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667 |
---|---|
한자 | 圓仁 |
영어음역 | Ennin |
이칭/별칭 | 원인 |
분야 |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김병호 |
[정의]
남북국시대 전라남도 여수를 거쳐 간 『입당구법순례행기』를 지은 일본인 승려.
[활동사항]
승려 원인(圓仁)은 일본 헤이안시대인 794년에 시모쓰케국[下野國] 쓰기국[都賀郡]에서 태어나 802년 9세 때 불교에 입문하여 808년 15세 때 일본 천태종 개조이며 엔랴쿠사[延曆寺]를 창건한 사이초[最澄]의 제자가 되었다. 호류사[法隆寺]에서 법화경을 강술하고 838년 45세 때 청익승으로 선발되어 견당사선(遣唐使船)을 타고 하카다에서 출발하여 당나라의 양주에 도착하여 견당사 일행이 장안으로 갈 때 원인은 천태종의 발생지인 태주 천태산 순례를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
다시 견당사 일행과 합류하여 일본으로 귀국하던 중 귀국선이 해주에 이르자 당나라에 머물 것을 결심하고 종자와 배에서 내렸으나, 당나라 관리에 의해 다시 귀국선에 태워진다. 하지만, 원인을 태운 귀국선은 역풍을 만나 산동반도의 끝자락인 문등현 청녕향 적산촌에 닿게 된다.
원인은 배에서 내려 장보고가 세운 적산법화원에서 지내다가 적산법화원의 원주 법청 스님과 신라인 관리의 도움을 받아 오대산 대화엄사에 이른다. 원인은 그곳에 머물며 천태종의 고승과 만나 가르침을 받는다. 840년 원인은 장안에 도착하여 장안의 거찰인 자성사에 머물며 일본에 없는 불경을 필사하고 고승을 찾아 지념의 법을 터득하고 범어도 익힌다.
그러나 원인이 장안에 머문 지 2년째부터 당시 황제인 무종에 의한 불교 탄압인 회창폐불(會昌廢佛)을 만나 원인도 다른 승려들과 함께 강제로 환속하게 된다. 그리고 이틀 후 원인은 김진이라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귀국을 하게 되었다. 원인은 귀국선에서 다시 머리를 깎고 승복을 갈아입었으며, 전라남도 완도의 청해진과 여수 지역의 안도(安島)를 거쳐 만 9년 3개월 만에 하카다만으로 귀국한다.
귀국 시 559권에 달하는 불교 문헌과 불교 의식에 사용되는 여러 불구(佛具)를 일본으로 가져와 이후 일본 불교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일본 천태종 산문파(山門派)의 개조가 되었다. 원인이 중국에서 도입한 송경방식은 지금도 일본 불교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일본 황실은 원인의 공로를 인정하여 귀국 이듬해인 848년 전등대법사(傳燈大法師)의 직함을 내렸으며, 61세 때인 854년 제3대 천태좌주로 보임되어 입적 때까지 10년간 그 자리에 있었다. 입적 2년 후 자각대사(慈覺大師)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저술 및 작품]
원인은 서기 838년 7월부터 847년 초가을까지 9년 반 동안이나 여행을 하면서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라는 상세한 기록의 여행기를 남겼다. 이 책에는 원인이 일본으로 귀국시에 전라남도 여수시 안도에 기착(寄着)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