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3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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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峴- |
이칭/별칭 | 솔고개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 |
집필자 | 박종길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에 있는 자연마을.
[개설]
여수시 웅천동에 있는 자연마을로 충무공 이순신 어머니 기거지 등 유서가 깊은 지역이었다.
[명칭유래]
송현마을은 마을 주위에 소나무 숲이 무성하다하여 솔개, 솔고개 또는 솔곡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솔개는 소나무가 있는 포구란 뜻으로 바다를 기준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솔고개 또는 솔곡은 송림의 재(峙) 즉 산마루나 성(城), 읍(邑), 동(洞), 리(里), 촌(村), 실, 골의 의미로 육지를 근간으로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송현은 순수한 우리말의 솔고개를 한문으로 훈차한 것이다.
[형성 및 변천]
『난중일기』에 충무공 이순신이 고음천 마을[지금의 송현마을]에 있는 부하장수 정대수의 집에 어머니를 모시고 문안을 드렸던 내용을 통해서 1500년대 이전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송현마을은 창원정씨의 입향지로 정계생(丁戒生)이 1519년 전북 남원에서 이곳 송현마을로 입향하였다고 전해진다. 그의 손자 대에 이르러 정철(丁哲), 정인(丁麟), 정춘(丁春)이 송현에서 웅동, 웅서, 웅남마을에 분가하였다.
충절공(忠節公) 정철(丁哲), 충의공(忠毅公) 정춘(丁春), 충숙공(忠肅公) 정인(丁麟), 증손 충정공(忠貞公) 정대수(丁大水)는 임진왜란 때 각 해전에서 큰 공을 세우고 모두 전사하여 선무원종공신의 녹권(祿卷)과 높은 시호(諡號)가 수여되어 웅동마을 오충사에 이충무공과 같이 봉안하여 지역민들이 추앙하고 그 공을 기리고 있다.
1789년을 기준한 각 면리와 호구조사에 웅천의 서촌과 중촌은 나타나 있으나 송현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1908년에야 송현리(訟峴里)라는 지명으로 쌍봉면의 40개 리 중의 하나였다. 1914년 3월 1일 총독부령에 의하여 행정구역이 개편될 때 이웃 4개 마을과 함께 웅천리로 구성되어 쌍봉면 11개리의 일구역이 되었다. 1942년에는 웅천리가 1,2,3구로 나누어졌는데 이때는 송현마을 단독으로 3구가 되었다. 1961년 3월 다시 1,2,3구가 합하여 웅천리로 통합되었고 1962년 웅천리가 웅천리와 송전리 2개구로 분리되어 이웃 모전마을과 합하여 송전리가 되었다. 1986년 1월에는 여천시 시전동 14통이 되었다.
[자연환경]
위도상의 정확한 위치는 동경 127° 40′ 14″와 북위 34° 40′ 52″선이 교차하는 선상에 마을의 중앙부가 자리하고 있다. 동남방은 범등매산을 경계로 하여 신월동과 근접하고 있으며, 북은 솔고개를 사이에 두고 모전과 근접하고 있고, 서북은 웅남마을과 이웃하고 있다.
[현황]
여수시 웅천동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된 후 아파트단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