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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0388
한자 平沙里
영어음역 Pyeongsa-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평사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행정리
면적 15.187㎢
총인구(남, 여) 1,636명[남 862명,|여 774명][2022년 9월 6일 기준]
가구수 893가구[2022년 9월 6일 기준]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돌산읍의 중서부에 위치한 평사리우두리·둔전리·금봉리와 접하며, 굴전·계동·월암·도실·평사·모장마을이 병합된 법정리의 이름이다.

[명칭유래]

마을 앞 해변으로 아름다운 모래가 길게 펼쳐져 ‘평사(平沙)’라는 이름을 얻었다. 중국의 소상팔경 중 하나인 평사낙안(平沙落雁)과 같은 절경이 펼쳐져 여수의 십경으로 알려졌다.

평사리에 속한 굴전마을은 마을 남쪽의 산에 동굴이 있어 ‘굴앞마을’이라고 부르다가 ‘굴전(窟前)’이라는 한자로 표시하게 되었다. 여천군 시절에 편찬된 마을 유래지에는 마을 앞 낫진개 뒷산에 동굴이 있다고 기록되었으나, 대미산에 있는 동굴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마을 동쪽으로 작은 호수처럼 감싸 안은 ‘안굴전’ 지역은 628.102m²의 공유수면이 전라남도 지정 지방기념물 43호로 고니 도래지이다. 겨울이면 찾아왔다가 떠나는 고니의 개체수가 해가 갈수록 줄어들어 안타깝다.

굴전마을 북쪽의 작은 마을 진모는 ‘무슬목’으로 이어지는 긴 목 모양의 지형 때문에 진목으로 불렸다. 그러나 참나무가 많은 우두리의 ‘진목(眞木)마을’과 구분되어 ‘진모’로 불린다. ‘무슬목’은 충무공의 전적지로 전해오는 곳이다. 정유재란 때인 1598년 가막만 바다 멀리서 보면 동서의 바다가 이어져 보이는 지형적인 특성을 이용하여 왜군을 이곳으로 유인함으로써 60여 척의 왜선과 300여 명의 왜군을 섬멸하였다고 한다. 이 해가 무술년이어서 이 지역을 ‘무술목’이라고 했다는 설과 이러한 무서운 사건 때문에 ‘무서운 목’이라 불렀던 것이 변하여 ‘무술목’이라 한다는 설이 있다.

무슬목은 본래 물과 물 사이 좁은 목이 있는 지형에 붙는 우리말 땅이름으로, 전국의 여러 곳에서 무실목·무시목·무술목 등으로도 불리는 흔한 이름이다. 아름다운 몽돌 해변과 함께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동백골’이라고도 하는 ‘무슬목’은 서쪽의 포구가 둑으로 막혀 있다. 1998년에 문을 연 전라남도 수산종합관이 자리를 하면서 동서 바다가 하나로 연결된 ‘무슬목’이란 땅이름의 의미를 간직한 지형의 특징을 더 이상 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대미산 남동쪽에 자리한 계동의 옛 이름은 ‘줄개’이다. 길게 이어진 포구의 형상에서 얻은 이름이었지만, ‘호박골’이란 마을 앞 골짜기가 호랑이가 엎드리고 있다는 뜻의 ‘호복(虎伏)골’로 표현되면서 ‘줄개’란 마을 이름은 ‘굶주린 개’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마을 이름을 바꾸게 되었는데, 떠오르는 달이 아름다운 마을의 경치를 생각하여 ‘계동(桂洞)’이라 이름 지었다. 뼈와 함께 썰어서 고소한 맛이 나는 ‘뼈꼬시’로 유명한 마을답게 생선 횟집이 많은 마을이다.

평사리 월암마을에는 마을 동쪽 고갯마루와 마을 앞 들녘 곳곳에 고인돌이 산재하고 있어 마을의 오랜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조선 초기 대부분의 섬에는 사람을 살지 못하게 하던 공도 정책의 영향으로 지금 살고 있는 주민은 임진왜란 이후 이주해왔다고 알려지고 있다.

도실(桃實)마을은 마을 뒷산에 도솔암이란 암자가 있어서 이 골짜기를 ‘도솔암골’이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되었다. 전설에는 1195년(고려 명종 25)에 보조국사가 절을 건립하여 스님들이 수행을 하다가, 절에 빈대가 많아서 절을 불태우고 흥국사 뒷산인 진례산으로 옮겨갔다고 전해온다. 1970년대에 폐사지에서 동종이 발견되어 흥국사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모장마을은 보리마당을 한자로 적은 ‘모장(牟場)’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 보리 탈곡을 위해 넓은 마당에 공동으로 보릿단을 쌓았던 곳을 ‘보리마당’이라 하는데 이 지역에 마을이 생겼기 때문에 땅이름으로 굳어졌다. 호수처럼 잔잔한 가막만이 마을 앞으로 펼쳐져 있어 최근에 전원주택이 많이 들어섰다.

[형성 및 변천]

조선시대 『호구총수』에는 굴전리의 기록만이 있고, 1895년 돌산군 두남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여수군 돌산면 평사리가 되었고, 1949년 여천군 돌산면 평사리가 되었다가, 1998년 삼여통합으로 여수시 돌산읍 평사리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자연환경]

돌산읍의 중앙부에 위치한 평사리는 마을 서북쪽의 천마산과 북쪽의 대미산, 중앙의 봉화산과 금산을 끼고 작은 마을이 들어서 있다. 논보다는 밭이 많은 지역이며 평사에서 대미산 방향의 산자락은 애추가 발달하여 많은 바위들이 흘러내린 것을 볼 수 있다. 평사리의 서쪽 해안은 가막만을 바라보는 일몰시의 낙조가 아름답다.

[현황]

평사리 굴전해안에는 1979년 8월에 시도기념물 제43호로 지정된 돌산 평사리 고니도래지가 있다. 2022년 9월 기준, 893가구에 1,636명[남 862명,|여 77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2012여수세계박람회 이후 별장형 펜션과 전원주택이 많이 들어서면서 돌산 난개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으며, 2020년에는 소미산이 불법훼손이 되는 등 문제가 생기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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