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31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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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魯韻 |
이칭/별칭 | 판정노운(坂井魯韻)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종길 |
출생 시기/일시 | 1922년 1월 21일 - 박노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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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50년 4월 5일 - 박노운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20년 3월 1일 - 박노운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완도군 -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면 농상리 861 |
학교|수학지 | 여수공립수산학교 - 전라남도 여수시 국동 |
묘소 | 박노운 묘소 -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면 회룡리 199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박노운(朴魯韻)은 1922년 1월 21일 지금의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면 농상리 861번지에서 태어났다. 일본식 이름은 판정노운(坂井魯韻)이다. 여수공립수산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1939년 3월 완도군 출신들이 주도하는 비밀결사 조직인 독서회에 들어가 『삼천리』, 『농어촌의 장래』, 『흙』, 『원효대사의 유정』 같은 소설을 윤독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전통문화를 유지, 계승하고자 계몽운동을 주도하였다.
여수공립수산학교 4학년 때인 1942년 5월, 박노운은 일본인 선생이 조선인을 차별하는 망언을 하자 동급생인 오영섭(吳永燮) 등과 함께 그 선생을 운동장으로 불러내어 사죄와 각서를 받아 냄으로써 조선 학생들의 사기를 크게 높였다. 그해 7월 27일 여름방학 동안 여수 신월리의 해군 비행장 부지 정리 작업장에 근로보국대(勤勞報國隊)로 참가하라는 당국의 방침에 박노운은 3학년, 4학년 학생들과 함께 불참을 선언하였다. 이에 당국에서는 휴교령을 내리고 3학년 이상 학생들을 모두 검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편, 그해에 여수공립수산학교 독서회가 중심이 되어 한국인 학생을 모독한 일본인 교사 축출을 위한 시위와 동맹휴학을 주도하였고, 이 일로 박노운 등은 11월 치안유지법과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 위반으로 여수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이후 순천검찰분국을 경유하여 광주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어 고문 수사를 받았으며, 1943년 1월 13일 치안유지법을 제외한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기소유예 되어 석방되었으나 여수공립수산학교는 박노운에게 퇴학 처분을 내렸다. 이후 박노운은 고향 완도로 돌아가 금융조합에 근무하던 중 1950년 4월 5일[음력 2월 17일] 수금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강도를 만나 머리에 상해를 입고 사망하였다.
[묘소]
박노운 묘소는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면 회룡리 199번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박노운의 공훈을 기리어 2020년 3월 1일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