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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동 항호마을 영당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31452
한자 蘇湖洞項湖-影堂祭
이칭/별칭 백마대장군제,영당풍어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소호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2011년연표보기 - 소호동 항호마을 영당제 중단
의례 장소 소호동 항호마을 당집 - 전라남도 여수시 소호동 42지도보기
성격 민간신앙|동제
의례 시기/일시 음력 3월 정일(丁日)
신당/신체 당집|말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소호동 항호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던 마을 제사.

[개설]

소호동 항호마을은 남동 방향으로 장성마을, 남서 방향으로 소제마을과 인접하며, 마을 앞에 바다가 있다. 소호동 항호마을 당산(堂山)은 마을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소호동 항호마을에서는 당산제를 지내는 것을 ‘제만 모신다’라고 한다. 제의 명칭은 그림이 있는 당집에서 모시는 제사라 하여 영당제(影堂祭)라고도 하는데, 제의 대상이 백마대장군이라 백마대장군제라고도 하며, 영당풍어제라고도 칭한다. 2010년까지는 소호동 항호마을 영당제를 지냈으나 그 이후에는 지내지 않는다.

[신당/신체의 형태]

당집은 마을 뒤 당산이라 부르는 구릉 정상부에 있다. 당집 주위에는 10여 그루의 크고 작은 당산나무가 숲을 이룬다. 이 당산나무 중 한 그루는 마을 나무로 지정[보호수 지정번호 제15-2-22-1호]되어 있다. 지정 일자는 1982년 12월 3일이며, 수종은 팽나무이고, 수령은 125년[지정일 기준], 수고는 15m이다. 옛날부터 이 당산나무들에는 함부로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땔나무가 부족하다 하더라도 당산나무의 가지는 주워다가 태우지 않았는데, 만약 가져다가 태웠을 경우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는 믿음이 마을 사람들 사이에 내려오고 있다.

당집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기와집이다. 예전에는 초가집이었는데, 1930년쯤 기와집으로 바꾸었다가 낡고 헐어서 1993년 현재의 모습으로 증축하였다. 그러나 당집의 기본적인 내부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제의의 대상은 백마대장군과 산신이다. 당집에는 백마를 탄 대장군의 그림과 치마저고리를 입은 부인이 서 있는 그림, 그리고 호랑이를 곁에 두고 발을 걸치고 앉아 있는 산신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고 하며, 그림 중 부인의 그림은 ‘소저각시’라고 불렀다 한다. 하지만 이 당신도(堂神圖) 3점은 1960년쯤 모두 도난당하고, 2000년에는 ‘백마대장군신위(白馬大將軍神位)’, ‘산신령신위(山神靈神位)’라고 종이에 쓰인 위패, 철마 9점, 쳇동우[항아리의 여수 지역 말] 2개, 횟대 2개 등이 있었다고 한다.

1960년도에는 대장군과 소저각시, 산신을 모셨으나, 2000년에는 백마대장군만 모셨다. 마을에서 백마대장군을 모시게 된 이유는 옛적에 바다로 백마대장군의 화상이 떠내려 와 그것을 주워 당집을 짓고 그때부터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절차]

제는 음력 3월 정일(丁日)에 지내며, 1980년대까지는 3월과 8월 춘추로 두 차례 제사를 모셨다. 정일이란 깨끗한 날이며, 손 없는 날이라는 뜻이다. 2000년의 경우 4월 9일에 제를 지냈다.

제를 모시는 사람은 제관 부부와 제관을 도와주는 수종군 한 사람, 이렇게 세 사람이다. 그러나 실제로 제를 지내는 사람은 제관이며, 부인은 메와 제물을 장만하는 역할을 한다. 제관은 마을 일을 맡아 보는 동사(洞事)가 10일 전쯤 선정하여 뽑았으며, 1년간 상을 당하지 않은 깨끗한 사람이어야 한다. 수종군 역시 동사가 선정한다. 수종군은 제관을 거들어 주고 짐을 날라 주거나 제사 후 돼지의 발을 묻는 역할을 한다.

제관으로 뽑히면 집 앞에 금토를 놓고 기구한다. 제관은 이렇게 하면서 제사에 쓸 제주(祭酒)를 담그는데 수종군이 길러 온 산샘 물로 담갔다. 제주를 담은 술독은 제관의 집 안방에 놓아 둔다. 제를 모시기 하루 전 새벽에 수종군이 깨끗한 곳에 가서 황토를 파다가 마을 입구와 당집 입구, 당집 앞에 금토를 놓는다. 수종군은 이때 산샘 물로 당집 등의 청소도 깨끗이 한다. 마을 입구에는 두 발 되는 대나무를 세우고 금줄을 친다. 각 가정에서도 골목길과 대문 앞에 금토를 놓는다. 그리고 당산제를 전후하여 산기가 있는 임산부는 마을 밖으로 내보내 아기를 낳고 오도록 조치하였다.

제사를 모시는 당일 오후 2시 무렵 당집으로 올라간다. 고기를 다듬거나 모양을 만드는 일 같은 기본적인 준비는 제관의 집에서 하고 올라가서는 고기를 익히고 메를 지었다. 메를 짓는 물은 수종군이 길러 온 산샘 물을 썼다. 당집에 올라온 제관은 신발도 집 안에서 신는 것과 바깥에서 신는 것을 구별하여 신었으며, 말을 하지 않고 눈짓이나 신호로 의사를 전달하고 음식 맛을 보지도 않는 등 엄숙하고 정갈하게 제물을 준비한다.

제는 당집 안에서 지내는데 백마대장군 앞에 놓여 있는 제사상에 동으로 만든 말 여덟 필을 놓고, 그 뒤쪽에 제물을 진설한다. 그리고 제사상 밑에서 제관과 통장이 제를 진행한다. 제물은 과일, 떡, 메, 국, 소갈비, 돼지고기, 어류, 나물 등이다. 제물 진설 시 메[밥]는 제사상 위에 모두 여덟 그릇을 차리고, 밖에 여섯 그릇을 차린다. 제사상 위에 여덟 그릇을 차리는 이유는 말이 여덟 필이기 때문이며, 밖에 여섯 그릇을 차리는 것은 거릿제와 당산나무를 먹이기 위한 것이라 하며, 동서남북 네 방위와 당집 앞과 뒤에 차린다.

제의 진행은 제물 진설-헌작-재배-메 올리기-현작-재배-소지의 순이다.

축문은 읽지 않는다. 제 지낼 때 기원은 마을이 잘되고, 풍년과 풍어가 들며, 모두가 평안하기를 기원한다. 예전에는 당집에서 제가 끝나면 선창으로 가서 용왕제를 지냈으나, 현재[2000년도 기준]는 당집에서 모두 처리한다고 한다. 즉 당집에서 제를 지낼 때 바닷일이 잘되고 풍어가 들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용왕제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제의 비용으로는 70만~80만 원 정도가 소요됐으며, 이 비용은 마을 공동 자금에서 지출하였다. 제관에게는 약간의 수고비가 지급되었지만, 마을을 위한 순수한 봉사라고 인식하였다.

[현황]

2021년 현재 소호동 항호마을의 당집과 당산은 잘 보존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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