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 9세기 중엽 일본 승려 엔닌의 불교 성지 여행기.

[개설]

엔닌[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는 일본인 특유의 꼼꼼한 기록으로 9세기 중엽 당나라의 정치, 경제, 민속, 종교, 법제, 지리 등 사회상 전반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신라와 발해 및 일본에 관해서도 정사에 나오지 않는 귀중한 자료를 곳곳에 남기고 있다. 특히 일본으로 귀국하던 중에 기착한 전라남도 여수시 안도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편찬/발간 경위]

엔닌은 당나라 천태종의 발상지인 태주(台州) 천태산을 순례하고 천태종의 경전에 관해 알아보기 위해, 45세 때인 838년 6월 13일 청익승(請益僧)으로 견당사선(遣唐使船)을 타고 하카타만(지금의 후쿠오카)을 떠나 당나라에 들어갔다. 그러나 당나라 조정에 의해 천태산 순례의 허락을 받지 못하자, 불법(佛法)을 구하기 위해 견당선에 동승했던 신라인 통역과 의논해 당나라에 머물기로 하고, 이후 당나라·신라·일본·발해를 거쳐 847년 9월 17일 출발지인 하카타만으로 되돌아오기까지, 그리고 귀국 이후 3개월간의 생활을 생생하게 기록한 일기 형식의 글을 썼다.

[구성/내용]

『입당구법순례행기』는 총 4권, 모두 8만 자의 한자로 이루어졌다. 권 제1은 838년(승화 5, 당 개성 3) 6월 13일부터 839년(개성 4) 4월 18일까지의 기록으로, 엔닌이 일행과 함께 장안으로 떠났다가 자신만 따로 떨어져 구법의 길을 걷게 되는 과정을 적었다. 권 제2는 839년(개성 4) 4월 19일부터 840년(개성 5) 5월 16일까지의 기록으로, 적산법화원에 머물면서 천태산[오대산] 여행을 한 내용을 기록했다.

권 제3은 840년(개성 5) 5월 17일에서 843년(회창 3) 5월 26일의 기록으로, 천태산 성지를 순례하며 일본에 전해지지 않은 문서와 그림을 구하고, 장안에 머물며 문헌을 필사한 뒤 838년 귀국을 신청하였으나 허락을 받지 못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권 제4는 843년(회창 3) 6월 3일부터 847년(회창 7, 승화 14) 12월 14일까지의 기록으로, 중국의 사대법난 중 하나인 회창(會昌)[당 무종 때의 연호]의 폐불 이야기가 나온다. 엔닌은 이때 환속 명령을 받고 귀국길에 올랐다.

[의의와 평가]

『입당구법순례행기』는 당을 여행하였던 일본 승려의 열의에 찬 구법 활동의 기록이지만, 전권(4권)을 통하여 등장하는 인물의 절반 가까이는 당나라나 일본 사람이 아닌 신라 사람이다. 이 기록을 통하여 신라 사람들이 세계 무역사의 새로운 단계인 동서 해상 교역의 초기 단계에 가담하였고, 주인 노릇을 수행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적산법화원에 머무는 동안 적산법화원의 강경의식과 일일강의식, 송경의식 등을 순서대로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강경법회의 행법을 전하는 유일한 기록으로, 우리 불교사 연구에 둘도 없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830~840년대의 당·신라·일본·발해의 종교(불교·도교), 정치, 외교, 법제, 민속, 궁중비사, 천문, 지리, 언어에 관한 1차 사료로서, 사실만을 나열한 보고서가 아니라 당시의 인정과 습속, 가치관, 세계관이 묻어나는, 감정과 인상이 살아있는 기록이다.

847년(회창 7) 9월 8일 오전 10시 기착한 안도(雁島)에 대한 기록은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관한 유일한 내용이다. 따라서 『입당구법순례행기』는 불교사 연구뿐 아니라, 당시 동북아시아의 정치와 교통 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