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C02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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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박종길 |
돌산군은 완도군·지도군과 함께 동시에 군이 되었는데, 호남 남해안 세 곳의 섬 지역이 군으로 만들어지게 된 데는 숨은 이야기가 있다. 군이 만들어질 당시의 전라도 관찰사는 이도재(李道宰)[1848~1909]였다. 이도재는 1886년 호군으로 있다가 지금의 완도군 고금도에서 3년간 유배 생활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에 고금도의 유림들과 다정하게 지냈다.
이도재가 유배 생활을 하던 고금도에는 가끔씩 강진 병영에 있던 군졸들이 직무 때문에 드나들었는데, 이들이 고금도에 올 때마다 그 행패가 아주 심하였다. 이도재는 이에 분노를 느껴 섬의 독립을 생각하였던 것으로 전한다. 한편 이도재와 함께 흥양(지금의 고흥)의 여도(呂島)로 유배당했던 신기선(申箕善)[1851~1909] 역시 섬에서 지내게 되면서 섬사람의 애환과 고충을 겪게 되었다.
1894년 개화파 정부가 수립되자 유배에서 풀려나 서울로 간 이도재는 전라관찰사로 부임하자마자 즉시 섬사람들은 섬사람들끼리 다스리도록 한다는 평소의 소신을 구체화하였고, 역시 같은 이유로 풀려나 관리로 등용된 신기선과 함께 노력하여 세 지역의 군이 창설되었다고 전해진다.
1896년(고종 33) 2월 3일 칙령(勅令) 제13호로 「전주부·나주부·남원부의 여러 섬을 나누어 완도·돌산·지도 3군을 두는 안건[全州府羅州府南原府諸島分莞島突山智島三郡置件]」이 재가를 거쳐 반포됨으로써 돌산군이 탄생하였다. 당시 군 설치의 필요성을 강조한 두 대신의 노력으로 돌산군이 설치되었다고 알려지자 마을 주민들은 고마움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1896년에 이도재와 신기선의 영세불망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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