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사곡리 복촌 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2257
한자 沙谷里福村堂山祭
영어의미역 Village-Ritual Ceremony of Bokchon Village, Sagok-ri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사곡리 복촌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나경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신앙
의례시기/일시 음력 1월 15일 오전 10시|음력 7월 7일
의례장소 마을 뒤 당산나무
신당/신체 당산나무(팽나무)|당산할머니|당산할아버지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사곡리 복촌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 및 아이의 무탈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사곡리 복촌 당산제는 매년 정월 대보름날 오전 10경에 마을 뒤에 있는 당산나무에서 마을 주민이 공동으로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제사는 유교식으로 지내며 당산굿이 뒤따른다. 지금까지 중단된 적은 없지만, 만약 마을에 초상이 나거나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정월 보름에 지내지 않고 다시 날을 받아 당산제를 지낸다.

예전에는 음력 7월 7일, 즉 칠석날에도 당산제를 지냈다. 진세를 먹는다고 하여 당산나무에서 제를 지내고 마을잔치를 성대하게 했었다. 8살 먹은 자손이 있는 집에서 술·떡·국수·고기·호박전 등을 만들어서 걸게 장만해온다. 그러면 이웃들은 8세가 되는 아이들의 꼬랑지를 자른다고 하며 도끼를 들고 머리카락(제비머리)을 자르는 시늉을 하며 장난을 쳤다.

그런데 점차 인구수가 줄어들고 젊은 사람들이 마을에 거주하지 않게 되자 당산제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생략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8세가 된 자손이 있는 집에서 다과를 준비하여 회관에서 술을 마시는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당산제를 준비하기 위해 3일 전에 이장과 노인회장 등 마을의 유지들을 중심으로 의논하여 제관과 축관을 선정한다. 제관은 부정이 없고 깨끗한 사람이어야 한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당산제를 지내기까지 매사에 조심한다. 제관의 금기는 당산제를 지내고 나면 해제된다.

당산제를 지내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동계에서 제관에게 30만원을 지급한다. 동계기금은 마을 공동 양식장에서 발생하는 소득으로 조성한다. 마을공동 양식장에서는 꼬막, 바지락 등 어패류가 생산되는데 바다에서 나오는 소득이 농사를 지어서 나오는 소득보다 훨씬 높다.

복촌마을에서는 어촌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어촌계는 71가구가 모두 가입되어 있다. 약 3년 전까지는 제관에게 10만원을 주었는데, 점점 제관을 희망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30만원으로 올렸다고 한다. 동계에서 비용을 제공하기 전에는 지우답(제답)을 경작하는 사람이 제관을 맡았다. 하지만 약 30년 전 제답을 팔아버린 후로는 동계에서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언제부터 당산제를 지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주민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지내온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중단된 적은 없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마을 뒤에 있는 당산나무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당산나무의 수종은 팽나무이며 다섯 그루가 있다. 신격은 당산할머니, 당산한아버지(당산할아버지)이다. 당산나무 앞에는 당산제를 지낼 수 있는 제단이 만들어져 있으며, 당산나무 주위는 석축이 잘 쌓여져 있다.

[절차]

사곡리 복촌 당산제를 지내기 하루 전날 주민들은 당산 주변을 청소한다. 제관은 금줄을 만들어서 당산나무 주변에 친다. 금줄은 왼새끼로 꼬며 사이사이에 창호지를 끼운다. 당산나무에 친 금줄은 그대로 두었다가 다음 해에 새로 금줄을 칠 때 땅에 내려놓는다. 금줄을 소각하거나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당산 주변에는 황토를 놓지 않지만 제물을 장만하는 제관 집에는 황토를 놓는다. 제관 집 앞에 간지대를 세우고 황토를 놓는다. 제관 집에는 금줄을 치지 않는다.

제기는 제관 집의 그릇을 사용한다. 제관은 당산제를 지내기 전날 성의껏 제물을 준비해 두고, 메는 당일 아침에 짓는다. 제관이 제물을 준비하는 동안 굿을 칠 20여 명의 사람들은 농악기를 들고 당산으로 이동한다. 징, 꽹과리, 북, 장구 외에 영기, 대포수 복장이 잘 갖추어져 있다. 굿을 치는 사람들은 일상복을 입지만 머리에는 고깔을 쓴다. 제관은 보통 한복을 입는다.

제관이 집사의 도움을 받아 당산나무 앞에 마련된 제단에 배석을 깔고 제물을 진설하는 동안 굿패는 굿을 친다. 제관은 먼저 향을 피우고 촛불을 켠다. 제물로는 메 두 그릇, 고깃국 두 그릇, 막걸리 두 잔, 삼실과(사과 배, 감 등), 곶감, 생선(민어, 양태), 삼채(고사리, 녹두나물, 콩지름, 돌가지 등), 포(명태), 전, 돼지고기 삶은 것, 시루떡 등을 올린다. 당산제를 지낼 때의 제주는 항상 막걸리를 사용한다. 각 가정에서의 기제사를 지낼 때는 소주를 사용하지만 당산제의 제주는 막걸리를 올려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제의 절차는 제관이 술을 올리고 절을 세 번 한다. 다음에 축관이 축을 읽고 절을 하고 축을 사른다. 다시 제관이 술을 올리고 절을 세 번한다. 제관이 흰 종이에 제물로 올린 음식을 조금씩 싸서 헌식하는 곳에 묻는다. 당산나무 위쪽에 황토를 놓아둔 곳이 헌식터이다. 헌식이 끝나면 음복을 하고 철상을 한다.

[축문]

축문은 매년 새로 쓰고 독축을 한 다음에는 분축(焚祝)을 한다.

[부대행사]

사곡리 복촌 당산제가 끝나면 주민들이 여자노인당에 모여 남은 음식을 나누어 먹고 오후까지 논다. 복촌마을에는 남자노인당과 여자노인당이 구분되어 있다. 남자노인당 건물은 예전 서당으로 사용되던 건물로 유서가 깊은 곳이다. 하지만 주민들 전체가 모이는 장소로는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현대식 건물인 여자노인당을 이용하고 있다.

예전에는 당산제가 끝나면 며칠 동안 지신밟기를 했다. 지신밟기를 할 때에는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질굿, 마당굿, 정재굿, 샘굿 등을 쳐주었다. 복촌마을 굿이 매우 유명해서 다른 마을까지 원정을 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상쇠로 유명하신 분이 정병호였는데 3년 전 작고하였다. 복촌굿이라고 하면 알아주었다고 한다. 여러 대회에 나가서 수상한 적도 있었다.

[현황]

지금은 당산제를 지낸 후 원하는 집에서만 간단히 굿을 치고 있다. 유명했던 복촌마을의 굿을 이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마을 젊은이들이 유명강사를 데려와 굿을 배우고 있는데 마을에서 하던 굿가락과 달라서 마을의 노인들은 마을굿을 배워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고 한다.

예전부터 줄다리기는 하지 않았고 달집태우기도 없었는데 올해 청년회에서 주도하여 처음으로 여자노인당 앞에서 달집태우기를 했다. 달집은 대나무와 소나무를 쌓아서 청년회에서 만들었다. 정월 대보름날 저녁에 달이 떠오를 때 노인회장과 부녀회장이 달집에 불을 피웠고 양쪽에서는 굿을 쳤다. 이렇게 복촌마을 청년회에서는 전통의 변용을 통해 주민들의 화합을 꾀하고 있다.

[참고문헌]
  • 인터뷰(사곡리 복촌마을 주민 정명균, 남, 71세, 2007. 5. 24)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