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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587
한자 南瑜
영어공식명칭 Nam Yu
이칭/별칭 공근(公瑾),시망(時望)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남기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52년 6월 28일연표보기 - 남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79년 - 남유 무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92년 - 남유 부평 부사 역임
활동 시기/일시 1597년 - 남유 평산 부사 역임
활동 시기/일시 1598년 - 남유 노량 해전 참가
몰년 시기/일시 1598년 11월 22일연표보기 - 남유 노량 해전에서 전사
추모 시기/일시 1636년 10월 - 남유 충신 정려 받음
출생지 남유 출생지 - 서울특별시
부임|활동지 남유 부임지 - 전라남도 나주시
묘소|단소 남유 묘소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충장1길 73-48[도이리 373-1]
사당|배향지 충장사|양세 충신 정려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충장1길 73-48[도이리 373-1]지도보기
성격 무신
성별
본관 의령(宜寧)
대표 관직 평산 부사(平山府使)|나주 목사(羅州牧使)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무신.

[개설]

남유(南瑜)[1552~1598]는 이순신(李舜臣)을 도와 왜군과 싸우다 노량 해전(露梁海戰)에서 전사한 무인이다.

[가계]

남유의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는 공근(公瑾)이다. 할아버지는 공조 참판을 지낸 남세건(南世建)이며, 아버지는 퇴계 이황과 함께 호당에서 왕세자를 교육한 남응룡(南應龍), 어머니는 연일 정씨(延日鄭氏)이다. 부인은 전주 유씨(全州柳氏)다. 정묘호란 때 안주성을 지키다 전사한 남이흥(南以興)이 아들이다. 후손 105명이 관직을 지냈고,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로 17인이 건국 훈장을 받았다.

[활동 사항]

남유는 1579년(선조 12) 무과에 급제하였다. 군수와 현감을 거쳐 1592년(선조 25) 부평 부사(富平府使) 재임하던 중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정을 도왔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어머니의 상중이던 남유를 나주 목사(羅州牧使)와 좌영장에 겸직 제수하여 인근 바다에 면한 9읍의 병사를 관할하게 하였다. 남유는 1598년 마지막 해전인 남해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왜적을 물리치고 승전(勝戰)을 마무리하다 적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묘소]

남유의 묘소는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충장1길 73-48[도이리 373-1] 충장사 옆에 있다.

[상훈과 추모]

조정에서는 남유의 공적을 기려 좌의정을 추증하였고, 선무 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추록하였다. 숙종 때 충신 정려문을 내렸다. 노량 앞바다에 좌의정 서명선이 찬한 노량 전적 유허비가 세워져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일본군에 의해 멸실되었다가 문헌에 따라 복원하여 현재 충장사 입구에 세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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