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2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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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五林洞新興堂山祭 |
영어의미역 | Village-Ritual Ceremony of Sinheung Village, Orim-dong |
이칭/별칭 | 보름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오림동 신흥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나경수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오림동 신흥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오림동 신흥 당산제는 음력 1월 15일 0시에 마을 입구에 있는 당산에서 지낸다. ‘보름제’라고도 한다. 지금까지 중단된 적은 없으며, 당산제를 지내는 시각도 예전과 동일하다고 한다.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많이 간소화 되었으며, 사람들의 참여율도 낮아지고, 금기도 약해졌다. 지금은 메를 올리지 않으며, 축문을 읽지 않고, 당산굿도 치지 않는다. 1982년까지만 해도 당산제는 매우 엄격하게 행해졌다. 제관은 백운산 골짜기의 물로 목욕재계할 정도로 조심했고, 제관복을 갖추어 입고 제를 지냈다.
10여 년 전 태풍으로 가지가 부러진 후에 당산나무는 생존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악화되어 서울에 있는 나무병원의 치료와 보호를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무는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당산나무 앞에는 4차선 도로가 나면서 종일 차들이 매연을 내뿜고 있으며, 뒤에는 기찻길이 있어 소음 역시 만만치 않다. 예전에는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던 신흥마을이 지금은 도시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에 따라 주변 환경이 바뀌고 주민들의 삶의 방식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당산제를 지내기 며칠 전에 운영위원회를 연다. 이 자리에서 당산제에 관해 논의를 하여 어떤 음식을 준비하고 비용은 얼마를 쓸 것인가 등을 결정한다. 제관은 따로 정하지 않고 당일 참석한 주민 중에서 가장 연장자가 맡는다. 당산제에 들어가는 비용은 약 30만 원이며, 마을기금으로 충당한다.
한편 오림동 신흥마을에서는 5년 전까지만 해도 당산제를 지내는 것 외에 음력 7월 7일에 진세를 했다. 5세가 되는 자녀들이 있는 집에서는 우무채, 닭고기, 전, 떡, 술 등을 가지고 당산으로 온다. 마을 사람들은 당산에서 그 음식들을 먹으며 굿도 치고 함께 놀았다. 당산 앞에 자동차들이 많이 다니면서부터 마을회관에서 진세를 했다. 그런데 5년 전부터는 진세를 내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연원 및 변천]
오림동 신흥 당산제를 언제부터 지내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 단지 당산나무의 수령이 600년 정도로 추정되고 있어, 그 때부터 당산제를 지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주민들은 당산이 있는 곳을 ‘호부래비정자골’이라고 부른다. 당산에는 당산나무(느티나무) 2그루와 바위 하나가 있다. 신격은 당산할아버지, 당산할머니로 인식하고 있지만 어떤 나무가 할아버지이고 할머니인지는 구별하지 못한다. 바위는 특별한 명칭이 있는 것은 아니고 당산에 있기 때문에 함께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절차]
오림동 신흥마을에서는 음식장만 비용이 책정되면 운영위원회 책임을 맡은 사람이나 부녀회를 중심으로 여수 시장에 가서 물품을 구입하여 제물을 준비한다. 현재는 금줄을 치거나 황토를 놓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준비는 없고 금기도 까다롭지 않다. 당산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며칠 동안 초상집에 안 가는 정도이다.
음력 1월 14일에 회관에서 부녀자들이 제물을 준비한다. 메는 짓지 않는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메를 지어 올렸는데 그 이후에는 간소화했다. 다른 것은 간소하게 하더라도 절대 빠지지 않는 것이 ‘우무채’이다. 밤 12시 경에 제물을 들고 당산으로 이동하는데, 보통 10여명이 참여한다.
그 중에서 가장 연장자가 제관을 맡는다. 제관은 당산 앞에 자리를 깔고 제물을 진설한다. 먼저 향을 피우고 촛불을 켠다. 보름 경에는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촛불이 꺼져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제물로는 밤, 대추, 곶감, 사과, 배, 감 등의 과일과 삼채, 전, 고막, 굴비, 떡, 명태포, 우무채 등이 오른다. 술은 막걸리로 세 잔을 올리는데, 당산할머니, 당산할아버지, 바위를 위한 것이다.
제관은 진설이 끝나면 술을 올리고 절을 세 차례 한다. 축은 읽지 않는다. 제보자의 아버지가 당산제를 지내던 1980년대 초반까지는 축문이 있어서 축관이 축을 읽었는데 지금은 읽지 않는다. 소지도 올리지 않는다. 제물로 올린 음식들 일부를 떼어내어 그것을 주변에 던진다. 참여한 사람들이 음복을 하면 모든 절차는 끝나게 된다. 당산제를 지내는데 걸리는 시간은 30분에서 40분 정도이다.
예전에는 당산굿을 쳤는데 지금은 치지 않는다. 철상을 하고 다시 마을회관에 돌아가서 술을 한잔씩 한다. 다음날 오전에 주민들이 모여서 뒷풀이를 한다. 30여명 정도가 참여한다. 참여한 사람들은 마련된 음식을 먹으며 결산을 한다.
[부대행사]
음력 1월 15일 오전에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그 자리에서 결산을 한다. 예전에는 정월달에 집집마마 마당밟이를 했었는데 15년 전에 중단되었다. 주민들의 직업이 서로 다르고 모르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마당밟이를 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안 된다고 한다. 약 50년 전에는 동서로 편을 갈라 줄다리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줄긋기라고 했다.
[현황]
오림동 신흥 당산제는 예전부터 해오던 음력 1월 15일 0시라는 시간대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민들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형태적인 측면이나 금기 등에서는 예전에 비해 매우 간소화된 형식으로 지속되고 있다. 주민들 가운데 당산제를 지내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으나 참여율은 높지 않다. 예전부터 해오던 것을 그만 둘 수 없어서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이다. 여수시, 여수문화원, 대학에서 당산제를 지낼 때 찾아오기도 하지만 갈수록 주민들의 참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후세들이 과연 이 전통을 이어갈 지는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