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314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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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栗村面狐山-堂山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월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유화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월산리 호산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던 마을 제사.
[개설]
월산리 호산마을은 율촌면 소재지인 조화리의 맞은편, 즉 순천-여수 간 산업 도로에서 서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산비탈 밑에 자리하고 있다. 호산마을 주민들은 마을에 처음 정착한 이들이 충주지씨(忠州池氏)였다고 하는데, 정확한 문헌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는 없다. 이후 압해정씨(押海丁氏)가 약 350년 전에 들어와 동성 마을을 이루었다. 그러나 당산제를 지내던 신목인 당산나무의 수령이 500년이 넘은 것으로 보아 마을의 입촌 시기는 이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원 및 변천]
호산마을 사람들은 공동 제의를 “당산제 지낸다”라고 표현하는데, 제의는 당산제와 토지신제, 우마제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의의 진행 순서는 먼저 신목인 당산나무에 제를 지내고, 이후 토지신제와 우마제를 간단하게 지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세 제의는 모두 음력 정월 보름에 지내며, 제의를 지내는 시간에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즉 1998년까지는 음력 정월 보름 자시에 당산제를 지냈으나, 1999년에는 정월 보름 밤 9시에 지냈다. 제의 시간을 변경하여도 마을에 아무런 탈이 일어나지 않자 2000년부터는 정월 보름 오후 12시에 지냈다. 이렇게 제의 시간이 바뀐 이유는 유사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시간적으로 편의를 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율촌면 호산마을 당산제 의 한 부분인 토지신제를 지내는 별신당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시멘트 벽돌집이다. 예전 별신당은 오두막이었는데, 1971년 현재의 건물로 중건하였다. 건물 안에 제기를 보관하고 있다. 우마제는 당산제를 지내고 난 후 지낸다.
율촌면 호산마을 당산제 의 신격은 당할머니이고, 신목은 당산나무였다. 이 당산나무는 높이가 14m이고, 둘레가 약 2.8m이며, 수령은 500년이 넘어서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되었으나 2010년대 중반 번개에 맞아 고사하면서 보호수 지정이 해지되었다. 예전에는 할머니 당산나무 옆에 할아버지 당산나무도 있었으나 1950년대 태풍에 부러져서 고사하였다고 한다.
[절차]
호산마을에서는 당산제를 주관하는 제관을 유사라고 하며, 마을 공동 회의에서 정원 초닷새에 모두 세 명을 선정한다. 세 명을 선정하는 것은 당산제와 토지신제, 우마제 등 모두 세 곳의 제를 한 명씩 맡아서 책임지고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유시의 선정 기준은 지난해 집안에 상을 당하지 않고, 출산이나 불길한 일이 없어야 하며, 특히 생기복덕이 맞아야 한다.
이렇게 선정된 유사는 제일 사흘 전부터 근신에 들어가며, 마을 입구와 제장, 그리고 마을 곳곳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깐다.
유사들이 근신하는 곳은 당산나무 옆에 있는 별신당이다. 유사들은 제를 지내기 사흘 전부터 이곳에 기거하면서 정성을 드리고, 제 음식을 장만한다.
당산제 당일 오후 12시부터 징 1명, 꽹과리 3명, 소고 2명, 북 1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된 매구꾼의 흥겨운 매구굿과 구경 나온 마을 사람들의 기원을 받으며 제가 시작되었다. 제의 과정은 집안 제사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유사들의 말처럼 진설-분향-헌작-독축-소지-음복의 순으로 진행된다. 유사들은 제를 지내는 목적이 ‘마을의 평안과 건강, 그리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제물 구입과 장만은 유사들이 여수 시장에서 구입하여 별신당에서 장만하는데, 제물의 종류로는 조기, 양태, 민어와 꼬막, 나물류, 과일류, 은행, 과자, 메, 국, 백설기, 메밀묵 등이 쓰인다. 제물로 육고기는 쓰지 않고, 음식의 간은 보지 않는다.
제물은 당산제가 끝나면 조금씩 떼어 내서 한지에 싸고 당산나무 아래에 묻는다. 특히 제물로 쓰인 메밀묵은 도깨비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제가 끝나면 이를 당산나무 주위에 헌식하여 이튿날 살펴보아 메밀묵이 없으면 제를 잘 모신 것이고 남아 있으면 제를 잘못 모신 것으로 마을 사람들은 인식하였다고 한다.
마을의 제토답으로 403평[1,332.23㎡]이 있는데, 이를 경작하는 사람이 제비[제답]를 부담한다고 한다. 현재[2000년도 기준]는 다른 마을 사람이 경작하고 있는데 제 비용으로 8만 원을 주면 이를 가지고 제물을 장단하고 제 미용으로 쓴다.
토지신제는 별신당에서 지내며, 간단하게 제물을 차려 놓고 토지신에게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한다. 우마제는 당산제를 지내고 난 후 지낸다. 마을 입구 쪽에 있는 농토에 우마비가 세워져 있는데, 비의 내용은 ‘마행천리로 우경백무전(馬行千里路 牛耕百畝田)’이다. 이는 교통수단으로서의 말과 농경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동물인 소가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기원하기 위해서이다. 비 앞에 짚을 깔고 그 위에 밥을 두 그릇 놓고 간략히 무병과 건강을 기원하는 것으로 제는 끝난다.
세 곳에서 행해진 당산제가 모두 끝나면 유사들과 매구꾼,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음복을 한다. 음복이 모두 끝나면 매구꾼들은 매구를 치며 마을 곳곳을 다니며 지신밟기를 하는데 보통 3~4일 정도 계속 진행된다.
마을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에는 당산제를 못 지내게 하려고 일본 순사들이 당산나무에 총을 쏘기도 하였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제를 모셔 왔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였으며, 그때 총에 맞은 상처가 현재에도 당산나무에 남아 있다고 전하였다. 또한 당산나무에 열린 열매를 따 먹기 위해 사람들이 나무에 올라갔다가 간혹 떨어지기도 하는데, 다친 사람이 없어 사람들은 이를 당산할머니가 영험하고 사람들을 보호해 주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마을 사람들은 당산나무 잎을 보고 그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가름하는데, 예를 들어 잎이 한 번에 피면 그해에는 풍년이 들고, 두 번에 나누어 피면 그해에는 평년작이고, 세 번에 나누어 피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당산나무가 매우 영험하여 그해의 풍흉을 미리 알려 주는 조화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현황]
당산나무가 번개를 맞은 이후 호산마을에서는 당산제를 중단하였다. 고사한 당산나무를 베어 버리고 당집도 허물면서 2021년 현재는 당집 터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