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22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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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早發里早發堂山祭 |
영어의미역 | Village-Ritual Ceremony of Jobal Village, Jobal-ri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조발리 조발마을 |
집필자 | 나경수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조발리 조발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조발리 조발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 밤 10시부터 11시까지 이장 주관으로 자손이나 마을이 편안하고 번성을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공동 제의이다. 이를 ‘제만 모신다’라고도 한다. 제주는 마을의 어른들 가운데 연세가 많고 덕망이 있는 사람으로, 생기를 맞추고 제를 지낼 만한 사람을 뽑는다. 제주를 선정하기 위해서 음력 1월 5일(하릿날, 설 넘어가는 날) 경에 회의를 하며, 제주에게는 유고가 없어야 한다. 한 번 모셨던 사람이 계속 모시기도 하는데 선정된 제주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이렇게 제주가 결정되고 나면, 제주는 제 모시기 3일 전부터 부부간의 잠자리는 물론 부부간에도 말을 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7일 전부터 근신을 하였다고 한다. 제주가 되면 육고기 종류는 입에 댈 수 없으며, 제를 모시고 나서도 3개월이 지나야 먹을 수 있다. 애경사도 1년 동안은 참석할 수 없다. 당산제를 모시기 3~4일 전 제주는 여수 시장으로 장을 보러 간다. 장을 보러갈 때는 중절모를 쓰고 마스크를 착용하며 어느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는다. 시장의 상인이 알아서 제물을 챙겨준다고 한다.
당산제에 올리는 음식은 콩나물, 떡, 밥(메)과 물뿐이어서 식품을 따로 구입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제사를 준비하는 데는 엄격함이 남달라서 구입하는 물품이 여러 가지이다. 하얀 고무신 2켤레, 한복 2벌, 두루마기 2벌, 수건 2장, 상·하의 하얀 속옷 5벌, 하얀 양말 5켤레, 성냥 1통, 초 1통, 참종이 1권, 소지종이 1권, 하얀 장갑 등을 구입한다. 제를 준비하기 위해 입을 옷가지와 제를 모시는 동안 입을 옷가지를 구분하기 때문이다. 당산제에 사용할 제물을 준비하고 나면 집안 제사에 쓸 제물을 따로 장만한다.
제비는 100만원이 소요되는데 제주가 수고비로 받는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정성을 똑같이 드리기 위해 호당 무조건 1만원씩 걷는다고 한다. 과거에는 100만원이 채워지지 않아도 호당 걷힌 돈만 제주에게 주었는데 현재는 마을 공동자금을 빼서 100만원을 채운 후 제주에게 지급한다. 제주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연원 및 변천]
조발리 조발 당산제는 옛날부터 내려온 전통이기 때문에 중단된 적이 없으며, 제일이나 제를 모시는 시간도 변동된 적이 없다. 약 35년(1972년경) 전쯤 제만 모시는 날 마을에 초상이 났는데 아무도 모르게 시체를 섬 밖으로 이동시킨 후 제를 마치고 나서야 상을 치렀을 정도로 제일을 엄격히 지키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엄격하게 제를 지내는 것은 일 년 동안 무탈하기를 빌며 마을 내에 부정이나 잡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예방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15년 전쯤 마을에 교회가 생긴 이후 약간의 갈등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크게 문제시 되지는 않는다. 어려운 점이라면 제물을 마련하기 위해 배를 타고 시장을 가는 것이다. 가끔은 풍랑을 만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신당/신체의 형태]
제장은 두 곳으로 마을 뒷산의 당산할아버지 혹은 당산하나씨라 불리는 큰당[일명 웃당산]인 당집과 작은당[일명 아랫당산]인 커다란 바위이다. 큰당은 지금의 자리에 오두막집처럼 바람막이를 했다가 제를 모신 뒤에는 걷어놓는 식이었다. 1965년에 슬레이트로 건물을 지은 것이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다. 당집 내부에는 ‘당산신’이라는 글을 새겨 비석을 세워놨는데, 제를 지낼 공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또한 제사 지낼 곳 외에도 목욕하는 곳과 제삿밥을 할 곳 등 세 군데로 공간을 분할하고 있다.
[절차]
조발리 조발 당산제를 모시기 전날인 음력 1월 13일 오후가 되면 제장을 청소하기 위해 제주 혼자 조용히 당집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제물을 만들고 제기를 씻을 물을 갖다놓기 위해 해마다 사용하는 물통을 가지고 내려온다. 30년 전 상수도가 생기기 전까지는 마을에서 2㎞ 떨어진 산 밑의 옹달샘 물을 사용했다. 샘 주변에는 3일 전에 금줄을 치기도 했다. 지금은 집집마다 수도가 있어서 수돗물을 물통에 담아 당집으로 가져간다.
13일 날 밤이 되면 제주는 쌀가루를 내기 위해 잡티를 골라낸 쌀을 방안에 들여놓고 잔다. 제 모시는 14일 아침이 되면 제주의 부인이 제주가 손질한 쌀을 집의 돌확을 이용하여 쌀가루로 만든다. 제주는 새벽에 제상에 올릴 물과 그릇 씻을 물을 구분하여 두 번 당집을 오르내린다.
14일 오후 3시~4시 사이에 제주의 부인은 머리와 뿌리를 제거한 콩나물과 쌀, 쌀가루를 준비하고, 제주는 그것을 종이에 싸서 석부작에 담아 제장으로 올라간다. 이 때 복장은 두루마기를 입고 중절모를 쓰고 마스크를 착용한다. 고무신은 하얀색으로 신고, 속옷과 양말도 모두 흰색으로 한다.
당집에 도착한 제주는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솥을 올려 물을 끓인다. 제상에 물을 먼저 두 그릇 올린다. 그리고 제사 밥을 하는 공간으로 가서 소금을 넣어 삶은 콩나물을 세 군데의 접시에 담아놓는다. 그 뒤에 세 개의 떡[일명 개떡]을 만든다. 납작한 접시에 쌀가루를 두 숟가락 정도 떠서 물에 개어 익반죽을 한 후 물이 끓는 솥에 넣어 익히면 동그랗고 납작한 전모양의 개떡이 완성된다. 개떡도 세 군데의 접시에 담아놓는다.
그런 다음 제상에 콩나물과 개떡을 두 접시씩 올린다. 소지종이를 올리고 재배를 한다. 그 뒤에 밥을 지어 두 그릇의 메를 올린다. 아랫당산으로 가서 웃당산에 올린 것과 똑같이 한 접시씩 음식을 올린다. 술과 고기는 올리지 않는다. 소지를 올리고 재배를 한 후 한지에 음식을 싸서 바위 옆에 헌식을 하는데, 이를 ‘산물한다’고 한다.
아랫당산의 제가 끝나면 다시 웃당산으로 올라가서 또 소지를 하고 재배한 후 당집 옆의 헌식터에 한지에 싼 음식을 묻고 돌로 눌러 흙을 덮는다. 이로써 단순하지만 엄격한 당산제가 끝나게 된다. 제주는 사용했던 그릇과 수저를 끓는 물에 소독하고 종이에 싸서 당집에 보관한 후 조용히 내려온다.
다음날인 정월 보름날 각 집안에서 개인제사를 모시고 나면 주민들은 각자의 제상을 장만하여 도제를 모신다. 이를 ‘헌석’, ‘도제헌석’이라고도 한다. 제주 상을 리사무소 앞의 도제 지낼 장소에 차리고 나면 주민들도 각자의 상을 차린다. 제주 상에는 특별히 방석을 깔고 손 씻을 물을 떠놓아 제주를 위한 자리임을 알린다. 제주는 며칠 동안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고 말을 함으로써 모든 제의가 끝났음을 알린다. 이때 주민들은 고생한 제주에게 위로와 감사의 말을 해주면서 마을의 잔치로 이어진다.
[부대행사]
10여 년 전까지는 조발리 조발 당산제를 끝내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굿을 치는 마당밟이를 했었는데 지금은 도제를 하는 리사무소 앞에서 매구를 치는 것으로 부대행사를 끝낸다. 줄다리기나 달집태우기 등은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