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승비를 시조로 하고 유세복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강릉유씨는 고려 문종 때 우리나라로 건너와 지금 경상북도 영일군 기계면에 정착한 한나라 유방(劉邦)의 40세손 유전(劉筌)을 도시조(都始祖)로 한다. 유전의 큰아들로 대사헌을 지낸 유견규(劉堅規)가 거창군에 봉해져서 거창유씨의 세계(世系)를 이었으나, 문희공(文僖公) 유창이 조선 개국 이등공신에 책록되어 옥천...
-
전라남도 여수시 주삼동 주동마을에 있던 옛 지명. 옛 쌍봉면 지역으로 현재 여천초등학교와 여수시 농업기술센터가 있는 지역이다. 주동은 거무골을 한자로 기록한 이름으로서 거무는 거미의 방언이다. 주동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산세가 거미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온다. 고려 말에 여수현령 오흠인이 석보창 부근에 거주하면서 주동마을에 있는 주동천의 우물을 이용했다고 전해온다....
-
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윤강·김수은·김첨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경주김씨는 서기 65년에 금궤에서 나왔다는 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는 씨족이다. 17대 내물이사금 이후로 경주김씨 자손들이 대대로 신라왕이 되었으나, 56대 경순왕 대에 이르러 왕건에게 나라를 내주게 되어 셋째 아들 영분공 김명종(金鳴鐘)과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후손으로...
-
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호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경주이씨는 신라 초 6촌의 하나인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급량부] 촌장 표암공(瓢巖公) 알평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후 알평의 36세손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을 중시조로 하면서 성암공파(誠菴公派)·이암공파(怡庵公派)·익재공파(益齋公派)·호군공파(護軍公派)·국당공파(菊堂公派)·부정공파(副正公派)·상서공파(尙...
-
지백호를 시조로 하고 정태주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경주정씨는 신라 초기 6부 가운데 본피부(本彼部) 촌장이던 지백호(智伯虎)를 시조로 받든다. 중시조는 고려 때 평장사를 지낸 정진후(鄭珍厚)로 시조의 40세손이다. 이후 문헌공파(文獻公派)·양경공파(良景公派)·월성위파(月城尉派)·평장공파(平章公派) 등 크게 네 파로 갈라졌다. 문헌공의 후손 노송정 정지년(鄭知...
-
신성용을 시조로 하고 신합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고령신씨는 고려시대에 군기감검교(軍器監檢校)를 지낸 신성용(申成用)을 시조로 받든다. 신성용이 경상도 고령 지방에 터를 잡았기 때문에 후손들이 고령을 본관으로 삼았는데, 이후 신장(申檣)을 파조로 하는 암헌공파(巖軒公派), 신평(申枰)을 파조로 하는 정언공파(正言公派), 신제(申梯)를 파조로 하는 감찰공파(監察...
-
공소를 시조로 하고 공은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공씨 본관은 곡부(曲阜) 단본이다. 1351년(충정왕 3) 공자의 53세손 공소(孔紹)가 고려에 귀화하여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가 되고 회원군(檜原君)에 봉해져 관향(貫鄕)을 창원(昌原)으로 함으로써 우리나라 공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한국의 창원을 본관으로 같이 할 수 없다 하여, 1794년(...
-
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명운·김덕조·김치하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신라 45대 신문왕의 셋째 아들(혹은 49대 헌강왕의 셋째 아들로 기록된 문헌도 있다) 김흥광(金興光)은 통일신라 말기에 나라 안이 어지러워 장차 난리가 있을 것을 미리 짐작하고 광산현(光山縣) 서일동(西一洞) 즉 지금의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동으로 자리를 옮겨 자연과 더불어 학문을 닦으며...
-
나총례를 시조로 하고 나채성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금성나씨는 고려 전기에 삼한공신(三韓功臣)으로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에 봉해진 나총례(羅聰禮)를 시조로 받든다. 이후 11세손에서 기준으로 충절공익희파(忠節公益禧派)·부호군공언파(副護軍公彦派)·영도첨의공순파(領都僉議公珣派) 등으로 분파되었다. 금성나씨에서 분관되어 11세손 나천서(羅天瑞) 후손이 안정나씨로,...
-
유삼재를 시조로 하고 유흔과 유섭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기계유씨는 신라 때 아찬을 역임한 유삼재(兪三宰)를 시조로 받든다. 그의 후손 유의신(兪義臣)은 신라가 망했는데도 고려에 불복하므로 태조가 기계호장(杞溪戶長)을 삼았다. 이에 따라 유의신의 후손들은 기계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이후 유의신의 종파인 동정공파(同正公派)를 비롯하여 월성군파(月城君派)·장사...
-
김시흥을 시조로 하고 김광옥과 김응달 등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김녕김씨 시조 김시흥(金時興)은 김알지의 35세손이며, 신라 56대 경순왕 김부(金傅)의 넷째 아들 대안군 김은열(金殷說)의 증손인 김렴(金濂)의 6세손이다. 김시흥은 고려 인종 때 묘청의 난을 토평하였고, 명종 때는 조위총(趙位寵)의 난에 공을 세워 김녕군(金寧君)으로 봉해졌다. 이로 인해 후손...
-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김은대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김해김씨는 가락국을 세운 수로왕을 시조로 받든다. 김해 이후 분관된 사례가 없으나 다만 인도 공주 출신인 수로왕의 비 허황옥(許黃玉)의 간곡한 요청으로 두 아들은 모성을 따라 허씨가 되었다. 김해김씨의 파계는 김유신을 중시조로 하여 분파되었는데, 그 중 김유신 직계인 시조의 51세손 김목경(金牧卿)을 파조로...
-
나부를 시조로 하고 나도민과 나도흥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나주나씨의 시조는 고려 중엽 중국에서 건너온 나부(羅富)이다. 그는 고려 때 감문위상장군(監門衛上將軍)을 지냈는데, 조선 초기 나득강(羅得康)이 기록에 나주인으로 명기된 것을 근거로 삼아 그의 후손들이 나주를 관향으로 삼았다. 1870년대에 나숭로의 5세손 나도민(羅燾玟)은 여수시 평여동 산본마을에,...
-
임비를 시조로 하고 임훈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나주임씨(羅州林氏)는 고려조에서 벼슬을 지내고 2등공신에 책록되었으며 후에 상장군에 오른 임비를 시조로 받든다. 그 후 시조의 9세손 임탁(林卓)이 고려 말에 해남감무를 역임한 후 두문동(杜門洞) 72현의 한 사람이 되어 나주 회진으로 내려가 버렸다. 이에 따라 후손들은 나주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이후 임탁의...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조선 초, 고려에 대한 절개를 지킨 공은(孔隱)의 죽음을 슬퍼한 기러기가 3일 동안 울다가 떨어져 죽어 낙포(洛浦)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비학동(飛鶴洞)으로 기록되어 있다. 본래 여천군 삼일면 지역으로, 납개 또는 낙포라 하였다. 진례만호진 시절 전선(戰船)은 모두 이 지역 포구에 배치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
방계홍을 시조로 하고 방명국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남양방씨는 고려 개국에 공을 세운 삼한벽상공신삼중대광보국(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輔國)에 오른 방계홍(房季弘)을 시조로 받든다. 방계홍은 당나라 8학사 중 한 사람인 방준(房俊)의 9세손이라 알려져 있다. 방준이 우리나라에 온 뒤 지금의 남양에 정착하였기 때문에 이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여수...
-
홍은열을 시조로 하고 홍일승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우리나라 남양홍씨는 639년(영류왕 22)에 당나라로부터 파견된 8학사 중 한 명인 홍천하(洪天河)를 선시조(先始祖)로 전해지고 있다. 홍천하는 당신(唐臣), 당성백(唐城伯), 덕산촌왕(德山村王) 등으로 후대를 받았는데, 그의 10세손 홍은열(洪殷悅)이 고려 개국 공신이 되면서 남양홍씨의 시조가 되었다. 남양...
-
양을나를 시조로 하고 양성호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남원양씨는 제주 삼성혈(三姓穴)에서 나와 탐라국을 세운 양을나를 시조로 받든다. 양탕(良宕)의 후손 양우량(梁友諒)이 신라에서 공을 세워 남원백(南原伯)에 봉해졌으므로 제주에서 분적하여 본관을 남원으로 하였다. 병부공파(兵部公派)와 용성군파(龍城君派)가 있다. 남원양씨 최초 입향자는 양성호(梁聖浩)이다. 그는...
-
문다성을 시조로 하고 문응지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남평문씨(南平文氏)는 신라 자비왕 때 사람인 문다성(文多省)을 시조로 한다. 문다성은 남평에서 태어나 고려 말 대장군을 거쳐 삼중대광벽상공신으로 남평백에 봉해졌다. 이에 따라 문다성의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받들고 관향을 남평으로 하게 되었다. 고려 문종 때 풍산군에 봉해진 문익(文翼)을 중시조로 하며, 문익점...
-
우현을 시조로 하고 우영언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단양우씨는 고려 시대 정조호장(正朝戶長)을 지냈던 우현(禹玄)을 시조로 한다. 우현의 후손으로 6세 우중대(禹仲大)가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역임하였으며 그의 아들 5형제가 모두 등과하였다. 8세 우탁(禹倬)은 문희공(文僖公) 시호를 받았고, 정주학을 처음 받아들인 유학자로 우리나라 역학의 시조이다....
-
서진을 시조로 하고 서득선 등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달성서씨는 고려 때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하고 달성군(達成君)에 봉해지고 서씨 성을 받은 서진(徐晋)을 시조로 한다. 서진의 후손은 7세손 때 서제(徐濟)를 파조로 하는 현감공파(縣監公派), 서도(徐渡)를 파조로 하는 학유공파(學諭公派), 서섭(徐涉)을 파조로 하는 판서공파(判書公派), 서근중(徐近中)을...
-
전득시를 시조로 하고 전계춘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담양전씨는 고려 때 전라남도 담양에서 출생하여 의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담양군(潭陽君)에 봉해진 전득시(田得時)를 시조로 한다. 이후 7세손 대에 전록생(田祿生)을 파시조로 한 야은공파(壄隱公派), 전귀생(田貴生)을 파조로 하는 뇌은공파(牢隱公派), 전조생(田祖生)을 파조로 하는 경은공파(耕隱公派)로 갈리어...
-
오녕을 시조로 하고 오남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동복오씨(同福吳氏)는 고려 고종 때 거란을 토평한 공으로 동복군(同福君)에 봉해진 오녕(吳寧)을 시조로 하고 동복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여수에 최초로 들어온 동복오씨 입향조는 오남(吳南)이다. 오남은 시조의 16세손이고 파조 조서공 오가인(吳可仁)의 6세손으로, 1528년(중종 23) 아우 오빈(吳彬...
-
장빈을 시조로 하고 장관조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목천장씨의 시조는 고려조에서 공을 세워 목천군(木川君)에 봉해진 장빈(張彬)이다.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그의 후손들은 장지(張池)를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목천(木川)을 본관으로 하였다 1790년대에 장관조(張寬祖)가 순천에서 옮겨 와 여수시 삼일동 상적마을에 정착했다. 장관조는 시조 장빈의 17세손이며 파조...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여수 지역 북쪽에 있는 섬인 묘도는 광양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으로 노량해전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임진왜란 유적지이다. 2012여수세계박람회 개최 확정으로 여수 관광의 가장 큰 난제 중 하나인 도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하여 광양에서 묘도를 거쳐 여수시에 이르는 대교 건설이 확정되어 공사 중이다. 묘도(猫島)는 우리말...
-
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 읍동마을에서 정월대보름에 하던 줄다리기 놀이. 1995년 1월 10일 마을회관 노인당에서 정영주[남, 85세]·방선주[남, 74세]·방화실[남, 71세] 등이 제보한 바에 의하면, 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 읍동마을에서 약 60여 년 전까지 정월대보름이면 줄다리기가 매우 성했다고 한다. 놀이에 쓸 줄은 정월 14일경에 드린다. 줄은 외줄로 드리는데, 아침부터 마...
-
유차달을 시조로 하고 유철신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시조 유차달(柳車達)은 고려 개국 공신으로 후삼국 통일 전쟁 당시 유주(儒州)[문화]의 호족이었다. 유차달의 8세손인 유경(柳璥)은 고려 고종 때 최의(崔誼)의 무신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왕정을 회복하는 데 일조하였다. 그 공으로 위사일등공신(衛社一等功臣)에 봉해졌으며, 유경(柳璥)의 고향인 유주를 식읍으로...
-
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박웅도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박씨는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의 후손들이다. 밀양박씨는 신라 경명왕의 제1왕자인 밀성대군(密城大君)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는데, 그는 박혁거세의 30세손이다. 이후 문하시중공파(門下侍中公派)·도평의사사사공파(都評議使司使公派)·좌복야공파(左僕射公派)·밀직부사공파(密直副使公派)·판도공파(版圖公派)·좌윤공파(...
-
손순을 시조로 하고 손상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모든 손씨는 신라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 촌장(村長) 구례마(俱禮馬)에서 갈라졌는데, 밀양손씨는 신라 모량부(牟梁部) 사람 태자사인(太子舍人) 손학산(孫鶴山)의 아들 손순(孫順)을 시조로 하고 있다. 이후 군사공영파(郡事公榮派)·전농시사공파(典農寺事公派)·사부공파(師傅公派)·중서령공파(中書令公派) 등으로 갈리면서...
-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바람과 재해로부터 토지와 임야,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한 숲. 방풍재림은 방풍림과 방재림을 말한다. 방풍림은 바람의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성된 숲을 말하며 방재림은 재해를 막기 위해 조성된 숲이란 의미이다. 여수 지역 방품재림은 바다를 끼고 있는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해안 방재림의 특성이 강하다. 해안 방재림은 바다에서 발생하는 해일과 풍랑에 의한 피해...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봉강(鳳崗)마을과 계원(溪源)마을을 합하여 봉계동(鳳溪洞)이 되었다. 조선시대 석보창이 있던 지역으로 속칭 석창이라고도 한다. 본래 여천군 쌍봉면(雙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봉강리(鳳崗里)·월앙리(月仰里)·계원리(溪源里)·대곡리(大谷里)·월산리(月山里) 등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여천군 쌍봉면 봉계리가 되었다. 1976년 전...
-
전라남도 여수시 봉계동 봉강마을에서 유아기를 넘긴 아이가 있는 집에서 베푸는 마을 잔치. 매년 칠월칠석이면 유아기를 무사히 넘긴 가정에서 음식을 장만하여 마을의 어른들은 대접하는 ‘진세턱’을 냈다. 진세놀이의 연원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나 전라남도 여수시 봉계동 봉강마을에서는 매년 칠월칠석날 점심 무렵에 해왔다. 진세놀이를 “진세 꼬리를 밟는다.”라고도 한다. 이는 “진세 꼬리를 잘...
-
최천로를 시조로 하고 최기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삭녕최씨의 시조는 고려 때 평장사를 지냈던 최천로(崔天老)이다. 최천로의 아들 최유가(崔兪嘉)가 명종 때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내고 삭녕에서 대대로 살았으므로 아버지 최천로를 시조로 삼고 본관을 삭녕으로 하였다. 그 뒤 친어모군낭장(親御侮軍郎將)으로 낭장(郎將)을 지낸 최선보(崔善甫)는 낭장공파(郎將公派) 1세조로...
-
전라남도 여수시의 화치동·월하동·평여동·중흥동·적량동·월내동·낙포동·신덕동·상암동·호명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고어로 보면 삼(三)은 미, 미르이고 물을 뜻한다. 일(日)은 실이며 장소를 뜻한다. 삼일은 미르실이며 이것은 물의 고장 즉 바다의 고장을 뜻하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형 조건에서 유래된 것이다. 조선시대에 순천부 삼일면이었으며, 1949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여천군 삼일...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웃바구’라고 하던 마을 이름을 한자로 바꾸면서 상암(上岩)이 되었다. 상암은 상암동 고인돌 군락의 바위 중 맨 위쪽에 위치한 바위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 바위에는 옛날 옛적 금강산을 만들라는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금강산으로 가다 멈춰버린 설악산의 울산바위처럼 금강산이 완성되어 멈추어 섰다는 「상암돌」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본래 순천부 삼일면...
-
박언창을 시조로 하고 박동빈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상주박씨의 시조는 박혁거세의 29세손 경명왕의 다섯째 아들 박언창(朴彦昌)이다. 박언창은 사벌국(沙伐國)을 세워 스스로 왕이 되었으나 후백제 견훤의 침입을 받아 전사했다. 박언창의 12세손 박려(朴侶)는 고려 충렬왕 때 삼중대광첨의찬성사(三重大匡僉議贊成事)로 상산부원군에 봉해졌는데, 그 후손들이 박언창을 시조...
-
전라남도 여수시 시전동에 있는 자연마을. 조선시대 순천부 선소가 위치했던 자연마을이다. 선소(船所)라는 문자의 의미는 배가 있는 곳 또는 배를 만들었거나 만드는 곳이란 의미이지만, 주로 수군진(水軍鎭)의 군선(軍船)이나 행정 관아의 배를 두는 곳을 선소라 표기했다. 여수시 시전동의 시목, 기전, 선소 3개의 자연마을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마을로 마을의 동편인 계곡을 따라 바닷가에...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일제강점기 무선리(舞仙里)와 도원리(桃源里)를 합하여 선원동(仙源洞)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반월리(半月里)·죽점리(竹店里)·도원리·가곡리(佳谷里)·무선리·사벽리(沙碧里) 등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쌍봉면 선원리가 되었다. 1949년 여수시 승격에 따라 여천군이 신설되어 여천군 쌍봉면 선원리가 되었다. 1976년 전라남도 여천지구...
-
배위준을 시조로 하고 배세국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성산배씨(星山裵氏)는 성주배씨(星州裵氏)라고도 하며, 시조는 고려 때 삼중대광벽상공신(三重大匡壁上功臣) 배위준(裵位俊)이다. 배위준의 현손 배인경(裵仁敬)이 충선왕 때 추밀원사를 지낸 후 흥안부원군에 봉해진 연유로 흥안의 지금 지명인 성산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성산배씨는 배인경의 아들 배문적(裵文迪)과 배...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소호동은 일제강점기 소제리(蘇堤里)와 항호리(項湖里)를 합하여 소호리(蘇湖里)가 된 데서 유래하였다. 삼국시대에는 삽평군, 통일신라시대 승평군 해읍현에 속하였다. 1396년(태조 5) 순천부 여수현에 속하였다가, 1896년(고종 33) 순천군 여수면 관할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소제리와 항호리가 통합되어 소호리가 되었다. 194...
-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에 있는 자연마을. 여수시 웅천동에 있는 자연마을로 충무공 이순신 어머니 기거지 등 유서가 깊은 지역이었다. 송현마을은 마을 주위에 소나무 숲이 무성하다하여 솔개, 솔고개 또는 솔곡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솔개는 소나무가 있는 포구란 뜻으로 바다를 기준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솔고개 또는 솔곡은 송림의 재(峙) 즉 산마루나 성(城), 읍(邑), 동(洞), 리(里)...
-
김품언을 시조로 하고 김득기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수원김씨는 신라 경순왕의 증손자 김품언(金稟言)을 시조로 하고 있다. 김품언은 고려 때 정난공신(靖亂功臣)으로 태자소보(太子少保)를 지냈으며, 거란군을 토평한 공으로 수성군에 봉해졌다. 김품언의 후손이 식읍을 하사 받은 수성에서 대대로 살면서 본관을 수성의 지금 이름인 수원으로 하였다. 수원김씨 여수 입향조는...
-
백우경을 시조로 하고 백문익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수원백씨의 시조는 백우경(白宇經)이다. 백우경은 당나라에서 신라에 귀화하여 벼슬이 좌복야사공대사도에 이르렀는데, 그의 후손 백휘(白揮)가 고려 목종 때 대사마대장군으로 수원군에 봉해짐으로써 수원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수원백씨의 여수 입향조는 백문익(白文益)이다. 백문익은 정국공신(靖國功臣) 백수장(...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시전동(枾田洞)은 시목(枾木)과 기전(基前), 선소(船所)마을을 합쳐 만들어진 동이다. 시목마을은 마을에 감나무가 많아서 감나무 골이라고 부르던 이름을 감 시(柿)와 나무 목(木)으로 훈차(訓借)하여 지은 이름으로 고려시대부터 소금을 만들던 조해소가 있던 곳으로 알려졌다. 기전마을은 터 앞이라고 부르던 마을 이름을 한자로 고쳐놓은 이름이며...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신기동 동쪽의 민드래미고개 북쪽 등성이에 있는 골짜기인 수문(숨은)골 주변에는 수문성(水門城)이라는 산성이 있다. 또한, 신기동의 선소마을은 배를 만들던 마을에 붙여졌던 땅이름으로 많은 마을이 그 모습을 잃어버렸지만, 신기동의 선소마을은 지금도 옛 마을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1980년 명지대학교의 발굴조사를 통하여 거북선을 만들었던 장소 중...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여러 마을이 통합되었는데, 이때 가장 큰 마을인 덕대(德大)마을에 ‘신(新)’자를 붙여 신덕(新德)이라 하였다. 덕대란 지명은 전국 여러 지역에서 많이 나타난다. 여수시 덕충동의 옛 지명도 덕대인데 마을에서는 ‘덕대골’이 변한 ‘떡더골’로 많이 불렸다. 마을 주변의 지형을 살펴보면 옛 지명 ‘떡더골’이나 ‘몬당개’,...
-
주희를 시조로 하고 주법명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중국 하남성 신안면(新安面)에서 태어난 주잠(朱潛)은 주희(朱熹)의 증손으로 몽고의 침입을 피해 아들 주여경(朱餘慶)과 문하생 섭공제(葉公濟) 등 7명의 학사(學士)를 데리고 고려로 망명하였다. 송나라를 무너뜨리고 중원의 주인이 된 원이 고려에도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에 처음에는 신안 대신 능성(綾城)을 본관으로...
-
전라남도 여수시 학동·학용동·안산동·소호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1902년 여수면이 쌍봉면으로 개칭되면서 두 지역의 이름 있는 산인 전봉산(戰鳳山)과 비봉산(飛鳳山)의 두 개의 봉(鳳)자를 따 쌍봉면이라 이름 붙였다. 삼국시대에는 감평군[순천] 원촌현과 통일신라시대 승평군 해읍현에 속했으나, 조선시대 1396년(태조 5)에는 순천부 여수현에 속하였다. 1896년(고종 33)에는 순천...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안산동은 서쪽에 있는 안심산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재의 장성마을, 여수마을, 심곡마을과 통합되어 여수군 쌍봉면 안산리가 되었다. 1986년 여천시 쌍봉동 관할의 법정동인 안산동으로 바뀌었고, 1998년 여천시·여천군·여수시가 여수시로 삼여통합됨에 따라 여수시 쌍봉동으로 통합되었다. 안심산의 동쪽과 북쪽 산자락...
-
허선문을 시조로 하고 허진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김해김씨는 가락국을 세운 수로왕이 시조이다. 김해 이후 분관된 사례가 없으나 다만 수로왕의 비 보주태후 허황옥(許黃玉)의 간곡한 요청으로 두 아들은 모성을 따라 허씨가 되었다. 모성을 이어 받은 두 아들의 후예 허선문(許宣文)은 허황후의 30세손으로 전하며, 지금의 김포 양천에 세거하면서 농사에 힘써 거부가 되...
-
전라남도 여수시, 여천시, 여천군이 통합하기 전 각각의 지역에서 출간한 마을지. 여수 지역에서 그동안 마을 유래사를 모아 편찬한 단행본으로는 『여천시 마을유래지』[1986년|1998년], 『여천군 마을 유래지』[1990년], 『삼도수군통제영 여수동사』[1993년] 등이 있다. 각각 여수 지역에서 전해 오는 역사적 사실과 함께 기본 현황, 연혁, 전설, 문화, 풍속, 배출 인물 등을...
-
전라남도 여수시 선원동·화장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여천동은 구여천군 시절 선원리·여천리·화장리 지역으로 쌍봉동과 주삼동 사이에 위치하여 서쪽으로는 소라면과 경계한다. 내동·월평·석창·월산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여천리라 하고 한 법정리의 이름으로 되었다. 본래 여수[석보]현의 터인데, 1396년(태조 5)에 순천부에 편입되고, 1897년 여수(천)군 쌍봉면에 편입되었다. 1...
-
민칭도를 시조로 하고 민인준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여흥민씨(驪興閔氏)의 시조는 고려 때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귀화한 민칭도(閔稱道)이다. 민칭도는 경기도 여흥(지금의 여주)에 정착하여 상의봉어(尙衣奉御)에 올랐던 인물로, 그의 후손들은 여흥을 관향으로 삼고 세계를 잇고 있다. 여흥민씨 여수 입향조는 민인준(閔仁俊)이다. 민인준은 유수공 민심언(閔審言) 파조의...
-
차무일을 시조로 하고 차경복과 차경철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연안차씨는 중국 황제의 후손 사신갑(似辛甲)이 망명해 와 평양 일토산 아래에 정착하여 살며 왕조명(王祖明)으로 성명을 바꾸었고, 그 후손 왕몽(王蒙)이 정치적 화를 피하기 위하여 다시 전(田), 신(申) 등으로 성을 바꾸었다가 후에 차무일(車無一)로 바꾸면서 시작된다. 신라 초기에 승상을 지냈던 차무...
-
정덕성을 시조로 하고 정여조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영광정씨의 시조는 정덕성(丁德盛)이다. 정덕성은 853년(문성왕 15)에 당나라에서 전라남도 압해도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서거하였다. 정덕성의 후손 정진(丁晋)은 고려 때 태학생원(太學生員)을 지내는 큰 벼슬을 했다. 정진의 손자 정찬(丁贊)이 공민왕 때 공을 세워 영성군(靈城君)에 봉해짐에 따라 후손들이...
-
신경을 시조로 하고 신중광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영산신씨(靈山辛氏) 시조는 고려 인종 때 중국에서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와 귀화한 후 문화시랑평장사를 지낸 신경(辛鏡)이다. 신경의 후손은 8세손에서 상장군파(上將軍派)·덕재공파(德齋公派)·초당공파(草堂公派)·판서공파(判書公派)·부원군파(府院君派) 등 5파로 갈리는데, 앞의 세 파가 영산신씨이고 나머지는 영월신씨...
-
천암을 시조로 하고 천진룡과 천세광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영양천씨(潁陽千氏)는 명나라 관리 천암(千巖)을 시조로 하고 있다. 천암의 후손이 영양에 세거하였다. 그 중 천만리(千萬里)는 임진왜란 때 두 아들 천상(千祥)과 천희(千禧)를 데리고 우리나라에 와서 전공을 세우고 귀화하여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다. 영양천씨 천인룡(千仁龍)은 아우 천진룡(千振龍)과...
-
엄임의를 시조로 하고 엄신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영월엄씨 시조는 당나라 파악사(坡樂使) 엄임의(嚴林義)이다. 엄임의는 고려에서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이 되었으며 영월에 정착했는데, 아들 엄태인(嚴太仁)이 검군감(檢軍監)으로 영월군(寧越君)에 봉해짐으로써 영월로 본관을 삼았다. 엄태인·엄덕인(嚴德仁)·엄처인(嚴處仁)의 3형제 대에서 3파를 이루어 세계를 잇고...
-
조장을 시조로 하고 조윤구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옥천조씨(玉川趙氏)는 고려에서 문하시중(門下侍中) 등을 지낸 조장(趙璋)을 시조로 한다. 조장의 증손 조원길(趙元吉)이 공양왕(恭讓王) 때 일등공신으로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봉해졌기 때문에 후손들은 옥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옥천은 순창(淳昌)의 옛 이름이므로 순창조씨(淳昌趙氏)라고도 한다. 절...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곰칭이’ 또는 ‘곰쳉이’라고 하였으며, 고음천(古音川)이라는 한자로 표기하기도 했다. ‘웅천(熊川)’은 ‘곰쳉이’의 한자 표기로, ‘곰’은 웅(雄)자로, ‘쳉이’는 소리 나는 대로 천(川)으로 표기한 명칭이다. 1897년 여수군 쌍봉면에 속하였다가 1949년 여수시 승격으로 여천군 쌍봉면 웅천리가 되었다. 1976년 여천지구출장소 쌍봉면 웅천리가...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달한’이라 불리다가 차츰 ‘달안’으로 불렸다. ‘달’은 산을 뜻하는 옛말로, 산으로 둘러싸인 안쪽의 마을이란 뜻이다. 한자로는 달 안쪽이라는 뜻의 월내(月內)로 표기하게 되었다. 1949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여천군 삼일면에 속하였으며, 1976년 여천지구출장소 삼일지소 월내리가 되었다. 1980년 삼일읍 월내리가 되었고, 1986년 여천시 승격...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조선시대에 ‘다락골’이라 불렸는데, 뒤에 ‘달 아래의 마을’이란 뜻의 월하리(月下里)가 되었다. 1949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여천군 삼일면에 속하였으며, 1976년 여천지구출장소 삼일지소 월하리가 되었다. 1980년 삼일읍 월하리가 되었고, 1986년 여천시 승격으로 월하동으로 바뀌면서 여천시 삼일동으로 통합되었다. 1998년 여천시·여천군·여수...
-
송대원을 시조로 하고 송길로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은진송씨(恩津宋氏)는 고려 때 판원사(判院事)를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은진군(恩津君)에 봉해진 송대원(宋大原)으로부터 세계를 잇게 되었다. 은진송씨 여수 입향조는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후손 송길로(宋吉老)이다. 송길로는 통정의 관등에 올랐으며 영조 때 광양에서 여수시 화양면 이천리로 이주해 살...
-
남군보를 시조로 하고 남기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의령남씨(宜寧南氏) 시조는 남민(南敏)이다. 남민의 7세손 남진용(南鎭勇)의 세 아들 중 맏아들 남홍보(南洪甫)는 영양, 둘째 남군보(南君甫)는 의령, 막내 남광보(南匡甫)는 고성에 각각 관적(貫籍)하여 각 파의 중시조가 되었다. 이때부터 남씨는 세 본관으로 나뉘게 되었고, 남군보가 의령남씨의 실질적인 시조가...
-
서신일을 시조로 하고 서은부 등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입향조. 이천서씨의 시조는 기자(箕子)의 40세손 기준의 후손 서신일(徐神逸)이라 한다. 기준(箕準)은 위만을 피하여 이천에 있는 서아성(徐阿城)에 살았다 하여 그 후손이 성을 서씨라 하고 본관을 이천(利川)이라 하였다. 이천서씨 여수 입향조는 원숙공(元肅公) 서눌(徐訥) 파조의 17세손 서은부(徐殷富)이다. 서은부는...
-
장금용을 시조로 하고 장진손과 장만홍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인동장씨는 고려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 장금용을 시조로 하는 혈족이다. 시조가 처음 지금의 구미인 인동(仁同)에 처음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인동을 관향으로 삼고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인동장씨의 여수 입향조는 시조의 19세손이며 충정공 장안세(張安世)의 8세손인 장진손(張震遜)이다...
-
전라남도 여수시 쌍봉동 일대에 있던 포구. 고려시대부터 현재 여수시청이 들어선 지역을 장생포라고 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순천부 선소로 알려졌으며,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쌍봉이라 하였다. 여수국가산업단지 건설로 여천지구출장소에서 여천시로 변했다가, 1998년 삼여통합 후 구여수와 신여수를 구분하여 서여수라 호칭하기도 했지만, 아직 여천과 쌍봉으로 호칭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장생포...
-
황경을 시조로 하고 황수청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장수황씨 시조는 통일신라 경순왕의 부마로 시중을 지낸 황경(黃瓊)이라 한다. 황경의 9세손 황공유(黃公有)는 고려 명종 때 권신들을 피해 고향인 장수로 돌아와 버렸는데, 이후의 세계가 실전되어 후손들은 참의를 지낸 황석부(黃石富)를 1세조로 하고 장수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잇고 있다. 장수황씨는 거의 황희의...
-
위경을 시조로 하고 위효징과 위용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 당 태종이 보낸 8학사(八學士) 중 위(魏) 땅에 거주했던 위경(魏鏡)은 신라 조정으로부터 아찬(阿飡) 벼슬까지 부여되고 지금의 장흥인 회주(懷州)에서 문화사절(文化使節)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그로 인해 고려 충선왕 때 위경을 회주군(懷州君)으로 봉하니 장흥위씨의 시조가 된다....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여수국가산업단지의 시초가 되었던 호남정유가 최초로 들어섰던 적량동은 고려시대부터 ‘적량부곡(赤良部曲)’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온다. 광양만의 풍부한 수산자원과 진례산을 배경으로 한 기름진 땅에 남해의 따뜻한 기후는 우리나라 어느 곳보다 살기 좋은 자연환경이었다. 삼일포향·적량부곡·진례부곡 등 삼일 지역엔 유난히 많은 향과 부곡의 이름이 전해온다. 고려시...
-
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원인 등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全州李氏)의 시조 이한은 신라에서 사공 벼슬을 지냈으며, 이성계(李成桂)의 21대조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여 왕위에 오름으로써 세계가 번성하여 파조도 대단히 많다. 전주이씨 여수 입향조는 양녕대군(讓寧大君) 후손 이원인(李元仁)이다. 이원인은 1580년대에 담양에서 여수시 율촌면 반월리 삼산마...
-
최순작과 최군옥을 시조로 하고 최완과 최준기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전주최씨는 각각 다른 네 계보가 있다. 최순작(崔純爵)을 시조로 하는 문열공파(文烈公派), 최균(崔均)을 시조로 하는 사도공파(司徒公派), 최아(崔阿)를 시조로 하는 문성공파(文成公派), 최군옥(崔群玉)을 시조로 하는 문충공파(文忠公派) 등 네 파가 그것이다. 전주최씨 여수 입향조는 문열공파(...
-
양을나를 시조로 하고 양하용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제주양씨(濟州梁氏)는 탐라(耽羅) 삼성혈(三姓穴) 설화의 주인공 양을나(良乙那)를 시조로 하는 혈족이다. 처음에는 성으로 양(良)을 쓰다가 양을나의 후손 양탕(良宕)이 559년(진흥왕 20) 광순사(廣巡使)로 신라에 입조하나 진흥왕이 많은 상을 내리고 성을 양(梁)으로 하사하였다고 한다. 양탕의 후손으로 양순...
-
전라남도 여수시 봉계동·해산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주암·주동·삼동 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암에서 주자와 삼동에서 삼자를 각 한자씩을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되었다. 본래 여수(천)군 쌍봉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소항·주암·군장리의 일부와 삼일면의 삼동과 오산·용혈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주삼리가 되었다. 1949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여천군 쌍봉면...
-
안원형을 시조로 하고 안효기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죽산안씨(竹山安氏)는 구죽산과 신죽산 두 파가 있다. 구죽산의 시조는 고려의 상서좌복야 안영의(安令儀)이며, 신죽산의 시조는 안원형(安元衡)이다. 안원형이 고려 때 문하시중평장사를 역임하고 좌명공신이 되어 죽성군에 봉해짐에 따라 그의 후손들이 본관을 죽산이라 하고 세계를 잇고 있다. 1720년대에 안원형의 1...
-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두암마을에서 명절에 행해 온 농악. 광양만 쪽으로 흘러내린 영취산 줄기 끝에 위치한 여수시 중흥동 두암마을은 산림과 수원이 좋아 원래 농업이 주된 산업이었다. 지금은 인근에 여수산업단지 입주로 농경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1995년 10월 23일 김재두[남, 39세, 상쇠]가 제보한 바에 따르면 이 마을에서는 예부터 설과 정월 보름, 추석에 매구를 쳤다. 그...
-
정자우를 시조로 하고 정필국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진양정씨(晉陽鄭氏)는 진주정씨(晋州鄭氏)라고도 하는데, 경주정씨(慶州鄭氏) 지백호(智伯虎)의 후손에서 갈라진 성씨라고 한다. 정예(鄭藝)의 충장공파(忠莊公派), 정자우(鄭子友)의 은열공파(殷烈公派), 정장(鄭莊)의 공대공파(恭戴公派), 그리고 어사공파(御史公派) 등은 진양정씨의 4대 봉우리로, 현재의 진양정씨...
-
박진문을 시조로 하고 박만칠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진원박씨(珍原朴氏)는 고려 때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한 박진문(朴進文)을 시조로 하고 있다. 진원박씨는 구진박씨(丘珍朴氏)라고도 하는데, 역시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후손에서 분관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1652년(효종 3) 문강공(文康公) 박광전(朴光前)의 후손 박만칠(朴萬七)이 효종 때 보성에서 동생...
-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주호와 강원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진주강씨(晉州姜氏)는 진양강씨(晉陽姜氏)로 부르기도 한다.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姜以式)의 후손인 강진이 신라 헌강왕 때 태중대부판내의령(太中大夫判內議令)으로 재임 중에 진양후(晉陽侯)로 봉해지면서 본관을 진주로 하게 되었다. 진주강씨는 크게 은열공파(殷烈公派), 박사공파(博士公派), 소감공파(少監...
-
유정을 시조로 하고 유자형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진주유씨(晉州柳氏)는 유정(柳挺)을 시조(始祖)로 하는 성씨이다. 유정이 고려 중기에 상장군(上將軍)에 이르고 진강부원군(晉康府院君)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관향을 진강의 현재 이름인 진주(晉州)로 삼고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진주유씨가 여수에 입향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대사성공 파조 유지택(柳之澤)...
-
정연방을 시조로 하고 정계생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우리나라 정씨의 시조는 정덕성(丁德盛)으로 알려져 있다. 정덕성은 853년(문성왕 15)에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도로 귀양 와서 살았고, 후손들이 번성하였다. 장자 정열도(丁烈道)의 계손 정찬(丁贊)은 영광정씨(靈光丁氏), 그 아우 정관(丁寬)은 후창원정씨(後昌原丁氏), 차남 정응도(丁應道)의 계손 정윤종(丁允...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전해 내려오는 충효열에 관한 이야기. 조선시대 우리 민족은 유교적인 윤리 관념에서 충효열(忠孝烈)을 인간 생활의 가장 중심이 되는 덕목으로 삼았다. 그래서 충효열에 대한 이야기는 전국 곳곳에서 도덕적인 교훈을 주고자 여러 형태로 전승되어 오고 있다. 여수 지역에도 충효열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여수 지역에는 충(忠)에 관한 이야기가 한 편이 전...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여수시 중북부에 위치한 평여동은 구 삼일읍 지역에 있던 법정리 평여리가 여수국가산업단지 조성으로 법정동으로 바뀐 지역이다. 평여·신송·산본·신흥·남수리 마을이 통합되어 법정리를 이루었으나, 모든 마을이 이주하고 여수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한 기업들이 들어서 있다. 마을 앞에 넓은 들이 있어서 ‘들몰’이라 부르던 마을로, 들과 마을이라는 뜻의 한자 ‘평여(...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마을 앞바다에 많은 학들이 떼를 지어 물 위를 수놓고 뒷산 또한 학의 형국인데다가, 왜가리와 학이 둥지를 틀어 서식하므로 학동이라고 했다 한다. 또는 입향자의 호가 ‘학남’이어서 ‘학’ 자를 따서 ‘학동’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고려 초기 이 마을에는 특정 직업의 집단이 살았던 조수소(調水所)가 있었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보이지 않다가 19...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학용동은 학(鶴)이 많이 살았던 마을 ‘학동’과 용처럼 생긴 지형 때문에 ‘용터’라고 부르던 ‘용기마을’의 이름에서 한 자씩을 취해서 지어진 마을 이름이다. 1914년에 처음 만들어진 마을 이름이다. 옛 쌍봉면 시절부터 면의 중심 마을이던 곳이 여천시를 거쳐 통합 여수시청이 위치한 동으로 발전해왔다. 옛 지명들로 웃장·아랫장·가마등·마누등 등의 이름...
-
여어매를 시조로 하고 여광률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함양여씨(咸陽呂氏)는 당나라 희종 때 신라에 건너와 창성한 여어매(呂御梅)를 시조로 삼는 성씨이다. 최초 정착한 곳이 함양(咸陽) 혹은 성산(星山)이라는 설로 인해 함양여씨와 성산여씨로 갈라진다. 시조 여어매는 고려 때 대장군을 지낸 여임청과 낭장을 지낸 여광유 두 아들을 두었는데, 함양여씨는 여임청의 세 아...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해산동에는 해지(蟹旨)마을·오산(烏山)마을·대평(大坪)마을·기동(基洞)마을·고막(古莫)마을이 있어, 해지마을과 오산마을에서 ‘해산’이라는 이름을 만들게 되었다. 해지마을은 마을의 지형이 바다에 사는 게 모양의 형상이라 하여 이름이 유래되었다. 많은 주민들이 게머리재와 같이 마을의 지형과 게의 형상을 일치시킨 다음, 풍수지리를 곁들인 마을 유래를 전해...
-
전라남도 여수시에 속하는 법정동. 호명동은 ‘범우리’라고 하던 우리말을 훈차(訓借)한 마을 이름으로, ‘범이 울던 곳’이나 ‘범 골짜기’의 뜻을 가지고 있는 땅이름이다. 호명동의 마을은 호명과 호복마을을 비롯해 양지마을·오천마을·내동마을이 호랑산의 북쪽인 계곡 아래쪽으로 자리하고, 위쪽엔 자내리로 대동마을과 양지마을·석정마을·사근치마을이 있다. 호명마을에는 지방기념물 165호로 지...
-
전라남도 여수시에 속하는 법정동. 화장동은 ‘화산’과 ‘군장’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취하여 만들어진 이름으로, 1914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이 지역에 관한 기록으로는 조선시대인 1789년의 『호구총수』에 ‘대통마을’만이 기록에 전하고 있다. 화산마을의 옛 이름은 ‘덕골’이었다. ‘덕골’이란 이름은 이 일대의 지형이 언덕 모양의 구릉이 있어서인데, 마을 이름을 한자화하면...
-
전라남도 여수시에 속하는 법정동. 삼일 지역의 북서쪽에 자리한 화치동은 한자의 뜻으로 옮기면 ‘꽃 고개’란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꽃 고개는 아름다운 꽃과 관련된 이름은 아니다. 화치의 옛 이름은 ‘꼬(고)재’라고 하였다. ‘꼬(고)재’는 강이나 바닷가에 튀어나온 지형에 붙게 되는 ‘곶이’라는 말이 변형된 말로, 센소리로 하면 ‘꼬지’나 ‘꼬치’, ‘고치’가 된다. 이를 한자로 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