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마을
고아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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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오로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가좌골은 영남의 거유로 유명한 직제학 김성미가 낙향하여 임진왜란 때인 1582년 소실된 오로재를 지어 제자들을 기른 곳이다. 당시 김성미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 학생들이 구름같이 모여 들었는데, 이 학생들이 오로재를 가리켜 “즐거움을 더해 주는 영광스러운 자리”라고 말하므로, 이에 오로재가 있는 마을을 한자로 가좌골[佳座谷]이라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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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예강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강정은 예곡 동남쪽 낙동강 변의 외딴 산 밑에 있는 마을로서, 명월 황기로가 태어나서 살면서 호를 고산이라 하고 매학정을 짓고 거처하였던 곳이다. 이런 이유로 낙동강의 ‘강’ 자와 매학정의 ‘정’ 자를 따서 강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1896년경에는 망장면 소속으로 예곡동리와 강정동리로 나누어져 있었다. 1914년의 행정구역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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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다식리 남쪽에 있는 자연마을. 남산고개는 다식리 마을 형성 이전부터 있던 마을 남쪽 작은 산 아래 마을이다. 이곳 사람들과 평촌 사람들이 함께 들에 농사를 지으며 넘나들면서부터 이 마을을 고개와 같은 명칭인 남산고개라 부르게 되었다. 현재 통행량은 많지 않고 고개만 남아 있다. 남산은 낙동강 잣골나루 건너 해발고도 220m 정도의 산지(다식리 뒷산 혹은 매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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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대망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대망리의 가장 위쪽 마을 즉, 윗목이라 하여 상망, 상리, 항골 등으로 불린다. 대망리 전체로 보아서 가장 위쪽에 위치하는 마을로 망장방(網張坊)시대는 상망장동리, 망장면(望障面)일 때는 상리동리의 독립된 마을이었으나 1914년 행정제도 개편으로 평성면(坪城面), 망장면(望長面), 서내면(西內面)이 고아면(高牙面)으로 통폐합하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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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대망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이 곳에서는 당대에는 잘 살 수 있으나, 후대에는 어떤 사람이라도 천한 사람이 된다고 해서 당대이로 불리다가 댕대이를 거쳐 댕대미가 된 것으로 보인다. 마을 이름은 망장방 때는 현 대망리 마을에 상 중 하 망장 3동리가 있었는데 모두 망장방에 이름을 따서 부르게 된 것 같고, 망장면 때는 대망리에 6마을로 분리되어서 그 마을마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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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괴평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평촌이라는 이름은 마을 앞에 전답이 넓고 평평하게 펼쳐져 있는 데서 유래하였다. 예부터 낙동강 물이 들면 흉년이 들어 마을이 매우 곤궁하였고 다음 해에 강물이 들지 않으면 풍년이 들어 곡식이 매우 잘 되었다는 말이 전한다. 조선 후기 1896년 이후에 평성방(平城坊)에서 평성면으로 변할 때 현재의 평성리 마을이 고신동리(古新洞里)와...
선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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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강창은 과거에 낙동강 수로를 이용하여 남쪽 바다와 해안에서 생산된 해산물과 소금 그리고 경상도 중부와 북부 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혹은 임산물을 실어 나르는 배들이 일시적으로 정박하는 도선장(渡船場)이었다. 이 때문에 선산읍으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에 교역장을 위한 창고가 있었다. 직지사의 삼층석탑(三層石塔)도 이곳에서 선산군으로 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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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신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대지미마을과 상대적 위치 관계에 의해 마을 이름이 붙여진 경우로서, 거름마가 대지미천을 경계로 대지미와 마주보고 있는데, 한 걸음으로도 갈 수 있다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마을 위쪽으로 신기골에서 시작한 대지미천이 흐르고 있다. 대지미천은 넓이가 3m인 작은 하천으로, 이 하천에 의존하는 농경지의 넓이, 곧 몽리면적(蒙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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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내고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감천(甘泉)이 선산읍의 중심부를 지나 굽이쳐 흐르면서 북서 방향의 계곡에 타원형의 평탄한 들을 만들어 놓았고, 주변 산자락에 여러 개의 자연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 가운데 하나가 거리골로서, 마을 앞들의 건너편으로 내고천과 내동천이 흐르고 있으며, 상류 계곡에 내고못이 만들어져 있다. 내고천과 내동천에 인접해 있는 농경지 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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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낙동강 물이 흘러들어 왔다가 돌아 내려가는 곳을 돌머리라 하고 배를 메어 두던 곳을 용바위라 하는데, 그 후 이곳이 토사로 퇴적되면서 들이 되었다. 거물리는 바로 그 들에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 년 전 들어선 작은 마을로서, 왜 거물리로 불렸는지는 알 수 없다. 거물리는 낙동강 오른쪽에 만들어진 범람원의 구석 부분에 위치한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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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본래 아홉 개의 작은 마을로 이루어졌다 하여 구남(九南)으로 불렸는데, 이후 고남(古南)에서 고내미로 변했다고 한다. 고내미는 낙동강 오른쪽에 만들어진 범람원의 위쪽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다. 1960년대 낙동강에 제방이 쌓아지면서 앞들은 홍수 피해가 감소하였고, 범람원 지역은 농경지로 변모하였다. 마을 앞들을 지나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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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상고시대의 움집인 고방(방 모양으로 생긴 굴)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 ‘부치서십리(府治西十里)’라 새긴 비석인 이정표가 발견되었는데, 여기에 ‘방명고방송(坊名古方松)’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고방실은 감천의 지류인 고방실천에 접해 있으며, 맞은편에 원당(願堂, 일명 원대이·원댕이)이 있다. 마을 앞에는 감천의 범람과 산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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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조선시대 활을 쏘는 궁터가 있었다고 하여 궁터라 하였으며, 궁띠쑤밭은 궁터 솔밭에서 와전되었다. 비봉산 기슭에 있는 동부리 궁터는 원래 선산 지역 선비들이 난정이라는 정자를 지어놓고 매일같이 모여서 활쏘기와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부근에는 민가가 거의 없었고, 객사인 남관과 북관을 지어 공청으로 활용하였다. 1910년 대한제국의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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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내고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560년 전 조씨(曺氏)가 개척한 마을로 알려져 있다. 내고리를 감싸고 있는 지형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인 월유봉(350m)의 북동 쪽에 쌀개산(224m)이 자리잡고 있다. 쌀개산의 끝 부근에 내동이 위치해 있고 가까이에 무래(舞來)마을이 있다. 내동에서 북동쪽으로 가면 무래고개가 있고 고개를 넘으면 명태마을과 중부내륙고속국도의 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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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습례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이 자리잡고 있는 곳과 뒷산 가장자리에 대나무 밭이 여기저기 많아서 대밭골이라 불리워졌다고 한다. 또한 죽전(竹田)이라고도 한다. 마을은 월유봉(月留峰)의 남동쪽 산자락에 그리고 습례들의 위쪽 부근에 있다. 뒤는 300m 정도의 산지가 겨울의 차가운 북서계절풍을 막아주고, 앞은 넓은 들과 감천이 굽이쳐 흐르고 있다. 마을의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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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봉남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산세가 좋고 황새가 많이 서식하여 봉덕산(鳳德山)이라 부르며, 두루미(황새)가 해마다 찾아와 서식하므로 황새골 또는 대조리(大鳥里)라 하였다. 울고개, 울곡이라고도 하며 조선 초기 김천 구읍 오진사댁 규수가 신당게 정진사댁 도령과 혼인하였지만 신랑이 곧 죽게 되자 오진사댁 규수는 신랑없는 시집살이를 살면서 친정으로 넘어가면서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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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신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고려 태조 왕건이 군사를 사열할 때 군사 수가 어찌나 많은지 그 끝이 이곳까지 미쳤다 하여 태조미(太祖尾)라고 했는데 이후 대지미로 변하였다. 대지미천을 경계로 거름마마을과 마주보고 있다. 마을 아래쪽으로 신기골에서 시작한 대지미천이 흐르고 있고, 하천은 낙동강 본류로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끝 부분에 들이 만들어져 있다. 대지미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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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북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널미 남쪽의 응달진 곳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뒤의라 한다. 골짜기를 부처골이라 하는데, 이는 옛날에 이곳에 절이 있었다는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뒤의의 남쪽에는 북산(123m)가 위치하여 볕이 잘 들지 않는다. 마을의 북동쪽에는 감천의 범람원으로 형성된 논이 많으며, 남서쪽은 구릉지로 주로 과수원으로 이용된다. 북산으로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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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내고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무래라는 지명유래는 마을 앞 들판의 남동쪽에 감천이라는 맑은 강물이 흐르며 옛날 이 골에 놀던 학이 마을의 북서쪽 숲에 서식처를 찾아 춤을 추며 날아왔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무래의 남동쪽에는 감천이 흐르고, 북쪽은 쌀개산(224m)과 다른 봉우리들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마을 앞에는 내고소류지가 있고, 마을 북편의 산은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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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봉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물이 많고 봉황새가 춤추며 놀다 날아간 곳이라 하여 무실이라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곡과 병합하여 봉곡이라 하였다. 무실과 봉곡은 각기 다른 마을로서 무실은 지방도 68호선 변에 위치한 저평한 평지에 위치하나, 봉곡은 무실에서 북동쪽으로 올라간 골짜기에 위치한다. 이러한 지형적 특징으로 무실은 논농사를, 봉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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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생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과거 마을의 동제를 지내던 사당이 뒤에 있었다고 하여 사방골이라 불리어졌다고 하나 지금은 사당이 없다. 사방골은 낙동강과 인접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범람원 지대는 논농사 지역으로 이용되고, 배후산지 지대는 밭농사 지역으로 이용하고 있다. 사방골의 북쪽에는 구릉성 산지(116m)가 있고, 동쪽의 낙동강의 범람을 막기 위한 생곡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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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화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불려진 것이라고도 하며 비봉산의 봉황새가 놀다간 곳이라 해서 유래된 이름이라고도 한다. 또 마을에 봄이 되면 앞산에서 가지각색의 새들이 울곤 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남쪽에서 온 새라 하여 새남골이라 하였다. 본래 동내방으로 김천찰방 관할 구비역이 있던 마을이다. 1904년에 역이 폐지되었고 1914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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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어강골에 본래 나루터가 있었으나 통행에 불편함이 많아 아래쪽에 나루터가 하나 더 생겼으면 하고 바라던 참에 마침 여름에 호수로 인해 자연적으로 새로운 나루가 생겼다. 이에 연유하여 이 일대를 새도방이라 한다. 낙동강 도선장으로 새로 생겼다 하여 명칭하였으나 ‘장대’라고도 한다. 태조의 깃발을 꽂아둔 곳이다. 새도방의 남쪽에는 대망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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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교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본래 동내면 지역으로서 선산향교가 있다 하여 향교마 또는 교촌이라 하였다. 또 이 고을을 생골이라고 하는 것은 이 곳에 향교가 있는 관계로 생원들이 많았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생골의 북쪽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남동쪽은 소하천을 따라 나타나는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골짜기 입구에 마을이 조성되어 있는데, 주변의 샘골, 뒷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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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이문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이문리 동쪽에 있는 마을로 이 곳에 성황단과 여제단이 있었다고 하여 서낭댕이 혹은 서당댕이로 부르고 있다. 서낭댕이는 감천과 대천이 합류하는 서리들에 위치하고 있다. 범람원 상에 위치하여 주로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서낭댕이는 범람원 상의 앝은 구릉지 상에 위치하여 밭농사도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도 59호선과 인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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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포상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포상리에 있는 마을로서, 지금의 포상1리에 해당한다. 조선시대 선산 지방의 명현(名賢)인 신당 정붕(鄭鵬)이 처음 입향한 마을로 정붕의 호를 따서 마을 이름을 신당(新堂)게라 하였다. 월류산 지맥이 서북쪽으로 뻗어 두루방산(속칭 두루배기)을 이루어 서쪽으로 가다가 낙맥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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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서원마을 남쪽 감천 건너에 있는 마을로 고려 태조 왕건이 이 곳에 군영을 설치하고 견훤의 아들 신검과 접전을 벌여 그를 사로잡고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기여한 곳이라 한다. 과거 홍수로 인해 어강의 나루터가 소실되어 남쪽의 새도방에 새로운 나루터가 만들어지게 되어, 어강은 웃마라 불리고 새도방은 아랫마라 불리게 되었다. 어강은 북쪽의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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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이문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을 개척할 때 새와 연꽃이 많다 하여 연봉(蓮鳳)이라 하였다. 비봉산의 봉을 맞이한다는 뜻으로 영봉(迎鳳)이라 하기도 했으며 조선 초기 전가식, 김숙자, 김치, 하담, 정초, 유면, 하위지, 정지담 등 많은 인물이 이 마을에 살면서 과거에 장원급제 또는 부장원을 하셨는데, 선산의 한 작은 마을 연봉리에서 장원급제를 가장 많이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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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교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조선 중기 선산김씨(善山金氏, 일선김씨(一善金氏)라고도 함) 내외가 이주를 하려고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 이곳 용동골까지 왔는데, 갑자기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비 속에 한 쌍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이곳에 정착한 뒤 마을 이름을 용동골이라 하였다. 용동곡(龍動谷)이라고도 한다. 북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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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봉남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예부터 마을 뒷산이 선산부의 서쪽에 위치하며 새벽에 서산에 밝은 달이 마치 산위를 맑은 물이 흐르듯이 사라지는 듯하여 월류산(月流山)이라 이름했는데, 월류산 아래 마을이라 월유골이라 했으며, 변음되어 월이골이라 부른다. 월류산에서 내려오는 개울이 습례리와 경계를 이룬다. 옛날에는 선산군과 금릉군의 경계가 될 때도 있었다. 마을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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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옛날 어느 한겨울에 한 늙은 스님이 이 곳을 지나다가 눈이 쌓여 사방을 분간하지 못하였는데 한 쪽을 보니 엄동설한인데도 온갖 풀들이 파릇파릇 자라고 있어 이 곳이 명당이라 하며 절을 세워 장화사라 하였다. 훗날 절은 없어졌으나 부근에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오랜 세월동안 변음되어 장아찔, 장아골이라 부르고 있다. 조선시대 독동방 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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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북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신라시대, 이 마을에 천연두(일명 손님병)가 심하여 마을 전체가 뒤숭숭하였다. 때마침 마을을 지나가던 한 스님이, 마을 앞에 돌을 던져 한 개씩 쌓으면 손님병이 없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믿고 마을 사람이나 마을을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돌을 던졌더니 손님병이 사라졌다 하여, 그 후로 마을을 재상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재상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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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교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옛날 선산부에서 설치한 제단(祭壇)이 있었던 곳이다. ‘제사 제(祭)’자를 따서 젯골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으나 현재 산이 성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하여 잿골이라 부른다고 한다. 북쪽에 신산이 있으며 산자락에 마을이 있다. 선산읍사무소에서 약 2㎞ 지점의 박공산 모퉁이를 돌아 올라간다. 남북으로 경사가 높게 이루어져 올라갈수록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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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생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예전에 절이 있던 곳이라 절골이라 하였다. 고려 중엽에 미봉사(彌鳳寺)라는 절이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재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사지(寺址) 우물터가 남아 있으며, 이 지역의 물이 좋아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식수로 이용한다. 원래 독동방(禿同坊)의 송실[松谷]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송실이 생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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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노상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언제부터인지 확실히는 알 수 없으나 옛날부터 마을의 가장 동남쪽 언덕 아래 양지 바른 곳에 우물이 있었다. 두레박 없이 푸는 곳으로 물이 흔해서 온 동네가 먹을 정도였으며 맛이 좋아서 먼 곳에서도 이용하므로 아침 저녁으로 물 긷는 아낙네들이 줄을 설 정도로 붐볐다. 이 곳에 작은 동산을 만들어 나무를 심고 동제를 올렸다. 이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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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포상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상송(上松)의 금옥고봉, 중하송(中下松)의 옥녀봉, 하자백의 호구봉(虎口峰)이라는 3대 명산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을 지었다. 조선시대 신당포방 하송리로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옥성면 포상리로 개편되었고 현재는 선산읍 포상1리에 속하게 되었다. 무을면 웅곡리와 경계를 이룬 곳으로 신당포방 하송리였다가 선산읍 포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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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이문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뒷산(선산여자중학교 뒷산)의 모양이 날개를 편 큰 새(大鳥)의 형상과 같다 하여 황새월이라 했다. 원래 서내방 대조동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선산면 이문동으로 편입되었다. 현재 선산읍 이문리의 한 마을이 되었다. 선산읍사무소에서 서쪽으로 약 500여m 지점으로 장원봉 아래 있다. 읍내에서 가장 먼저인 1980년대 우공...
도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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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도개1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옛날에는 마을이 바로 강변에 위치하여 강변마을이라고 했는데, 이 강변이 전음되어 갱분이 된 것이다. 지금도 구미 지역에서는 강변을 갱분이라 한다. 사방이 농지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하천부지 등이 개간되어 과수원과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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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궁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고려 말 충신 농암 김주(金澍)가 잠시 살았다고 하여 김주의 호를 따서 농암 즉 농바우로 부르게 되었다. 문암산을 등지고 낙동강 연안의 넓은 들을 끼고 있다. 김주의 유허 비각이 있는 농바우와 옛날 낙동강의 배가 닿았다는 선체이(선창)마을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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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다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주륵폭포로 가는 길목 마을로서 원래는 다목이라 하였으며 정월 대보름날 달맞이를 이 곳에서 하여 달목 또는 다랑이라 불렀는데 다랑의 전음으로 다항이라 하였다고 한다. 청화산 밑에 있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옛날에는 주륵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옛 터만 남아 있고 절터에는 오층석탑의 탑신이 남아 있다. 주륵폭포는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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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동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 동쪽 만경산 자락에서 솟아나는 물을 먹었다고 하여 동정(東井)이라 했다고 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젊은 사람은 거의 찾아 볼 수 없고 노인들이 많은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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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신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신곡리는 큰 마을이라서 위치를 세분하기 위해서 중간에 흐르는 하천을 경계로 위쪽을 상리 또는 위마라 불렀다. 위마마을은 팔공산 지맥인 장자봉 아래 좌청룡 우백호가 뚜렷한 분지로 형성된 마을이다. 고려 충신 농암 김주의 후손 중 좌의정을 비롯한 많은 문과급제자와 임진왜란 의병장 정방준의 처 열녀 변씨의 정려각 그리고 혜봉선사(慧峰禪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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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용산1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 뒷산의 생김새가 말[斗]과 같이 생겼다고 산두라 하였다고 한다. 연산리가 의성군 단밀면에 속해 있을 때는 용산리가 아니고 동산리에 속해 있었는데, 1987년 연산리가 선산군에 편입되자 연산리와 같이 용산리가 되었고 산두의 뒷산이 연산의 뒷산과 이어지는 산세의 형상이 용과 같다 하여 용산리라 하였다. 농촌이면서도 산으로 둘러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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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궁기리에 있는 옛 지명. 확실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병자호란 당시 홍수가 범람하여 낙동강 물이 마을까지 들어오자 주민들이 사력을 다하여 물을 피했는데, 어디선지 배 한 척이 떠내려와 이곳에 닿았다 하여 선착(船着)이란 이름이 생겨났다. 그 후 배가 닿은 곳에 선창이 생겨 불린 이름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일선교의 개통으로 선창은 폐쇄되었다. 선창이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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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신림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1400여 년 전 아도화상이 불교 전도를 위해 고용살이하던 주인 모례장자가 소와 양을 기르던 곳이라서 소골이라 한다. 도개리 건너편에 있으며, 도리사가 있는 냉산자락 산골짜기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을 동쪽에 우곡지라는 저수지가 있다. 지금도 옛날처럼 방목은 하지 않지만 소와 돼지를 양축하는 농가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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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다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당재와 신화 사이에 있는 마을인데 작은 우물이 있다. 우물에 물이 솟지 않으면 가뭄이 들고 넘치면 며칠 후 비가 온다는 영험있는 우물과 쇄를 다루는 무쇄점이 있어 수철이라 하였다. 도리사가 있는 냉산과 청화산 사이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로서 농경지가 적은 산골마을이다. 농경지가 적어서 고소득 작물인 인삼을 옛날부터 재배해 왔고 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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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다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청화산 밑의 화촌과 화촌 건너편 새로 생긴 마을을 합쳐 신화촌이라 한다. 도리사가 있는 냉산과 청화산 사이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로서 농경지는 적은 산골마을이다. 수철마을이 남동쪽에 있다. 농경지가 적어서 고소득 작물인 인삼을 옛날부터 재배해 왔고 산골 특유의 기후에 맞추어 질 좋은 과일 생산과 양축 그리고 휴양시설이 형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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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궁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도개면 소재지인 궁기1리 마을로 옛날에 보통장(甫通場)이라는 5일장(3일, 8일)이 섰는데 윗마을 장터를 웃장터, 아래마을 장터를 아래장터라 하여 편의상 마을을 세분하여 불렀다. 궁기리의 윗장터와 아래장터는 낙동강변의 평야지대에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 남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윗장터와 아래장터는 도개면의 중심지로 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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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용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대구 팔공산의 지맥인 만경산에서 내려다 보면 낙동강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한송이 연꽃이 물위에 떠 있는 것 같아 연산(蓮山)이라고도 하고 만경산 지맥의 낮은 산이 가산리를 거쳐 낙동강까지 이어졌다고 연산(連山)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의성군 단밀면에 속해 있었으나 1987년에 선산군으로 편입되었고 현재는 구미시 도개면 용산리이다. 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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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가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고려 때 이 곳에 원흥사란 절이 있었는데 빈대가 너무 많아 폐사가 되었고, 그 곳에 생긴 마을인데 절의 이름을 따서 원흥이라 하였다. 가산리 서쪽 낙동강의 연안 비옥한 평야지대에 위치하며, 마을 동쪽은 낮은 구릉지를 이룬다. 낙동강의 연안 비옥한 평야지에 수도작을 비롯하여 각종 원예작물 특히 수박, 방울토마토를 재배하여 비교적 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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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도개면 월림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주위가 산림(山林)으로 둘러싸여 있고 뒤에는 소류지가 있으며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월림리는 월림1리와 월림2리로 나누어지는데, 월림1리, 곧 임호에는 월곡마을이 있다. 월곡마을은 달이 뜨면 마을을 환하게 비추어 마을 뒤에 있는 계곡이 맑게 보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월곡마을은 또 아래위로 나누어서 아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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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궁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고려 말 충신 농암 김주의 충열당, 의관묘, 신도비가 있고, 김주의 후손 중에 많은 인재가 배출된다고 하여 재궁(才宮)이라 하였다. 뒤에는 재궁, 원당골, 농바우 뒷산이 연결되어 있고 앞에는 낙동강이 흘러 넓은 들을 끼고 있는 살기좋은 농촌마을이다. 궁기리는 도개면 소재지 마을인 궁기1리와 재궁, 원당골, 농바우로 구성된 궁기2리로...
무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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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등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가잠이 있는 무등리는 연안전씨 전윤무(田胤武)가 태어난 곳으로, 그의 호(號)를 따서 부른 이름이다. 약 350년 전 선산의 태동(台洞)에서 온 황경헌(黃景憲)이 처음 개척하였으며, 당시 주변의 자연환경이 좋아 무동(茂洞)이라 하였다가 후에 무등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동쪽은 무수리와 접하고, 서쪽은 안곡리로서, 동서로 뻗은 머무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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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수다사에서 내려오는 개울물이 많았으나 들이 넓어서 전답에 물을 대었으나 언제나 이틀이 되어야 돌아오므로 물이 모자란다는 뜻으로 모지래기라 하였다. 동으로 오가리와 접하고 서로는 안곡리와 접하며 남에는 마을 앞 안곡저수지가 있으며 낚시터로 유명하다. 북에는 연악산 아래 99개의 깊은 골짜기가 뻗어내린 곳에 신라 고찰 수다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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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원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모흥 또는 모종골은 박씨가 제일 먼저 지금의 모종골로 이사를 와서 터를 잡았으며 박을 모종하듯 박씨가 먼저 왔다고 모종골이라 한다. 그 외에 초마골, 못골, 탑골이 있는데 초마골은 풀이 많은 골짜기이며, 못골은 못과 물이 많은 곳이고, 탑골은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머무산을 등지고 남쪽은 김천시 감문면과 이웃하여 동으로는 백자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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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수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1680년 경 경주이씨가 마을을 개척하여 무쇠(鑛)를 녹여 주물을 만들었다는 곳이라 하여 무쇠골이라 하며 또한 임진왜란 때 피난처로서 전화(戰禍)가 없는 동네라 불렀다. 이 때 무쇠골이 어감이 좋지 않고 근심이 없는 동네라는 말에서 무수곡이라 하였다 한다. 무수골마을은 2007년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되어 농촌체험장으로 활용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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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오가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봉촌(鳳村)은 풍수설에 봉황새가 앉은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임진왜란 당시 향토방위로 원통산에 성을 쌓고 이 곳에서 말을 길렀다 하여, 혹은 지나가는 행객들이 말을 먹이면서 쉬어 가던 곳이라 하여 말밭·말바티·말밭티라 하였다. 또한 1895년 김판식이라는 선비가 옹기를 굽고 옹기점을 차렸다 하여 점촌이라 하기도 하고,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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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송삼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송삼2리의 옛 도로 옆에 성황당이 있었다 하여 성황리라 불린다. 동으로 원통산과 접하여 있고 서로는 무수리 사동산과 접하여 있으며 남으로 마을 앞 송삼리소류지가 있다. 마을 앞으로 감천의 지류인 대천이 흐르며 북에는 짐수골로 거슬러 올라가면 옥성면 태봉리와 접하여 있다. 무을면소재지로 면사무소와 우체국, 보건소가 있다. 우자리(牛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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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오가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처음에는 구평(龜坪)이라 하였으며 1567년 경 가정 전윤무(田胤武)가 무등2리에서 살다가 후손을 데리고 수양 차 이 곳에 와서 개척하였으며 이후 후손들을 수양시켜왔다 하여 수자골 또는 수자곡(修子谷)이라 했다. 오가리 남서쪽에 위치하며, 동으로 무수리와 서로는 상송리와 접한다. 남으로 무등리와 멀리 보이는 김천시 감문면의 백운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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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송삼리에 있는 골짜기. 옛날 이곳에 참나무가 많아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참나무로 숯(목탄)을 구우며 살았다 하여 짐수골이라 한다. 지금도 이 곳에 참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 경상북도 선산군 무을면 송삼동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95년 1월 1일 구미시와 선산군 통합으로 구미시 무을면 송삼리에 속하게 되었다. 송삼1리에 속하는 자연마을이었으나 지금은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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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백자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소지이(松地, 백자리)의 안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또는 앞산인 반월산 안에 있다고 안마을이란 뜻의 내올, 내을, 내월 등으로 부른다. 한자 표기인 천촌(川村)은 샘이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동네의 양지쪽의 양지마와 음지쪽의 음지마의 두 부분을 가르는 냇물이 흘러 샘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기도 하고, 냇물이 흐르는 동네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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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에 있는 골짜기. 옛날 심한 한발로 인하여 기근이 심하여지자 전답을 가진 이 곳 주민들이 논밭 한 마지기를 팥죽 한 그릇과 바꾸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경상북도 선산군 무을면 상송동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95년 1월 1일 구미시와 선산군 통합으로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에 속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이 곳에 버섯을 재배하며 사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
산동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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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백현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백곡은 백이실이라고도 부른다. 한산인 영주군수 이씨가 1675년 이 곳에 정착할 때 잣나무와 배나무를 가지고 와서 심었기 때문에 백이실, 또는 이씨가 개척한 마을이라 하여 백이실이라고 한다. 1914년 선산군 산동면의 관할이 되었다가 1995년 시군통합에 따라 산동면이 구미시에 편입되면서 백현리도 구미시 산동면에 편입되었다. 남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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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임천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 앞에 큰 못이 있었는데 토질이 못 아래쪽보다 못 위쪽이 낫다고 승지, 또는 승지동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또는 조선 정종 때 사림(士林)이 돈봉(遯峰) 김녕(金寧)을 추모하는 승암서원(勝岩書院)이 있다 하여 승지라 하였다 한다. 1400년(정종 2) 유림에서 김녕을 추모해서 승암서원을 지었으나 1868년(고종 5)에 철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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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임천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임천리 앞 임천평야에는 경지정리 전에 몽대보라고 부르던 보(洑)가 있었다. 이 몽대보는 임진왜란 후에 농토가 메마르고 물이 부족하여 농사가 힘들어지자 마을 사람 김녕(金寧)이 사재를 털어서 수로를 개설하여 장천면 묵어리 계곡물과 한천물을 끌어들여 만든 것이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김영의 후손에게는 수세를 부과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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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동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예전에 이 마을에 오동나무가 많아서 오리(梧里)·오리곡(吾里谷)·오리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려 말 벼슬이 높은 자리에까지 올랐고 효행이 뛰어났던 후주당 박영미가 살던 곳이다. 경상북도 선산군 산동면 동곡동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95년 1월 1일 구미시와 선산군 통합으로 구미시 산동면 동곡리에 속하게 되었다. 동남쪽의 재넘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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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이 용의 굴(龍穴)이 되는 지점이며,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어질다고 하여 용인동(龍仁洞)이라고 한다. 지금은 주로 용지골이라 불린다. 경상북도 선산군 산동면 인덕동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95년 1월 1일 구미시와 선산군 통합으로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에 이속되었다. 생골 동쪽에 있는 마을로 남쪽으로 야산이 둘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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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송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 모습이 소가 엎드려 누운 모양과 닮았다고 하여 우복동(牛伏洞)이라 하였다. 현재 마을의 대나무 밭이 소의 배꼽 위치로서 마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이 자리가 명당자리라고 한다. 또 마을에서 추운 섣달 어느 날 소가 푸른 풀을 물고 누워 죽었다 하여 우복동(牛伏洞)이라 하였다고 한다. 오복동(五福洞)은 한자 표기로 인해 오기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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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에 있던 마을. 옛날 수리가 불완전하던 시절에 이 마을은 백사장이 많아 다른 곡식은 심지 못하고 메밀을 심어서 생활하는 빈궁한 마을이었는데 메밀꽃이 필 무렵에는 특히 기근이 심하여 새도 굶었다고 해서 조사실[鳥沙谷]이라고 하였다. 또는 옛날 이 마을은 메밀을 많이 심었고, 개화기에는 사면이 백사장이어서 마을이 가난했으므로 그것을 비유하여 새도 굶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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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송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490년 경 탑골마을과 아랫마을이 있었는데, 당시 두 마을에 도둑이 심하여 현재 위치로 옮기고부터 도둑이 없어져 정실이라 불렀다. 1687년 경주손씨가 마을을 개척하였다. 그 후 동리통폐합 후 송산리에 편재되었다. 남쪽에 매봉이 있으며, 매봉과 정송 사이에 정실소류지가 있다. 정실(正室)이라는 곳에 옷샘이 있었는데 깊이가 명주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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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송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옛날 장구 소리를 상징하는 동구당이라 하였으나, 그 후 말이 변하여 중구당으로 되었다. 혹은 명산(明山)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선지도사가 이 곳 산세가 깨끗하다고 한 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하며 중구당 놀이터가 이름한 것이다. 마을 앞에 송산천이 흐르고 북쪽에 명산이 위치한다. 군위군 소보면과의 경계지역에 위치한다. 현재는 송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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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동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본래 몽대면의 소재지였으나 1914년 국도가 신설됨에 따라 동사무소가 적림리로 옮겨져 마지막 읍이라 하여 말읍(末邑)이라고 한다. 동곡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옛날에 질곡부곡(秩谷部曲)이 있었다. 우베틀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시루봉, 비재봉을 잇는 능선을 따라 북동쪽은 경사가 급한 반면 남서쪽은 경사가 완만한 구릉성 산지 지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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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임천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산림이 좋아 학과 두루미가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해서 학사라고 한다. 아래쪽에는 학의 털이 모인 곳이라 하는 모산(毛山)이 있다. 옛날에는 몽대방으로 칭할 때 임천리가 중심지로 있었다가 1914년 행정개편 때 임천리가 산동면으로 편재되었다. 그러면서 학사 또한 여러 자연마을과 함께 산동면 임천리에 편재되었다. 면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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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 뒷산이 선인이 부채를 거꾸로 드리운 형상이며 덕을 드리는 곳이라고 해서 현디기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자연마을인 문수, 용인, 지검, 헌덕을 합하여 인덕리로 개칭하였다. 문수산 아래 어름골이 있는데, 여름에는 얼음이 얼고 겨울에는 녹아내린다고 한다. 면의 동쪽에 있으며 마을을 관통하는 국도 25...
옥성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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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덕촌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1426년(세종 8)에 개척하였다 하며, 영남 상인들이 이 곳을 지나 북부지방으로 장사를 다닐 때 길목에 2평 남짓한 돌이 있어 휴식처가 되어 왔으므로 너븐돌이라 불러졌다. 마을은 대천의 지류인 배달이천의 상류와 형제봉(兄弟峰, 531m)의 서사면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앞 쪽의 계곡에 대원저수지가 만들어져 들판의 농경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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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과거 낙동강의 수로(水路)가 경상도 지역의 중요한 교통로 역할을 할 때 상주~선산 간 교통의 요충지였다. 낙동강 강변의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고 있어 과거 선산과 상주를 왕래하는 보부상들이 땀을 식히고 갔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당시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최씨, 김씨, 임씨 세분을 모신 삼열사(三烈祠)가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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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태봉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고려 정종 때 마을을 개척하였다 하며 득익사가 있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역대실록을 왜구를 피해 득익사에 옮겨다가 후에 충주 개천사로 옮겨졌다고 기록되어 있고 지금도 기와 조각 등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사면이 복우산으로 둘러싸인 산간마을이며, 득익마을은 북으로 상주시와 경계를 이루는 산세에 닿아 있다. 득익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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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옥관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송암을 중심으로 하여 북쪽을 상신기, 남쪽을 하신기라고 하는데, 소나무와 바위가 많고 이곳의 지형이 마치 소고삐를 매는 말뚝과 같다고 하여 쇠말뚝이라고 한다. 쇠말뚝은 복우산을 경계로 서쪽으로 상주시와 접하고, 동쪽으로 우리목고개를 지나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옥관리의 서쪽 끝에 위치한다. 인근 수태와 보리골 마을과 더불어 노봉산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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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초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100여 년 전 임씨가 와서 살기 시작하여 차차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초곡동에서 낙동강으로 흐르는 시내가 생겨 신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낙동강에 바로 인접한 마을이다. 낙동강변의 논과 산 밑의 밭에는 감나무가 많다. 초곡에서 동쪽으로 1㎞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이다. 제방 바깥의 경지가 주로 이용되며 마을을 통과하는 국도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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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옥관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옛날 어느 장수가 싸움에서 패하고 군위 관아에 머물러 있다가 서울로 가던 중 밤을 새워 이 곳에 당도하여 크게 통곡하니 그로 인해 울음고개란 뜻으로 우리목 또는 곡현(哭峴)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서쪽으로 복우산(508.7m)이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동서로 가로 놓인 옥관천이 장골천, 이실천과 합류한 후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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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조선 순조 때부터 마을에 낙동강 도선장(渡船場)이 있었으며 도방모리라는 곳이 있었다. 낙동강을 이용한 상주~선산 간의 수상교통 중심지로서 상인들이 소금 및 해산물 등을 배로 운반하여 이 곳에 적재해 놓았다가 팔고 대신 각지에서 소와 말을 사가던 교역장이었다. 사람이 붐비게 되자 주점이 많아지고 시장이 형성되어 장터라는 별명이 붙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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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대원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1447년(세종 29)에 개척하였으며 옛부터 대나무가 많았으며, 마을 앞에 큰 내가 흐르고 있었다고 하여 죽계라 하였다. 지금의 용포고개도 죽현(竹峴)이라 불렀다. 당초에는 죽원리에 속하였으나, 어감상 죽원리가 좋지 않다는 주민들의 진정에 따라 1990년 1월 6일 선산군 조례 1247호에 의거하여 대원리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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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대원리의 옛 지명. 조선 초기에 죽현원이 있었던 곳이라 한다. 후일 은처사라고 하는 선비가 벼슬을 그만 두고 대원에 살게 되었다. 감사나 사또가 취임하거나 지나치는 경우 또는 행인들이 지나다 날이 저물면 꼭 은처사의 집에서 숙식을 하였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들어와 처사의 집을 개축하려고 했다. 처사가 사망한 후에 집을 팔려고 계약을 했는데 그만 저절로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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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태봉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옛날 어느 임금이 왕자의 태(胎)를 묻은 곳이라 하여 태봉(胎峰)이라 했는데, 그 후 태봉(台峰)으로 바뀌었다. 고려시대 연안차씨(延安車氏)가 정착하였다고 하였으나 미상이다. 우중산의 지맥이 남북으로 향하여 뻗어내린 곳에 위치한다. 서쪽으로는 원통산과 물방골, 미륵골, 개밥골이 있고 북으로는 용치골과 사동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장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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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상림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관골에서 북서쪽으로 약 2㎞ 떨어져 있는 마을인데 230여 년 전에 손씨가 살기 시작했고, 마을 안에 까마귀 모양의 못이 하나 있어서 오지동(烏池洞)으로 부르다가 못을 수리하고 나서 못골로 불렀다. 매봉산(350.5m)을 비롯해 주변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마을 아래 남쪽 방향으로 목곡천이 흐르고 있다. 목곡천의 하천 양안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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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금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남실에서 보면 서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뒷산에 숯을 구웠던 굴이 있어 숯골이라 불렀다. 그 후 웅곡방(熊谷坊)을 장천면으로 개칭할 때 마을의 뒷산 이름을 따서 금화(錦華)라 부르기 시작했다. 신라시대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마을 앞산에 고려장의 흔적과 기와집터가 많았던 것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에는 상당히 번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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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하장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예전에 장천시장이 있던 곳이라고 하여 구장(舊場)이라 부른다. 시장이 지금의 상장리로 옮겨 갔다고 해서 아랫장터라고도 부르고 있다. 장천시장은 1923년 상장동으로 옮겨 갔다. 구장이 언제 형성되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으나 마을 앞을 흐르는 내의 길이가 길다 하여 장천이라고도 했다. 마을 뒤편 사마산이 산동면 임천리와 경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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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금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숯골 북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임진왜란 후에 생겼다. 박처사라는 사람이 마을 터가 좋다고 텃골로 불렀다고 한다. 텃골 남쪽에 있는 마을을 바깥마, 또는 항굼이라 부른다. 신라시대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 앞산에는 고려장의 흔적과 기와집터가 많았던 것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때는 상당히 번창했던 마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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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상장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덕제 또는 새곰실이라 불린다. 장천면으로 개칭되기 전의 이름인 웅곡방(熊谷坊)의 웅자에서 생긴 말로 지금의 하장1동 곰실보다 늦게 새로 생긴 마을이라서 새곰실로 부르게 되었다. 새곰실을 덕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을이 형성된 역사는 알지 못하나 마을 앞을 흐르는 내의 길이가 길다 하여 장천이라 하고 위쪽을 상장, 아래쪽을 하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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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여남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 앞에 보가 있어서 붓골, 복골, 복곳이라 하였고, 그 보에 흐르는 물이 너무나 맑아서 려수라는 이름도 있다. 면소재지에서 동쪽에 위치하며 남쪽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대부분 주민들이 논농사와 특수작물로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 동쪽은 명곡리와 경계이고, 서북쪽은 하장리 큰곰실과 접경을 이룬다. 여남리의 자연마을인 여토실 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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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묵어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웃머들의 동쪽인 금정산(錦井山) 기슭에 있는 마을로서 1923년 이전에는 허천이라고 불렀으나, 지금은 삼산이라 부른다. 허천으로 불리었을 당시에는 현재의 마을 위치보다 서쪽에 위치하였는데 그 곳에 도둑이 많아 현재의 마을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경북마을지』에서 금정산, 유악산, 금오산 등 3개의 기슭에 있는 마을이어서 삼산이라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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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하장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장천면의 중간을 관통하는 국도 25호선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상도라 한다. 그러나 현재 인근 주민들은 상도라는 명칭은 알지 못하고 큰곰실로만 알고 있다. 큰곰실은 지금의 장천면이 북웅곡방(北熊谷坊)이었을 당시 면소재지로 되어 있었으므로 곰실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지금 상장리의 새곰실이 생겨난 후부터 큰곰실이라 했다. 북웅곡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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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묵어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최인제가 이곳에 잠시 기거하면서 이 동네 앞들을 묵야라고 불렀다. 이후 이 들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을 머들이라 하였다. 또한 묵야에 동네가 둘 생겼는데 이를 구분하기 위해 위쪽에 있는 마을을 웃머들, 상평(上坪)이라고 하고 아랫마을을 아랫머들이라 부른다. 마을의 형성연도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유래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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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상장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옛날 마을 앞에 소가 낙동강 배에 올라 와서 배 타고 신선같이 놀고 있으므로 신선선자와 배다리의 다리교자를 따서 선교동이라고 하였다. 또한 약 200년 전 그 동네에 처음 살았던 파잠(巴岑)이라는 사람의 자의 호를 따서 파잠이라 한 것이 변음 되어 바자미 혹은 바지미라 한다. 북웅곡방 시절 장천리와 함께 선교동리로 하나의 동리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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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명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솔개가 날아가는 모양인 솔방재 아래에 있는 동네로 맑고 깨끗한 물이 많이 솟아나는 곳이어서 수명(水明)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또 천지개벽시 물을 담을 때 솔방우리만큼 남았다고 하여 붙여졌다고도 한다. 현재에도 수명마을에는 집집마다 겉물이 조금씩 나온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수명동과 부곡동(가매실)을 합쳐 수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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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여남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예전에 마을 뒤에 닥밭이 성하였다 하여 저전동(楮田洞)이라 부르고 지신동·저전리로도 통용되고 있다. 경상북도 선산군 장천면 여남동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88년에 동(洞)이 리(里)로 바뀔 때 여남동이 여남리가 되면서 선산군 장천면 여남리에 속하게 되었다. 그 후 1995년 1월 1일 구미시와 선산군 통합으로 구미시 장천면 여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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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오로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중평(中坪)의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설골·세골, 오로실, 장구미기·장고미기에서 내려오는 개울물이 서로 합해져서 내려가는 중간지점에 있다 하여 중화(中和)라고 부른다. 또 마을에 커다란 밭둑에 있고 뒷산이 절벽 같은 산이라서 ‘뚝절’로 부르다가 변음되어 ‘뚱절’로 부르기도 하고, 옛날 둔절이라는 절이 있었다 해서 둔절이라는 이름이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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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하장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섶밭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섶밭마·섶밭마을·신전동(薪田洞)이라고 하였으며, 국도 25호선 아래에 있으므로 하도동(下道洞)이라 불렀다. 지금은 주로 섶마라고 불린다. 1914년 이후 경상북도 선산군 장천면 하장동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88년 동이 리로 바뀌면서 장천면 하장리에 속하게 되었고, 1995년 1월 1일 구미시와 선산군...
해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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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의 형국(形局)이 소구시(소죽통의 경상북도 구미 지역 방언)와 같다 하여 구시골이라 불렀다. 또한 옹기를 구워 내던 마을이라 하여 점마 또는 점촌이라고도 부른다. 구시골은 송곡천(松谷川)의 지류인 소암천의 왼쪽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구시골 아래 계곡이 용수골이며,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해발 450m 부근에 도리사(桃李寺)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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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에 금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금산은 소상골과 어은골로 나누어져 있는데, 행정구역상 소상골은 금산1리에, 어은골은 금산2리에 편제되어 있다. 소상골은 마을에 소상강이 있다고 하여 소상곡이라 하다 점차 어휘가 변하여 소상골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뒷산에 철이 많이 난다고 하여 쇠산골로 칭하다 소상골로 변화했다는 설이 있는데, 지역 주민들은 후자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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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성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금석은 고려 태조 왕건의 왕비인 해량원부인(海良院夫人)이 태어난 곳이다. 예전에는 김싯골 또는 짐수골로 불렀다고 한다. 낙성리는 낙성1리와 낙성2리로 나누어져 있는데 금석은 낙성1리에 속해 있다. 금석은 미석산(彌石山, 168m)의 남동쪽에 펼쳐진 들의 구릉지 경사면에 위치해 있다. 미석산의 봉우리에서는 낙동강의 하도와 백사장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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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도문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산지(山地)를 따라 군위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며 임진왜란 때 뒷산에 성을 쌓아 전투한 곳이라 한다. 걸어서 두 지역을 왕래하던 시절 군위에서 북부지방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로 골짜기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하천이 흘러가는 남서 방향을 제외하면 마을 전체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낙동강으로 연결된 도곡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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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산양리에 있는 자연마을. 문헌을 통해 살펴보면 넘어골은 신라 487년(소지왕 9) 정부에서 역을 두었던 마을로서, 관의 물건이나 문서를 나르던 길목이었다. 마을 동편에 있는 마을이 연동(延東), 서쪽에 있는 마을이 연서(延西)라 불리고 있는데, 이 동쪽과 서쪽의 마을을 연결하는 고개를 ‘넘어골’ 혹은 ‘너무골’이라고도 하였다. 넘어골은 옛날에는 산내방(山內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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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호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해평현이 있을 때 관가의 큰 창고 60채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창고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옛날에는 태인경씨, 영양오씨 등 몇 가구가 살고 있었으며 임진왜란 이후에 번창한 마을이라 한다. 해평면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형도에는 대창걸로 표시되어 있다. 도문동에서 시작하여 낙동강에 직접 연결된 도문천(너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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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도문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옛날 보부상(褓負商)이 서울과 각 지방을 왕래할 때 주로 이 마을에서 쉬어 갔다. 이를 안 도적이 떼를 지어 이 곳을 자주 털었다는데서 도적을 조심하라는 의미에서 도보곡(盜保谷)이 도보골로 불리워지고 있다. 도문리는 해평면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320m~410m의 산봉우리들이 연결된 지형에 의해 군위군 소보면과 분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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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괴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조선 초 밀양인 박종원이 입향하여 고리실(古里室)이라 하는데 마을 동쪽에는 박씨들이 모여 살고 있어서 동촌이라 부르며, 마을 서쪽에는 강씨들이 모여 살면서 서촌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동촌(東村), 금곡(金谷), 서촌(西村)이 통합되어 괴곡동(槐谷洞)이 되었다. 낙동강 우측에 위치한 괴곡들의 중간 산자락에 자리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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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조선 고종 때 참봉을 지냈고 문장과 행실에 사표가 되어 크게 존경을 받던 소강 김후가 을사늑약 이후 일본에 항거하는 마음으로 이 곳에 와서 만력동이라 하고 뜻있는 선비와 함께 나라가 망함을 슬퍼하며 나라의 장래를 걱정했다고 한다. 만력은 중국의 연호로서 이 곳은 일본의 정치가 미치지 않는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만력동은 북으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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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무들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뒷산 줄기가 박을 심어서 덩굴이 뻗어가는 모양 같다고 박곡 또는 박실이라 지었다. 박곡마을은 월곡리 주변의 조명산과 연화봉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해평습지가 박곡마을 앞의 국도 25호선을 따라 낙동강 변에 위치하고 있다. 주민들은 마을 앞의 소폭의 도로를 거쳐 물달마을에서 면소재지로 이어지고,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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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조선시대 사기그릇을 만들어 낸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며 지금도 땅을 파면 깨어진 그릇이 많이 나오고 있다. 숭선성 아래에 있는 마을로 천주교도 박해 때 신자들이 이 곳에 피신하여 사기를 만들었다고 하며 그 후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은 해평면과 도개면의 경계를 이루는 태조산 또는 냉산이라 불리는 비교적 급경사지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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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괴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신천인 강인석이 입향하여 괴곡이라 칭하고 서촌에 기지를 잡아 강씨 세거지로 서촌이라 한다. 마을 동쪽에는 1330년대 허학사라는 분이 개척하였다고 하며 조선 초 밀양인 박종원이 입향하여 고리실이라고도 하는 동촌은 밀양박씨 세거지이다. 마을의 형성연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서촌과 동촌을 합하여 오래된 마을이라 해서 통칭 고리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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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안강인 경암 노경임이란 선비가 임진왜란 후 마을을 개척하였고 태조산 큰 바위 밑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숭암이라 칭하였다. 일명 송암이라고도 한다. 송암마을은 낙동강변을 따라 형성된 제방으로부터 북쪽으로 떨어져 있고 연화봉의 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농경지는 마을 주변의 산지쪽으로 논이 나타난다. 송곡리의 자연마을 가운데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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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도문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 앞에 신라 말 경 습결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오랜 세월을 지내오는 동안 물이 좋지 못하고 병이 발생하므로 조선 초기에 지금의 자리로 집단 이주하고 선비는 글을 배워야만 된다 하여 동명을 습문으로 개칭하였다. 마을의 북동쪽으로는 320여m 내외의 산이 있으나 남서쪽 방향에서는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제방이 길게 발달하여 깊숙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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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호리에 위치한 지명. 어르개는 남평문씨가 개척한 마을로서 고려 공민왕 때 목화를 전래시킨 문익점의 손자이며, 베틀을 제작한 문영(文英)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속칭 어리게[月浦]라 칭하기도 한다. 고려 공민왕 때 문익점이 목화 씨앗을 붓두껍에 숨겨와 목화를 재배하였고, 손자인 문래는 목화로 실을 뽑는 기계를 만들어 ‘문래’라 하였다. 문래의 동생 문영은 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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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1493년(성종 24) 용암 박운이 태어난 곳이다. 옛날 마을 안에 소류지가 있었는데 그 안에서 물고기가 숨어 살았다 하여 어은곡이라 불려졌다. 일설로는 구름이 덮여 있는 아늑한 산속마을이라 하여 어운곡, 어은골이라 불려진다고도 한다. 마을 앞 입구까지 제방이 형성되어 있고, 주변 산세는 비교적 완만하다. 마을의 경지는 주로 논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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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산양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 뒷산에 아산장씨 묘소가 있는데 풍수설에 호구혈(虎口穴)로 자손이 참배하면 범(호랑이)의 밥이 되며 생명을 잃는다고 하여 자손이 먼 곳에서 망배(望拜)만 한다. 그 이유는 묘소 안산이 창산(槍山)이라 창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범을 겨누니 자손은 범의 밥이 된다고 한다. 마을 앞 안산은 마을에서는 창산(唱山)이라 하여 주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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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산양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 뒷산에 아산장씨 묘소가 있는데 풍수설에 호구혈(虎口穴)로 자손이 참배하면 범(호랑이)의 밥이 되며 생명을 잃는다고 하여 자손이 먼 곳에서 망배(望拜)만 한다. 그 이유는 묘소 안산이 창산(槍山)이라 창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범을 겨누니 자손은 범의 밥이 된다고 한다. 마을 앞 안산은 마을에서는 창산(唱山)이라 하여 주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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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호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신라시대 파징현 때 관아가 있던 곳이라 해서 아동(衙洞)이라 불렀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 아동을 외동(外洞)으로 부르게 되었다. 서쪽에 낮은 미석산이 있으며, 북동쪽에 연못지가 있다. 금호2리에 속한 자연마을로 서남으로 낙성1동 압골과 경계하고, 서북은 금호1리와 경계하고 동북으로는 연못안과 경계를 한다. 주민은 13가구에 39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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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용수(用水)골, 일명 용소(龍沼)골이라도 한다. 옛날 이곳에 깊은 못이 있었는데 용(龍)이 살다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에서 생긴 이름이다. 북쪽에 냉산이 있고 그 산자락에 마을이 있다. 도리사 가는 길목에 있으며 남쪽에 용수골못이 있다. 주민은 8가구에 18명[남 8명, 여 10명]이 살고 있다. 조선시대 도사 벼슬을 지낸 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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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호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낙동강 유역의 개펄 가까이까지 배가 드나들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 말 목화를 보급한 문익점의 손자인 문영이 여기서 베틀을 처음 만들어 의생활에 공헌했는데 그 유적이 아직도 있다. 또한 문영의 후손으로 선조 때 성불했다는 지경대사가 태어난 곳이다. 지경대사의 사리 7과와 영정이 해인사에 봉안되어 있다. 남평문씨가 개척한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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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성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매 4일과 9일에 5일장이 열린다. 인근 마을은 물론이고, 선산군 일원과 칠곡군 인동면, 군위군 소보면, 그리고 의성군 일원의 주민들도 이용하였던 시장으로 번창하였다. 특히 우시장은 전국 단위의 큰 시장이었으나 지금은 도시화, 근대화에 밀려 우시장은 폐장되어 없고, 생활용품 시장도 겨우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그 명칭만은 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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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호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옛날부터 재궁[재실]이 있는 곳이라 해서 재궁골 또는 쟁골로 통하고 있다. 마을에 후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운 삼중대광문하시중선주백순충공(三重大匡門下侍中善州伯順忠公) 김선궁(金宣弓)의 묘소 및 재사신도비각(齋舍神道碑閣) 및 생육신(生六臣) 경은(耕隱) 이맹전(李孟專)의 묘소와 재사(齋舍)가 있어 재궁이라 이름 붙였다. 마을 형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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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옛날에는 이 곳까지 배가 드나들었다 하여 주평(舟坪)이라 한다. 낙동강의 연안이고 송곡천이 마을 옆을 빗겨 흐르고 있는 평야지대의 농촌마을이다. 전주이씨의 집성촌이다. 주민은 23가구에 47명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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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고려 태조가 냉산 중턱에 숭신산성을 쌓고 후백제 견훤과 싸울 때 이 곳에다가 7개의 창고를 짓고 군량미를 비축하였다. 지금도 터가 남아 있으며 이로 인해 칠창으로 부르게 되었다. 냉산의 산줄기가 에워싼 분지를 이루는 마을이다. 동남쪽에 칠창지라는 작은 저수지가 있다. 주민은 25가구에 64명이 살고 있다. 마을에는 옛 7창고가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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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1864년(고종 1) 고산자 김정호가 유명한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답사하던 중 이 곳에 이르러 산세를 보니 꼭 용마하도(龍馬河圖)의 그림과 같은 형상이라 하여 ‘하도봉’이라 하였다. 용마하도는 반드시 신구낙서(神龜洛書)의 그림이 있어야 격에 맞음으로 하도는 있는데 낙서가 없으니 동명을 낙서동이라 하였으며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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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자연마을. 우리말 이름 갓골의 의미는 마을의 가장자리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갓골의 한자 표기로 ‘관곡(冠谷)’이라 불리기도 한다. 갓골은 부곡동·봉곡동을 에워싸고 있는 다봉산 남쪽·동쪽 구릉이다. 해발고도 136m, 풍수지리적 개념으로 본다면 청룡에 해당하는 좌측 자락의 아래쪽 해발고도 60~80m 사이에 자리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구미천이 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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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원평동에 위치한 자연마을. 금오산 줄기인 황소봉[黃牛峰] 머리 뿔 아래에 있어 각산이라고 하였다. 각산을 각실, 혹은 저녁달이 황우봉에 걸려 아름답다 하여 월산(月山)이라고도 한다. 신라 소지왕 9년부터 관청의 물건이나 문서를 전달하던 제도가 있어 말 6필과 역사(驛使) 20명을 둔 역이 있던 곳이다. 북쪽으로 구미천이 흐르고, 금오산의 북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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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량동에 속하는 자연마을. 한자 개길의 음차속어인 듯하며, 마을에 길한 징조가 열릴 뜻으로도 풀이되나 확실한 어원은 알 수 없다. 조선 전기 정승 최청의 후손이 이 마을에 정착하여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다고 전한다. 접성산에서 내려오는 능선과 다봉산 능선이 자리잡고 있으며, 남쪽으로 봉곡천이 흐르고 있다. 현재는 옛 자연마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그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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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에 속하는 자연마을. 검성곡(劍城谷)은 곽재우가 왜적을 물리친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검소하게 사는 곳이라는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예전에 이곳에 금광이 있어서 금성곡(金城谷)으로도 불렸다고 하는데, 마을 사람들은 금이 많이 나왔던 곳이라고 하여 지금도 금성골이라고 부른다. 마을 앞에 뜨발등이라 불리는 작은 앞산이 있고, 동쪽은 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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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량동에 속하는 자연마을. 조선시대 선주부의 양곡보관 창고가 있던 곳이라고 하여 곳터[庫基]라고 부르게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군량을 많이 보관하였다고 한다. 북쪽으로 접성산의 능선에 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봉곡천이 흐르고 있다. 경상북도 구미시 도량동 개길의 서남쪽에 있다. 현재 창고가 있던 흔적은 찾을 수 없으나 ‘곳터길’이라는 도로명으로 남아 있으며, 그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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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구평동에 속하는 자연마을. 임진왜란 당시 진을 아홉 번 옮겨 가며 싸운 곳이라고 해서 구진벌(九陣伐)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거북의 등처럼 딱딱하고 거친 땅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또 밭으로 돌아간다는 귀전부리(歸田夫里)에서 나온 이름이라고도 한다. 구준벌, 귀전벌이라고도 한다. 구진벌은 천생산에서 남쪽으로 약 2㎞쯤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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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 정남쪽에 위치한 자연마을. 남산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은 조선 세종 때로 추측되고 있다. 인의동은 조선시대 인동부, 인동현의 중심지였으며 유학의 용어인 오상(五常), 즉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남산은 옥산이라고도 하는데, 인동장씨 남산파조가 조선 전기에 종가에서 분가하여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전하며 인동장씨 종택이 있다. 임진왜란 때 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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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공단동에 있던 자연마을.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면 뭉텅뭉텅 한 골짜기씩 하천으로 떨어져 나갔다고 하여 낙계라고 불렀다. 본래 경상북도 인동군 읍내면이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북삼면 오태동 일부를 병합한 낙계동이 북삼면에 통합되었으며, 1973년 7월 1일 구미읍에 편입되었다. 1978년 2월 15일 구미시로 승격되었고, 구미제1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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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공단동에 전해오는 옛 지명. 비신터 지역은 원래 과수 재배를 위주로 하는 농촌의 자연마을이었다. 그러나 구미의 산업단지 조성에 따라 신부동에서 공단동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부동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약 280여 년 전 하(河)씨가 처음 거주하면서 자연부락이 형성되었는데, 낙동강의 물줄기가 점차 방향이 바뀌어 변함에 따라 늪지대가 생겼다. 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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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광평동에 있던 자연마을. 마을 주위에 소나무가 많아서 다송이라고 불렀다. 400년 전 전주이씨가 이주해 살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이후 경주김씨와 나주나씨가 이주해 와 마을을 형성해 왔다. 작은 구릉지 지형으로 과거 산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현재는 마을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작은 구릉성 산지는 모두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도로를 이루고 있으며, 박정희체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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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에 있던 자연마을. 서울로 가던 선비가 길을 잃고 한 채의 집을 발견하여 방을 얻었다고 하여 덕이 있는 마을(방리), 덕방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남쪽으로 금오산, 북쪽으로 구미천이 흐른다. 남통동에 있던 마을로서 현재는 마을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가 없다. 마을이 있던 자리에 현재 원남초등학교와 금호청구타운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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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던 자연마을. 서울로 가는 길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도서(道西)라고 하였다는 설, 옛 한양으로 가는 길목인 이 곳에 주막이 있었는데, 주인의 이름이 박도서였기 때문에 도서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도세는 도서를 방언으로 불러서 변형되었다고 한다. 북쪽 천생산이 동서로 계속 연속하여 발달되어 있다. 서쪽으로는 공업단지를 지나 낙동강이 남북으로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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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신동에 속하는 자연마을. 경신년 산사태 이후 이주하여 생긴 마을인데 주위에 돌이 많은데서 유래하였다. 남쪽으로 유학산 능선에 닿아 있으며, 북쪽으로 학서지, 천생산과 마주보고 있다. 도토골에서 길 건너편 학서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신동 학서2길에 있는 마을로서 행정구역상 인동동에 편제되어 있다. 인동에서 칠곡 방향으로 국도 67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인동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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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공단동에 있던 자연마을. 금오산이 매화나무의 원줄기라면 이 마을은 끝가지에 속하여 매호꽃이 핀 형태 같다 하여 매화동이라고 불렀다 전한다. 낙동서원에서 여헌 장현광이 제자들에게 강습 중 강 건너편 밭(매호동)을 가리키며 저 곳에 마을을 이루고 살면 부촌이 되겠다고 하여 그로부터 차츰 모여들어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실제 쌀 천석 하는 일선(一善) 김씨의 거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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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구평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이 무지개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이라는 설과 천생산 아래 약수터에 무지개가 생기면 이 마을까지 뻗치므로 무지개라고 불렸다는 설이 있다. 북쪽으로 천생산의 능선이 뻗어 내려와 있고, 마을 입구 쪽으로 학서지라는 못이 있다. 학서지는 낚시터로 이용된다. 천생산산림욕장으로 가는 입구로 관광객 대상으로 길 양쪽으로 대규모 식당가가 발달되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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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계동에 있던 자연마을. 반월당 김종효가 이주하여 반월당 서당을 열어 젊은 선비들이 모여 들어와 문사가 숲을 이루었다고 하여 문림(文林)이라 불렀다고 한다. 문림동의 옛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구포동에서 옥계교를 건너 옥계동으로 들어가면 국도 67호선을 따라서 주유소와 차량정비소들이 있고, 주변엔 신축 중인 상가건물들이 많다. 단지 문림길이라는 도로명으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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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상모동에 있던 자연마을. 마을에 밤나무가 많아서 밤나무가 많은 마을, 밤마라고 불렀다고 한다. 밤마마을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으며, 서쪽으로 금오산과 접해 있는 완경사의 구릉지이다. 주변에는 박정희 대통령 생가가 있고, 상모교회, 상모고등학교가 있다. 현재 세양 청마루 아파트가 건설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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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송정동에 있었던 자연마을. 마을 뒷산에 잣나무가 울창하여 백정산(栢亭山)이라고 하였고 이에서 연유되어 백산(栢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현재 마을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다. 구미시청 후문 부근 샛별아파트, 벨라맨션, 대우로얄아파트가 있는 지역 부근으로 한 블록 모두 아파트가 건설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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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지산동에 속하는 자연마을. 고려 태조와 후백제 견훤의 마지막 격전지로 알려진 장소이다. 견훤이 선산에서 패하여 달아나자 아들 신검(神劍)이 왕위를 찬탈하고 견훤을 금산사에 가두었다. 견훤은 도망하여 왕건에게 의탁을 하였고 고려 태조 왕건이 신검의 군대를 이곳에서 물리쳤다. 고려 태조의 군사가 신검의 군사를 물리쳐서 막아내었다 해서 어검평야(禦劍平野)라고 하며, 신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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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던 마을. 조선시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이 마을에 은거한 이상일(李尙逸)과 만나던 날 밤에 남쪽 하늘에서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이 빛나는 것을 보고 성남(星南, 별남)이라 불렀다고 한다. 다봉산의 남쪽 자락에 위치하며 넓은 들이 있고 과거에는 성남지(별남지)라는 저수지가 있었다. 과거에는 작은 자연마을이었으나 구미시의 대규모 택지 개발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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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성 안에 있던 마을. 금오산성 안에 형성되었으며 한때 인구가 450명이 넘었으나 화전정리사업으로 인해 지금은 사라진 산성마을이다. 옛날 금오독진으로 3,500여 명의 병력이 주둔하였으며 주변에 민가가 있었다가 구한말 군의 해산으로 민가가 줄어 10여 호가 최근까지 있었으나 1977년 내무부 지시의 화전정리사업으로 인해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옛 자취를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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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구평동에 있던 마을. 어느 해인지 모르나 소의 전염병이 심하여 이 곳이 소의 집단 피난처가 되었는데 그만 소들이 죽고 말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소가 죽은 곳이란 의미이다. 구평동은 천생산과 봉두암산 사이의 저지대에 형성된 동네이다. 자연마을의 흔적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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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송정동에 있던 마을. 송정동의 자연마을 중 하나로서 도시화가 되는 과정에서 사라졌다. 옛 모습은 시 승격과 더불어 개발되어 찾아 볼 수 없으며 옛 속리원이 있었다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금오산의 동북 사면에 있는 작은 마을로서 현재 경부선과 경부고속국도가 지나고 있다. 과거 마을의 흔적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으나 마을 앞 다리 이름이 속리교이다. 지금의 구미시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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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형곡동에 있던 마을. 수락동(水落洞)은 물이 떨어지는 경관이 좋은 곳이란 연유에서 생긴 이름이다. 벽진(碧珍) 사람 아천(我泉) 이우준(李羽峻)이 상모에서 이사와서 후학 양성을 함으로써 선비들의 출입이 잦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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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형곡동에 전해오는 옛 지명. 형곡동은 신라시대 이후 형성된 유서 깊은 마을로 알려져 있다. 1744년 이곳에서 출생한 은곡(隱谷) 김진구(金辰久)는 1774년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그해 명경과 갑과에서 장원급제하였다. 그 후 병조좌랑에 임용되었으나 스스로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서 전원생활을 즐기다가 1786년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새뫼는 김진구가 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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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원평동에 속하는 자연마을. 이 마을의 일대가 온통 돌자갈밭이라 하여 암전이라고도 하고 각산 황소봉에서 굴러 내린 큰 바위 두 개 중 한 개는 경부선 철도 부설시 제거되고 나머지 한 개가 남아 있는데, 이로 인해 바위가 있는 밭이라 하여 암전이라고 한다. 바위가 마치 쇠죽통같이 생겨 죽바위라고 부르고 이 일대를 죽바위들이라고도 부른다. 돌밭이라는 의미이다. 남서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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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던 마을. 마을 앞으로 흐르던 시내가 이계천(飴溪川)인데 냇가에 수양버들이 줄지어 늘어져 있는 경관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항상 마르지 않고 맑게 흐르는 샘이 있다 하여 지은 이름이라 전한다. 조선시대까지 양원역(楊原驛)이 있던 자리였으나 1904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사라졌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와 『인동읍지(仁同邑誌)』의 역원조에 의하면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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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원남동에 속하는 자연마을. 오산천변(烏山川邊)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터[新基]라고도 불렸다. 오산은 산 전체가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기암절벽과 급경사가 많은 금오산도립공원 입구의 첫 마을로, 대성저수지가 인접해 있다. 과거 구미는 선산군 중심의 농업이 산업의 주축이었으나, 1970년대 초 정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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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비산동에 속하는 자연마을. 이 지역의 땅이 매우 붉고 차져서 일반 대나무도 그 색깔이 붉게 변했다 하여 자죽(紫竹), 즉 자지기라 불렀다. 또 마을 둘레에 오죽(烏竹)이 많아 마을 이름을 자죽이라 하였다가 자죽이가 변음하여 자지기로도 불렀다고도 한다. 자죽은 대나무의 일종으로 껍질은 얇은 막질이며 담색 바탕에 붉은 무늬가 있는 나무이다. 자지기가 속해 있는 비산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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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공단동에 있던 마을. 신늪의 뒷산 너머 기슭에 길쭉하게 이루어진 마을이라 하여 생긴 이름이다. 신부동의 자연마을이었으나 구미시 국가공단 부지에 편입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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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던 마을. 옛 구미시장 가는 길에 고개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장고개라 하기도 하였다가 고개가 길다 하여 장현(長峴)이라고 하였다 한다. 작은 고개마을이었으나 현재 택지 개발로 인해 전혀 과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으며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상가가 밀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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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기동에 속하는 자연마을. 긴 계곡 끝에 자리잡은 마을로 입구에 잡귀불침입(雜鬼不侵入)의 장승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곳은 경치가 아름답고 맑고 찬 샘물이 있어 선녀(仙女)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고 물을 길었다는 천선대(天仙臺)가 있고, 샘의 전체가 돌로 된 옹달샘으로 아무리 가물어도 물의 양은 변함이 없다고 전하며 지금도 약수로 유명하다. 대성저수지의 북서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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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부곡동에 속하는 자연마을. 일제강점기 때 경부선 철로 부설할 당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집들이 공사로 인해 한 곳으로 모여 형성된 마을로 들 한가운데 둥글게 위치하였다 해서 생긴 이름이라 한다. 또한 집들이 잔디처럼 모여 있다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도 전한다. 다봉산의 남쪽 자락에 있으며 현재 경구고등학교가 있는 곳이다. 마을 서쪽에 전지율지라는 작은 저수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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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구포동에 있던 마을. 큰 제실이 있던 곳이라 해서 제궁말이라 한다. 또 연일정씨가 사는 마을이라서 정실·정산이라고도 한다. 원래 정실에 연일정씨가 마을을 열고 살다가 11대조에 이 곳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1983년 포전동과 양계동을 통합하여 양포동으로 개칭할 때 양포동 관할의 구포동에 속하였다. 서쪽으로 낙동강, 북쪽으로 한내천이 흐르며 동쪽으로 국도 67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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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광평동에 속하는 자연마을. 약 300여 년 전 전주이씨가 터를 잡아 형성된 마을로 살구나무가 많아서 새봄마다 살구꽃이 아름답게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새로이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터라 부른다. 낙동강의 충적 평야 위에 세워진 작은 마을로서 경부고속국도 구미인터체인지가 있는 교통의 요지이다. 구미가 공업도시로서 급격한 변화를 겪었고 바로 옆에 공단이 들어섰음에...
정보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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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오로1리에 속하는 정보화마을. 옛 지명은 오을고개(五乙古介)이다.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르자 직제학 오로재(吾老齋) 김성미가 사위 이맹전과 함께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낙향한 뒤, ‘단종을 사모하며 나는 이곳에서 늙는다’는 말에서 오로(吾老)라 칭했다고 한다. 원래 낙동강 주변 넓은 모래밭에서 재배하는 무공해 찰쌀보리를 다량으로 재배하며 살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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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도개리, 다곡리, 신림리에 있는 행정안전부 지정 정보화사업마을. 2007년 2월 20일 농림부에 의해 전국 36개 농촌마을종합개발 대상지 중 한 곳으로 도개1리, 도개2리를 포함해 다곡1리, 다곡2리, 신림리 등이 선정되었으며, 특히 신라불교의 요람인 도개리는 구미시가 전통문화체험마을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마을이다. 아도화상이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