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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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陶窯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시대 | 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윤성준 |
[정의]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있는 질그릇이나 사기 그릇 또는 기와 따위를 굽는 가마가 있던 옛 터.
[개설]
광의의 요지(窯址)는 가마를 이용하여 토기·기와·철·숯·도기·옹기·자기 등을 생산하였던 유적을 말한다. 협의로는 도요지(陶窯址)로, 토기·도기·자기를 생산하였던 유적으로 한정할 수 있다. 진안 지역은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요업 생산이 활발했던 지역이다. 진안 지역 내에는 수많은 도요지가 분포하였는데 2013년 현재까지 진안군 내에서 조사된 요업 관련 유적은 88개소이며, 이 중 토기·도기·자기를 생산하였던 도요지의 수는 69개소이다.
[조사 경위]
진안군 도요지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는 1997년도 국립 전주 박물관에 의해 편찬된 『전북의 조선 시대 도요지』 조사 보고서이다. 이후 2007년에 제작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를 통해 진안군 내에 분포하는 도요지의 전체적인 양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2011년과 2012년도에 걸쳐 황금리 봉곡 도요지의 조사가 진행되었다. 그 밖에 1992년도에는 전북 지방 도요지를 연구하는 중에 진안군 도요지에 대한 연구가 있었고, 2011년도에는 진안 지역 내 청자 요지에 대한 연구도 있었다. 그리고 2013년 11월부터는 국립 군산 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 중평 도요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황금리 봉곡 도요지는 한국 농어촌 공사 무진장 지사에서 시행하는 저수지 둑 높임 사업으로 인한 구제 발굴 조사가 진행된 곳이다. 발굴 조사는 2011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 조선 시대 백자 가마 2기와 폐기 퇴적구 2기, 공방지가 확인되었다.
가마는 모두 지상식 등요이며, 상단부가 넓은 평면 형태이다. 각각 4개의 소성실과 연소실 1개를 갖추고 있으며 소성실 사이에는 불창을 두었다. 공방지는 난방 시설과 수비공, 점토 다짐, 물레축혈 등의 시설이 확인되었다. 폐기 퇴적구에서는 흑유 자기와 철화 백자류, 백자류 등이 출토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황금리 봉곡 도요지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중반의 유적으로 편년된다.
[현황]
진안군 내에서 확인된 요지는 2013년 기준으로 모두 88개소이며, 이 중 토기·도기·자기를 생산하였던 도요지는 69개소이다. 도요지의 지역별 분포를 보면 동향면에 1개소, 마령면에 2개소, 백운면에 6개소, 부귀면에 15개소, 상전면에 1개소, 성수면에 7개소, 안천면에 3개소, 용담면에 4개소, 정천면에 6개소, 주천면에 24개소이며 주로 부귀면과 주천면 일대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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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군 성수면 도통리 일대는 한반도 초기 청자 발생과 관련이 깊은 곳이다. 이곳은 한반도 초기 청자 도입 시기부터 12세기 초반까지의 가마 유적이 분포하고 있으며, 초기 청자 요지와 녹청자 요지가 확인된다. 특히 전축요에서 토축요로 이행되는 과정의 가마 유적이 있어 주목된다. 한편 2013년 11월부터 도통리 일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향후 한반도 초기 청자에 대한 새로운 자료 확보가 기대된다.
12세기 가마 유적은 용담면 송풍리 일대에 분포하고 있으며, 주변에서는 삼국 시대 토기 가마와 조선 시대 백자 가마가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삼국 시대의 토기 생산의 전통과 기술이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으로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시대 분청자 요지 유적은 백운면 반송리와 성수면 중길리 일대에 분포하는데, 이곳에서는 14세기 말 퇴락한 청자도 생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반송리는 14세기 말에서 17세기까지, 중길리는 14세기 말에서 16세기 초까지 운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 시대 백자 요지는 진안군 내에 전 지역에 골고루 분포하고 있어, 조선 후기까지 꾸준하게 도자 생산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이며, 주로 17세기에서 18세기의 도자 생산이 두드러진다.
그 밖에 마령면 덕천리에서 녹색의 시유 도기가 확인되며, 동향면 성산리·마령면 평지리·백운면 평장리·부귀면 신정리·안천면 삼락리·용담면 송풍리·주천면 신양리에서 옹기 요지가 분포한다. 와요지는 진안읍 단양리·부귀면 궁항리·용담면 와룡리·월계리·정천면 갈용리·모정리·주천면 용덕리에 분포하며, 탄요는 부귀면 황금리, 삼가마는 동향면 대량리·주천면 대불리에서 발견되었다. 이외에도 동향면 자산리에서 야철지가 확인된 바 있다.
[의의와 평가]
진안 지역은 우리나라 남부에서 교통로가 사방으로 발달한 지역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정치·경제·군사의 요충지였던 곳이라 평가할 수 있다. 진안 지역의 70% 이상이 산악 지대로 형성되어 있어 가마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땔감을 손쉽게 구할 수 있었고, 금강과 섬진강의 수계는 태토가 풍부하고, 물자의 수송이 수월하였다. 이러한 환경적 조건은 결국 조선 시대에 이르면 도자 문화의 꽃을 피우게 되는 기반이 된다. 한편 진안고원이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큰 호수였던 사실 역시 도요지와 관련이 깊다. 지금도 진안 지역 내에는 백토가 채굴되는 지역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진안 지역에서 조사된 도요지는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 수에 있어 월등히 앞선다. 특히 지형적으로 불리한 내륙 산간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삼국 시대부터 한반도 초기 청자를 만들고 조선 말에 이르기까지 도자 생산의 중심을 이룬 곳이다. 진안 지역의 도요지는 한국 초기 청자 발생에 있어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에 한국 도자사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학술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