이흥 출생지 - 한성[현 서울특별시] |
부임|활동지 |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겸 진주 목사 - 경상남도 진주시 |
묘소|단소 | 남이흥 묘소 및 신도비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충장1길 73-54[도이리 373-1] |
사당|배향지 | 양세 충신 정려, 충장사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충장1길 73-54[도이리 373-1] |
사당|배향지 | 충민사 - 평안남도 안주 |
성격 | 무신 |
성별 | 남(男) |
본관 | 의령(宜寧) |
대표 관직 | 충청도 병마절도사|경상우도 병마절도사 겸 진주목사|삼도 부원수겸 평안 병사(三道副元帥兼平安兵使)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도이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중기 무신.
[개설]
남이흥(南以興)[1576~1627]은 1602년(선조 35) 알성 무과에 급제해 현감, 부사. 목사를 역임하였고, 평안 병사로 재직 시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안주성에서 후금의 군대와 맞서 싸우다 순국하였다.
[가계]
남이흥의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사호(士豪), 호는 성은(城隱),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할아버지는 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지낸 이요당(二樂堂) 남응룡(南應龍), 아버지는 정유재란 때 나주 목사(羅州牧使)로 있으면서 충무공 이순신을 도와 왜군과 싸우다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남유(南瑜)이다. 남이흥의 맏아들인 남두극은 면천 군수를 지냈고, 이후 후손 105명이 관직을 지냈으며 근대에 독립운동가 17인이 건국훈장을 수훈했다.
[활동 사항]
남이흥은 1617년(광해 9)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겸 진주 목사(晉州牧使) 재직 시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던 진주 촉석루와 의병 집합소였던 의곡사를 중건하였다. 구성 부사(龜城府使) 재임 시에는 백성들이 남이흥의 덕을 기려 송덕비를 건립하기도 했다. 1624년(인조 2)에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남이흥은 4,000명의 관군을 이끌고 12,000명에 달하는 이괄의 반란군을 진압하였다. 1627년(인조 5) 36,000여명의 후금군이 조선을 침공하자 평안 병사로 있던 남이흥은 3,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안주성에서 적과 대적하였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성을 지키기가 어렵게 되자 적을 화약고 쪽으로 유인하여 많은 적과 함께 자폭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본 후금(後金) 대장 아민은 "조선은 '충의'의 나라다."라며 감탄했으며, 조선과 우호국이었던 명나라 황제는 남이흥의 이름을 써 놓고 명나라 백성들에게 남이흥의 애국 충절을 본받으라며 황제궁 앞[현 천안문 광장]에서 수개월간 특전을 했다고 전한다. 조선의 인조는 남이흥을 국장으로 장례하도록 하고 장례 시 곤룡포를 장군의 관(棺) 위에 덮어 주라며 눈물을 흘리며 애도하였다고 전한다. 당시 남이흥의 관을 덮었던 인조의 곤룡포[답호]는 충장사 경내 모충관에 보관되어 있다.
[학문과 저술]
국립 중앙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해동 역대 명가 필보(海東歷代名家筆譜)』에 남이흥의 친필이 수록되어 있으며, 남이흥의 호인 성은(城隱)이 쓰인 친필이 성균관 대학교 박물관에 있다.
[묘소]
남이흥의 묘소는 그의 사당인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충장1길 52[도이리 373-1] 충장사 옆에 있다.
[상훈과 추모]
남이흥은 1627년(인조 5) 왕명으로 정려를 받고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1667년(현종 8)에 왕명으로 불천위 사당 충장사(忠壯祠)를 건립하였으며, 양세 충신 정려각은 1790년(정조 14)에 건립되었다.
불천위 제향은 1667년부터 매년 음력 1월 21일 오전 11시에 후손들이 모여 홀기에 맞추어 제향을 모신다. 1681년(숙종 7)에 평안남도 안주에 충민사(忠愍祠)를 건립하여 제향했는데 초헌관은 임금이 보낸 신하가, 아헌은 평안 감사 또는 평안 병사가, 종헌은 평안 우후가 차례로 진행하며 관 주도로 제향을 했다고 전한다.
충청남도 당진시에서는 1989년부터 '남이흥 장군 숭모제'를 개최하였으며, 규모를 확대하여 1998년 8월 20일부터 '남이흥 장군 문화제'로 명칭을 변경해 당진 문화원의 주관으로 행사를 진행한다. 시기는 남이흥 장군의 탄신일을 기준으로 하여 매년 9월~10월에 치르며 군인, 학생들을 비롯한 전 시민이 참여한다. 남이흥 장군은 2014년 2월 20일 용산 전쟁 기념관에서 이달의 호국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