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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1792
한자 興國寺水月觀音圖
영어의미역 Watermoon Avalokitesvara Painting of Heungguksa Temple
이칭/별칭 흥국사관세음보살탱화,흥국사 관음보살도,흥국사원통전관세음보살탱화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17[흥국사길 160]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2년 1월 2일연표보기 - 흥국사 수월관음도 보물 제1332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흥국사 수월관음도 보물 재지정
성격 불교회화|탱화
제작시기/일시 1723년연표보기
제작지역 미상
작가 의겸|향오|신감|적조
소장처 흥국사 지도보기
소장처 주소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17[흥국사길 160]
소유자 흥국사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흥국사에 봉안된 조선 후기 관세음보살탱화.

[개설]

관음보살이 갖는 큰 특징의 하나는 자유자재로 몸을 바꾸어 나타나는 신통력을 갖는다. 설법을 듣고자 하는 자에게 알맞은 모습으로 나타나 법을 설하고 중생을 제도한다.

흥국사 수월관음도 하단에 “옹정원년계묘맹하전라좌도순천영취산흥국사관음전상단후불(雍正元年癸卯孟夏全羅左道順天靈鷲山興國寺觀音殿上壇後佛)”이라고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 탱화가 1723년(경종 3)에 그려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화사(畵師)는 조선시대의 가장 위대한 금어인 승려 의겸(義謙)이 수화사이다. 향오(香悟), 신감(信鑑), 적조(寂照), 즉심(卽心), 긍척(亘陟), 회안(回眼), 향민(向敏), 양운(良雲), 민희(敏熙), 채인(彩仁)이 동참하여 경종 3년인 1723년에 조성한 불화이다. 1994년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87호로 지정되었다가, 2002년 1월 2일 보물 제1332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수월관음도는 원래 원통전에 봉안되었으나 보관상의 이유로 지금은 “의승수군유물전시관(義僧水軍遺物展示館)”에 전시되고 있다.

[형태 및 구성]

보살의 형상은 귀인의 모습으로 머리에는 보관, 몸에는 천의를 걸치고 안으로 내의인 군의를 입는다. 귀걸이, 팔찌, 목걸이 장식을 하고 손에는 연꽃이나 정병 등 여러 형태의 지물을 갖고 있다.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형식을 따른 수월관음보살도이다. 이 불화는 가로 170.8㎝×세로 255㎝의 크기로 비단에 채색하였다.

머리 위에는 밝은 적색의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된 높은 보관을 썼다. 보관의 측면과 정상에 5개의 솟아오르는 장식을 달고 중앙에는 화불이 표현되어 관음보살상임을 드러낸다. 화불은 키형 광배의 외연에 오색의 화염문을 방사형으로 표현하였다. 법의는 붉은색이며 대좌는 밤색 연화좌이다. 연화좌 좌우에는 밝은 하늘색으로 굵은 연 줄기를 표현하였다.

광배는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두루 갖추고 두광의 채색은 밝은 녹색으로 화면에서 돋보이도록 처리되었다. 신광은 따로 설채하지 않고 백색의 테두리만 표현하고 배경의 산수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여백의 효과를 준다. 이러한 표현은 불화가 산수화의 기법을 응용하여 한 차원 높은 표현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탈색되어 밝은 하늘색과 검정색이 섞여진 보발은 어깨에서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고 있다. 상호는 비교적 넓적하나 둥근 편으로 고운 모습이다. 비교적 진하게 표현된 살색은 이마와 눈 그리고 코 아래를 짙게 하여 입체감을 살렸다. 이마는 넓고 호형의 눈썹 사이에는 하얀 백호공이 표현되었다. 넓은 눈두덩 아래에는 눈꼬리가 약간 올라간 작은 반개한 눈으로 눈동자의 눈조리개, 동공까지 세밀한 필선으로 묘사하였다. 시선이 중앙으로 약간 집중된 모습이어서 정면의 참배자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눈 주위에 음영을 달리하여 쌍꺼풀과 눈주름이 표현된 것 같은 효과를 주었다. 콧방울이 작게 표현되어 이지적인 모습보다는 인자한 모습이다. 작은 입술은 밝은 적색으로 입의 상하에는 수염이 표현되었고 턱에도 턱수염이 있다. 화려한 장식을 한 귀는 크고 목 중간까지 내려와 있으며 귓불이 약간 외반되었다. 목 아래에는 밀집된 삼도가 표현되었다.

어깨는 넓고 호형을 그리고 있어 부드러운 모습이다. 목에는 목걸이를 하고 팔과 손목에는 팔찌를 착용하고 몸에는 전신영락을 걸치고 있다. 양 어깨를 덮고 무릎 뒤로 돌아가는 천의의 표면은 붉은색의 장식을 시문한 밝은 청색으로 붉은 테두리로 마무리하여 단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슴 아래 걸친 군의(裙衣)는 보관과 같은 밝은 적색이다. 복부에는 어두운 녹색인 넓은 허리띠를 하고 있으며 무릎 부위에는 크고 화려하고 다양한 문양과 색상으로 시문하였다. 왼손은 왼쪽 무릎 위에 손바닥을 아래로 하여 걸치고 있으며,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위에 손바닥을 아래로 하여 올리고 있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다. 다리는 양 발바닥을 연이어 세운 듯한 특이한 유희좌를 하고 있다.

화면의 맨 하단에는 일렁이는 물결이 묘사되었다. 수월관음보살의 오른쪽 무릎 아래에는 선재동자가 2/3 측면관으로 허리를 약간 구부린 채 합장하고 서 있다. 선재동자는 바람에 휘날리는 옷을 입은 어린 수행자의 모습이다. 관음보살의 왼쪽 암벽 위에는 쌍죽이 있고, 오른쪽 바위 위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이 있다. 정병 위에는 향좌로 날아가다가 방향을 급선회하여 관음보살쪽으로 머리를 항하고 있는 파랑새[관음조, 청조]를 표현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정적인 전체 분위기에 동적 이미지를 부여함으로써 살아있는 배경을 만들고 있다.

[특징]

우리나라에서 다른 관음불화가 그다지 많이 제작되지 않았음에 비해 수월관음도는 고려시대부터 많이 그려져 왔다. 특히 고려시대의 수월관음도는 독특한 도상과 관음의 아름다운 자태, 정교한 필선으로 우리나라 불화를 대표하고 있다. 우리나라 수월관음도의 도상은 반가좌의 자세로 바위에 걸터앉은 관음보살이 예배하는 선재동자를 굽어보는 모습이다. 화면 중앙에 위치한 관음보살은 훤히 비치는 얇은 비단으로 몸을 감싸고 반가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을 높이 쓰고 있으며, 몸에는 화려한 팔찌와 목걸이 등 장신구를 걸치고 있다. 관음 주위에는 버드나무가지가 꽂힌 정병, 한 쌍의 청죽과 새 등이 등장한다. 수월관음보살은 화면 중앙을 가득 채우고 있다.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두르고 유희좌에 신체는 정면관이며 시선은 전방을 향한다. 이런 점은 고려시대의 수월관음도가 측면관으로 시선은 하단을 지극이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에서 변화된 차이를 드러낸다. 보관의 화불은 흔히 좌상이나 여기서는 입상으로 표현되어 있는 매우 특이한 모습이다. 관이 높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입상으로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온화한 상호와 건장하고 날씬한 신체, 젊고 건강하며 아름답고 자유분방하여 자신에 차있는 여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고려의 수월관음은 후덕한 중년의 어머니모습으로 인자하게 그려지고 있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전체적인 구도는 고려시대의 수월관음도에서 흔히 나타나고 있는 구도이다. 고려의 관음상은 측면관을 취하고 있다. 의상이나 문양, 색채와 배경 등에서 채색을 중심으로 하여 현란할 정도로 치밀하다. 조선시대의 관음상에서는 의상이나 문양이 단순화되고 배경도 빈 공간이 많다. 암벽의 색깔을 수묵담채로 처리하는 등의 차이가 있다.

세부 묘사를 보면, 머리 위의 보관에서부터 어깨를 감싸면서 부드럽게 늘어뜨린 투명한 옷자락이다. 고려시대의 수월관음에서 볼 수 있듯이 눈꽃처럼 하얗게 묘사된 것이 특징적이다.

웅크리지 않고 미끄러지듯 내려온 어깨선과 함께 편안하게 무릎 위로 내린 손이 안정감 있게 처리되었다. 상단 좌우 공간에는 대나무와 정병 및 푸른 새가 대비되게 하여 빈 공간을 자연스럽게 채웠다. 하단 우측으로는 선재동자가 서있는데 파도에 휩쓸리는 옷자락이 춤추듯이 흩날리고 있다. 대체로 구도가 안정되어 있고 터치가 섬세하다.

[의의와 평가]

이 그림은 18세기의 유명한 화승 의겸이 그린 불화이다. 비록 화면 하단부에 일부 손상이 있기는 하지만 보존상태도 대체로 양호하다. 구도가 매우 안정되고 필선이 섬세하며 색채의 조화가 뛰어난 조선 후기의 수작이다. 수월관음의 머리 위 보관에서부터 흘러내린 투명한 사라(紗羅)는 상체를 겉옷처럼 감싸면서 양 무릎 뒤로 흘러내린다. 이 사라의 표현은 고려시대의 수월관음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작품에서는 표현되지 않았다. 흥국사 수월관음도는 고법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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