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0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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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虹橋- |
영어의미역 | Treading the Bridge of Heungguksa Temple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17[흥국사길 160]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준옥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흥국사에서 홍교를 밟으며 노는 정월 대보름 풍속.
[개설]
다리밟기는 정월 대보름날 밤에 다리를 밟으면 일 년 동안 다리 병을 막을 수 있고, 12개 다리를 밟으면 일 년 열두 달 모두 액을 물리칠 수 있다고 전해져 왔던 놀이다. 또한 사람들은 자기 나이만큼 다리를 오가면 무병장수한다고 믿었다.
보편적으로 강이나 시내 위에 놓인 다리가 튼튼하므로, 이를 밟으면 같은 음(音)인 사람의 다리도 튼튼해질 것이라는 생각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보물 제563호인 흥국사 홍교(興國寺 虹橋)에서의 다리밟기는 신대촌과 사근치, 자내리 마을 사람들이 음력 정월 대보름날 저녁에 행했던 놀이이다.
[연원 및 변천]
정월 대보름날 밤 무지개 모양을 본 딴 흥국사 홍교에서 다리밟기가 이루어져 왔다. 그 동안 약화되었다가 1994년부터 ‘석보농악단’에서 다리밟기를 재현했다.
[놀이도구 및 장소]
행사 장소는 흥국사 입구이며, 중흥부녀회와 중흥연합청년회가 주관하였다.
[놀이방법]
1995년 10월 29일 재현된 진행과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 11:00-11:25 / 여천시 ‘우리소리동우회’ 소속 회원들이 행사장 중앙에서 사물놀이를 연주한다(쇠 2명, 징 1명, 북 3명, 장고 2명). 같은 시각 주최 측 여성 참여자들이 상 위에 쌀그릇과 촛불을 밝히며 홍교 밑으로 내려가 다리 밑 중앙에 2상, 다리 양쪽에 2상씩 진설한다.
◇ 11:30-11:35 / 여천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문화공간 한울림’ 소속 농악단 30여 명이 행사장인 흥국사 입구까지 농악을 연주하며 입장한다.
◇ 11:35-11:45 / 내빈 소개와 경과를 보고한다.
◇ 11:50-12:05 / ‘우리소리동우회’ 소속 회원들이 사물놀이를 연주한다.
◇ 12:05-12:37 / 3명의 판소리 수련생들이 「춘향가」, 「흥부가」, 「심청가」 중 한 대목을 차례로 부른다.
◇ 12:37-12:50 / ‘한울림’ 사물놀이가 공연된다.
◇ 12:50-13:05 / ‘한울림농악단’이 비손굿을 연주하는 가운데 부녀자들이 다리 밑으로 내려가 촛불을 밝히고 소원을 빈다.
◇ 13:10-13:25 / ‘우리소리동우회’와 ‘한울림농악단’이 농악을 치며 다리 위를 왕복한다. 그 뒤를 참여자들이 줄을 지어 따른다. 사회자가 ‘메사나’를 외쳐대자 참여자들이 일제히 따라 한다(세 번 반복). 참여자들이 자신의 나이만큼 다리 위를 왕복하며 밟는다.
◇ 13:30-13:45 / 불의의 사고로 객사한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뜻으로 다리 밑에 상을 3개 차린다. 상에는 소금, 명태, 된장, 술(막걸리)을 진설한다. ‘한울림농악단’의 비나리와 액맥이 타령 등이 연주되는 가운데 헌식한다.
◇ 13:45-16:00 / 뒤풀이과 곳곳에서 술판과 노래판이 벌어진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홍교다리밟기가 성할 때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 놀이에는 여러 가지 풍속들이 복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불깡통 돌리기’, ‘매산이 부르기’, ‘다리밟기’, ‘부럼깨기’, ‘달집태우기’까지 나온다. 그리고 이 놀이들이 보름날 저녁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달맞이의 면모도 갖고 있다. 참여한 주민들은 자신의 나이만큼 다리를 오가면서 소원을 빌었다.
다리밟기를 하면서 밤이나 고구마, 땅콩 같은 것을 깨무는 부럼깨기를 했다. ‘매산이 부르기’는 원래 정월 14일 저녁 부인들이나 여아들이 보름밥을 하기 위해 마련한 삶은 팥을 가지고 밭으로 나가 자기 나이 수만큼 팥을 손에 쥐고 “매성아! 금년에 머리 아프고 배 아픈 것(모든 아픈 것)을 다 가져 가거라”하는 말을 하며 그 팥을 밭에 묻는 놀이이다. 여수에서는 이 같은 도액(度厄) 행사를 홍교 다리밟기 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흥국사 홍교다리밟기는 액막이와 축원 등의 기능을 지닌 대보름 행사들이 더불어 행해졌다. 단순히 다리밟기에 그치지 않고 대보름의 여러 놀이와 관행들을 포괄하면서 전승되어 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