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7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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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興國寺盧舍那佛掛佛幀 |
영어의미역 | Hanging Painting of Rocana Buddha of Heungguksa Temple |
이칭/별칭 | 흥국사 괘불,흥국사 노사나불괘불도,의겸,비현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17[흥국사길 16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석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2년 1월 2일 - 흥국사 노사나불 괘불탱 보물 제1331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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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흥국사 노사나불 괘불탱 보물 재지정 |
성격 | 불교회화|탱화 |
제작시기/일시 | 1759년 |
작가 | 의겸|비현 |
소장처 | 흥국사 |
소장처 주소 |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17[흥국사길 160] |
소유자 | 흥국사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
전라남도 여수시 흥국사 의승수군유물전시관에 전시(모사본/원본은 수장고보관)된 조선 후기 불화.
이 불화는 사찰에서 영산재(靈山齋)나 수륙재(水陸齋) 등의 큰 재를 올리거나 사월 초파일 등의 대법회(大法會) 때 사용한다. 또한 연등회(燃燈會)나 팔관회(八關會), 백고좌회(百高座會)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실내 행사가 어려울 때 옥외 의식용(儀式用)으로 내거는 불화이다.
이때는 본존불상 대신 거대한 불화를 높이 걸어 모시고 의식을 행하는데 이것을 “야단법석(野壇法席)”이라 한다. 거의 대부분의 국어사전에서는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야단법석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 시끄럽게 떠드는 모습이라는 “야단법석(惹端法席)”은 한자가 다르고 어원도 약간 다르다.
2008년 전통사찰보존법에 의거 의승수군유물전시관에 걸었던 불화 대신 대신 봉황루에서 10m짜리 모사품을 제작하여 의승수군유물전시관에 걸었다.
원본은 세로 12.71m 가로 9.92m 불화로 괘불함에 넣어 전시관에 보관하다 2020년 문을 연 수장고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모사품 보관할 괘불함도 10년간 말린 홍송으로 방염 처리와 옻칠을 하여 제작하였다. 2002년 1월 2일 보물 제133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이 불화는 한 폭의 화면에 한 분의 보살상을 그린 일존(一尊) 형식이다. 협시상 없이 본존만을 전체 화면에 꽉 차도록 단독으로 그렸다.
두 손을 어깨 위까지 들어 좌우로 벌려 연꽃처럼 묘사하고 설법인을 짓고 있다.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며 눈이 서글서글하고 입이 작아서 전체적으로 귀부인과 같은 자태가 뚜렷하다. 신체는 큰 편이지만 어깨선은 비교적 부드럽고 풍만하며 당당한 모습이다.
화면 상단 좌우에는 서운과 번에 가려진 추녀 끝에 영락이 장식된 녹색의 지붕과 붉은색의 벽을 가진 천궁과 같이 보이는 건물이 표현되어 있다. 회화적 표현을 살펴보면 화면의 하단과 상단에 오색구름이 찬란하다.
두광은 녹색 바탕에 화려하게 장식된 보주형(寶珠形) 보관을 썼다. 화려한 보관의 중심에는 6화불(六化佛)이 그려져 있는 화관이다. 거대한 광배는 녹색이 주류를 이룬 오색무늬로 치장하고 바탕은 하얀색으로 채웠다.
노사나불은 이마는 넓으며 가늘고 긴 눈썹은 호형을 이루고 있다. 눈은 조리개와 동공까지 표현하였으며 음영을 주어 입체적으로 표현하였다. 코는 콧등과 콧방울이 넓게 표현되어 넉넉한 모습으로 입술은 작으나 통통하며 적색으로 채색하였다. 귀의 중앙에는 보발이 2가닥 감겨 있으며, 그 아래로 귀장식을 하였다. 목 아래에는 밀집된 삼도를 표현하였다.
어깨는 넓고 법의는 붉은색 통견으로 목 아래에는 2줄의 목걸이가 층단형으로 표현되었다. 목걸이에는 대소의 영락을 드리웠고 하단 목걸이의 중앙에는 卍자를 새겼다. 대의는 여러 천을 잇대어 만든 모습을 표현하고 테두리에 화려한 장식을 표현한 가사이다. 대의는 양 무릎 아래에서 파상형으로 단정하게 맺고 대의 아래 군의자락은 녹색으로 표현되었다.
대의에 표현된 설채는 암적색을 주조로 하고 청색과 녹색의 중간색을 잘 조화시켰다. 대좌없이 양 다리는 팔자로 벌리고 있다.
18세기 최고 화승으로 꼽히던 승려 의겸(義謙)과 비현(丕賢)이 함께 그린 그림이다. 암적색과 암녹색의 근엄한 설채에서 청색을 더 첨가함으로써 화면은 약간 더 밝아져 있어 수화사로 제작에 참여한 비현의 화풍을 잘 드러내고 있다. 색채가 선명하고 아름다우며 장식성이 돋보일 뿐만 아니라 선이 아름답게 표현되어 세련미를 엿볼 수 있다.
이 괘불은 보관을 쓴 관세음보살 입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규모가 제일 큰 괘불이다. 모셔진 한 분의 보살상은 정확한 화기의 설명은 없으나 여러 가지 방증자료를 볼 때 관세음보살입상(觀世音菩薩立像)임을 알 수 있다. 당시 법화신앙 가운데 특히 관음신앙의 만일염불회가 결성될 정도였으므로 괘불탱화 역시 관음으로 모셔졌을 가능성이 크다.
불화의 전면에는 화기(畵記)가 없으나 뒷면의 기록으로 보아 1759년 4월에 도성암(道成庵)에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불화 뒷면에는 사세를 자랑하듯 당우 23체, 산내암자 13처, 승려대중 634명이라고 되어 있다. 흥국사에 관계된 현재 남아있는 자료로는 최대의 규모가 된다.
흥국사 노사나불 괘불탱은 거대한 화폭에 색채의 마술사라 할 만큼 현란하고 화려하게 그렸다. 당당하고 풍만한 보살의 귀부인적인 자태에서 조선 불화의 특징을 역력하게 나타내고 있다. 또한 불화의 하단에는 제작 당시 괘불 제작에 참여한 시주질(施主秩)과 연화질(緣化秩)이 완전하게 남아 있다. 뒷면에는 후에 괘불을 보수하면서 기록한 화기가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 괘불 제작의 실태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