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A010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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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안도리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 |
집필자 | 김병호 |
중국 당나라의 불교를 배우기 위해 선발된 일본 승려[遣唐請益僧] 엔닌[圓仁][794~864]은 838년 6월 13일 당나라에 파견될 사신의 배[遣唐使船]를 타고 지금의 규슈 후쿠오카를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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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닌 사진
엔닌은 천태종의 발상지인 천태산 순례가 좌절되자 장보고가 세운 적산법화원에 머물며 당나라 불교를 배울 방도를 찾다가 840년 불교 성지 가운데 하나인 오대산 대회엄사에서 고승들의 가르침을 받고 불교 유적을 순례하였다. 840년 8월, 당나라 수도 장안에 도착한 엔닌은 자성사라는 절에 머물면서 일본에 없는 불경을 손으로 베끼어 쓰고 고승들을 찾아 불교의 도리를 깨우쳤다. 엔닌이 장안에 머물기 2년째 되던 해부터 당시 황제였던 무종(武宗)이 행한 대대적인 불교 탄압[會昌廢佛, 845~847]을 만나 845년 5월 강제로 환속하게 되었다.
845년 5월 15일, 엔닌은 그동안 베껴 쓴 불경과 그림 등을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신라 사람으로서 통역을 담당한 유신언, 관리 장영 등의 도움을 받아 적산법화원에 머물며 귀국선을 구하였다. 엔닌은 신라 사람 유신언과 김진 등의 도움을 받아 847년 7월 20일 귀국길에 오른다.
엔닌은 8월 15일 일본으로 돌아가는 배 위에서 다시 머리를 깎고 승복으로 갈아입었으며, 우리나라의 남해안을 거쳐 9월 17일에 9년 3개월만에 후쿠오카로 귀국하였다. 엔닌은 9년 이상의 여행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이 책이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이며, 847년 9월 8일의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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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구법순례행기
“오전 4시경 바람이 없었으나 출발하였다. 포구를 얼마쯤 나가니 갑자기 서풍이 불어와 곧 돛을 올리고 동쪽으로 향했다. 마치 영묘한 이치가 있어 우리를 도와주는 것 같았다. 산들이 있는 섬 사이를 가니 남북 양쪽은 다 산과 섬으로 겹겹이 겹쳐져 있어 태연하게 보였다. 오전 10시가 되려고 할 무렵 안도(雁島)에 이르러 잠시 쉬었다. 이곳은 신라의 남쪽 땅으로 궁궐[內家]에서 말을 기르는 곳이다. 동쪽 가까이에 황룡사의 장원이 있으며 띄엄띄엄 인가 두세 군데가 보인다. 서남 방향에는 멀리 탐라도가 보인다.”
여수의 고대사를 밝혀줄 수 있는 문서 또는 죽간이나 목간이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때문에 1145년(인종 23)에 편찬된 『삼국사기(三國史記)』가 여수 지역과 관련된 땅이름이 나오는 가장 빠른 책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책에는 원촌현(遠村縣)과 돌산현(突山縣) 등의 행정구역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보다 300여 년 전 일본인에 의해 기록된 『입당구법순례행기』에 ‘안도’라는 땅이름이 나타남으로써 지금까지의 문헌 기록 가운데 가장 빠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서남쪽으로 탐라, 즉 제주도가 보인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상산에 올라가면 맑은 날 제주도를 볼 수 있는 것도 엔닌이 현재의 안도에 기착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