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31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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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鎔植 |
영어공식명칭 | Choe Yongsik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종길 |
출생 시기/일시 | 1908년 9월 16일 - 최용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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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30년 - 최용식 여수공립수산학교 재학 |
몰년 시기/일시 | 1952년 10월 16일 - 최용식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21년 8월 - 최용식 대통령 표창 추서 |
거주|이주지 | 최용식 거주지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사곡진목1길 18[사곡리 1136] |
학교|수학지 | 여수공립수산학교 - 전라남도 여수시 국동 |
활동지 | 최용식 활동지 - 전라남도 여수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최용식(崔鎔植)[1908~1952]은 193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항일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활동 사항]
최용식은 지금의 여수시 소라면 사곡진목1길 18[사곡리 1136]에서 거주하였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항일운동이 발발해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여수공립수산학교에서도 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일본 경찰은 1930년 1월 25일 여수공립수산학교 생도 7명을 검거·취조해 12명을 퇴학하고 9명을 정학시켰다. 당시 여수공립수산학교 재학생 최용식은 희생된 학생을 전부 복학시키고 검거된 학생들을 전부 석방할 것을 요구하며 동맹휴학을 주도하였으며, 또한 독서회를 통해 항일 의식을 배양하던 학생들과 함께 “민족차별을 철폐하라, 한국사를 가르쳐라, 모국어 사용을 막지 마라.”라고 외치며 동맹휴학 투쟁을 주도하다 1930년 12월 24일 퇴학 처분을 받았다. 1952년 10월 16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에서 최용식의 공훈을 기려 2021년 8월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