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9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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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倉城址 |
영어의미역 | Seokchang Fortress Site |
이칭/별칭 | 석창성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여천동 868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병호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7년 1월 15일 - 석창성지 전라남도 기념물 제106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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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2년 6월 22일 - 여수 석보 사적 제523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여수 석보 사적 재지정 |
성격 | 관방유적|성 |
건립시기/연도 | 조선(16세기 말) |
높이 | 10척 이내 |
둘레 | 1,479척 |
면적 | 67,518㎡ |
소재지 주소 | 전라남도 여수시 여천동 868 |
소유자 | 국유 |
문화재 지정번호 | 사적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여천동에 있는 조선 중기 성지.
[건립경위]
석창성지는 여수 지역에서는 여수 석보(麗水石堡)로 많이 알려져 있다. 여수 석보는 삼국시대 백제의 원촌현과 통일신라시대 해읍현 이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여수 지역의 치소로 추정되고 있다. 여수 석보에 대한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목책으로 진흙을 바른 성이며, 둘레는 143보”라 하였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여수 석보는 둘레가 1479척이고, 높이는 10척 이내다”고 서술되어 있다. 성이 세종 때는 목책이었으나 성종 때는 석성이었다는 점으로 볼 때, 현재의 석성은 세종~성종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순천부 동쪽 60여 리 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과거의 여수현으로서 현재는 여수 석보이다. 여수 석보는 1987년 1월 15일 석창성지라는 문화재명으로 전라남도 기념물 제106호로 지정되었고, 2012년 6월 22일 사적 제523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성곽은 약간 남쪽을 향해 기울어져 있으며, 형태는 네모꼴로서 모를 약간 굴린 정도이다. 동문쪽 성벽은 민가가 자리잡고 있어 파괴가 심하며, 동북쪽과 서남쪽 모퉁이 성곽 상부에도 민가가 위치해 있다. 성곽이 있는 곳의 지세가 동에서 서로 약간의 경사가 있는 평지여서 성 안도 대체로 동쪽이 높다. 특히, 중앙이 약간 높게 계획되었다.
성곽의 축조 방식은 낙안읍성과 비슷하다. 기초는 진흙과 잡석을 한 켜씩 번갈아 가며 깔아서 다지는 방식으로 쌓아올린 토축으로 보인다. 성굽은 큰 돌을 길이쌓기로 한 겹 둘렀다. 이 위에 성돌을 약간 밀어 넣어 면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성벽을 길이쌓기로 하지 않고 큰 돌을 쓰는 대신 면쌓기로 한 것은 백제계 수법이 전해진 것으로 여겨진다.
[현황]
현재 성문 앞에 있었을 옹성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치로 추정되는 1개소만이 남문지 옆에 남아 있다. 치를 설치했다면 1개소만 만들었을 리 없으나 더 이상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성문은 동문과 서문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으나 서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