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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 목사 양아들(안재선)의 고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D020203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무성

사랑하는 두 아들을 떠나보내는 장례식장에서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 속에서 두 아들이 총살당한 계기를 제공한 안재선을 아들로 삼겠다는 그 뜨거운 사랑은 손양원 목사를 대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손양원 목사는 안재선을 부산 고려성경고등학교에 수학하도록 하여 전도사로 키웠다. 안재선은 성경학교 졸업 후 잠시 부산의 어느 교회 전도사로 있었고, 말년에는 제주도에서 어물 도매 사업을 하다 1979년 서울에서 별세했다. 손양원 목사는 예수의 계명을 실천한 20세기 사랑의 사도요, 성자로서 추모를 받았다.

그러나 안재선은 삶은 그리 평탄치만은 아니하였다. 손양원 목사의 가장 극적인 행동은 두 아들을 죽인 원수인 안재선의 구명을 탄원하여 양아들로 삼아 손재선으로 개명하고 개종시켰다는 장면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전설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손양원 목사의 일생 중 「원수를 사랑한 목자」에서 발췌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여수·순천에 반란 사건이 터져서 얼굴을 찡그리면서 놀랐고, 순진한 두 학생이 순교를 했다고 하여 갸륵해서 놀랐고, 그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해서 자기 아들 삼았다고 하여 놀랐고, 그 아이가 진실한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하여 무릎을 탁 치면서 놀랐다.”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첫째, 두 아들은 당시 민족의 비극을 초래했던 이데올로기의 희생자이다. 이에 대한 변증은 당시 6개항의 기초 강령에도 나타나 있다. 종교 문제에 대한 거론은 일절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순사건은 이제 그 진상이 많이 밝혀졌다.

학창 시절 배웠던 여순반란사건은 잘못된 그리고 음모의 표현이었음을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기독인들은 자신들의 전도라는 목적하에 음모적인 순교 만들기를 중지하지 않고 있다. 두 형제의 안타까운 죽음은 정치와 이데올로기라는 권력 때문에 살해되었을 뿐임을 기독인들도 이제는 인정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한 번쯤 생각해 보길 권한다. 두 형제가 죽은 날인 10월 21일은 반란일인 10월 19일로부터 겨우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종교 탄압을 할 시기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실제 그 당시 기록 어디에도 반란군이 기독교를 탄압했다는 내용은 없다. 두 아들은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한 정치적 죽음이었다. 안재선은 그 후 독실한 기독인이 되었어야 마땅하며, 그 은혜를 사방팔방에 선전했어야만 했다. 지금도 생존해 있는 안재선의 아들 안경선의 구술을 들어 보자.

“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관계를 고3 시절인 겨울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알게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유복자인 손동길 목사님께서 저를 찾아와 ‘내가 너의 작은아버지다’고 말씀하시면서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책을 주셨습니다. 그 책을 읽고서야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알았습니다.”

안경선 목사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크리스천이 아니었다. 교회를 가라고 권하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손양원 목사님의 가족과 아버지가 계속 왕래하고 지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신학을 전공하고 목회자가 되려고 하셨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주위의 눈총 때문에 이룰 수 없었고 결국 세상 사람의 눈을 피해 숨어 사셨던 것입니다.”

아들에게까지 자신의 내면을 끝내 공개하지 못하고 떠난 안재선은 이데올로기의 가장 큰 희생자인 셈이다. 항상 생명의 은인인 양아버지 손양원 목사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마음의 짐을 지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강요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진정한 신앙은 맹신과 맹목이 아니다. 한 인간이 신앙 때문에 힘겨운 일생을 살게 되었다면 동정심을 갖고 그것을 이해해야만 자신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안재선를 통하여 자신의 종교가 저질렀던 과오를 겸허하게 반성함이 참 신앙인의 올바른 자세이다.

손양원 목사의 권유에 따라 전도사까지 되었던 안재선은 그 후 왜 기독인이 되기를 포기했을까? 그리고 왜 본래 성씨로 돌아갔을까? 자기 아들에게조차 손양원 목사와의 관계에 대해 침묵해야만 했을까? 일방적인 신격화의 부작용을 안재선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평생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을 죽인 한 당사자로서의 무거운 짐과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양아버지의 자신에 대한 지나친 기대, 자식을 죽였던 원수를 사랑으로 감싸 주었다는 지속적인 신앙 간증은 안재선이 정상적인 삶을 이탈하게 만든 주요한 요인인 듯하다. 안재선이라는 한 인간을 다양하게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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