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31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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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容守 |
이칭/별칭 | 백원충전(柏原忠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종길 |
출생 시기/일시 | 1922년 5월 19일 - 박용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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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94년 5월 28일 - 박용수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20년 3월 1일 - 박용수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여수군 - 전라남도 여수군 여수읍 고소리 |
학교|수학지 | 여수공립수산학교 - 전라남도 여수시 국동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박용수(朴容守)는 1922년 5월 19일 전라남도 여수군 여수읍 고소리에서 태어났다. 일본식 이름은 백원충전(柏原忠典)이다. 여수공립수산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2년 7월 27일 여름방학 동안 여수읍 신월리의 해군 비행장 부지 정리 작업장에 근로보국대(勤勞報國隊)로 참가하라는 당국의 방침이 전해지자 재학생들과 함께 불참을 선언하였다. 이에 여수공립수산학교는 휴교령을 내렸고 일본 경찰은 3학년 이상의 학생들을 검거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해 11월 여수공립수산학교에서는 전라남도 완도군 출신들이 주도하는 독서회가 중심이 되어 한국인 학생을 모독한 일본인 교사 축출을 위한 시위와 동맹휴학을 주도하였는데, 당시 박용수도 여기에 가담하였다가 치안유지법과 폭력행위 등 처벌법 위반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박용수는 순천검찰분국을 경유하여 광주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어 고문 수사를 받았다. 1943년 1월 13일 박용수는 기소 유예로 석방되었으나 여수공립수산학교에서는 퇴학 처분을 내렸다.
박용수는 광복이 되자 한국어업조합연합회에 입사하여 일하다가 조선소에 들어갔다. 이후 삼치 유자망어업에 종사하였고, 한때 여수삼치망어업조합의 조합장으로 위촉되어 활동하였다. 박용수는 1994년 5월 2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박용수의 공훈을 기리어 2020년 3월 1일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