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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 있는 산성. 가곡리 산성은 가곡리 가일마을 뒷산 정상부 해발고도 약 260m 지점에 위치한다. 이곳에서는 가곡리를 비롯해 풍산읍 소산리와 풍산평야 등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가일마을은 안동권씨(安東權氏) 집성촌으로 안동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마을이다. 산성의 형태는 봉우리의 8부 능선을 둘러싼 테뫼식이다. 돌로 쌓은 석성이며, 성벽은 내외협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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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두 기의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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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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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야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네 기의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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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간행된 안동 출신 이덕홍의 시문집.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 1541~1596)은 습독(習讀) 이현우(李賢佑)의 손자이자 증참판 이충량(李忠樑)의 아들이다. 형은 이복홍(李福弘)으로, 안동 예안에서 살았다. 1660년(현종 7) 외증손 김만휴(金萬烋)가 간행한 뒤 1754년, 1766년에 중간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도서 등에 소장되어 있다. 저본은 176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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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자품리 광흥사에서 소장하고 있던 고려 후기 『묘법연화경』. 『취지금니묘법연화경(翠紙金泥妙法蓮華經)』은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는 『묘법연화경』으로, 청색 종이에 금색 글씨로 옮겨 쓴 것이다. 고려 후기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권3과 권4, 2책이 남아 있다. 원래는 광흥사에서 소장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국립경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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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경오(敬五), 호는 도은(陶隱). 예조참판 강징(姜澂)의 현손, 사간원정언 강억(姜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홍문관응교를 지낸 강덕서(姜德瑞), 아버지는 의금부도사 강윤조(姜胤祖),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 조숙(趙璹)의 딸, 처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참봉 홍남욱(洪南勖)의 딸이다. 형이 잠은(潛隱) 강흡(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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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성흥(聖興), 호는 송간(松澗). 잠은(潛隱) 강흡(姜恰)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강속(姜梀),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 이세흡(李世翕)의 딸, 처는 안동권씨(安東權氏) 권휴(權 玉+休)의 딸이다. 아들로 강석중(姜碩重)과 강복중(姜復重)이 있으며 딸은 이만상(李晩常)에게 시집갔다. 강기환(姜基煥)은 경상도 예안현(禮安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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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하(擎厦), 호는 송서(松西).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충렬공(忠烈公) 강위빙(姜渭聘)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강색(姜����),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홍가신(洪可臣)의 후예인 처사 홍빈(洪儐)의 딸이다. 강운(姜橒)은 안동부(安東府) 춘양현(春陽縣) 법전리(法田里: 현 경상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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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구지(久之), 호는 입재(立齋). 아버지는 강우(姜鄅),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 이세준(李世俊)의 딸이다. 강재항은 안동부(安東府) 춘양현(春陽縣) 법전리(法田里: 현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법전리)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십구사략(十九史略)』을 배우는데, 10여 장만을 보고도 그 뜻을 알았다 한다. 처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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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권만의 시문집. 강좌(江左) 권만(權萬, 1688~1749)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1800년(정조 24) 증손인 권신도(權信度)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도서관과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저본은 성균관대학교 소장본이다. 10권 5책의 목활자본으로 표제는 강좌선생문집(江左先生文集)이다. 행자(行字)는 10행 2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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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자진(子鎭), 호는 성건재(省愆齋). 할아버지는 의금부도사 강윤조(姜胤祖), 아버지는 강각(姜恪),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참봉 홍남욱(洪南勖)의 딸이다. 할아버지 때부터 병자호란을 피해 당시 안동부(安東府) 춘양현(春陽縣)에 살았다. 강찬은 안동부 춘양현 법전리(현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법전리)에서 태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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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광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류홍원의 거문고[玄琴]와 악보집. 강포 류홍원은 조선 숙종 때 양양군수와 순천부사를 지낸 함벽당(涵碧堂) 류경시(柳敬詩, 1666~1737)의 손자로 본관은 전주이다. 거문고(현금) 후면의 기록에 따르면 낙산사 이화정(梨花亭)에 서 있던 오동나무를 얻어 1726년 거문고를 만들었다. 거문고의 뒷면 밤나무 판에는 류홍원의 시가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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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진주(晉州). 초명은 강세환(姜世煥), 자는 중순(仲順), 호는 해은(海隱)·법은(法隱). 아버지는 강식(姜植),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 이중연(李重延)의 딸이다. 강필효는 경상도 안동부(安東府)에서 태어났다. 윤증(尹拯)의 제자인 강찬(姜酇)과 윤광소(尹光紹)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00년(정조 24) 집 동쪽에 창주(滄洲) 경의재(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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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정오(正吾), 호는 잠은(潛隱)·이오당(二吾堂)·잠노(潛老). 할아버지는 홍문관응교를 지낸 강덕서(姜德瑞), 아버지는 의금부도사 강윤조(姜胤祖),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 조숙(趙璹)의 딸이다. 동생이 도은(陶隱) 강각(姜恪)이다. 강흡은 한양(漢陽)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김영남으로부터 『사략(史略)』을 배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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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무신. 본관은 신천(信川). 자는 원명(原明), 호는 함경당(涵鏡堂). 아버지는 충순위전력부위(忠順衛展力副尉)를 지낸 강귀형(康貴亨)이다. 아버지 대에 안동부(安東府) 가야곡(佳野谷: 현 안동시 서후면 광평리)에 정착했다. 강희철은 안동부 가야곡에서 태어났다. 명종조에 내금위어모장군·내금위절충장군을 거쳤으며 훗날 무직으로 당상관에 올랐다. 『영가지(永嘉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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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있는 삼국시대 포곡식 산성. 개목산성(開目山城)을 처음 사용한 시기는 주변에서 출토되는 토기편으로 보아 삼국시대로 추정된다. 그러나 『영가지(永嘉誌)』「고적조(古蹟條)」의 “개목산성은 부(府)의 서쪽 30리에 있는 개목사(開目寺) 뒤에 있다. 지금은 옛 터만 남아 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17세기 초부터는 산성으로의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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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3년에 간행된 경상북도 안동 출신 류운룡의 시문집.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1539~1601)은 류성룡의 형이며 이황의 문인이다. 1572년(선조 5) 음보로 전함사별좌가 된 다음 의금부도사, 내자시주부, 인동현감, 한성부판관 등을 지냈다. 1743년(영조 19) 6세손 류영민(柳永民)이 편집, 간행하였다. 저본은 안동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다. 8권 4책의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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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3년 간행된 조선 중기 문신 장흥효의 문집. 안동이 본관인 장흥효는 김성일(金誠一, 1593~1658),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경광서원(鏡光書院)에 제향되었다. 역학(易學)에 조예가 깊었다. 이현일·이휘일 등의 제자를 길러냄으로써 이재(李栽)·이상정(李象靖)·류치명(柳致明)·김흥락(金興洛)으로 이어지는 학풍을 만들었다. 『경당집』 원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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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년 간행된 조선 중기 안동 출신 유학자 이황의 사서삼경(四書三經)의 주석 및 해설서. 『경서석의(經書釋義)』에 들어 있는 금응훈(琴應壎, 1540~1616)의 발문에 의하면, 이 책은 본래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이 여러 학자들의 훈석을 모아 변론한 것과 제자들의 문변을 연구하여 기록해 둔 것이라고 한다. 일찍이 이황의 생전에는 간행되지 않아서 문인들이 이를 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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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암각서. 광덕리 부용대와 하회마을 사이로 흐르는 낙동강 가운데에 큰 바위가 누운 듯이 있어서 ‘배를 매어 두기 좋다’ 하여 ‘계강암(繫舡巖)’이라 새겼다. 계강암은 풍천면 광덕리 부용대와 하회마을 사이를 흐르는 낙동강에서 부용대 쪽으로 치우친 돌출된 바위에 새겨져 있다. 바윗면을 가로 31㎝, 세로 68㎝ 정도로 다듬고, 글자는 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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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계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계곡리 고인돌은 예안면 계곡리 계일마을의 건너편에 있었다. 현재는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었으며, 안동호 수면이 낮아질 때에만 노출되는 상태이다. 암석은 연질이며, 수침으로 인하여 대부분 훼손되고 뚜껑돌의 일부만이 남아 있다. 모두 30여개의 성혈이 있다고 한다. 계곡리 고인돌은 안동시 예안면 계곡리 계일마을 건너편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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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 간행된 조선 중기 안동 출신 유학자 이황의 『역학계몽』 주해서. 이황(李滉, 1501~1570)은 20세 이후로 주역에 잠심하였는데, 『계몽전의(啓蒙傳疑)』는 주자(朱子, 1130~1200)의 저작인 『역학계몽(易學啓蒙)』에 대한 주해서로서, 이황이 57세인 1557년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목판으로 발간된 것은 『퇴계문집』 초간본이 간행된 때인 1600년으로, 안동 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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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 문신 김령이 39년 동안 쓴 일기. 김령(金坽, 1577~1641)은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알려진 김부륜(金富倫, 1531~1598)의 아들이다. 안동 예안에 세거한 사족 출신으로 1612년(광해군 4)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하였으나, 이이첨 등 대북파의 난정을 보고 벼슬을 단념하고 1616년 낙향하여 고향에 은거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뒤에 다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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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2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김령의 시문집. 김령(金坽, 1577~1641)의 본관은 광산(光山)으로 호는 계암(溪巖)이다. 광산김씨 예안 입향조 김효노(金孝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유(金綏)이고, 아버지는 현감 김부륜(金富倫)이며, 어머니는 평산신씨로 부호군 신수민(申壽民)의 딸이다. 1771년(영조 47) 가을에 예안 향중(鄕中) 선비들이 김령의 덕행을 경모(敬慕)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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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국가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의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대는 서양사에서 역사를 고대·중세·근대의 세 시기로 나눈 시대 구분을 한국사에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서양사의 전개와 한국사의 전개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고대라는 시대 구분은 학자들에 따라 이견이 있다. 다만 학교에서 쓰이는 한국사 교육용 교재나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한국사 개설서에서는 고대의 하한선을 통일신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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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문동에 있는 고려 건국 공신 삼태사의 비. 삼태사는 고려를 건국할 당시 왕건을 도왔던 안동의 공신들을 말하며, 김선평(金宣平)·권행(權幸)·장정필(張貞弼)을 가리킨다. 퇴계 이황은 삼태사(三太師)의 공을 「삼공신묘기(三功臣廟記)」를 써서 고증하였는데, 김희순(金羲淳)이 이를 살펴 1805년(순조 5) 비석을 세우고 비문을 지었다. 삼태사 묘정비(三太師 廟庭碑)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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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안동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시대 안동은 안동도독부, 안동도호부, 복주 등의 이름으로 불리면서 수령이 파견되던 주읍으로서 최고 14개의 속읍을 거느린 경상북도 북부 지방의 중심이었다. 통일신라시대의 안동은 고창군(古昌郡)으로 직녕현(直寧縣), 일계현(日谿縣), 고구현(高丘縣)의 3읍을 영현으로 거느렸다. 백두대간의 준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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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분포하고 있는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무덤. 고분(古墳)은 글자 그대로 옛무덤을 뜻하기도 하나 고고학에서는 특정 시기의 무덤 양식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고고학 자료로 볼 때 죽은 사람을 처리하는 장례법은 지역과 문화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무덤의 양식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고분은 매장 시설, 봉분, 묘역 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매장 시설은 흙구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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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5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이유장의 시문집. 이유장(李惟樟, 1625~1701)의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5대조 이훈(李薰)이 처음으로 풍산(豊山)에 입향하였다. 할아버지는 주부(主簿)를 지낸 이진(李珍)이고,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이정발(李廷發)이다. 어머니는 순천김씨(順天金氏)로, 대구부사 김윤안(金允安)의 딸이다. 손자 이재기(李載基) 등이 1706년(숙종 32)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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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고상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세 기의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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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에 있는 조선 후기 신도비. 고성이씨 신도비(固城李氏 神道碑)는 조선 태종 때 왕자의 난에서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으로 책록이 된 좌의정을 지낸 용헌(容軒) 이원(李原)의 여섯째아들인 이증(李增, 1419~1480)의 행장을 기록한 신도비이다. 이증은 영산현감을 지냈고,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고성이씨 신도비는 안동시 정상동 4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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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 남아 있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분묘로서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분포하고 있으며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 등 세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고인돌 중에는 분묘 이외에 제단의 기능을 가진 것도 있다는 설이 있어 모든 고인돌이 분묘인지는 현재 확인할 수 없다. 탁자식 고인돌은 주로 한강 이북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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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안동 지역에서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 사이에 일어난 전투. 후삼국시대는 한반도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이 일진일퇴의 격전을 벌이는 시기였다. 고려와 후백제의 전투는 신라의 외곽인 공산을 비롯하여 고창(현 안동)과 강주(현 진주) 등 경상도의 낙동강 서부 지역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927년(태조 10) 공산 지역에서 진행된 전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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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1년 12월 홍건적의 침입 때 공민왕이 경상북도 안동으로 피난한 사건. 원명 교체의 격변기인 고려 후기에는 북로남왜(北虜南倭)로 불릴 만큼 홍건적과 왜구가 창궐하였다. 홍건적은 원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구성된 반란군으로 공민왕 즉위 무렵에 조직되었다. 만주로 진출하여 랴오양[遼陽]을 점령하였다가 원나라 군대에게 쫓기게 된 홍건적은 퇴로(退路)를 한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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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에 소장되어 있는 광산김씨 예안파 관련 고문서. 광산김씨는 광주의 토성(土姓) 가운데 제일의 족세(族勢)를 자랑하는 가문으로, 고려 후기에 중앙의 관료로 진출하여 정당문학(政堂文學) 김련(金璉), 찬성사(贊成事) 김사원(金士元), 정당문학 김진(金稹) 등과 같은 재상들을 배출하였다. 광산김씨가 여말선초에 안동으로 낙향하게 된 하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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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에 소장되어 있는 고서. 안동시 예안면의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에 소장되어 있는 전적이다. 현재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에는 조선왕조 전기 이래의 각종 전적 3,000여 점이 보관되어 있다. 이 가운데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13종 61책으로, 1990년 3월 2일 보물 제1019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산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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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에 있는 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고분군.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 산56-2번지 일대이다. 안동에서 국도 5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약 9㎞ 떨어진 미천 서쪽과 닿아 있는 야산 지대이다. 유구들은 주로 밭으로 개간된 펑퍼짐한 야산의 남쪽 단애면에 치우쳐서 분포되어 있었는데 당시 주로 남쪽에 무덤을 조성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의 유구가 개간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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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광평리에 있는 봉수 터. 『문화유적총람』과 『안동지역전통문화유적보존개발계획』에 “광평리 봉수지(廣坪里 烽燧址)는 고려시대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하여 안동으로 몽진을 왔을 당시, 개목산성(開目山城)에 피신하고 있을 때 만들어졌다. 당시 지방 주민이 성 밖인 이곳 광평리에서 지키고 있다가 적이 나타나면 알리던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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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경서(景瑞), 호는 백담(栢潭). 삼한삼중대광검교대장군(三韓三重大匡檢校大將軍) 구존유(具存裕)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구중련(具仲連), 아버지는 구겸(具謙),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 권회(權檜)의 딸이며, 처는 함창김씨(咸昌金氏)이다. 구봉령은 안동부(安東府) 동면(東面) 모산동(茅山洞)에서 태어났다. 7세에 모친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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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김낙행의 시문집. 구사당(九思堂) 김낙행(金樂行, 1708~1766)은 일찍부터 밀암(密庵) 이재(李栽)의 문하에서 『근사록(近思錄)』과 『심경(心經)』 등을 깊이 연구하면서 평생을 초야에서 학문 연마와 후진 양성으로 보냈다. 1801년에 종제 김도행(金道行)이 주체가 되어 『제산집』을 간행하고, 또 그동안 정리하여 교정한 본을 가지고 별집을 제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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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운곡리 국망봉에 있는 암각서. 온혜리 진성이씨(眞城李氏) 집성촌의 입향조인 노송정(老松亭) 이계양(李繼陽, 1488~1524)이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후 벼슬을 버리고 은거한 후에 도산면 운곡리 국망봉 정상부에 글자를 새겼다. 국망봉 정상부에는 세 개의 바위가 앞뒤로 나란히 있는데, 앞쪽에서 뒤쪽으로 가면서 ‘국(國)’, ‘망(望)’, ‘봉(峯)’이란 글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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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김종직(金宗直)의 제자로 무오사화 때 김일손(金馹孫)과 함께 죽임을 당한 조선 전기 안동 지역의 대표적인 사림이며 문인이다. 사림 성장기에 권주(權柱), 권달수(權達手), 이주(李胄) 등과 함께 안동 지역 사림파의 의리 정신을 조정에서 떨쳤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군요(君饒)·자범(子汎), 호는 치헌(癡軒). 권집지(權執智)의 증손이다. 할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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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인보(仁甫), 호는 진봉(震峰). 아버지는 권대기(權大器), 어머니는 곡강배씨(曲江裵氏)이다. 형은 권우(權宇)이다. 권굉은 안동부(安東府) 와룡면(臥龍面) 이계리(伊溪里, 현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이상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형이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학덕이 높았다. 이에 어려서부터 부형의 가르침을 받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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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방숙(方叔), 호는 병곡(屛谷).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권징(權憕), 어머니는 풍산류씨(豊山柳氏)로 현감 류원지(柳元之)의 딸, 처는 재령이씨(載寧李氏)로 이현일(李玄逸)의 손녀이다. 권구는 1672년(현종 13) 안동 지곡리에서 출생하였다. 이현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동문 권두경(權斗經), 이재(李栽) 등과 교유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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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립(士立), 호는 용만(龍巒). 할아버지는 권미수(權眉壽), 아버지는 권몽두(權夢斗),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로 충순위(忠順尉) 남한립(南漢粒)의 딸, 처는 진주하씨(晋州河氏)로 하연(河漣)의 딸이다. 권기(權紀)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에서 태어났다. 열 살 무렵 광흥사(廣興寺)에 가서 강학을 하였고,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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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수(景受), 호는 인재(忍齋). 아버지는 권엽(權燁),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로 장사랑(將仕郞) 장양필(張良弼)의 딸이며, 진성이씨(眞城李氏), 능성구씨(綾城具氏), 흥해배씨(興海裵氏)를 처로 두었다. 아들로 왕자사부(王子師傅) 권우(權宇), 영릉참봉(英陵參奉) 권굉(權宏), 생원 권성(權宬), 장릉참봉(章陵參奉)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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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종오(宗五)이다. 1859년(철종 10)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서 출생하였다. 안동 향리 출신인 권대일은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소식이 안동에 전해지자 양아버지의 상중임에도 불구하고, “나라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차마 원수의 적과 함께 살 수 없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지금 연로하시지만 다행히도 두 형님이 계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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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윤재(潤哉), 호는 포헌(逋軒). 순릉참봉(順陵參奉)에 제수된 매호(梅湖) 권행가(權行可)의 현손이며 권중정(權中正)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권명시(權命時), 아버지는 권진원(權震元), 어머니는 예안김씨(禮安金氏)로 통덕랑 김종발(金宗渤)의 딸이다. 권덕수의 집안은 권덕수의 5대조인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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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휴(子休), 호는 석정(石亭). 아버지는 의정부좌찬성 충재(冲齋) 권벌(權橃), 어머니는 화순최씨(和順崔氏)로 직장(直長) 최세연(崔世演)의 딸이다. 형은 권동보(權東輔)이다. 권동미는 안동부(安東府) 춘양현(春陽縣) 유곡리(酉谷里, 현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퇴계(退溪) 이황(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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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진경(震卿), 호는 청암(靑巖). 횡성현감을 역임한 권계경(權啓經)의 현손이며 부호군 권곤(權琨)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성균생원 권사빈(權士彬), 아버지는 우찬성 충정공(忠定公) 권벌(權橃), 어머니는 화순최씨(和順崔氏)로 직장(直長) 최세연(崔世演)의 딸, 처는 밀양박씨(密陽朴氏) 박문완(朴文琬)의 딸이다. 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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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권두경은 18세기 안동 지역 명문가의 후예로 문장이 뛰어났고, 이현일(李玄逸)의 제자로 퇴계학을 집대성한 문인 학자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천장(天章), 호는 창설재(蒼雪齋). 충정공(忠定公) 권벌(權橃)의 5세손이다. 할아버지는 군자감정 권석충(權碩忠), 아버지는 권유(權濡), 어머니는 예안김씨(禮安金氏) 김견(金鋻)의 딸, 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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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숙장(叔章), 호는 청사(晴沙). 충정공(忠定公) 권벌(權橃)의 5세손이다. 할아버지는 군자감정 권석충(權碩忠), 아버지는 권유(權濡), 어머니는 예안김씨(禮安金氏)로 김견(金鋻)의 딸이다. 형이 권두경(權斗經)이다. 권두기는 안동부(安東府) 춘양현(春陽縣) 유곡리(酉谷里, 현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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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춘경(春卿), 호는 하당(荷塘)·설창(雪窓). 충정공(忠定公) 권벌(權橃)의 5세손이다. 외할아버지는 이백명(李伯明), 아버지는 권목(權霂), 처는 창녕성씨(昌寧成氏) 성석하(成錫夏)의 딸이다. 권두인은 안동부(安東府) 춘양현(春陽縣) 유곡리(酉谷里, 현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서 태어났다. 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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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일보(一甫), 호는 강좌(江左). 충정공(忠定公) 권벌(權橃)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권두굉(權斗紘)이다. 권만은 안동부(安東府) 춘양현(春陽縣) 유곡리(酉谷里, 현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서 태어났으며 권두경(權斗經)과 이재(李栽)의 가르침을 받았다. 1721년(경종 1) 사마시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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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연(子淵), 호는 가재(可齋). 할아버지는 병곡(屛谷) 권구(權榘), 어머니는 풍산류씨(豊山柳氏) 류성룡의 후손이다. 권명우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서 태어났다. 3~4세에 이미 글을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나 사장(詞章)에 힘쓰지 않고 ‘주충신(主忠信: 진실과 믿음을 중심으로 함)’을 신조로 도학(道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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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계주(季周), 호는 학림(鶴林). 아버지는 권도(權濤), 어머니는 의인(宜人) 예안김씨(禮安金氏)로 김원열(金元烈)의 딸이다. 권방[1740~1808]은 12세 무렵에 「토서설(土鼠說)」, 「제익수인문(祭溺水人文)」을 지어 총명함과 글재주를 뽐내어 주위의 사랑과 기대를 받았다.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문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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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중종조 조광조(趙光祖)·김정국(金正國) 등 기호사림파가 중심이 되어 추진한 개혁 정치에 안동 사림파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으며, 사림의 도학정치를 주장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허(仲虛), 호는 충재(冲齋)·훤정(萱亭)·송정(松亭). 아버지는 성균생원 권사빈(權士彬), 어머니는 주부 윤당(尹塘)의 딸, 처는 화순최씨(和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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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회(景晦), 호는 약재(約齋). 할아버지는 권태형(權泰衡), 아버지는 권세해(權世楷), 어머니는 전주류씨(全州柳氏) 류득시(柳得時)의 딸이다. 권병은 권구(權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63년(영조 39)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承文院權知副正字)에 올랐으나 1772년 여름 병이 악화되어 사직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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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국형(國衡), 호는 석오(石塢). 아버지는 권교영(權敎永), 양부는 권조영(權祚永)이다. 권병섭은 1854년(철종 5) 안동부 임하리(현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서 태어났다. 7세에 길헌(吉軒) 김진명(金鎭明)의 문하에 들어갔으며, 그 후 외삼촌 김양진(金養鎭)의 문하와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문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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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계응(季凝), 호는 수곡(樹谷). 권단(權摶)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권징(權憕), 아버지는 병곡(屛谷) 권구(權榘), 어머니는 재령이씨(載寧李氏) 이의(李檥)의 딸, 처는 순흥안씨(順興安氏) 안명준(安命駿)의 딸이다. 형으로 권진(權縉)과 권집(權緝)이 있다. 권보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서 태어났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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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덕보(德甫), 호는 죽림(竹林). 아버지는 권관(權寬)이다. 권산해는 1440년(세종 22)에 천거되어 녹사, 주부가 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1454년(단종 2)에 처음으로 종부시첨정(宗簿寺僉正)이 되었으나 1455년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인 단종(端宗)의 왕위를 빼앗자 울분을 못 이겨 사직하였다. 이후 세조가 조정에 나올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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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수(子守), 호는 동암(東巖). 권기수(權期壽)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권인(權寅), 아버지는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 권호신(權虎臣),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로 선무랑 박우(朴遇)의 딸, 처는 황언주(黃彦柱)의 딸이다. 권성오는 영주 도지촌(道知村)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문장에 뛰어났다.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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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조원(祖源), 호는 담와(澹窩) 혹은 성대(星臺)이다. 1836년(헌종 2) 지금의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서 출생하여 1899년(고종 36) 사망하였다. 권세연은 1895년 말에 거의(擧義)한 안동의진(安東義陣)의 1대 대장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1895년 말부터 1896년 초에 걸쳐 의병이 전국적으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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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가기(可器), 호는 이재(頤齋). 할아버지는 간원공(諫院公) 권문도(權文度), 아버지는 소헌공(疏軒公) 권재륜(權載綸),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 이대순(李大淳)의 딸이다. 양할아버지는 권동도(權同度), 양부는 권재덕(權載德)이다. 본래 양부 권재덕과 양모 의성김씨(義城金氏) 사이에는 권계하(權啓夏)라는 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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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신(景信), 호는 마애(磨厓). 권거약(權居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권자겸(權自謙), 아버지는 권철경(權哲經), 어머니는 황윤경(黃允卿)의 딸이다. 권예는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으며 문장에 능하였다. 1516년(중종 11)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같은 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에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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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덕(景德), 호는 소허재(素虛齋). 권해도(權海度)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권재구(權載球), 아버지는 권정하(權定夏), 어머니는 조언회(趙彦繪)의 딸, 처는 이종문(李宗文)의 딸이다. 권옥연은 1892년(고종 29)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시독관, 정언, 교리를 역임하였다. 1896년 의병장 김도화(金道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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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간행된 안동 출신 류빈의 문집. 권옹(倦翁) 류빈(柳贇, 1520~1591)은 류성룡(柳成龍)의 재종숙이다. 생원, 진사에 합격하기도 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일생 학문에만 전념하여 『권옹집(倦翁集)』 외에 『성리대전(性理大典)』·『시서역전대전(詩書易典大典)』·『대전절요(大全節要)』 등의 저서를 남겼다. 마곡서원(磨谷書院)에 배향되었다. 1902년 후손인 류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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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또 다른 이름은 권용길(權用吉)이다. 1858년(철종 9)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가송리에서 출생하였고 사망 연도는 알 수 없다.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자 국권 회복을 위한 의병항쟁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때 김치로(金致老) 의병장이 경상북도 안동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권용길은 이에 가담하여 의병 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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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순국자. 권용하는 자는 현필(賢弼), 호는 월곡(月谷)이며, 권춘란(權春蘭)의 후손으로, 1847년(헌종 12)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서 출생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이를 반대하는 의열·순국 투쟁이 잇달았다. 안동 지역에서도 김순흠·이만도·이중언·류도발·이현섭·권용하·김택진, 이명우 부부 등이 죽음으로 일제에 항거하였다. 권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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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정보(定甫), 호는 송소(松巢). 아버지는 인재(忍齋) 권대기(權大器),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훈도(訓導) 이제(李濟)의 딸이자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재종질이다. 권우는 안동부(安東府) 와룡면(臥龍面) 이계리(伊溪里, 현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이상리)에서 태어났다. 퇴계 이황과 월천(月川) 조목(趙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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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숙회(叔晦), 호는 옥봉(玉峯)·옥산야옹(玉山野翁). 부호군 권곤(權琨)의 현손이며 성균생원 권사빈(權士彬)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현감 권의(權檥), 아버지는 생원 권심행(權審行), 어머니는 절충장군 강희철(康希哲)의 딸, 처는 순흥안씨(順興安氏) 안림(安霖)의 딸이다. 권위는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도촌리에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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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무경(茂卿), 호는 호양자(湖陽子)·호양(湖陽). 아버지는 성균관학유를 지낸 권선(權宣)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권익창은 30대에 임진왜란을 겪었으며, 광해군 대를 거쳐 60대에 인조반정을 목도하며 정치사회적으로 혼란한 시기를 살았다. 어려서부터 종숙부인 권우(權宇)에게서 글을 배웠으며 김성일(金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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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송파(松坡). 시조 권행(權幸)의 15세손이며 권수홍(權守洪)의 5세손이다. 아버지는 권세진(權世珍)이다. 1374년(공민왕 23)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예의판서(禮儀判書)에 이르렀다. 조선 태조 때 한성좌윤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아니하고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교리 소야촌(所夜村)에 은둔하며 절의를 지켰다. 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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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여거(汝車), 호는 정산(晶山). 아버지는 권항도(權恒度)이다. 권재대는 1795년(정조 19) 참봉이 되었고, 선전관을 거쳐서 1851년(철종 2) 공조참판에 올랐다. 두 번이나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추숭을 상소했다가 호남으로 유배되었다. 1855년 삼사(三司)에서 합계하여 권재대, 류치명(柳致明), 이휘병(李彙炳)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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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원(聲遠), 호는 서포(西圃). 아버지는 권상도(權象度),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지평 김이상(金履常)의 딸이다. 아들은 권행하(權行夏), 손자는 권중연(權重淵)이다. 권재성은 일찌기 10세 무렵 족조(族祖)인 권사회(權思晦)에게 시문(詩文)을 배웠다. 권사회가 작문(作文)을 보고 “우리 문중에서 앞으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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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초자는 자강(子剛), 자는 자성(子誠), 호는 평암(平庵). 시호는 충헌(忠憲). 충정공(忠正公) 권벌(權橃)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권신(權藎), 어머니는 전주류씨(全州柳氏)로 생원 류이관(柳以觀)의 딸이다. 권정침은 젊어서 눌은(訥隱) 이광정(李光庭)과 입재(立齋) 강재항(姜再恒)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48세인 1757년(영조 33) 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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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혜민(惠民), 호는 송고(松皐). 아버지는 권회중(權晦中)이다. 권정하는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의 문인으로서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전심하여 학덕과 명성이 높았으며 인재 양성에 진력하였다. 부모상을 거듭 당하여 6년을 거상하였다. 만년에는 안동부 좌수(座首)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특히 구휼에 힘써 많은 사람들을 도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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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사문(士文), 호는 구산(龜山)이다. 1850년(철종 1)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명리에서 출생하여 의병에 참여할 당시에는 이웃 마을인 이개리 보현에 살았다. 1903년(고종 40) 세상을 떠났다. 권제녕은 1895년 12월에 일어난 안동의 전기 의병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권제녕은 퇴계학맥의 정맥을 이은 서산(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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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지경(支卿), 호는 화산(花山). 증조부는 권심(權深)이고, 할아버지는 권항(權恒), 아버지는 권이(權邇), 어머니는 송원창(宋元昌)의 딸이다. 아들이 광흥창봉사 권질(權礩)이다. 권주는 1474년(성종 5)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481년 친시문과(親試文科)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482년 승정원주서를 역임했고, 이후 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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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권주 종손가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화산(花山) 권주(1457~1505)는 1481년(성종 12) 문과에 합격한 후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공조정랑이 되었는데, 이때 중국어를 잘하여 요동에 질정관(質正官)으로 파견되기도 하였다. 후에 도승지,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는데,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평해로 귀양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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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의 권주 종손가에 소장되어 있는 문적. 권주 종손가 소장 문적은 조선의 문신인 화산(花山) 권주(權柱, 1457~1505)와 관련된 고문서이다. 권주의 본관은 안동, 자는 지경(支卿)이며, 어려서부터 경사(經史)에 능하였다고 한다. 1474년(성종 5) 진사시, 1481년에는 친시(親試) 갑과 2인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14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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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으로 유배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안(士安). 아버지는 예조참판 권주(權柱), 어머니는 지중추부사 이칙(李則)의 딸이다. 사위가 퇴계(退溪) 이황(李滉)이다. 권질은 1504년(연산군 10) 연산군의 실정을 폭로한 언문투서 사건이 일어나자 앞서 갑자사화에 화를 당한 자손들의 짓이라 하여 신국(訊鞫: 심문과 국문)을 당한 뒤 거제도로 유배되었다가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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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언회(彦晦), 호는 회곡(晦谷). 아버지는 권석충(權錫忠), 어머니는 함창김씨(咸昌金氏)로 김원석(金元碩)의 딸이다. 권춘란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에서 태어났다. 14세에 백담(柏潭) 구봉령(具鳳齡)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이후 퇴계(退溪) 이황(李滉)에게 나아가 배움을 청하였으며 류성룡(柳成龍), 김성일(金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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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에 있는 고려 전기 권행의 묘. 권행(權幸)은 안동권씨의 시조(始祖)로, 김선평(金宣平)·장정필(張貞弼) 등과 함께 930년 안동의 병산(甁山, 현 와룡면 서지리)에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백제 견훤을 크게 격파하였다. 이에 왕건은 이들에게 태사(太師)의 벼슬을 내렸다. 현재도 세 사람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안동 태사묘(安東 太師廟)가 있다. 안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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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신도비. 권태사 신도비(權太師 神道碑)는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시조인 태사(太師) 권행(權幸)의 행적을 기록한 비이다. 권행은 후삼국시대에 고려와 후백제가 싸운 고창(古昌, 현 안동)전투에서 왕건을 도와 승리함으로써 공신에 책봉되었다. 본성은 김씨이었으나, 권씨를 사성(賜姓)받았으며 대상(大相)이라는 관계(官階)를 받기도 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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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우(士遇), 호는 매호(梅湖). 아버지는 증 참의(參議) 권선문(權善文), 어머니는 거제반씨(巨濟潘氏)로 참봉 반숙(潘淑)의 딸이다. 숙부 권호문(權好文)에게 입양되었다. 권행가는 1572년(선조 5)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그 뒤 김성일(金誠一), 권대기(權大器)의 문하에 나아가 수학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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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시중(時仲), 호는 아산(鵝山). 아버지는 권재우(權載祐),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김희발(金熙發)의 딸이다. 권재성(權載成)에게 입양되었다. 권행하는 류치명(柳致明)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평생을 문수산(文殊山) 아래에 띠집을 짓고 저술과 독서만 했으며 과거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특히 예(禮)에 밝아 『상변집요(常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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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장중(章仲), 호는 송암(松巖). 할아버지는 권숙균(權叔均), 아버지는 안주교수(安州敎授) 권륙(權稑),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조카딸이다. 권호문은 18세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1561년(명종 16)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33세에 모친상을 당하자 벼슬을 단념하고 청성산(靑城山) 아래 무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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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백무(伯武), 호는 도은(陶隱). 동생은 권준신(權俊臣)과 권언신(權彦臣)이다. 권호신은 참봉을 지냈으며,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를 가르쳤다. 문집으로 『도은집(陶隱集)』이 전한다. 묘소는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에 있다. 1676년(숙종 2) 현재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화천리에 있는 구만서원(龜灣書院)에 금인(琴軔), 남몽오(南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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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택보(宅甫), 호는 이우당(二愚堂). 할아버지는 권엽(權燁), 아버지는 권대기(權大器),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로 사인(士人) 장양필(張良弼)의 딸이다. 형으로 왕자사부(王子師傅) 권우(權宇), 영릉참봉(英陵參奉)을 역임한 원종공신(原從功臣) 권굉(權宏), 권성(權宬)이 있으며 동생은 권만(權 宀+勉)이다. 권환은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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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문중(文仲), 호는 감고당(感顧堂). 아버지는 권명형(權命逈)이다. 권희학은 1697년(숙종 23) 세자책봉주청사(世子冊封奏請使) 최석정(崔錫鼎)을 따라 청나라에 다녀와 교련관(敎鍊官)이 되었고, 3진(鎭)의 첨사(僉使) 등을 지냈다. 1728년(영조 4)에 금위영교련관(禁衛營敎鍊官)으로 도순무사(都巡撫使) 오명항(吳命恒)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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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년 간행된 조선 중기 문신 김해의 문집. 근시재 김해(金垓, 1555~1593)는 이황의 문인인 김부의(金富儀, 1525~1582)의 아들로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었다. 1588년에 사마시에, 1589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합격하였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이 일어나고, 사국(史局)에서 사초(史草)를 태운 사건에 연루되어 면직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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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언강(彦康), 호는 망월헌(望月軒). 아버지는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 어머니는 횡성조씨(橫城趙氏)로 조대춘(趙大春)의 딸이다. 부인은 두 명으로, 몽재(蒙齋) 이안도(李安道)의 딸과 혼인하여 2녀를 낳았으며 이후 태촌(泰村) 고상안(高尙顔)의 딸과 혼인하여 2남 3녀를 낳았다. 형은 월담(月潭) 금경(琴憬), 만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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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언각(彦覺), 호는 월담(月潭)이다. 아버지는 성재(惺齋) 금난수(蘭秀), 어머니는 횡성조씨(橫城趙氏) 조대춘(趙大春)의 딸이다. 동생이 만수재(晩修齋) 금업(琴𢢜), 망월헌(望月軒) 금개(琴愷)이다. 금경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에서 태어났으며 월천(月川) 조목(趙穆)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89년(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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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 김헌락이 편찬한 금계마을지. 김헌락(金獻洛, 1826~1877)이 『금계지(金溪誌)』를 편찬한 동기는 분명치 않다. 김헌락은 10대조인 학봉 김성일(金誠一) 이후 금계리에 세거해 온 사족 출신 선비이다. 금계리는 여말선초 이래로 많은 명현(名賢)을 배출한 곳으로, 따라서 의성김씨(義城金氏)들이 남긴 자취가 매우 넉넉한 곳이다. 『금계지』에는 그러한 고장에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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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문원(聞遠), 호는 성재(惺齋)·고산주인(孤山主人).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금헌(琴憲),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로 교수 남식(南軾)의 딸, 처는 횡성조씨(橫城趙氏)로 참판 조대춘(趙大春)의 딸이자 조목(趙穆)의 누이동생이다. 금난수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로부터 『소학(小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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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유생.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사임(士任), 호는 매헌(梅軒)·백율당(柏栗堂).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금원수(琴元壽), 어머니는 안동김씨(安東金氏)로 장령 김영수(金永銖)의 딸, 처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맏형 이잠(李潛)의 손녀이다. 금보는 26세 때인 1546년 증광시의 생원과에 합격하였다. 이황이 단양군수로 재임 중이었던 15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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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계흠(季欽), 호는 소무헌(素無軒). 금난수(琴蘭秀)의 8세손으로 증조부는 금형(琴瀅), 할아버지는 금주석(琴疇錫), 아버지는 금여옥(琴汝玉),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이다. 백부 금여직(琴汝稷)에게 입양되었다. 금서술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에서 태어났다.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제자인 이야순(李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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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금소리 고인돌 떼는 모두 4곳에 나뉘어 있다. 금소리 고인돌 떼1은 금소평야에 위치한다. 현재 외형상으로 제대로 확인되는 고인돌은 1기뿐으로, 계단식 논의 둑에 위치하고 있다. 금소리 고인돌 떼2는 금소리 입구 당지골에 골짜기를 따라 4기가 분포되어 있다. 금소리 고인돌 떼3은 마을 뒷산(쇗골)에 있다. 또한 고인돌이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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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 설치된 교통 및 통신기관. 금소역(琴召驛)은 안동부(安東府) 동쪽 30리(지금의 임하면 금소리) 임하현(臨河縣) 서쪽의 금소천(琴召川) 북안에 있다. 동남으로 송제역(松蹄驛)이 40리, 동으로 청송(靑松) 청운역(靑雲驛)이 60리에 있다. 이 역에는 대마 1필, 중마 1필, 복마 8필을 갖춰져 있고, 역리(驛吏) 285명과 노(奴) 66명,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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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계문(繼聞), 호는 매촌(梅村). 아버지는 금여옥(琴汝玉), 어머니는 예안김씨(禮安金氏)로 김홍명(金弘命)의 딸이다. 금시술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후계(後溪) 이이순(李頤淳)에게 수학하다가, 관례를 치르고는 면암(俛庵) 이우(李㙖)에게는 『중용(中庸)』을 수업받았으며, 광뢰(光瀨)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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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조선시대 암각서. 금양단은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이 강학하던 금양정사(錦陽精舍) 자리에 새긴 암각서이다. ‘금양’이란 금양정사를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이현일의 별칭으로도 사용되었는데, 이곳에서 이현일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 657명의 이름을 기록한 『금양급문록(錦陽及門錄)』이 전한다. 이현일은 퇴계학통을 계승하여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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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수재(晩修齋). 아버지는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 어머니는 횡성조씨(橫城趙氏) 조대춘(趙大春)의 딸, 처는 순흥안씨(順興安氏) 안각(安恪)의 딸이다. 중년에 율인(律人)의 동명(同名)을 피해 ‘금변(琴忭)’으로 이름을 고쳤다가 나중에 다시 처음의 이름으로 고쳤다. 형은 월담(月潭) 금경(琴憬),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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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배용길의 시문집. 금역당(琴易堂) 배용길(裵龍吉, 1556~1609)이 남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저자의 사후 220여 년이 지난 1855년(철종 6)에 후손 배선원(裵善源)·배선하(裵善河) 형제가 정리하고 종인(宗人) 배욱주(裵郁周)·배중현(裵重鉉)·배호주(裵鎬周)가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류형진(柳衡鎭)도 교정에 참여하였다. 이것이 초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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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2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김학배의 시문집. 1732년(영조 8) 김성탁(金聖鐸)의 교열을 거쳐 아들 김세용(金世鏞)이 편집, 간행하였다. 본서의 저본은 안동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다. 6권 2책의 목활자본으로 표제는 금옹선생문집(錦翁先生文集)이다. 행자(行字)는 10행 20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기는 가로 14.3㎝, 세로 19.7㎝이다. 어미는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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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협지(夾之), 호는 일휴당(日休堂). 아버지는 예안훈도(禮安訓導) 금재(琴榟)이다. 동생이 금응훈(琴應壎)이다. 금응협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서 태어났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은 일찍이 그의 자제들에게 “너희들이 소학(小學)의 모습을 보려면 저 금응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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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훈지(壎之), 호는 면진재(勉進齋). 아버지는 예안훈도(禮安訓導) 금재(琴榟)이다. 형이 금응협(琴應夾)이다. 금응훈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서 태어났다. 친형인 금응협과 함께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천거로 종묘서부봉사에 제수되었다. 금응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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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사행(士行), 호는 죽봉(竹峯). 아버지는 김필신(金弼臣), 어머니는 예안이씨(禮安李氏)로 통덕랑 이천표(李天標)의 딸이다. 김간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서 태어났으며, 고산(孤山) 이유장(李惟樟)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93년(숙종 19)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701년 김장생(金長生)을 문묘(文廟)에 배향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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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탁이(濯以), 호는 난곡(蘭谷). 약봉(藥峰) 김극일(金克一)의 6세손으로 청계(靑溪) 김진(金璡)의 7세손이다. 고조부는 김시온(金是榲), 증조부는 김방걸(金邦杰), 할아버지는 김원중(金遠重, 1658~1724), 아버지는 김필흠(金必欽),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중형(仲兄)인 이해(李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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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천행(天行), 호는 미촌(美村). 아버지는 김려신(金礪臣),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고조부 유연당(悠然堂) 김대현(金大賢)은 여덟 아들이 모두 소과(小科)에 합격하고 그 중 다섯 아들은 문과에 급제하여 인조가 ‘팔련오계지미(八蓮五桂之美)’라고 칭찬하고 이들이 살던 마을에 ‘오미동(五美洞)’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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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공립(公立), 호는 만회헌(晩悔軒). 김경한(金景漢)의 현손, 현감을 지낸 김택동(金宅東)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정언을 지낸 김희성(金熙成), 아버지는 서추(西樞) 김재인(金在仁),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당성부원군(唐城府院君)의 후손인 홍종해(洪宗海)의 딸이다. 김건수는 1830년(순조 30) 정시문과에 을과 1위로 급제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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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겸(景謙), 호는 구재(鳩齋). 증조부는 김극(金克), 할아버지는 좌찬성 김희맹(金希孟), 아버지는 김진(金震), 어머니는 전주류씨(全州柳氏)로 도헌(陶軒) 류우잠(柳友潛)의 딸이다. 아내는 두 명으로, 16세에 완산이씨(完山李氏)와 결혼하였다가, 이씨 사후인 44세에 다시 안동권씨(安東權氏)를 맞아들였다. 김계광은 안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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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취사(取斯), 호는 보백당(寶白堂). 김득우(金得雨)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김혁(金革), 아버지는 비안현감 김삼근(金三近), 어머니는 안동김씨(安東金氏)로 김전(金腆)의 딸이다. 김계행은 안동부 풍산현 불정촌(현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배움에 재질을 보였다. 5세 때부터 글공부를 시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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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자야(子野), 호는 귀와(龜窩). 아버지는 생원 김광헌(金光憲), 처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이의술(李宜荗)의 딸이다. 김굉은 17세 때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1773년(영조 49) 생원시에 1등으로 합격하고, 1777년(정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승문원정자, 성균관전적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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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백순(伯純), 호는 약봉(藥峯). 아버지는 청계(靑溪) 김진(金璡), 어머니는 여흥민씨(驪興閔氏)로 민세경(閔世卿)의 딸이다. 김진의 다섯 아들 중 장자로 당시 동생 김수일(金守一), 김명일(金明一), 김성일(金誠一), 김복일(金復一)과 함께 ‘김씨오룡(金氏五龍)’으로 불렸다. 김극일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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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성지(性之), 호는 오우당(五友堂). 아버지는 군자감주(軍資監主) 김안계(金安繼), 어머니는 월성이씨(月城李氏)로 이중립(李中立)의 딸이다. 김근은 나면서부터 총명하여 채 열다섯 살이 되기도 전에 경사(經史)를 섭렵하였다. 책을 읽을 때에는 한 번에 여러 행을 동시에 읽고 한 번 읽은 것은 곧 기억할 수 있었다고 한다. 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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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의병.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지숙(止叔), 호는 북애(北厓). 증조부는 광산김씨(光山金氏) 예안 입향조 생원 김효로(金孝盧), 할아버지는 김수(金綏), 아버지는 절도사를 지낸 김부인(金富仁), 어머니는 영천이씨(永川李氏)로 이현보(李賢輔)의 딸이, 처는 창원황씨(昌原黃氏)로 통사랑(通仕郞) 황익(黃釴)의 딸이다. 증조부 김효로부터 김기에 이르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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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문경(文卿), 호는 창균(蒼筠)·금산(金山). 증조부는 남대장령(南臺掌令)을 지낸 김영수(金永銖), 할아버지는 좌승지를 지낸 김영(金瑛), 아버지는 사포서별좌(司圃署別坐)를 지낸 김생락(金生洛), 처는 영천이씨(永川李氏)로 찰방을 지낸 벽오(碧梧) 이문량(李文樑)의 딸이다. 증조부 대부터 대대로 벼슬살이를 하여 김기보도 한양에서 태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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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義城). 초명은 김진행(金晉行), 자는 퇴보(退甫)·간부(艮夫), 호는 구사당(九思堂). 아버지는 교리 김성탁(金聖鐸), 어머니는 무안박씨(務安朴氏)로 통덕랑 박진상(朴震相)의 딸이다. 본래 호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사후에 지인(知人)들이 ‘안자실약허(顏子實若虛)’의 뜻을 취하여 허암(虛庵)이라 불렀다가, 서재에서 ‘구사당(九思堂)’이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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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成), 자는 중언(中彦), 호는 비서(賁西)이다. 만주에 들어가 백두산 기슭에 산다는 뜻에서 백하(白下)라는 별호(別號)를 사용하기도 했다. 1845년(헌종 11)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우파(愚坡) 김진린(金鎭麟)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김대락은 1845년 안동에서 세가 좋았던 천전(川前: 내앞) 마을에서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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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태수(泰叟), 호는 서계(西溪)·유산(酉山)·정와(訂窩). 아버지는 미산(眉山) 김창수(金昌壽),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형(權珩)의 딸이다. 큰아버지는 김복수(金復壽), 큰어머니는 재령이씨(載寧李氏) 이우열(李宇烈)의 딸로, 김대진은 큰아버지에게 입양되었다. 호는 지명을 따라 서계(西溪)·유산(酉山) 등으로 불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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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순백(純伯), 호는 외암(畏庵). 아버지는 김성로(金星魯),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김한운(金翰運)의 딸이다. 김도명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야리에서 태어났다. 처음에 강고(江臯) 류심춘(柳尋春)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는데 류심춘으로부터 행동이 신중하며 단아하고 식견이 넓다는 칭찬을 받았다. 계당(溪堂) 류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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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중립(中立), 호는 우고(雨皐). 아버지는 김정탁(金正鐸),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통덕랑 이제태(李齊泰)의 딸, 처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리(權履)의 딸이다. 아들로 김시간(金始幹)과 김시한(金始翰)이 있다. 김도행은 처음에 큰아버지 제산(霽山) 김성탁(金聖鐸)에게 글을 배웠고 뒤에 종형(從兄)인 구사당(九思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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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덕언(德彦), 호는 암당(巖塘). 아버지는 만오헌(晩悟軒) 김성열(金星說), 어머니는 청주정씨(淸州鄭氏)로 정직(鄭㮨)의 딸이다. 큰아버지는 김성경(金星景), 큰어머니는 흥해배씨(興海裵氏) 배상제(裵相濟)의 딸로, 김도혁은 큰아버지에게 입양되었다. 김도혁은 정필규(鄭必奎)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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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장. 김도화는 본관이 의성, 자는 달민(達民), 호는 척암(拓庵)이며, 한말 안동 지역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김도화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에서 아버지 김약수(金若洙)와 곡구처사(谷口處士) 정상관(鄭象觀)의 딸인 어머니 진양정씨(晉陽鄭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893년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의금부도사에 임명되었다. 1895년 을미사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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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이자 의병장.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치정(致精), 호는 도봉(道峯). 아버지는 김언련(金彦璉)이다. 김득렴은 유일재(惟一齋) 김언기(金彦璣)의 문인으로 구담(九潭, 현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에 거주하였다. 1582년(선조 15)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임진왜란시에는 영남 유림의 추대를 받아 경상좌도의병대장이 된 김해(金垓)와 함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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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이자 의병.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여정(汝精), 호는 갈봉(葛峯). 아버지는 유일재(惟一齋) 김언기(金彥璣),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로 주부 남세용(南世容)의 딸, 처는 함양박씨(咸陽朴氏)로 첨정 박정(朴程)의 딸이다. 김득연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야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김언기의 많은 제자들과 함께 수업하였으며 그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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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여용(汝用), 호는 묵재(黙齋). 할아버지는 근시재(近始齋) 김해(金垓)이고, 아버지는 매원(梅園) 김광계(金光繼)이다. 어머니는 광주이씨이며, 생부는 김광실(金光實)이다. 부인은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의 딸이다. 김렴(金𥖝, 1612~1659)의 장인인 이윤우는 그의 재능과 도량을 칭찬하면서 한강(寒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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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자준(子峻), 호는 계암(溪巖). 증조부는 광산김씨 예안 입향조 김효로(金孝盧), 할아버지는 김유(金綏), 아버지는 현감 김부륜(金富倫), 어머니는 평산신씨(平山申氏)로 부호군 신수민(申壽民)의 딸이다. 김령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7세의 나이로 류성룡(柳成龍)의 막하로 자진 종군했으며, 당시 명군 총병사 오유충(吳維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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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도성(道盛), 호는 물암(勿巖).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김응린(金應麟), 어머니는 현풍곽씨(玄風郭氏)로 현자보(玄子保)의 딸이다. 김륭은 향리의 선비 소고(嘯皐) 박승임(朴承任)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18세 때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 들어가 『소학(小學)』, 『가례(家禮)』, 『태극도설(太極圖說)』, 『통서(通書)』 등을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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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희옥(希玉), 호는 백암(栢巖). 증조부는 김만칭(金萬秤), 할아버지는 김우(金佑), 아버지는 진사 김사명(金士明)이다. 큰아버지 형조원외랑 김사문(金士文)에게 입양되었다. 김륵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76년(선조 9)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78년 검열, 전적을 거쳐서 예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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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언순(彥純), 호는 운암(雲巖). 아버지는 청계(靑溪) 김진(金璡), 어머니는 여흥민씨(驪興閔氏)로 민세경(閔世卿)의 딸이다. 김진의 다섯 아들 중 삼남으로 당시 형 김극일(金克一), 김수일(金守一), 동생 김성일(金誠一), 김복일(金復一)과 함께 ‘김씨오룡(金氏五龍)’으로 불렸다. 김명일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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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사흥(士興), 호는 지촌(芝村). 증조부는 약봉(藥峯) 김극일(金克一), 할아버지는 김철(金澈), 아버지는 김시온(金是榲), 어머니는 풍산김씨(豊山金氏)로 지평 김봉조(金奉祖)의 딸이다. 김방걸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다. 1660년(현종 1)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에 제수되었다. 1662년 제원도찰방(濟原道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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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안동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본연(本然). 신라 경순왕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김민성(金敏成), 아버지는 병부상서, 한림학사를 지낸 김효인(金孝印)이다. 김방경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강직하고 도량이 넓었다. 할아버지가 양육했으며, 조금이라도 자기 뜻에 맞지 않는 일이 있으면 땅바닥에 뒹굴면서 울었는데 소나 말이 피해 지나가니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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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죽송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무신 김방경 묘. 김방경(金方慶, 1212~1300)은 1270년(원종 11) 삼별초(三別抄)의 난을 토벌하였고, 1274년(원종 15)과 1281년(충렬왕 7) 여몽연합군의 고려국 총사령관으로 일본 정벌에 참가하였다. 상락군개국공(上洛君 開國公)에 봉해졌다. 김방경의 묘는 묘지명에 따르면 예안현 서쪽 산기슭에 있었다고 한다.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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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제경(濟卿), 호는 만원(晩畹)이다. 1856년(철종 7) 의성김씨 천전(내앞) 문중의 종손으로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1리에서 출생하여 1936년 사망하였다. 김병식은 1907년 내앞마을에 설립된 협동학교에서 교장으로 활동하였다. 협동학교는 안동의 혁신 유림인 김대락(金大洛)·이상룡(李相龍)·류인식(柳寅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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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계순(季純), 호는 남악(南嶽). 아버지는 청계(靑溪) 김진(金璡), 어머니는 여흥민씨(驪興閔氏)로 민세경(閔世卿)의 딸이다. 김진의 다섯 아들 중 오남으로 당시 형 김극일(金克一), 김수일(金守一), 김명일(金明一), 김성일(金誠一)과 함께 ‘김씨오룡(金氏五龍)’으로 불렸다. 김복일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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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효백(孝伯). 호는 학호(鶴湖). 아버지는 김대현(金大賢),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충의위 이찬금(李纘金)의 딸이다. 김봉조는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과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01년(선조 34)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13년(광해군 5)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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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돈서(惇敍). 호는 설월당(雪月堂). 아버지는 생원 김유(金綏), 어머니는 순천김씨(順天金氏)로 김수홍(金粹洪)의 딸이다. 김부륜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55년(명종 10) 사마시에 합격하고 1572년(선조 5)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집경전참봉(集慶殿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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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가행(可行), 호는 양정당(養正堂). 아버지는 생원 김유(金綏), 어머니는 순천김씨(順天金氏)로 김수홍(金粹洪)의 딸이다. 형이 설월당(雪月堂) 김부륜(金富倫)이다. 김부신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58년(명종13)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이황은 ‘이름은 연방에 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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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신중(愼仲) 호는 읍청정(挹淸亭). 아버지는 대사헌 김연(金緣),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로 조치당(曺致唐)의 딸이다. 형이 김부필(金富弼)이다. 김부의는 안동부 예안현(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형 김부필과 함께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이황의 신뢰를 입어 역동서원(易東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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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신중(愼仲), 호는 후조당(後彫堂). 아버지는 대사헌 김연(金緣),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로 조치당(曺致唐)의 딸이다. 동생이 김부의(金富儀)이다. 김부필은 안동부 예안현(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동생 김부의과 함께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37년(중종 32) 진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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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석실산인(石室山人)·서간노인(西磵老人). 석실산인은 중년 이후 양주 석실(石室)에 은거하면서 사용했으며, 서간노인은 병자호란 직후 안동에 은거하면서 사용하였다. 증조부는 김번(金璠), 할아버지는 군수 김생해(金生海), 아버지는 돈령부도정 김극효(金克孝), 어머니는 좌의정 정유길(鄭惟吉)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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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상헌의 유허비.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 속칭 ‘빗집바우’ 위에 있다. 빗집바우는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이 제자들을 모아 놓고 강론하던 서간사(西磵祠) 뒤쪽에 위치한다. 빗집바위 위에 세워진 단칸 팔작지붕 안에 유허비가 있다. 높이 171㎝, 너비 72㎝, 두께 21㎝ 정도이다. 앞면에는 ‘청음선생목석거유허비(淸陰先生木石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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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8년 안동 지역에서 노론들이 관의 지원을 받아 건립하고 있던 김상헌서원을 남인들이 철거한 사건.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은 병자호란 이후 관향(貫鄕)인 안동에서 은거하였다. 안동에서는 김상헌서원(金尙憲書院)을 건립하려는 노력이 일찍부터 있어 왔으나 남인들의 반대에 막혀 유허비만을 세워 두었다. 그러나 노론과 연결되거나 남인에서 노론으로 전향한 일부 선비들이 노론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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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공신. 김선평은 926년(경애왕 3) 고창성주(古昌城主: 고창은 안동의 옛 지명)가 되었으며, 930년(경순왕 4) 이른바 고창 전투에서 권행(權幸)[안동권씨의 시조], 장정필(張貞弼: 안동장씨의 시조)과 함께 향병(鄕兵)을 모아 태조 왕건(王建)을 도와 견훤을 물리쳤다. 김선평의 행적과 관련하여 두 가지 기록이 전한다. 우선 『고려사(高麗史)』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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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있는 김선평의 단소(壇所). 김태사 단소(金太師壇所)는 안동김씨의 시조 김선평(金宣平)의 무덤이다. 김선평은 권행(權幸)·장정필(張貞弼)과 함께 930년 안동의 병산(甁山, 현 와룡면 서지리)에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견훤을 크게 격파하였다. 이에 왕건은 이들에게 태사(太師)의 벼슬을 내렸다. 현재도 세 사람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안동 태사묘(安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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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덕휴(德休), 호는 팔오헌(八吾軒)·해촌(海村). 증조부는 김득가(金得可), 할아버지는 김율(金瑮), 아버지는 용양위부호군 김추길(金秋吉), 어머니는 전주류씨로 류화(柳華)의 딸, 부인은 안동권씨로 권목(權霂)의 딸이다. 슬하에 4남 3녀를 두었다. 김성구는 1662년(현종 3) 사마시를 거쳐 1669년 식년문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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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856년(철종 7)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신평리에서 출생하여 1938년 사망하였다. 김성복은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그는 3월 21일 임동면 3·1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임동면 만세 시위는 류연성(柳淵成)·류동수(柳東洙) 등의 주도로 장날인 3월 21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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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鶴峰). 할아버지는 김예범(金禮範)이고, 아버지는 김진(金璡), 어머니는 여흥민씨(驪興閔氏)로 민세경(閔世卿)의 딸이다. 동생은 김복일(金復一)이다. 김성일은 안동부 임하현 천전리(현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태어났다. 19세에 글을 읽다가 ‘선비가 세상에 태어나서 과거 공부만 하고 진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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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학봉 김성일 종손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고문서. 학봉 김성일 종손가 소장 고문서는 조선 중기 선조 대의 명신이자 학자인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의 종손가(宗孫家)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이다. 고문서에는 학봉의 교지(敎旨)·교서(敎書)·유서(諭書)·소지(所志)·분재기(分財記) 등 10,000여 점이 소장되어 있다. 그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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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학봉 김성일 종손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후기 전적. 학봉 김성일 종손가 소장 전적은 조선 중기 선조 대의 명신이자 학자인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의 종손가(宗孫家)에 소장되어 있는 전적류이다. 그 가운데 56종 261책이 1987년 3월 7일 보물 제905호로 지정되었다. 56종 261책이다. 간본(刊本)은 계미자(癸未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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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진백(振伯), 호는 제산(霽山). 할아버지는 생원 김방렬(金邦烈), 아버지는 김태중(金泰重), 어머니는 순천김씨(順天金氏)로 호군 김여만(金如萬)의 딸이다. 김성탁은 영양(英陽) 청기(靑杞, 현 경상북도 영양군 청기면)에서 태어났으나 선조들은 모두 안동부 임하현 천전리(현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진리)에 세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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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명우(鳴于), 호는 이호(伊湖). 아버지는 금옹(錦翁) 김학배(金學培), 어머니는 개성고씨(開城高氏)로 고이절(高爾節)의 딸이며, 처는 팔거도씨(八莒都氏)로 도이망(都爾望)의 딸이다. 김세용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김학배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9세 때 내종형 고세헌(高世憲)에게 수업을 받았고 11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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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경백(京伯), 호는 귀주(龜洲). 고조할아버지는 김용(金涌)이고, 아버지는 김익기(金益基)이다. 김세호(金世鎬, 1652~1722)는 1681년(숙종 7)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690년(숙종 16) 문과에 급제하였다. 예문관검열, 병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경사(經史)와 음양(陰陽)·복서(卜筮)에 정통했으며, 문장이 격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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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천약(天若), 호는 칠탄(七灘). 증조할아버지는 김시주(金是柱)이고, 할아버지는 김임(金恁)이다. 아버지는 주부(主簿) 김삼기(金參基)이며, 어머니는 김광수(金光遂)의 딸이다. 김세흠(金世欽, 1649~1721)은 1673년(현종 14) 진사가 되었고 1687년(숙종 1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93년(숙종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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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경순(景純), 호는 구봉(龜峯). 아버지는 청계(靑溪) 김진(金璡), 어머니는 여흥민씨(驪興閔氏)로 민세경(閔世卿)의 딸이다. 김진의 다섯 아들 중 차남으로 당시 형 김극일(金克一), 동생 김명일(金明一), 김성일(金誠一), 김복일(金復一)과 함께 ‘김씨오룡(金氏五龍)’으로 불렸다. 김수일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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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이자 순국자.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치화(穉華), 호는 죽포(竹圃)이다. 오미마을 허백당 김양진의 14세손으로, 1840년 풍산면 수동(현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수리)에서 태어났다. 김순흠은 일찍부터 문명이 인근에 널리 알려져, 1894년 당시 경상감사 조병호(趙秉鎬)가 여러 차례 벼슬을 하도록 권유하였으나 거절하였다. 1895년 말 전국적으로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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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국응(國應), 호는 장암(莊庵). 아버지는 김경진(金敬鎭)이고, 어머니는 재령이씨(載寧李氏)로 이상유(李相儒)의 딸이다.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족숙(族叔)인 김진교(金鎭敎)에게 입양되었다. 김시락(金時洛, 1857~1896)은 1881년(고종 18) 임천강회(臨川講會)에 참석하여 이돈우(李敦禹), 김흥락(金興洛), 권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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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이승(以承), 호는 표은(瓢隱)·도연(陶淵). 할아버지는 김수일(金守一), 아버지는 김철(金澈), 어머니는 풍산김씨(豊山金氏)로 고려삼사좌윤(高麗三司左尹) 김안정(金安鼎)의 후손이며 지평 김봉조(金奉祖)의 딸이다. 아버지 김철은 백부 김극일(金克一)의 후사가 되었다. 김시온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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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이립(以立), 호는 개호(開湖). 아버지는 이조판서에 증직된 운천 김용(金涌)이고, 어머니는 진성이씨로 첨정(僉正) 이준(李寯)의 딸이다. 외증조부는 이황(李滉)이다. 부인은 권위(權暐)의 딸이다. 김시주(金是柱, 1575~1617)는 1609년(광해군 1) 사마시에 장원하였고, 1613년(광해군 5)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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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초자는 비문(斐文), 자는 황중(黃中), 호는 일일재(一一齋)·정거산인(淨居山人). 설월당(雪月堂) 김부륜(金富倫)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김성익(金聖翼),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이다. 김시찬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이 남달랐으며 글을 읽을 때는 한꺼번에 몇 줄씩 내려갔고 한 번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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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종경(終卿), 호는 일용재(一慵齋)·자암(自庵). 아버지는 김영조(金榮祖)이고, 어머니는 의성김씨로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딸이다. 부인은 청주정씨로 매창(梅窓) 정사신(鄭士信)의 딸이다. 김시침(金時忱, 1600~1670)은 1635년(인조 13) 생원시에 합격하여 효렴으로 천거되어 빙고별검에 제수되었다. 병자호란이 끝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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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여함(汝涵), 호는 응봉(鷹峰). 만주에서 활동한 김연환(金璉煥, 1879~1947)의 아버지이다.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후손으로 1850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묘소는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다. 김양모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등으로 인해 전국에서 의병항쟁이 펼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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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온(仲溫), 호는 유일재(惟一齋). 아버지는 진사 김주(金籌), 어머니는 죽계안씨(竹溪安氏)로 안처정(安處貞)의 딸이다. 김언기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에서 태어났으며 퇴계(退溪) 이황(李滉)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백담(白潭) 구봉령(具鳳齡)과 함께 10년을 기한으로 하고 청량산(淸凉山)에 들어가 독서를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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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회일(會一), 호는 기산(箕山)·추담(秋潭). 할아버지는 동리(東籬) 김윤안(金允安)이고, 아버지는 김기후(金基厚)이다.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권빙(權憑)의 딸이다. 종숙부(宗叔父)인 김윤문(金允文)에게 입양되어 대를 이었으며, 부인은 안동김씨로 김희진(金希振)의 딸이다. 김여만(金如萬, 1625~1711)은 육촌 형인 김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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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자적(子迪)·자유(子裕), 호는 운암(雲巖). 할아버지는 김회(金淮)이고, 아버지는 광산김씨 예안파 입향조인 농수(聾叟) 김효로(金孝盧, 1454~1534)이며, 어머니는 양성이씨(陽城李氏)로 이지(李持)의 딸이다. 김연(金緣, 1487~1544)은 1510년(중종 5) 생원시와 진사시 양과에 급제하였다. 1519년(중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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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풍산. 자는 희석(希錫), 호는 광록(廣麓). 아버지는 산음현감을 지내고 이조참판에 증직된 김대현(金大賢)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충의위(忠義衛) 이찬금(李纘金)의 딸이다. 김연조(金延祖, 1585~1613)는 1601년(선조 34) 아버지가 산음현감에 제수되자, 같이 산음으로 갔다가 토인(土人) 오건(吳健)의 큰아들인 오장(吳長)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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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영지(英之), 호는 삼당(三塘). 할아버지는 김계권(金係權)이고, 아버지는 사헌부장령을 지낸 김영수(金永銖)이다. 어머니는 강릉김씨로 김박(金博)의 딸이다. 김영(金瑛, 1475~1528)은 어려서부터 신동이란 말을 들었는데, 종조할아버지 보당 김계행(金係行)에게서 글을 배웠다. 21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1506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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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의겸(義兼), 호는 괴헌(槐軒). 아버지는 수직(壽職)으로 정3품 문관 품계인 통정대부에 오른 김경집(金慶集)이고, 어머니는 청도김씨로 첨지중추부사 김태빈(金兌彬)의 딸이다. 김영(金瑩)은 1765년 안동부(현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에서 태어났다. 1804년(순조 4) 문과에 합격하여 권지승문원정자가 되었고, 종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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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 초명은 진수(進銖), 자는 학일(學一), 호는 만산(晩山). 아버지는 낙포(樂圃) 김재로(金載輅)이고,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권석중(權錫重)의 딸이다. 김영수(金永銖, 1862~1925)는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과 성재(性齋) 허전(許傳)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1891년(고종 28) 문과에 급제하였다. 1905년(고종 42) 정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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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효중(孝仲), 호는 망와(忘窩). 할아버지는 사의(司議) 김농(金農)이고, 아버지는 산음현감을 지낸 김대현(金大賢)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부인은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딸이다. 김대현의 8형제 중 5명이 문과에 급제하자 인조가 팔련오계지미라 크게 칭찬하고 마을 이름을 오미동(현 풍산읍 오미리)이라 사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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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명구(鳴九), 호는 육유재(六有齋). 할아버지는 계암(溪巖) 김령(金坽)이고, 아버지는 김휘두(金輝斗)이다. 어머니는 영해신씨로 신건(申楗)의 딸이며, 부인은 진성이씨로 이성철(李誠哲)의 딸이다. 김용(金鏞, 1657~1732)은 일찍이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스스로 학문을 탐구하여 경사(經史)와 성리서(性理書) 등에 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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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도원(道源), 호는 운천(雲川). 증조할아버지는 김예범(金禮範)이고, 할아버지는 생원 김진(金璡)이다. 아버지는 찰방 김수일(金守一)이며, 어머니는 사과(司果)를 지낸 조효분(趙孝芬)의 딸이자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조카이다. 김용(金涌, 1557~1620)은 1590년(선조 2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권지승문원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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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출신의 문신 운천 김용이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하며 쓴 일기. 김용(金涌, 1557~1620)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안동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적과 싸웠고, 곧이어 선조(宣祖)가 피난한 의주로 가서 왕을 호종하여 교리(校理)에 임명되었다. 『운천호종일기(雲川扈從日記)』는 당시 의주로 피난한 선조를 호종(扈從)하면서 김용이 직접 쓴 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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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경연(景淵), 호는 하재(下齋). 아버지는 김필순(金弼淳)이고, 어머니는 여주이씨로 첨지중추부사 이정진(李鼎搢)의 딸이다. 부인은 한양조씨로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鄰, 1658~1737)의 후손인 학파(鶴坡) 조성복(趙星復)의 딸이다. 김우수(金遇洙, 1804~1877)는 어려서부터 의표(儀表)가 단정하였고, 겨우 말을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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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광산. 자는 유지(綏之), 호는 탁청정(濯淸亭). 아버지는 광산김씨 예안 입향조인 농수(聾叟) 김효로(金孝盧, 1454~1534)이다. 부인은 순천김씨(順天金氏)로 김수홍(金粹洪)의 딸이다. 아들로 오천칠군자(烏川七君子)로 불리는 김부인(金富仁, 1512~1584), 김부신(金富信, 1523~1566), 김부륜(金富倫, 1531~1598)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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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이정(而靜), 호는 동리(東籬). 할아버지는 효행으로 천거되어 사헌부감찰을 지낸 김자순(金自順), 아버지는 건공장군(建功將軍)에 추증된 김박(金博),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셋째 형인 이의(李漪)의 딸이다. 김윤안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서 태어났다. 11살 무렵에 소고(嘯臯) 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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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효징(孝徵), 호는 학사(鶴沙)·아헌(啞軒). 할아버지는 장례원사의(掌隷院司議) 김농중(金農中)이고, 아버지는 산음현감 김대현(金大賢)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수의부위(守義副尉) 이찬금(李纘金)의 딸이다. 김응조(金應祖)는 1587년 안동(현 영주시)에서 태어났다. 17세 때 류성룡(柳成龍)을 사사했으며, 1613년(광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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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공직(公直), 호는 잠암(潛庵)·유경당(幽敬堂). 증조부는 김종석(金從石)이고, 할아버지는 군수 김휘산(金徽山)이다. 아버지는 공조참판을 지낸 김양진(金楊震)이며, 어머니는 양천허씨로 허서(許瑞)의 딸이다. 김의정(金義貞, 1495~1547)은 재기가 뛰어나 8세에 글을 지었으며, 약관에 이미 문장이 성취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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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 자는 운약(雲若), 호는 범암(凡巖). 할아버지는 금옹(錦翁) 김학배(金學培)이고, 아버지는 이호(伊湖) 김세용(金世鏞)이며, 어머니는 팔거도씨로 생원인 도이망(都爾望)의 딸이다. 김익명(金翼溟, 1708~1755)은 6~7세에 이웃집 벽에 걸려 있는 「여지도(輿地圖)」를 보고 좋아하여 직접 땅에 그려 그림을 이해하는 듯하였다. 밀암(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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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자수(子粹), 자는 순중(純仲), 호는 상촌(桑村). 아버지는 통례문부사(通禮門副使) 지제고(知制誥)를 지낸 김오(金珸)이다. 김자수(金自粹, 1351~1413)는 1374년(공민왕 23) 문과에 급제하여 덕녕부주부에 제수되었다. 우왕 초에 정언이 되었는데, 왜구를 토벌한 공으로 포상 받은 경상도도순문사 조민수(曺敏修)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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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사달(士達), 호는 노봉(蘆峯). 고조할아버지는 유연당 김대현(金大賢)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학문과 문장으로 사림의 중망을 받았던 학사 김응조(金應祖)이며, 할아버지는 이조참의에 증직된 김시행(金時行)이다. 아버지는 부사용(副司勇)을 지낸 김휘봉(金輝鳳, 1643~1683)이고, 어머니는 봉화금씨로 성성재 금난수(琴蘭秀)의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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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 자는 부중(扶中), 호는 지곡(芝谷). 의성김씨 천전 입향조 청계 김진(金璡)의 큰아들 약봉 김극일(金克一)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김순석(金舜錫)이고, 어머니는 전주류씨로 류봉시(柳奉時)의 딸이다. 부인은 창녕조씨로 병애처사(屛厓處士) 조선장(曺善長)의 딸이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김정한(金正漢, 1711~1766)은 안동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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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만고(萬古), 호는 이면재(易眠齋). 증조할아버지는 김정헌(金廷憲)이고, 할아버지는 김몽호(金蒙虎)이다. 아버지는 승정원승지를 지낸 구전 김중청(金中淸)이며, 어머니는 영천이씨로 이영승(李永承)의 딸이다. 부인은 연천군(延川君) 이경엄(李景嚴)의 딸이다. 김주우(金柱宇)는 1598년 안동(현 봉화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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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김준모는 본관이 의성(義城)으로 1845년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교리에서 태어났다.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후손으로 자는 덕심(德深), 호는 송오(松塢)이다. 1896년에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송현동 호암마을에 있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단발령·변복령 등으로 전국으로 의병 항쟁의 물결이 퍼져 나가자 안동의진은 1895년 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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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이화(而和), 호는 만퇴헌(晩退軒)·구전(苟全). 할아버지는 김정헌(金廷憲)이고, 아버지는 중추부첨지사를 지낸 김몽호(金夢虎)이며, 어머니는 반남박씨로 소고(嘯皐) 박승임(朴承任)의 형 박승인(朴承仁)의 딸이다. 부인은 영천이씨로 이영승(李永承)의 딸이다. 아들은 김주우(金柱宇)이다. 김중청(金中淸)은 1567년 안동(현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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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에 있는 조선 중기 초상화. 「김진 초상」은 김성일(金誠一)의 부친인 청계(靑溪) 김진(金璡, 1500~1580)의 영정으로 1572년(선조 5)에 그려졌다. 규격은 142×109㎝이다. 원래는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안동 의성김씨 종택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되어 있다. 김진은 1525년(중종 20) 생원시에 합격하고 김인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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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정지(定之), 호는 소암(素巖). 아버지는 김경린(金景潾)이고, 어머니는 태안박씨(泰安朴氏)이다. 생부는 김경온(金景溫)이며, 생모는 진성이씨이다. 김진동(金鎭東, 1727~1800)은 외가가 있는 선성(宣城)의 단사(丹砂)에서 태어났다. 1734년(영조 10) 부친상을 마치고 1737년(영조 13) 숙부 김경린(金景潾)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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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김진우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자는 계노(啓魯), 호는 소와(素窩)이다.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으며 족조인 죽옹(竹翁) 김용섭(金龍燮)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4살 무렵 부친상을 당하였는데 슬퍼하고 상을 치르는 것이 성인같았다고 한다. 1822년 어머니의 뜻에 따라 중형이 있는 영양의 금대(琴臺)로 이사하였다. 1833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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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김진의는 본관이 의성(義城)으로 1855년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미경(美卿), 호는 학운(鶴雲)이다. 1930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김진의는 1882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승지를 역임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등으로 전국에서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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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덕추(德錘), 호는 겸와(謙窩)·청사(晴蓑). 아버지는 김종수(金宗壽)이다. 현재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김진형의 고택인 겸와재(謙窩齋)가 남아 있다. 김진형(金鎭衡, 1801~1865)은 1850년(철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53년(철종 4) 홍문관교리로 있을 때 이조판서 서기순(徐箕淳)의 비행을 탄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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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천여(天與), 호는 월탄(月灘)·몽선도객(夢仙道客). 아버지는 수직(壽職)으로 중추부동지사를 지낸 김이기(金履基)이고, 어머니는 파평윤씨로 충의위(忠義衛) 윤탕빙(尹湯聘)의 딸이다. 김창석(金昌錫, 1652~1720)은 1687년(숙종 13) 진사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 유학하면서 재약(齋約) 6조를 정하고 잠언을 지어 동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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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의성. 초명은 박수(璞銖), 자는 내극(乃克), 호는 노원(魯園)·미추자(味鄒子). 아버지는 통덕랑 김재신(金在信)이고, 어머니는 흥양이씨(興陽李氏)로 창석(蒼石) 이준(李埈)의 후손과 선성김씨(宣城金氏) 김담(金淡)의 후손인 김장배(金章培)의 딸이다. 김철수(金喆銖)는 1822년 봉화 해저촌(현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에서 태어나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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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명보(明寶)·중휘(仲輝), 호는 오헌(辶+亏軒). 아버지는 김광술(金光述)이고, 어머니는 풍천임씨(豊川任氏)로 임경진(任慶進)의 딸이다. 김총(金璁, 1633~1678)은 1652년(효종 3)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60년(현종 1) 문과에 급제하여 1662년(현종 3) 승문원부정자에 제수되었다. 1663년 승문원정자·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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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추백(秋伯), 호는 노주(蘆洲). 생부는 김단(金鍴)이며, 둘째아버지인 김곤(金錕)에게 입양되었다.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사고처사(槎臯處士) 권극해(權克諧)의 딸이다. 김태일(金兌一, 1637~1702)은 장인인 권극해에게 학문을 익혔으며, 15~16세에 이미 경서제자사(經書諸子史)를 읽었다. 24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처음 성균관학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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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천삼(天三), 호는 적암(適庵). 할아버지는 표은 김시온(金是榲)이고, 아버지는 김방형(金邦衡)이다. 둘째 아들로 태어난 김태중은 김시상(金是相)에게 입후(入後)한 숙부 김기(金炁)의 양자가 되었다.어머니는 순천김씨로 김광엽(金光燁)의 딸이며, 부인은 남양홍씨로 홍극(洪克)의 딸이다. 김태중(金台重, 164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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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시보(施普), 호는 와운자(臥雲子)·조성당(操省堂). 고조부는 첨정 김효우(金孝友), 아버지는 김양진(金楊震),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안동김씨(安東金氏)로 내금위 김려광(金礪光)의 딸이다. 고조부 김효우가 안동부 예안현 한곡리(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현 태곡리)에 터를 잡은 이래로 후손들이 세거하였다. 김택룡은 조목(趙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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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순거(舜擧)·수경(秀卿), 호는 지산(芝山). 아버지는 삼척훈도(三陟訓導) 김적(金績)이며, 어머니는 영춘이씨(永春李氏)로 이자운(李自芸)의 딸이다. 김팔원의 7대조인 영동정(令同正) 김인철(金仁轍)이 안동으로 옮겨 살면서 자손들이 안동에 세거하게 되었다. 김팔원(金八元, 1524~1589)은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어머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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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극부(克夫), 호는 국창(菊牕). 아버지는 김성원(金聲遠)이고, 어머니는 반남박씨(潘南朴氏)이다. 생부는 김휘원(金輝遠)이고, 생모는 인천채씨(仁川蔡氏)이다. 김필형(金弼衡, 1725~1800)은 1725년(영조 1) 안동(현 예천군 금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753년(영조 29) 29세 되던 해에 지금의 안동시 풍천면 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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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천휴(天休), 호는 금옹(錦翁). 아버지는 김암(金黯),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직장 이의준(李義遵)의 딸이다. 김학배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태어났다. 김시온(金是榲)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이휘일(李徽逸), 이현일(李玄逸)과 교유하였다. 1641년에 둘째 형 김학요(金學堯)와 더불어 군상(郡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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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한지(翰之), 호는 와은(臥隱). 증조할아버지는 김성구(金聲久)이고, 할아버지는 김여당(金汝鏜)이다. 아버지는 좌랑 김경필(金景泌)이며, 어머니는 정주현(鄭周鉉)의 딸이다. 김한동(金翰東, 1740~1811)은 안동(지금의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에서 태어났다. 1763년(영조 39) 진사가 되었고, 1781년(정조 5) 경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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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달원(達遠), 호는 근시재(近始齋). 아버지는 참봉 김부의(金富儀),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정랑 권습(權習)의 딸이다. 김해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서 태어났다. 1588년(선조 21) 사직서참봉으로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89년 연은전참봉(延恩殿參奉)으로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후 승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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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정칙(正則), 호는 부훤당(負暄堂). 고조할아버지는 김시좌(金時佐)이고, 아버지는 김광호(金光灝)이다. 어머니는 청주정씨로 정신(鄭伸)의 딸이며, 부인은 연안이씨로 이한미(李漢美)의 딸이다. 김해(金楷, 1633~1716)는 용모가 단아하고 기질이 명수(明粹)하며, 경사(經史)를 널리 연구하여 문장에 능하였다. 28세인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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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중현(仲賢), 호는 용암(慵庵). 아버지는 김진우(金鎭右)이다. 김헌락(金獻洛, 1826~1877)은 정재 류치명(柳致明)의 문인으로, 1868년(고종 5) 서원훼철령이 내려지자 유림을 이끌고 상경하여 반대 상소문을 올려 금성(金城)으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과 함께 유림의 중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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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 초명은 적운(迪運), 자는 치길(穉吉), 호는 우간(雨澗). 아버지는 김시홍(金始弘)이고, 어머니는 고령신씨(高靈申氏)로 통덕랑 신사주(申思柱)의 딸이다. 안동에 세거해 온 김호운의 집안은 문학행의(文學行懿)로 명성이 자자하였다. 김호운(金虎運, 1768~1811)은 예안 분포리에서 태어났으며, 삼산재 류장원(柳長源)과 우고(雨臯) 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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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공백(恭伯), 호는 서림(西林). 아버지는 김진곤(金鎭坤)이다. 김홍락(金弘洛, 1817~1869)은 정재 류치명의 문인으로, 동림(東林) 류치호(柳致皜)·긍암(肯庵) 이돈우(李敦禹)·지암(止庵) 김건수(金健壽) 등과 나이를 불문하고 존경하며 벗으로 지내었다. 또한 만산(萬山) 류치엄(柳致儼), 이재(頤齋) 권연하(權璉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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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김회락은 본관이 의성(義城)으로 1844년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현우(現于)·경승(景承)이며, 서산 김흥락(金興洛, 1827~1899)의 사촌 동생이다. 1896년에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명리 야산에 있다. 김회락은 일찍이 서산사숙(西山私塾)에서 수학하였고,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등으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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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형만(亨萬), 호는 월오헌(月梧軒). 할아버지는 추촌(秋村) 김익한(金翼漢)이고, 아버지는 김시진(金始晋)이며, 어머니는 함안조씨(咸安趙氏)로 사인(士人) 조경발(趙景潑)의 딸이다. 김회운(金會運, 1764~1834)은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추월리에서 태어나 김도행(金道行)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2~13세에 경사를 통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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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자미(子美)·겸가(謙可), 호는 경와(敬窩). 아버지는 김시정(金是禎), 어머니는 예안김씨(禮安金氏)로 김륵(金玏)의 딸이다. 김휴는 1617년(광해군 7) 폐모론을 주장하였던 정조(鄭造)가 경상도안찰사로 부임하여 예안(禮安)을 순시하던 길에 도산서원(陶山書院)에 들러 자기 이름을 원록(院錄)에 기재하였는데, 그때 이를 보고 분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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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장. 김흥락은 본관이 의성(義城)으로 1827년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계맹(繼孟), 호는 서산(西山)이다.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종손으로 한말 퇴계 학통을 잇는 경상북도 북부 지역 문화권의 핵심 지도자이며, 위정척사론을 견지하고 안동 지역의 전기 의병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1895년 12월 30일 내려진 단발령 소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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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숙명(淑明), 호는 고식헌(故寔軒). 증조할아버지는 김여건(金汝鍵)이고, 할아버지는 김경온(金景溫)이다. 아버지는 이조참의에 증직된 김두동(金斗東)이며, 어머니는 전주류씨(全州柳氏)로 류세원(柳世源)의 딸이자 김희소의 동생이다. 김희락(金熙洛)은 1761년 안동(현 봉화군)에서 태어났으며,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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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순수(舜叟), 호는 백산(白山). 아버지는 소암(素巖) 김진동(金鎭東)이고, 어머니는 연안이씨로 이관징(觀徴)의 손녀이자 이만녕(李萬寧)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진주강씨 강곽(姜漷)의 딸로 후사를 잇지 못하였고, 이후 안동권씨 권정립(權正立)의 딸에게 장가들어 2남 2녀를 두었다. 김희분(金熙奮)은 1760년 안동부(현 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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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백옹(伯雍), 호는 문천(文泉). 아버지는 이조참의에 증직된 김두동(金斗東)이며, 어머니는 전주류씨로 류세원(柳世源)의 딸이다. 동생이 김희락(金熙洛)이다. 김희소(金熙紹, 1758~1837)는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 단사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동생 김희락과 더불어 밥 먹을 때나 잠잘 때도 함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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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공목(公穆), 성사(聖思, 왕명에 의해 고침), 호는 갈천(葛川). 아버지는 김시동(金始東), 어머니는 반남박씨(潘南朴氏)로 박효술(朴孝述)의 딸이다. 김희주는 처음에는 전필현(全必鉉)과 권사민(權思敏)에게서 글을 배웠으며, 후에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에게 찾아가 배움을 청하였다. 1789년(정조 13) 사마시를 거쳐, 17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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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 있던 조선시대의 암각서. 낙연현류(落淵懸流)는 도연폭포(陶淵瀑布)의 아름다움을 기리기 위해 새긴 글씨이다.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 있던 도연폭포 오른쪽 절벽 뒤편에 표은고풍(瓢隱高風)·하남삼절(河南三絶)과 함께 새겨져 있었으나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세로 방향 두 줄로 새겼다.‘낙(落)’과‘현(懸)’자는 모두 위에서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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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탁부(卓夫), 호는 유유헌(由由軒). 할아버지는 효자로 이름난 남응원(南應元)이고, 아버지는 세거지를 안동 풍산으로 옮겨 신안의 시조가 된 남융달(南隆達)이다. 동생이 남연(南碝)이다. 남급(南礏, 1592~1671)은 우복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으로,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630년(인조 9) 학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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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연부(鍊夫), 호는 무망재(无妄齋). 할아버지는 효자로 이름난 남응원(南應元)이고, 아버지는 안동 풍산으로 세거지를 옮겨 신안의 시조가 된 남융달(南隆達)이다. 형이 남급(南礏)이다. 남연(南碝, 1598~1664)은 1624년(인조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공조정랑, 성균관직강, 호조좌랑, 형조정랑, 봉상시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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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현언(顯彦), 호는 나재(懶齋). 아버지는 남응원(南應元)이다. 아들로 남급(南礏)과 남연(南碝)을 두었다. 남융달(南隆達, 1565~1652)은 여러 차례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 시험에는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효행이 지극하여 선조가 관직과 포상을 내렸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1627년 예천의 용궁에서 우거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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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소우(蘇宇), 호는 태암(苔巖). 증조할아버지는 남응원이고, 할아버지는 남융달이며, 아버지는 남잡이다. 남천한의 동생이다. 외할아버지는 송기복이고, 장인은 이장과 이홍업이다. 남천택(南天澤, 1619~1684)은 1642년(인조 20)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648년(인조 26)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지평, 사간원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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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장우(章宇), 호는 고암(孤巖). 증조할아버지는 남응원(南應元)이고, 할아버지는 남융달(南隆達)이며, 아버지는 남잡이다. 남천택(南天澤)의 형이다. 외할아버지는 송기복이다. 남천한(南天漢, 1607~1686)은 1630년(인조 8)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646년(인조 2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사헌부지평과 사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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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의중(義仲), 호는 비지(賁趾). 남부량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남신신(南藎臣)이며 4남 2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남치리(南致利, 1543~1580)는 김언기(金彦璣)에게서 처음 배웠으며, 21세에 금난수(琴蘭秀)와 함께 이황(李滉)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24세 되던 해에 가옥이 침수되어 고림촌(高林村)에 옮겨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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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있는 농암 이현보의 신도비. 이현보(李賢輔, 1467~1555)는 1498년(연산군 4) 문과에 급제한 후, 예문관검열과 예문관봉교 등을 역임하였고, 1504년(연산군 10) 사간원정언이 되어 서연관(書筵官)의 비행을 논하다가 안동으로 유배되기도 하였다. 그 뒤 중종반정으로 사헌부지평에 복직되었고, 형조참판과 호조참판을 거쳐 1542년(중종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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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에 있는 이현보의 영정 사본과 관복띠.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는 영천인으로, 1498년(연산군 4) 문과에 급제하여 안동부사, 경상도관찰사, 형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542년(중종 37) 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고향인 예안으로 낙향하여 89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연을 벗하여 시를 짓고 제자를 가르치며 여생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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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5년과 1911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이현보의 시문집. 『농암집(聾巖集)』은 1665년(현종 6) 외손 김계광(金啓光)에 의해 처음 간행되었다. 여러 차례 난리를 거치면서 유고의 태반이 산실되었으므로 후손들이 간행을 의논하여 가장(家藏)하고 있던 시문 약간 편을 수습하였다. 이에 김계광이 편차를 고증하고 6세손 이언필(李彥弼)이 선사(繕寫)하여 1663년 겨울에 시작,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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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이광정의 시문집. 눌은(訥隱) 이광정(李光庭, 1674~1756)은 갈암 이현일과 밀암 이재를 스승으로 한 남인의 대표적인 문장가이다. 83세라는 장수를 누리면서 많은 시문을 지었으나 62세 되던 1735년(영조 11)에 평소 거처하던 녹문정사(鹿門精舍)의 화재로 많은 시문이 불에 탔다. 처음 이광정의 장례식에 모인 향중 사림들이 발기하여 유문(遺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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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에 있는 조선시대 암각서. 하회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낙동강 물이 범람하여 파도를 쳐도 이 바위에는 미치지 못하므로 ‘물결을 능멸한다’는 뜻에서 새긴 글씨이다. 능파대(凌波臺)는 풍천면 광덕리 부용대(芙蓉臺) 동쪽에 자리한 하회 옥연정사(河回 玉淵精舍)에서 남쪽으로 25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은 하회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낙동강가로 암각서가 새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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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대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바위그림. 바위그림은 동굴 벽이나 자연 암벽에 여러 가지 기하학적인 무늬 또는 동물상 등을 그리거나 새겨 놓은 그림을 말한다. 암각화(岩刻畵), 암화(岩畵), 암채화(岩彩畵)라고도 한다. 바위그림은 구석기시대부터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석기시대를 지나 청동기시대에 전성기를 맞아 활발히 제작되었다. 바위그림에는 선사시대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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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대두서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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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이상정의 시문집.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1781)은 이재(李栽)의 외손(外孫)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 →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 →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 밀암(密庵) 이재로 이어지는 퇴계학맥을 계승하였다. 동생 이광정(李光靖)과 아들 이완(李埦)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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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도곡리 장안절골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도곡동 장안절골 고인돌 떼는 원래 안동시 월곡면 도곡리의 안동댐 수몰지구에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 이곳은 와룡면 도곡리 웃문암마을에서 남서쪽으로 900m 정도 떨어진 곳으로, 현재는 안동호에 잠겨버렸다. 도곡동 장안골절 고인돌은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3년 안동댐 수몰지역 조사시에 경북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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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있는 중생대 백악기의 공룡발자국 화석.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의 낙동강 상류 하천변에 공룡의 발자국, 생물이 뚫은 구멍 등으로 보이는 화석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데, 이를 도산면 가송리 공룡발자국 화석이라 한다. 도산면 가송리 공룡발자국 화석은 2008년 4월 30일 안동 경일고등학교 교직원 워크샵에 참가하였던 교감 강인순에 의하여 발견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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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 문인 김창석이 도산서원을 그린 그림. 안동부 임하현 천전리에서 출생한 김창석(金昌錫)은 호가 월탄(月灘)이다.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여 잠깐 벼슬살이를 한 적도 있으나, 1694년 갑술환국 뒤에 낙향하여 여생의 대부분을 처사로 살았던 선비이다. 이현일(李玄逸)의 문도인 그는 학문 이외에도 시(詩)·서(書)·화(畵)에 두루 능하여 ‘삼절(三絶)’이라는 칭송을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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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만운리에 있는 조선시대 암각서. ‘도소호계(陶笑虎溪)’는 호계삼소(虎溪三笑)라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국 진나라 혜원법사(惠遠法師)가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 살면서 호계(虎溪)를 건너지 않기로 맹세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혜원법사는 도연명(陶淵明)과 육수정(陸修靜)을 배웅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호계를 건넜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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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간행된 안동 출신 학자 배상열이 지은 도학 관련 책. 조선 후기 천재 학자로 알려진 배상열(裵相說, 1759~1789)은 안동부 내성현(奈城縣, 현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에서 살았다고 전한다. 배상열은 안동의 저명한 유학자 대산 이상정의 문인인데, 그에 앞서 독학으로 『주역(周易)』과 율려 등을 공부하여 상수학(象數學)에 뛰어났고 천문·지리·주수에 정통하였고 한다.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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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 형성된 성이 같은 사람이 모여 사는 마을. 1930년대의 한 조사에 따르면 당시 우리나라의 마을 총수는 28,336개로 이 가운데 14,672개가 동성마을이었다. 우리의 전통마을 가운데 반 이상이 동성마을인 셈이다. 동성마을은 동족부락(同族部落)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1930년대부터 주로 일본인 학자들이 사용하면서 일반화된 용어이다. 그러나 동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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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강(子强), 호는 대야(大埜). 아버지는 류충원(柳忠源)으로 안동의 수곡[무실]에서 거처하였다. 류건휴(柳健休, 1768~1834)는 18세가 되던 1785년(정조 9) 족숙인 류장원(柳長源)에게 수학하였다. 스승이 세상을 떠나자 손재 남한조(南漢朝)에게 수학하였다. 만년에도 학문에 전심하여 강회가 있을 때는 반드시 좌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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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흠약(欽若), 호는 함벽당(涵碧堂). 할아버지는 류숭(柳嵩), 아버지는 류동휘(柳東輝),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로 조정형(趙廷珩)의 딸이다. 류경시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광평리 함벽당(涵碧堂)에서 태어났으며 이유장(李惟樟)과 이현일(李玄逸)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94년(숙종 20)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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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태호(太浩), 호는 구촌(龜村). 고조할아버지는 하회(河回)에 정착한 류홍(柳洪)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류소(柳沼)이며, 할아버지는 진사 류자온(柳子溫)이다. 아버지는 정랑 류공권(柳公權)이고,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로 진사 남팔준(南八俊)의 딸이다. 류성룡(柳成龍)이 그의 족질이다. 류경심(柳景深, 1516~1571)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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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용빈(用賓), 호는 양파(陽坡). 아버지는 류봉시(柳奉時)이며,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는 아주(鵝洲) 신이징(申以徵)이다. 부인은 김구용(金九用)의 딸이다. 류관현(柳觀鉉, 1692~1764)은 1735년(영조 11) 증광문과에 급제하였고, 사헌부지평과 형조참의를 역임하였다. 외직에 있을 때 목민관으로서 선정을 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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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수부(秀夫), 호는 임여재(臨汝齋). 류성룡(柳成龍)의 6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류만하(柳萬河)이고, 아버지는 류성오(柳聖五)이다. 류규(柳氵+奎, 1730~1808)는 일찍이 학문에 전심하여 경사(經史)와 산률(算律), 음양(陰陽), 성력(星曆)에 정통하였다. 안민수(安敏修), 권명우(權明佑), 김필형(金弼衡), 이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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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사옹(士雍), 호는 학하(鶴下). 고조할아버지는 류정춘(柳程春)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류헌조(柳憲祚)이다. 할아버지는 류치목(柳致睦)이며, 아버지는 류도봉(柳道鳳)이다. 류지영(柳芝榮)·류난영(柳蘭榮)·류흥영(柳興榮)·류인영(柳仁榮)·류의영(柳義榮) 등의 동생을 두었다. 류기영(柳驥榮, 1825~1880)은 1858년(철종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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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순국자.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승수(承搜), 호는 회은(晦隱)이다. 1832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류진휘(柳進徽)와 어머니 안동김씨(安東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919년 자정 순국한 류신영(柳臣榮, 1853~1919)이 아들이다. 류도발은 서애 류성룡(柳成龍)의 후손으로 당대의 여러 학자들과 교유하면서 무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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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선여(善汝), 호는 석호(石湖).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류이좌(柳台佐)이고, 아버지는 류기목(柳祈睦)이다. 큰아버지 류희목(柳希睦)에게 양자로 들어가 대를 이었다. 류도성(柳道性, 1823~1906)은 할아버지인 류이좌의 훈도를 받았는데, 일찍이 가학(家學)의 정훈(庭訓)을 입어 경사(經史)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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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성원(聖源)·중부(仲溥), 호는 민산(閩山). 아버지는 류진구(柳進球)이다. 류도수(柳道洙, 1820~1889)는 류주목(柳疇睦)의 문인으로, 7세에 곡구(谷口) 류낙기(柳樂祈)에게 수학하였고 이어서 류주목(柳疇睦)의 문하에서 배웠다. 1874년(고종 11) 대원군이 정계에서 물러나는 것은 국가를 위해 옳지 못하다고 주장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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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숙문(叔文), 호는 노애(蘆厓). 아버지는 참의 류관현(柳觀鉉)이고, 참의 류승현(柳升鉉)에게 입양되었다. 류장원(柳長源)이 동생이다. 류도원(柳道源, 1721~1791)은 동생인 류장원과 함께 이상정(李象靖)의 문인으로, 재주가 뛰어나 네 살 때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동생과도 우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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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현민(賢民), 호는 전원(田園). 아버지는 류진익(柳進翼)이고, 둘째아버지인 류진한(柳進翰)에게 입양되어 대를 이었다.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이다. 류도헌(柳道獻, 1835~1909)은 류주목(柳疇睦)의 문인으로, 안동 하회마을에 거주하였다. 과거에 여러 차례 응시하였으나 실패한 후 출사(出仕)의 뜻을 끊고 산림에 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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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천뢰(天賚), 호는 오려(吾廬). 아버지는 류후광(柳後光)이다. 류몽징(柳夢徵)이 동생이다. 류몽서(柳夢瑞, 1680~1750)는 1713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 장의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유고(遺稿)』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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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천서(天瑞), 호는 호곡(壺谷). 할아버지는 형조참의에 제수된 류도현이고, 아버지는 류도원(柳道源)이다. 공조참의를 지낸 큰아버지 류승현(柳升鉉)에게 양자로 갔다. 부인은 스승인 김강한(金江漢)의 딸이다. 류범휴(柳範休, 1744~1823)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37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85년(정조 9) 학행(學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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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서(聖瑞), 호는 기봉(岐峯). 할아버지는 류윤선(柳潤善)이고, 아버지는 류성(柳城)이다. 부인은 영덕정씨(盈德鄭氏)로 참봉 정진(鄭溍)의 딸이다. 외할아버지는 김진(金璡)이고, 외숙부는 김성일(金誠一)이다. 아들은 류우잠(柳友潛)이고, 사위는 정영방이다. 류복기(柳復起, 1555~1617)는 김성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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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인가(仁可), 호는 진산(震山)이다. 1858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대석동에서 태어났다. 안동시 북후면에 묘가 있다. 류봉영은 어린 시절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마을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자랐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등으로 전국에서 의병항쟁이 펼쳐지자, 류봉영은 김상종(金象鍾)이 1896년 3월 25일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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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미숙(美叔), 호는 권옹(倦翁). 아버지는 승훈랑 류공지(柳公智)이고, 어머니는 김승조(金承祖)의 딸이다. 류공지(柳公智)의 둘째 아들 류빈(柳贇, 1520~1591)은 1554년(명종 9) 생원초시에 합격하였고, 1561년(명종 16)에는 진사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으며, 오직 독서와 수양에만 전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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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이능(爾能), 호는 일우(逸愚).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8세손이자 류원지(柳元之)의 6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류성화(柳聖和)이고, 할아버지는 류운(柳澐)이다. 아버지는 류종춘(柳宗春)이며, 생부는 류해춘(柳海春)이고, 외할아버지는 이세진(李世震)이다. 류상조(柳相祚, 1763~1838)는 아버지에게서 가학(家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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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 증조할아버지는 류자온(柳子溫)이고, 할아버지는 류공작(柳公綽)이다.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류중영(柳仲郢)이며, 어머니는 진사 김광수(金光粹)의 딸이다. 아들 수암 류진(柳袗)과 손자 졸재 류원지는 그의 도학(道學)을 계승하였다.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은 1564년(명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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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이능(爾能), 호는 우헌(寓軒). 증조할아버지는 류운룡(柳雲龍), 할아버지는 류기(柳䄎), 아버지는 류원리(柳元履)이다. 부인은 함창(咸昌) 김요익(金堯翊)의 딸이다. 류세명(柳世鳴, 1636~1690)은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1675년(숙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78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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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자우(子遇), 호는 회당(悔堂). 증조할아버지는 류운룡이고, 할아버지는 류기(柳䄎)이다. 큰아버지인 류원직이 후손이 없어 14세 때 양자로 입양되었다. 생부는 류원리이며,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류세철(柳世哲, 1627~1681)은 류원지(柳元之)에게 수학하였다. 1654년(효종 5) 사마시에 합격하여 내시교관과 동몽교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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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경(允卿), 호는 용와(慵窩). 증조부는 류숙(柳橚), 할아버지는 류진휘(柳振輝), 아버지는 류봉시(柳奉時), 어머니는 아주신씨(鵝洲申氏)로 통덕랑 신이징(申以徵)의 딸, 처는 김한벽의 딸이다. 류관현(柳觀鉉)의 아들 류도원(柳道源)을 후사로 삼았다. 류승현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다. 1719년(숙종 45)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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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순국자.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경부(敬夫), 호는 하은(霞隱)이다. 서애 류성룡(柳成龍)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1910년 자정순국한 류도발(柳道發, 1832~1910)이다. 1853년(철종 4) 6월 17일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태어났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방동에 묘가 있다. 류신영은 철저한 풍산류씨의 가학(家學)에 의거하여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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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심(景深), 호는 수촌(水村)이다. 아버지는 안동의진에 참여한 류지호(柳止鎬, 1825~1904)이다. 1844년(헌종 10) 전주류씨 동성마을이었던,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출생하여 1925년 사망하였다. 류연박은 서산 김흥락(金興洛)의 제자로 1882년 과거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이후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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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옥(景玉)이다. 아버지는 안동의진에 참여한 류지호(柳止鎬, 1825~1904)이며, 류연박(柳淵博, 1844~1925)이 형이다. 1857년(철종 8) 전주류씨 동성마을이었던,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태어났다. 류연성은 한문을 수학하며 쓰러져 가는 나라를 늘 걱정하다가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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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이용(而用), 호는 범암(汎庵). 할아버지는 류치윤(柳致潤)이고, 생부는 류장호(柳章鎬)이며,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이휘정(李彙正)의 딸이다. 첫째 부인인 영천이씨(永川李氏) 이재인(李在寅)의 딸에게서 2남 1녀, 둘째 부인인 의성김씨(義城金氏) 김재수의 딸에게서 2남 1녀를 두었다. 류연즙(柳淵楫, 185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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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이자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상지(尙之), 호는 도헌(陶軒). 증조할아버지는 류윤선이고, 할아버지는 류성이다. 아버지는 류복기(柳復起)이며, 어머니는 영덕정씨(盈德鄭氏)로 참봉 정진(鄭溍)의 딸이다. 할아버지 류성이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무실마을에 터를 잡음으로써 무실마을이 전주류씨들의 400여 년 세거지가 되었다. 류우잠의 할아버지가 두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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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응현(應見), 호는 겸암(謙菴). 아버지는 류중영(柳仲郢)이고, 어머니는 안동김씨(安東金氏)로 진사 김광수(金光粹)의 딸이다. 류성룡(柳成龍)의 형이다. 아들 류기(柳䄎), 손자 류원리(柳元履), 증손자 류세철(柳世哲)과 류세명(柳世鳴, 1636~1690)을 두었다. 류운룡(柳雲龍, 1539~1601)은 어릴 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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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초명은 경현(景顯), 자는 장경(長卿), 호는 졸재(拙齋). 할아버지는 류성룡(柳成龍)이고, 아버지는 류여이며, 어머니는 홍세찬의 딸이다. 17세에 김성일(金誠一)의 증손녀인 김시추의 딸과 혼인하였다. 류원지(柳元之, 1598~1674)는 처음 할아버지 류성룡의 슬하에서 훈도를 받았다. 10세 때 류성룡이 세상을 떠나자 계부 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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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유생이자 의병.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수경(受卿), 호는 학산(鶴山).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류정조(柳政祚)이고, 어머니는 청주정씨(淸州鄭氏)로 정내운(鄭來雲)의 딸이다. 류응목(柳膺睦, 1841~1921)은 1864년(고종 1) 동당시(東堂試)에 합격하였고, 1879년(고종 16)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890년(고종 27) 성균관에서 유학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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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사현(士鉉), 호는 학서(鶴棲).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류사춘(柳師春)이고,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로 예조판서를 역임한 이억지(李億之)의 딸이다. 류이좌(柳台佐, 1763~1837)는 어머니가 특이한 꿈을 꾸고 낳아 외할아버지가 “이 아이는 천리구(千里駒: 뛰어나게 잘난 자손을 칭찬하여 이르는 말)로 서애(西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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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숙원(叔遠), 호는 동암(東巖). 아버지는 공조참의를 지낸 류관현(柳觀鉉)이다. 류통원(柳通源)과 류도원(柳道源) 두 형이 있으며, 큰형 류도원은 큰아버지인 류승현에게, 류장원은 류신적(柳信迪)에게 각각 입양되어 대를 이었다. 류장원은 세 아들을 두었으나 모두 사망하여 류통원의 아들인 류천휴(柳川休)를 후사로 삼았다. 류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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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이중(耳中), 호는 수정재(壽靜齋). 할아버지는 류도원(柳道源, 1721~1791)이고, 아버지는 류범휴(柳範休)이다. 류정문(柳鼎文, 1782~1839)은 할아버지 류도원과 종조할아버지 류장원(柳長源)에게 수업하였고, 이상정(李象靖)을 사사하였다. 1838년(헌종 4) 학행(學行)으로 추천되어 혜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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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순백(淳伯), 호는 삼산(三山). 할아버지는 류상시(柳相時)이고, 아버지는 류석구(柳錫龜)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로 이천린(李天麟)의 딸이다. 류정원(柳正源, 1703~1761)은 1729년(영조 5) 생원시를 거쳐 1735년(영조 1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나 부친상을 당하여 오랫동안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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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계유(季裕). 아버지는 류빈(柳贇)이다.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에서 태어났다. 류종개(柳宗介, 1558~1592)는 1579년(선조 12)에 진사가 되었고, 훈도로서 1585년(선조 18)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어 교서관정자가 된 뒤 성균관전적 관직 생활을 하다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고향에 돌아와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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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경문(景文)·희범(希范), 호는 파산(巴山). 할아버지는 류자온(柳子溫)이고, 생부는 참봉을 지낸 류공석(柳公奭)이며, 어머니는 권응삼(權應參)의 딸이다. 후사가 없는 류공계(柳公季)에게 입양되어 대를 이었다. 부인은 이문량(李文樑)의 손녀이다. 류중엄(柳仲淹, 1538~1571)은 류운룡(柳雲龍)·류성룡(柳成龍)·황준량(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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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언우(彦遇), 호는 입암(立巖). 증조할아버지는 류소(柳沼)이고, 할아버지는 류자온(柳子溫)이다. 아버지는 간성군수를 지낸 류공작(柳公綽)이며, 어머니는 이조참의에 증직된 이형례(李亨禮)의 딸이다. 아들은 류운룡(柳雲龍)과 류성룡(柳成龍)이다. 류중영(柳仲郢, 1515~1573)은 1540년(중종 3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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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오(重吾), 호는 괴애(乖厓). 아버지는 류희잠(柳希潛)이다. 류지(柳榰, 1626~1701)는 백졸암 류직(柳㮨)에게 수학하였다. 1646년(인조 24)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654년(효종 5)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스승이자 사촌 형인 류직이 영남 유생을 대표하여 율곡 이이(李珥)와 우계 성혼(成渾)의 문묘 종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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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원좌(元佐), 호는 세산(洗山). 정재 류치명(柳致明, 1777~1861)의 아들이다. 1825년(순조 25)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출생하여 1904년(고종 41)에 사망하였다. 류지호는 한문을 수학하며 1873년 음보(蔭補)로 가감역(假監役)에 제수되었고,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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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정견(庭堅), 호는 백졸암(百拙庵). 할아버지는 류복기(柳復起)이며, 아버지는 류우잠(柳友潛)이다. 5남 1녀 가운데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류직(柳㮨, 1602~1662)은 29세인 1630년(인조 8)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서두르지 않고, 서사(書史)를 탐독하여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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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계화(季華), 호는 수암(修巖). 증조할아버지는 간성군수를 지낸 류공작(柳公綽)이고, 할아버지는 류중영(柳仲郢, 1515~1573)이며,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柳成龍)이다. 류진(柳𥘼, 1582~1635)은 임진왜란 뒤 아버지에게서 글을 배우고 1610년(광해군 2) 사마시에 장원하였으나, 1612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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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계팔(啓八), 호는 만산(晩山)이다. 1858년(철종 9)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에서 태어나 1912년 사망하였다. 류창식은 동산 류인식(柳寅植)과 사촌간이며, 삼산 류정원(柳正源)의 후손으로 삼산종택(三山宗宅)의 종손이다. 그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변복령 등으로 인하여 전국적으로 의병항쟁이 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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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숙구(叔久), 호는 수재(守齋). 증조할아버지는 류정원(柳正源, 1703~1761)이고, 할아버지는 통덕랑 류만휴(柳萬休)이며, 아버지는 호고와(好古窩) 류휘문(柳徽文, 1773~1827)이다. 류치교(柳致喬, 1790~1862)는 가세가 궁박하였으나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읽는 것을 일상사로 하면서 배고픔이나 추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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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전주(全州). 초자(初字)는 내봉(來鳳)·명수(鳴叟), 호는 소은(小隱). 생부는 류상문(柳相文)이고, 계부는 류두문(柳斗文)이다. 류치구(柳致球, 1793~1854)는 1827년(순조 27)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합격을 빌미로 뇌물을 요구하는 이를 보고 관직에 환멸을 느껴 낙향하였다. 인근에 살던 권이복(權以復), 서활(徐活) 등과 학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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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도준(道峻), 호는 근암(近庵). 아버지는 류혼문(柳渾文)이다. 류치덕(柳致德, 1823~1881)은 큰할아버지인 류건휴(柳健休)에게 수학하였고 류치명(柳致明)의 문하에 들어가 학업을 성취하였다. 이기사칠설(理氣四七說)과 태극동정지기(太極動靜之機)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여 나름의 일가견을 이루었다. 또 예학(禮學)에도 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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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백(誠伯), 호는 정재(定齋). 할아버지는 류성휴(柳星休), 아버지는 류회문(柳晦文),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외증조부는 이상정(李象靖)이다. 아들이 세산(洗山) 류지호(柳止鎬), 손자가 수촌(水村) 류연박(柳淵博), 증손자가 일창(一滄) 류동시(柳東蓍), 고손자는 류광준(柳光俊)이다. 류치명은 외가인 안동부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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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사(仲思), 호는 만산(萬山). 증조부는 노애(蘆厓) 류도원(柳道源), 할아버지는 호곡(壺谷) 류범휴(柳範休), 아버지는 류노문(柳魯文)이다. 류치엄은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의 문인으로, 종제(從弟) 류치유(柳致游)와 더불어 스승 류치명의 유고를 수집해 세 차례나 필사하여 문집을 완성하였다. 퇴계학을 충실히 계승한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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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전주. 자는 소유(小游), 호는 역암(櫟庵)이다. 증조부는 노애(蘆厓) 류도원(柳道源), 할아버지는 호곡(壺谷) 류범휴(柳範休), 아버지는 수정재(壽靜齋) 류정문(柳鼎文)이다. 류치유는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844년(헌종 10)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평생 도학(道學)에 전심하였으며 문장에도 능하였다. 후진 양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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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탁수(濯叟), 호는 동림(東林). 고조부는 류태제(柳台齊), 증조부는 류호원(柳浩源), 할아버지는 류정휴(柳鼎休)이며, 아버지는 류후문(柳後文),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김현운(金顯運)의 딸이다. 류치호는 안동부(安東府)에서 살았으며 8세에 「연적(硯滴)」을 읊어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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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운(景運), 호는 서파(西坡). 아버지는 동산 류정진(柳定鎭), 어머니는 예천권씨(醴泉權氏)로 권교상(權敎相)의 딸이다. 아들은 독립운동가인 동산 류인식(柳寅植)이다. 1841년(헌종 7)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에서 출생하여 1924년 사망하였다. 현재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에 묘가 있다. 류필영은 류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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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은로(殷老), 호는 동와(同窩). 고조부는 류정원(柳正源), 아버지는 류치규(柳致奎)이다. 류형진은 문장에 능하였으며 왕노재(王魯齋)의 「만물조화론(萬物造化論)」에 대한 후론(後論)을 지어 수륙동식물, 일월도수(日月度數), 절기(節氣)의 추배(追配) 등에 대해 많이 교정하였다. 문집으로 『동와집(同窩集)』이 있으며, 저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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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군회(君晦), 호는 주일재(主一齋). 고조부는 류성룡(柳成龍), 할아버지는 류원지(柳元之), 아버지는 류만하(柳萬河)이다. 류후장은 류원지, 류세명(柳世鳴), 홍여하(洪汝河)에게 배웠다. 18세에 홍여하에게서 수학할 때 스승이 류후장의 『주역(周易)』에 대한 조예가 깊다고 탄복하였다. 1689년(숙종 15) 학덕으로 천거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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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회(公晦). 호는 호고와(好古窩). 할아버지는 류정원(柳正源), 아버지는 류만휴(柳萬休),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김현동(金顯東)의 딸이다. 류휘문은 9세에 중부(仲父) 류명휴(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류장원(柳長源), 남한조(南漢朝), 정종로(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삼산집(三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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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안동시 임동면 마령2리 1075번지 일대에 있다. 임하호에 잠기기 이전의 지형을 보면 임동면 소재지에서 대곡천을 끼고 뻗어 있는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약 3㎞ 올라가면 도로 오른쪽에 음지마을이 있고, 음지마을 쪽으로 약 200m 올라가 산 비탈면에 2기의 고인돌이 11m 간격으로 서 있었다. 1987년부터 1989년까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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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적. 마애리 구석기 유적은 풍산읍 풍산평야의 서남쪽 끝에 있는 마애마을 동남쪽의 낙동강변에 위치한다. 유적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은 ‘S’자 모양으로 굽이치는데, 이로 인해 유적이 있는 일대는 오랜 기간 비옥한 토양이 퇴적되어 하안단구 지층을 형성하면서 사람들이 정착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왔다. 2007년 시굴 당시 구석기시대로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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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막곡리 고분군은 세 곳으로 나누어진다. 막곡리 고분군1은 속칭 방갓골 뒤쪽 능선에 30여기의 고분이 반달 모양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곳은 방갓골 내에 있는 의성김씨 율리 종택(義城金氏栗里宗宅, 중요민속문화재 제181호)에서 서쪽으로 400m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은 송야천과 그 좌우 경작지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막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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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간행된 안동 출신의 학자 이숙량의 시문집. 이숙량(李叔樑, 1519~1592)은 이현보(李賢輔, 1467~1555)의 아들로 1543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대과에는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퇴계 이황(李滉)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는 한편, 금보(琴輔) 오수영(吳守盈, 1521~1606) 등과 더불어 선성삼필(宣城三筆)로 불렸다. 대구 인근에 연경서원(硏經書院)을 창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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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매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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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금보의 문집. 1891년(고종 28)에 매헌(梅軒) 금보(琴輔, 1521~1585)의 10세손인 금우열(琴佑烈)이 편집, 간행하였다. 본서의 저본은 안동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다. 4권 2책의 목판본으로 표제는 매헌선생문집(梅軒先生文集)이다. 행자(行字)는 10행 18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기는 가로 16.4㎝, 세로 18.4㎝이다. 어미는 상하이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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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암각서. 목석거는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의 7세손인 김학순(金學淳, 1767~1845)이 안동부사로 있으면서 새긴 암각서이다. 김상헌은 병자호란 후 현재의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로 물러나 청원루(淸遠樓)에서 생활하다가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로 거처를 옮기고 초가집을 지어 ‘목석거 만석산방(木石居萬石山房)’이라 이름하고 은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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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원리에 있는 조선 전기 목은 이색의 초상화. 「목은 영정」은 조선 전기에 그려진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인 목은 이색(李穡, 1328~1396)의 영정이다. 이색은 문하에 권근, 변계량 등 많은 학자를 길러내어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하였던 만큼 전국 여러 곳에 초상이 봉안되어 있다. 서울 수송동 목은 영당, 충청남도 서천군 문헌서원, 예산군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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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에 간행된 안동 출신의 문신 이안도의 문집. 이안도(李安道, 1541~1584)는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의 적손(嫡孫)으로 어려서부터 이황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천거를 받아 목청전참봉(穆淸殿參奉), 풍저창부봉사(豊儲倉副奉事), 상서원직장(尙瑞院直長) 등을 지냈다. 『몽재집(蒙齋集)』은 도산서원에서 간행되었다고 하는데, 기타 간행 과정 및 시기를 알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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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 안동 등지에서 소론 이인좌와 북인 정희량 등이 영조와 노론 세력을 타도하기 위하여 일으킨 난. 무신란(戊申亂)은 1728년(영조 4) 무신년에 일어나 무신란이라 하는데, 충청도에서는 이인좌(李麟佐)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이인좌의 난, 영남에서는 정희량(鄭希亮)이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정희량의 난이라고도 한다. 박필현 등 소론 과격파는 경종의 갑작스런 죽음과 영조의 즉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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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진동이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당시 경상도의 의병들에 대한 기록을 모은 책. 이인좌의 난이 일어난 지 60년 뒤인 1788년, 정조는 안동의 의병장 류승현(柳升鉉)과 권만(權萬)에게 관작을 내리고 경상감사 등 관원들에게 의병의 사적을 조사하여 보고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러나 경상감사 등 관원들이 적극성을 보이지 않자, 이진동이 도내 각지의 인사들과 함께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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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정유일의 시문집. 1799년(정조 23) 권사협(權思浹)·김희분(金熙奮)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본서의 저본은 안동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다. 6권 3책의 목판본으로 표제는 문봉선생문집(文峯先生文集)이다. 행자(行字)는 10행 20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기는 가로 17.6㎝, 세로 22이다. 어미는 상하이엽화문어미(上下二葉花紋魚尾)이다. 권두에 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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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안동 지역에서 특정 개인이나 여러 사람의 글을 모아 편집한 책. 문집(文集)은 글자 그대로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그 유래는 중국의 완효서(阮孝緖)가 편찬한 『칠록(七錄)』 가운데 문집록(文集錄)을 두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역대 중국의 도서목록에는 집부(集部)를 두고 문집을 그 안에 수록하였다. 우리나라는 대체로 중국의 예를 준용하였다. 그러나 문집은 특정 개인의 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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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2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이재의 시문집. 밀암(密庵) 이재(李栽, 1657~1730)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 →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로 이어지는 퇴계 학통을 전수하여 외손인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1781)에게 이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1732년(영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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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선사시대에 바위에 새기기, 쪼기 등의 수법으로 그린 그림. 바위그림은 일반적으로 암각화라고도 부른다. 바위그림은 바위에 음각 또는 양각으로 새기거나 안료를 이용하여 그린 그림을 말하는데 한국에는 아직 안료를 이용한 그림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암각화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선사시대의 바위그림은 현재 약 17기의 유적이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바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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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장. 박인화는 1860년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대곡리에서 태어났다. 1908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66번지 국립서울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박인화는 1905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침탈되어 식민지나 다름없는 지경에 이르자 나라가 위기에 처했음을 절감하고 의병을 일으켜 30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예안·안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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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배방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완문비. 완문(完文)은 조선 시대에 민간의 청원이나 진정에 대하여 해당 관아에서 발급하던 증명 또는 허가 문서를 가리킨다. 그리고 비석이 세워진 마을은 원래 팽나무재이 또는 장승배기라고 하였는데, 이후 마을에 샛길을 내면서 경상도 도백이 비석을 세워 ‘비석거리’라고도 하였다. 배방리 완문비(杯芳里 完文碑)는 1800년(정조 24)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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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흥해(興海). 자는 여우(汝友), 호는 임연재(臨淵齋). 할아버지는 배헌(裵巚), 아버지는 배천석(裵天錫), 어머니는 정세호(鄭世豪)의 딸이다. 배삼익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으며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558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564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성균관학유로부터 시작하여 성균관사예 사성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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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흥해(興海). 자는 군필(君弼), 호는 괴담(槐潭). 여말선초 두 왕조를 섬기지 않은 백죽당(栢竹堂) 배상지(裵尙志)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배행목(裵行睦), 아버지는 배집(裵緝),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경여(權慶餘)의 딸이다. 배상열은 1760년 안동부(현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석평2리 녹동)에서 태어났다. 5~6세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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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안동 지역에 정착한 문신. 본관은 흥해(興海). 호는 백죽당(栢竹堂). 고조부는 고려태사무열공(高麗太師武烈公) 배현경(裵玄慶)의 7세손으로 위위승동정(尉衛承同正) 배약경(裵若卿), 증조부는 보승별장(保勝別將)을 지낸 배유손(裵裕孫), 할아버지는 전리판서(典理判書)인 배영지(裵榮至), 아버지는 흥해군(興海君)에 봉해진 배전(裵詮), 어머니는 일직손씨(一直孫氏)로 정평공(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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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 흥해(興海). 자는 성함(性涵), 호는 수간(守磵). 퇴계의 급문제자 임연재(臨淵齋) 배삼익(裵三益)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배한주(裵翰周), 어머니는 재령이씨(載寧李氏)이다. 둘째아버지는 배익주(裵翼周), 둘째어머니는 청주정씨(淸州鄭氏)이다. 12세 때 중부에게 입양되었다. 배선원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영민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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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흥해(興海). 자는 명서(明瑞). 호는 금역당(琴易堂)·장륙당(藏六堂). 아버지는 관찰사(觀察使)를 지낸 배삼익(裵三益)이다. 배용길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으며 김성일(金誠一)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이어 류성룡(柳成龍), 조목(趙穆), 남치리(南致利) 등에게도 사사하였다. 1575년(선조 8)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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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장은(章隱), 호는 유암(楡巖)·서호자(西湖子). 할아버지는 배응경(裵應褧), 아버지는 전라도도사 배상익(裵尙益),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김용(金涌)의 딸이다. 양부는 감찰공(監察公) 배인지(裵紉芷), 양모는 의성김씨(義城金氏)이며 배인지에게 입양되었다. 집안은 충의(忠義)로서 명성이 있었는데, 할아버지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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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흥해(興海). 자는 수약(守約), 호는 삼여당(三餘堂). 고려 말에 안동의 금계촌(金溪村, 현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정착한 배상지(裵尙志)의 후손이다. 배상지의 7세손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인 배삼익(裵三益)의 5세손이다. 고조부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을 하였던 배용길(裵龍吉), 아버지는 배면(裵冕)으로 이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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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흥해(興海). 초명은 배환(裵紈). 고려태사(高麗太師) 배현경(裵玄慶)의 8세손이다. 고조부는 자문보승(紫門保勝)인 배유손(裵裕孫), 증조부는 전리판서(典理判書)인 배영지(裵榮至), 할아버지는 공민왕 때 흥해군(興海君)에 봉해진 배전(裵詮), 아버지는 백죽당(栢竹堂) 배상지(裵尙志),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희정(權希正)의 딸이다. 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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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 구봉령의 문집. 백담(栢潭) 구봉령(具鳳齡, 1526~1586)은 처음 외종조부 권팽로(權彭老)에게 『소학(小學)』을 배워 문리를 얻고, 1545년 이황(李滉)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시문에 뛰어나 기대승(奇大升)과 비견되었는데, 「혼천의기(渾天儀記)」를 짓는 등 천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만년에 정사(精舍)를 세워 후학들과 경사(經史)를 토론하였다.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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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자품리 광흥사에 소장된 고려 말 불경. 『백지묵서묘법연화경(白紙墨書妙法蓮華經)』은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는 『묘법연화경』이다. 제작 시기는 1389년(창왕 1)으로 장씨부인(張氏婦人)이 발심(發心)하여 작고한 부모와 일체 중생을 위해 사성(寫成)한 개인 공덕경(功德經)이다. 본서의 저본은 국립경주박물관 소장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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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개백(開伯), 호는 동호(東湖). 할아버지는 변희예(邊希乂), 아버지는 변광(邊廣),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철경(權哲經)의 딸이다. 할아버지 변희예가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종형(從兄) 집의 변희리(邊希李)와 함께 영남으로 낙향한 이래 후손들이 안동에 세거하였다. 변영청은 안동부(安東府) 금계촌(金溪村, 현 경상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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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권구의 시문집. 1797년(정조 21) 사인(士人) 김필형(金弼衡)의 발의로 권구(權榘, 1672~1749)의 외손인 류일춘(柳一春)이 주도하여 병산서원에서 목판본 원집 8권, 부록 2권으로 문집을 간행하였다. 이때 이종수(李宗洙)가 감교(勘校)하였고 류규(柳氵+奎)와 류상춘(柳象春)이 교정본을 모아서 정리하였으며, 류상춘이 정고본(定稿本)을 정사(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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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년 이후 안동을 비롯한 영남 유림이 호파(虎派)와 병파(屛派)로 나뉘어 전개한 쟁단[鄕戰]. 1620년(광해군 12) 퇴계 이황을 주향으로 하는 여강서원(廬江書院: 1676년 호계서원으로 바뀌어 사액을 받음)을 건립하면서 종향자인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 가운데 누구의 위패를 퇴계의 왼편에 둘지를 두고 문제가 발생하였다. 즉 ‘애학(厓鶴)’이냐, ‘학애(鶴厓)’냐 하는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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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동 지역에서 사용한 통신 수단. 봉수는 군사적 목적에 의해 설치한 통신 수단으로 변방의 다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설치되었다. 수십 리마다 눈에 잘 띄는 산꼭대기에 봉수대를 두어,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써 신호를 보냈다. 평상시에는 횃불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3개, 적이 국경을 침범하면 4개, 전투가 벌어지면 5개로 각각 신호하여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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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봉정사에 있는 조선 후기 동종. 봉정사 동종은 1813년(순조 13)에 만들어진 것으로, 크기는 높이 67㎝, 음통(音筒) 높이 22㎝, 종 입구 지름 55㎝이다. 2001년 6월 26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04호로 지정되었다. 2009년 현재 봉정사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어깨 부분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중간 부분부터 종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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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봉정사에 있는 조선시대 봉정사 관련 유물. 봉정사 소장 유물로는 책판(冊板) 12종, 탱화 2탱, 고승 진영(眞影) 9점 등이 있다. 2001년 11월 1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28호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 현재 봉정사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1. 책판 봉정사에 소장되어 있는 책판은 12종 601판으로 다음과 같다. 1) 「기신론소필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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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간행된 안동 출신의 학자 남치리의 문집. 남치리(南致利, 1543~1580)는 16세에 처음 김언기(金彦璣, 1520~1588)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다가 21세에 금난수(琴蘭秀, 1530~1604)와 함께 이황(李滉, 1501~1570)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닦았다고 한다. 이황이 사망한 이후, 스승의 유저(遺著)인 『이학통록(理學通錄)』과 『계몽전의(啓蒙傳疑)』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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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동 지역에서 이황과 기대승이 사단(四端)·칠정(七情)과 관련하여 8년 동안 논변한 일. 사단칠정논쟁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과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이 사단칠정에 관하여 1559년부터 1566끼지 8년 동안 편지로 논변한 일을 말한다. 이를 ‘사칠’·‘사단칠정’이라고도 한다. 사단칠정 논변은 1559년 1월 5일에 퇴계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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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2년 안동을 비롯한 영남 유생들이 사도세자의 신원을 요구한 상소 운동. 1749년(영조 25)부터 15세의 나이로 대리청정을 하던 사도세자는 1762년(영조 38) 나경언의 고변(告變)으로 뒤주에서 아사하는 참변을 당하였다. 사도세자가 죽고 난 후 영조는 세자의 위호를 회복하고 직접 시호를 사도(思悼)라고 지었으며, 세손(世孫)에게는 이 문제를 다시는 언급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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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안동을 비롯한 영남 유림들이 사도세자의 신원과 추존을 요구한 상소 운동. 안동을 중심으로 한 영남 유림은 1792년(정조 16) 사도세자 신원 만인소를 올렸지만, 정조가 신중론을 펼치면서 신원에 실패하였다. 이후 영남의 남인들은 정조의 사망과 노론 벽파의 전횡으로 정계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사도세자 탄신 120주년을 맞이하여 영남의 남인들은 다시 사도세자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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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 유학자 조목이 스승 이황에게서 받은 편지를 엮은 책. 안동 예안에서 살았던 조목(趙穆, 1524~1606)은 15세 때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의 문하에 들어가 배우기 시작했으며, 18세에 생원이 된 뒤 잠깐 성균관에서 지낸 시기를 제외하고는 스승 이황이 죽을 때까지 가까이 모시고 배웠다. 이 자료는 조목의 나이 27세인 1550년부터 이황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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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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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산야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산야리 고인돌 떼는 안동시 와룡면 산야리 보토골마을의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이 마을은 산야리에서 가장 큰 마을인 산골마을에서 동쪽으로 1㎞ 정도 떨어진 곳이다. 보토골마을은 안동댐으로 이루어진 안동호의 가장자리에 있으며, 큰대골과 작은대골 사이로, 동쪽으로 낮아지는 경사면이다. 고인돌은 마을 아래 물가의 평지에 있다. 산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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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류정원의 시문집. 류병문(柳炳文)이 지은 류종문(柳宗文)의 제문에, 문고(文稿)의 일을 마치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겼다고 한 것에서 이전부터 삼산(三山) 류정원(柳正源, 1703~1761)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작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뒤를 이어 증손 류치묵(柳致默)이 주관하여 중본(重本)을 편차하고 종숙인 소은(素隱) 류병문(柳炳文)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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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서지리에 있는 기암(奇巖). 17세기 초에 편찬된 안동 지역 지방지인 『영가지(永嘉誌)』「고적조(古跡條)」에는 “삼첩석은 부사(府司)의 문안에 있고 형태는 보릿짚 삿갓 같다. 부기(府基)의 주맥(主脈)을 누르기 위한 것이며, 이를 건드리면 관재(官災)를 입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첩석은 서지리 서갓마을(서간마을) 뒷산에 위치하고 있다. 서갓마을은 안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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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 유학자 류장원이 편찬한 예서(禮書). 동암(東巖) 류장원(柳長源, 1724~1796)은 안동의 동부 임동면 무실마을[水谷]에서 태어났다. 공조참의를 지낸 류관현(柳觀鉉, 1692~1764)의 아들이다. 중부인 류승현(柳升鉉)과 김낙행(金樂行, 1708~1766)에게 배운 뒤에, 18세기 영남학파를 이끌었던 이상정(李象靖, 1711~1781)의 문하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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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간행된 고려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우탁의 사적을 기록한 책. 우탁(禹倬, 1263~1342)은 원에서 주자학을 들여온 안향의 문인이다. 충목왕 때 성균관좨주를 지내기도 했다. 우탁은 본시 단양 출신이었으나, 만년에 안동 예안에 정착하여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우탁의 사적은 『고려사(高麗史)』에 실린 몇 가지 사실을 제외하고는 알려진 것이 그다지 많다. 이에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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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김흥락의 문집.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 1827~1899)은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11세 주손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 학봉 김성일,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손재(損齋) 남한조(南漢朝),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으로 이어지는 학맥을 잇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남인 학자이다. 인릉참봉, 사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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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서삼리에 있는 고려시대 고분. 고려 고분의 봉토는 대체로 방형으로 지금까지 조사된 지하 유구는 네 벽을 한 장의 판석으로 세워 만든 돌덧널이 대부분이다. 돌덧널의 네 벽과 천장 등에 벽화를 그린 고분은 명종 지릉, 수락암동 1호분, 법당방 고분, 둔마리 고분을 비롯하여 여러 기가 있다. 이 중에서도 서삼리 고려벽화고분은 고려시대의 벽화가 그려진 굴식 돌덧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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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3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류성룡의 시문집. 『서애집(西厓集)』은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이 죽은 지 27년 만인 1633년(인조 11)에 막내아들 수암 류진(柳袗)이 합천군수로 있을 때 해인사(海印寺)에서 간행하였다. 그 후 1958년에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초간본을 대본으로 영인하였고, 1991년에는 서애선생기념사업회에서 중간본과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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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서지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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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조선시대 암각서. 석간대전별시는 1562년 3월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 제자 구암(龜岩) 이정(李楨)과 이별하면서 써 준 당시(唐詩) 구절을 을미년 2월 도산서원(陶山書院) 옆에 있는 암벽 가운데 경치가 뛰어난 석간대(石澗臺)에 새긴 것이다. 이후 시를 새겼던 바윗돌이 물에 잠기게 되어 현재의 위치에 모사하여 옮겨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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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돌을 이용하여 칼, 도끼 따위의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석기시대는 도구의 재료를 기준으로 구분할 때 가장 오랜 시기로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로 나눈다. 구석기시대는 뗀 석기를 주로 사용하였고 신석기시대는 간 석기를 주로 사용하였다. 한국의 신석기시대는 뗀 석기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고, 토기도 처음 만들어졌다. 안동 지역에서는 아직 신석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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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도진리 석류동에 있는 조선시대 암각서. 석류동(石溜洞)이란 이름은 이수걸(李秀杰, 1877~1963)이 지은 『석류동기(石溜洞記)』에 따르면 “예전에는 이곳을 ‘석퇴’라 했는데, 빼어난 경치에 비해 이름이 걸맞지 않으므로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삽삽추우중(颯颯秋雨中) 천천석류사(淺淺石溜瀉)’라는 구절에서 따왔다.”라고 한다. 석류동문(石溜洞門)은 안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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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에서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를 통칭하는 시대의 역사와 문화. 문자 기록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는 나라와 지역마다 다르며, 또 한 나라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다르다. 이것은 역사의 발전 과정이나 속도가 나라나 지역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선사시대는 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 등 세 시기로 구분하며, 석기시대는 다시 구석기시대와 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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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 객사. 선성현 객사는 조선 후기 옛 예안현 관아 건물의 일부이다. 선성은 예안의 별칭이다. 객사는 객관(客館)이라고도 하였다. 객사 건물의 일반적인 구조는 건물의 중앙에 위치하는 정당(正堂)과 좌우의 익사(翼舍)로 구성된다. 정당에는 전패(殿牌: 임금을 상징하는 나무패로, ‘전(殿)’자를 새김)를 안치하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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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광산김씨 설월당공파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기 전적 및 고문서. 설월당 종택 소장 전적 및 고문서는 광산김씨(光山金氏) 예안파(禮安派) 내 설월당공파(雪月堂公派)의 소장 전적 및 고문서이다. 설월당 김부륜은 퇴계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55년(명종 10) 사마시에 합격하여 1572년(선조 5)에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집경전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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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김부륜의 문집. 설월당(雪月堂) 김부륜(金富倫, 1531~1598)의 6세손 김시찬(金是瓚)이 편집한 것을, 1926년 10세손 김제면(金濟冕)이 간행하였다. 저본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이다. 6권 3책의 석인본으로 표제는 설월당선생문집(雪月堂先生文集)이다. 행자(行字)는 10행 20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기는 가로 16.2㎝, 세로 19.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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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국화(國華), 호는 오음(梧陰). 할아버지는 부용당(芙蓉堂) 성안의(成安義), 아버지는 계서(溪西) 성이성(成以性), 어머니는 봉화금씨(奉化琴氏)로 망월헌(望月軒) 금개(琴愷)의 딸, 처는 여주이씨(驪州李氏)로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5세손으로 직장 이돈(李墩)의 딸이다. 여주이씨와의 사이에 3남 3녀를 두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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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정보(精甫), 호는 부용당(芙蓉堂). 증조부는 성익동(成翼仝), 할아버지는 성윤(成胤),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성적(成績), 어머니는 장연노씨(長淵盧氏)로 노사영(盧士英)의 딸이다. 성안의는 창녕의 성산리(현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태어났다. 영주의 이산 신암리로 옮겨 살다가 만년에 봉화 물야의 가평리로 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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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여습(汝習), 호는 계서(溪西). 증조부는 성륜(成倫), 할아버지는 성적(成績), 아버지는 승지 성안의(成安義), 어머니는 예안김씨(禮安金氏)로 호조참판을 지낸 김계선(金繼善)의 딸이다. 성이성은 학업에 열중하여 13세 때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에게 보이니 크게 될 인물이라 하였다. 이후 학문에 더욱 정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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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금난수의 시문집.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 1530~1604)는 예안 출신의 학자로 손위 처남인 월천(月川) 조목(趙穆)의 권유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 들었다. 이황과는 인척 관계에 있다. 학행을 겸한 청빈한 선비이자 자연을 완상하는 감성을 아우른 인물로 임진왜란 때에는 수성장(守城將)으로서 향병을 모으고 군량을 조달하는 등 국난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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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 간행된 안동 출신 유학자 이황이 성학(聖學)의 개요를 그림으로 설명한 책. 1568년 12월 조정에 나가 있던 퇴계 이황이 당시 17세의 소년 임금 선조에게 차자와 함께 「태극도」 등 10개의 도해와 함께 유학의 주요 사상을 성학(聖學, 성인의 학문)이라는 주제로 모아 해설한 저작이다. 이것을 받아본 선조는 병풍으로 만들어 곁에 두고 보겠다고 했는데, 이황이 세상을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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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용상동에 있는 고려시대 포곡식 산성. 성황당 토성과 관련한 기록은 안동 지역 향토지인 『영가지(永嘉誌)』와 『안동향토지(安東鄕土誌)』에서 찾을 수 있다. 『영가지』에는 “성황당 토성은 부(府)의 동쪽 5리 지점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안동향토지』에는 “성황당 토성 터는 지금 용상동 뒤 성황산에 있으며, 동편은 오로봉에 감싸고, 서남에는 낙동강이 둘러, 부를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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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소산리 고인돌 떼는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에 있는 삼구정(三龜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3호)과 그 주변에 있다. 5기의 고인돌로, 산읍 안교리에서 916번 국도를 따라 가면 소산리 소산마을(본동)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삼구정은 소산마을 동남쪽 끝에 위치한다. 고인돌은 모두 5기인데, 이 중 3기(1·2·3호)는 삼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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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간행된 안동 출신 이광정의 시문집. 소산(小山) 이광정(李光靖, 1714~1789)은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동생으로 형과 함께 안동시 일직면 광음리에 위치한 고산서원(高山書院)에 배향되어 있다. 1810년 이후 1834년 이전인 순조 연간에 이병원(李秉遠), 이병운(李秉運) 등의 종손(從孫)이 중심이 되어 문집을 간행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도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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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예안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유(德裕), 호는 추천(鄒川). 고려의 문신 손극훈(孫克訓)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군자감정을 지낸 손응(孫凝), 어머니는 조광원(趙光遠)의 딸이다. 손영제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61년(명종 16)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569년(선조 2) 예안현감(禮安縣監)이 되어 혜정(惠政)을 베풀고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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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직(一直). 자는 인보(引甫), 호는 면재(勉齋)·격재(格齋). 정평공(靖平公) 고조부는 손홍량(孫洪亮), 증조부는 좌대언(左代言)을 지낸 손득수(孫得壽), 할아버지는 한성판윤 손영유(孫永裕), 아버지는 장흥고사(長興庫使) 손관(孫寬), 어머니는 경주김씨(慶州金氏)로 김흡(金翕)의 딸, 처는 진주하씨(晉州河氏)로 광흥승(廣興丞) 하숙(河潚)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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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직(一直). 호는 죽석(竹石). 아버지는 합문지후(閤門祗侯)를 지낸 손방(孫滂)이다. 본래의 성은 순씨(筍氏)였으나 현종의 이름을 휘하기 위해 5대조 손응(孫凝) 때 손씨(孫氏)로 고쳤다. 손홍량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다. 충선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충숙왕과 충혜왕 양조에 벼슬하고 1348년(충목왕 4) 첨의평리(僉議評理)로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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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석비. 손홍량은 호는 죽석(竹石)이고,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시호는 정평(靖平)으로 일직손씨의 시조이다. 고려 충선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1349년(충정왕 1) 추성보절좌리공신이 되고 판삼사사에 올랐으며, 1362년(공민왕 11) 홍건적의 난을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왕에게서 ‘일직(一直)한 사람’이란 칭찬과 함께 궤장(机杖)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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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송리리 고분군은 일직면 송리리, 속칭 ‘핏골’의 서쪽 능선과 동쪽 능선에 있는데, 서쪽 능선에 있는 것을 송리리 고분군1, 동쪽의 것을 송리리 고분군2로 구분한다. 송리리 고분군1은 현마의 북동쪽으로, 남으로 낮아지는 능선에 분포하는데, 해발 150~172m에 해당한다. 송리리 고분군2는 현마의 동쪽으로, 서남으로 낮아지는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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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에 있는 삼국시대 봉수 터. 송리리 봉수지(松里里 烽燧址)는 일직면 송리1리 동북쪽에 있는 야산의 정상부 솔마골과 향교골 사이에 있다. 야산 정상부에는 송리산성이 있는데, 봉수대가 위치한 곳은 산성의 동남쪽 끝 해발도고 약 293m 지점이다. 봉수대의 규모나 형태를 알 수 있는 구체적인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봉수대는 편평한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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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송리 뒷산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 산성. 송리산성의 구체적인 건립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토기편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7세기 초에 편찬된 안동 지역 지방지(地方誌)인 『영가지(永嘉誌)』에 관련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는 산성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동시 일직면 송리 속칭 ‘현마’ 뒷산에 있는데,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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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권우의 문집. 1811년(순조 11) 송소(松巢) 권우(權宇, 1552~1599)의 7세손 권달충(權達忠)이 편집, 간행하였다. 저본은 안동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다. 4권 2책의 목판본으로 표제는 송소선생문집(松巢先生文集)이다. 행자(行字)는 10행 21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기는 가로 15.2㎝, 세로 19.4㎝이다. 어미는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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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이우의 문집. 『송재집(松齋集)』은 원래 송재(松齋) 이우(李堣, 1486~1521)가 죽은 뒤 조카인 이황(李滉)이 그의 저술 가운데 남아 있던 「관동행록(關東行錄)」과 「귀전록(歸田錄)」 등의 시를 모아 필사본으로 전하던 것을 이황의 제자이며 저자의 외종손인 오운(吳澐)이 1584년(선조 17) 충주목사로 있을 때 간행한 것으로, 이것이 초판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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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용상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묘비. 안동에서 10리쯤 떨어진 송제(松堤)가 있던 곳은 홍수의 피해가 심하였다. 1605년(선조 38) 대홍수가 났을 때 제방이 유실되자, 당시의 부사인 백암(栢巖) 김륵(金玏)이 읍민들 및 전 현감 이정회(李庭檜)와 함께 힘을 합쳐 큰물을 방어하고자 제방을 쌓으면서 세운 비이다. 송제비(松堤碑)는 용상동 선어대 주유소 옆 도로변 절벽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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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송천동 고인돌 떼는 안동에서 동쪽으로 약 7㎞ 정도 떨어진 송천동 솔뫼마을에 위치한다. 총 7기가 있는데 1기는 민가 마당에 있고, 나머지 6기는 민묘를 둘러싸고 있다. 민묘를 둘러싼 6기는 민묘 봉분을 중심으로 북서쪽에 2기, 북동쪽에 2기, 남쪽에 2기가 배치되어 있다. 송천동 고인돌 떼는 속칭 ‘칠성바위’로 불린다. 고인돌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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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떼. 수곡리 고인돌 떼는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되어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 수몰되기 이전 고인돌은 두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한 곳은 임동면 수곡리 무실마을 서쪽에 조성된 솔밭에 있었으며, 다른 한 곳은 무실마을에서 강을 따라 북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늘치미마을 남쪽 동구의 강가 경사지에 있었다.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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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4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류진의 문집. 1734년에 수암(修巖) 류진(柳袗, 1582~1635)의 후손인 류위하(柳緯河)와 류성화(柳聖和)가 편집, 간행하였다. 저본은 안동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다. 2권 2책의 목판본으로 표제는 수암선생문집(修巖先生文集)이다. 행자(行字)는 10행 20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기는 가로 16.1㎝, 세로 20.5㎝이다. 어미는 상하내향화문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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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 김유가 지은 전통 요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은 조선 전기 안동 예안의 외내마을에서 살았던 김유(金綏, 1481~1552)가 지은 식품 가공 및 조리 방법을 적은 저작이다. 허균(許筠)의 『도문대작(屠門大嚼)』 보다 약 70년을 앞서고, 정부인 안동장씨의 『음식디미방』 보다 약 110년 전에 쓰인 요리서이다. 조선 전기의 식생활에 대한 기록으로서 이 책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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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구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허비. 김시온(金是榲, 1598~1669)은 자는 이승(以承)이며, 호는 표은(瓢隱)이다. 참봉을 지냈으며 명나라에 대한 절의를 상징하는 숭정처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도연(陶淵)에 은거하여 산천을 즐기면서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영조 때는 사헌부집의에 증직되었다. 인근에서 숭정처사로 추앙되는 인물로는 봉화의 홍우정(洪宇定)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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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지방 과거 시험장. 시사단은 본래 1792년(정조 16) 3월에 정조가 이조판서 이만수(李晩秀)에게 명하여 퇴계 이황(李滉)의 학덕과 유업을 기리는 뜻에서 도산별과(陶山別科)를 신설하여 안동 지역의 인재를 선발토록 한 데서 비롯되었다. 도산별과는 문과 2인, 진사 2인, 초시 7인, 상격(賞格) 14인을 선발하는 별시(別試)로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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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신남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고인돌은 예안면 신남리 두곡마을과 점골마을의 경계가 되는 계곡에 조성된 밭둑에 위치한다. 이곳은 두곡마을 새마을회관에서 남쪽으로 50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서쪽으로 90m 떨어진 곳에는 지방도 919호선이 통과한다. 지형은 문바위골이 남쪽으로 낮아지면서 평지와 만나는 부분이며, 주변은 논·밭으로 이용된다. 고인돌은 장방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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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영월(寧越). 자는 계이(啓而), 호는 일죽재(一竹齋)·양정재(養正齋). 아버지는 충좌위첨지중추부사를 지낸 신중곤(辛仲坤),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 광주김씨(光州金氏)이다. 신내옥은 현재의 강원도 영월군 남면 월휴리에서 태어났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안동 서쪽의 거진으로 이주하였다가 다시 낙양촌(洛陽村,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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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신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고인돌의 하부 구조는 하부가 지하에 매몰되어 확실히는 알 수 없으나, 받침돌이 없는 형식으로 추정된다. 동네 주민들은 고인돌을 ‘칠성바위’라고 부른다. 신덕리 고인돌 떼는 임하면 신덕리 중덕(신이덕)마을의 남쪽, 구도로 변에 있는 야산의 경사지에 위치한다. 중덕마을은 안동시 송천동에서 포진교를 건너 길안 방향으로 가다가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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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서 쌓아 올린 탑으로, 인도에서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전래되었다. 인도에서는 예부터 흙과 돌을 쌓아 올려 묘를 쓰던 습관과, 거룩하게 여겨 기리던 곳에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시고 탑을 조성한 뒤부터 불교의 예배 대상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처음 인도에서는 사발을 엎어 놓은 듯 둥글고 크게 탑을 쌓아 올려 내부 공간을 만들고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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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신석리 고분군은 위치에 따라 ‘고분군1·2·3’으로 구분된다. 신석리 고분군1은 남선면 신석리 ‘덕거리’마을의 동쪽으로, 북쪽으로 뻗은 낮은 능선을 따라 분포한다. 이곳은 구산골과 안성골 사이에 있는 능선으로, 해발 137.8~101.5m에 해당한다. 현재 밭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신석리 고분군2는 신석리 고분군1의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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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에 있는 고려시대 봉수 터. 신석리 봉수는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에 왔을 때 축조한 것이라 전한다. 1999년 발간된 『안동시사』에 신석리 봉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경상도지리지』(1425)에는 ‘남산봉수는 동쪽으로 신석산 봉수와 15리의 간격으로 연결되고, 신석산 봉수가 다시 15리 간격으로 약산봉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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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세 기의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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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에 있는 고려시대 포곡식 산성. 신석산성의 건축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토기편과 자기편으로 보아 사용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영가지(永嘉誌)』「고적조(古蹟條)」의 기록에 “철비문(鐵扉門)은 부성(府城)의 동문(東門)으로 원래는 신석산(申石山)의 성문이었다. 고려시대에 왜구들이 영해로부터 침입해 오자 동문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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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안교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두 기의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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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동 지역에 설치된 교통 및 통신 기관. 역(驛)은 신라 487년(소지왕 9)에 처음 시작되었다고 하며, 고려 성종 때 더욱 구체화되었는데, 이때 전국 22도(道)에 525개소의 역이 구성되었다. 고려 1390년(공양왕 20) 중앙의 외방지역 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중앙관을 파견하는 것을 골자로 한 역승제(驛丞制)를 조준(趙浚) 등 개국공신들의 건의에 따라 시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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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역 관리 체계. 역은 중앙과 지방간에 왕명과 공문서를 전달하고, 진상(進上)·공부(貢賦) 등의 공공 물자를 운송하며, 사신 왕래에 따른 영송(迎送) 지대(支待)와 숙박 편의를 제공하고 통행인을 검문, 규찰하는 등 여러 가지 기능을 담당하였다. 따라서 역은 통신·숙박 기능 및 역마 제공, 운송의 기능과 지역 방어를 수행함으로써 중앙집권적 통치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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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단호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안동 낙강정은 마애(磨厓) 권예(權輗)[1495~1549]가 사용하였던 정자이다. 권예는 1516년(중종 11) 문과에 급제하였고 1519년 기묘사화 때 조광조(趙光祖) 일파의 탄압을 반대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로 전해진다. 『마애 선생 문집』 등의 문헌 기록이 남아 있으며, ‘낙강정(洛江亭)·판서연(判書淵)’ 등의 현판이 현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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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보광사에 있는 고려 후기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보광사는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산중턱에 있다. 자세한 창건 시기나 연혁은 알 수 없으며,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1977년 지금의 위치 아래쪽에서 옮겨 세웠다. 목조관음보살좌상을 모신 관음전을 본전으로 하고, 천불전·삼성각·요사채로 구성되어 있다.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寶光寺 木造觀音菩薩坐像)은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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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석빙고. 석빙고는 조선시대에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돌로 만든 창고이다. 특히 안동 석빙고는 낙동강에서 많이 잡히는 은어를 국왕에게 올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1737년(영조 13)에 지어졌다. 『예안읍지(禮安邑誌)』에 현감 이매신(李梅臣)이 돌로 얼음 창고를 축조하여 매년 지붕을 잇는 수고를 덜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매신이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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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위리에 있는 지질시대 나무화석. 안동 위리는 규화목(硅化木, petrified wood) 화석지대이다. 규화목이란 천연나무의 세포 내부나 외부의 공동(空洞)에 주로 실리카(이산화규소)나 방해석(方解石, 탄산칼슘) 같은 광물질이 침투하여 형성된 화석의 일종이다. 안동 위리의 나무화석은 2004년 12월 6일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150호로 지정되었으며,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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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문동 안동 태사묘에 있는 고려시대 삼공신 관련 유물. 안동 태사묘 삼공신 유물은 후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운 삼태사(三太師)를 모신 사당인 태사묘(太師廟) 혹은 삼공신 묘(三功臣廟)에 보존되어 온 고려시대의 일괄 유물이다. 삼태사는 안동김씨의 시조 김선평(金宣平), 안동권씨의 시조 권행(權幸), 안동장씨의 시조 장정필(張貞弼)을 가리키는데, 개별 유물이 삼공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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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안동 화천 서원은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1539~1601년]의 학덕을 흠모한 지역 유림들이 세운 서원이다. 2009년 11월 23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63호로 지정되었다.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광덕리 부용대 동쪽 기슭에 있다. 주변으로 안동 하회 마을, 하회 민속촌, 하회 겸암 정사 등이 있다. 류운룡이 16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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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에 있는 조선 전기 도요지. 안동 광음동 분청사기요지는 사기편이 산적된 상태의 분청사기 요지이다. 분포 면적은 남북 길이 약 30m, 폭 20m, 높이 약 4m이다.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 북쪽 100여㎞ 지점 야산 기슭에 있다. 안동 광음동 분청사기요지는 야산 기슭의 완만한 남쪽 사면에 점점이 있는 듯하며, 당시 사용되었던 백토 원료들과 구워진 흙덩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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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자품리 광흥사에 있는 조선 전기 사경. 사경(寫經)이란 공덕 수행을 위한 신앙의 차원에서 정성들여 경문을 쓰고 불경을 요약한 변상(變相)을 그려 장엄하게 꾸민 것을 총칭한다. 『안동 광흥사장 금자사경』은 광흥사 응진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65호) 내에 있는 나한상 복장물(服藏物)로 추정된다. 개인적 발원에 의해 쓰였으나 연기를 기록하지 않아 정확한 연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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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년 안동 지역에 설치된 지방 통치 행정 기관. 1018년(현종 9) 경상북도 경주에 설치하여 사(使: 정3품)·부사(정4품)·판관(判官: 정6품) 등을 두었고 1030년 경주가 동경(東京)으로 승격된 이후 대도호부를 안동으로 옮겼다. 충렬왕 때는 복주목(福州牧)으로 격하되었으나 1361년(공민왕 10) 공민왕이 홍건적(紅巾賊)을 피하여 이곳에 머물렀을 때 관민이 왕을 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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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대원사에 있는 조선 후기 탱화. 「안동 대원사 소장 탱화」는 대원사 내에 소장된 3폭의 탱화로, 신중탱화(神衆幀畵)·후불탱화(後佛幀畵)·지장탱화(地藏幀畵) 3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중탱화는 정방형에 가까운 화면에 상하 2단 구도로, 상단에는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을 위시한 천부(天部)와 주악 선신이 배열되어 있고, 하단에는 위태천을 위시한 천룡팔부중(天龍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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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검암리 모운사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탱화. 「안동 모운사 지장탱화·제석탱화」는 안동 모운사 백화전(白華殿)에 봉안되어 있는 비단 바탕에 채색을 한 그림이다. 모운사는 창건 연대나 내력에 대하여 전하는 바가 없으나 의상조사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1842년(헌종 8)에 백화전을 중수하였다는 사실이 「모운사중수기(暮雲寺重修記)」의 기록에 나오며, 『한국사찰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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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 안동 지역에 설치된 지방 통치 행정 기관. 경상도의 도역(道域)은 산천을 경계로 한 합리적인 도제 확립의 필요에 따라 1413년(태종 13) 상주목(尙州牧) 소속 옥천·황간·영동·청산·보은을 충청도에 귀속시킴으로써 죽령을 북계(北界)로 하고 지리산을 서계(西界)로 하여 설정되었다. 감영은 개국초 경주에 있었으나 1407년(태종 7)경 상주로 옮겼다. 또한 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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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바위그림. 바위그림은 동굴 벽이나 자연 암벽에 여러 가지 기하학적인 무늬 또는 동물상 등을 그리거나 새겨 놓은 그림을 말한다. 암각화(岩刻畵), 암화(岩畵), 암채화(岩彩畵)라고도 한다. 바위그림은 구석기시대부터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석기시대를 지나 청동기시대에 전성기를 맞아 활발히 제작되었다. 바위그림에는 선사시대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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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영천이씨 간재공파 종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 전적 및 고문서. 안동 영천이씨 간재공파 종중 소장 문적은 영천이씨 간재공파 종중에서 소장해 오던 것으로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 1541~1596)과 그의 아들 이시(李蒔)·이점(李蒧) 및 손자 이영구(李榮久)와 관련된 필사본과 고문서 등이다. 이덕홍의 자는 굉중(宏仲)이며, 본관은 영천이다. 퇴계 문하에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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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운곡리 용수사에 있는 고려 전기 동고. 안동 용수사 대정삼년명 금동고는 1163년(의종 17)에 제작되었다고 하는 용수사(龍壽寺)의 동고(銅鼓)이다. 용수사는 1146년(의종 1) 개창되어 1165년(의종 19)에 용수사라는 사액이 내려졌다. 1165년에 본당과 요사채를 완성하고 목조 도금 불상을 감실에 모셨다. 1178년(명종 8)에 13층 청석탑을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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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의 중심부를 감싸고 있던 성곽. 안동읍성은 정치·경제·문화·군사 등의 기능을 아우른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중심 거점으로 1380년(우왕 6)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처음 축조되었다. 이 후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전쟁에 대비해 보축을 하였고, 1606년 을사(乙巳) 대홍수 때 성첩(城堞)이 무너져 다시 보축하였는데, 1910년대 일제에 의해 강제로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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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의 군사 조직. 조선 전기 안동이 속한 경상도의 군사 조직 체계는 관찰사가 지휘권을 장악한 가운데 진관 체제를 근간으로 육군과 수군이 대체로 낙동강을 경계로 하여 각기 좌·우로 구분되어 조직화되었다. 육군은 좌병사 예하에 경주·안동·대구진관을, 우병사 예하에 상주·진주·김해진관을 각각 설치해 이들 진관으로 군소의 진들을 관할하도록 하였다. 조선 후기에도 진관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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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생냉이를 가지고 삼베를 짜는 과정. 안동포는 안동 지역에서 제작된 대마포(大麻布)로서 생냉이[生布]로 짠 삼베이다. 안동은 기후와 토질이 삼베 재배에 적합하고 베 짜는 기술이 우수하여 조선시대에는 궁중 진상품으로 명성을 날렸다. 현재 안동포짜기는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와 고곡리, 서후면 저전리 등지에서 행해지고 있다. 그 중 생산량이 가장 많은 금소리는 안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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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안막동에 있던 통일신라 초기 고분. 안동 시내에서 와룡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퇴계로)의 남쪽 비탈면 중턱에 있던 것을 발굴 후 안동대학교 동쪽 고시원 옆으로 옮겼다. 1989년당시 안막동 고분이 있던 곳에 현대아파트가 들어서게 되면서 아파트 건립에 따른 유적 조사의 일환으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전에는 외관상 조선시대의 민묘로 추정되었으나 조사 결과 통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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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글씨. 암각서(巖刻書)는 바위에 새겨진 글씨로 마애각석(磨崖刻石) 또는 마애각문(磨崖刻文)이라고도 한다. 금석학(金石學)의 주요 대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에 들어와 청나라 고증학(考證學)의 영향을 받아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등을 중심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암각서의 글씨는 대체로 당시 그 지역의 저명한 문인, 학자들이 쓴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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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안동 지역에서 지배층을 이루던 신분. 양반이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지배층을 이루던 신분으로 ‘상놈’의 상대어이다. 원래 고려시대 문반과 무반, 혹은 동반과 서반을 지칭한 데서 유래하였다. 처음에는 문무반(文武班), 동서반(東西班) 등 두 개의 반을 의미하다가 고려 말 조선 초에 이르러 그에 소속된 사람과 그 후손, 그리고 문무반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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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 있는 신라~고려시대의 포곡식 산성. 양장성(羊腸城)의 초축 시기는 신라시대로 추정되며, 출토된 기와편의 성격에서 고려시대에도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양을 길렀다 하여 ‘양장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북쪽을 방어하기 위한 성으로 공민왕 몽진 시 대감이 군사를 거느리고 지켰다는 전설이 전한다. 17세기 초에 편찬된 안동 지역 읍지인 『영가지(永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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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어담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어담리 고인돌 떼는 안동시 풍천면 어담리 신성중학교에서 남쪽으로 2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신성중학교 남쪽과 인접한 곳에는 도로 통과하는데, 고인돌은 도로와 도로 건너에 조성된 논 사이에 있다. 고인돌의 북쪽으로는 도로가 지나가고, 남쪽으로는 하신천(下新川)이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어담리 고인돌 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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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어담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세 기의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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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우탁의 유허비. 우탁(禹倬, 1263~1342)은 진사 우천규(禹千珪)의 아들로, 본관은 단양, 자는 천장(天章)·탁보(卓甫), 호는 역동(易東)이며, 시호는 문희(文僖)이다. 역학(易學) 복서(卜筮)에 통달하였으며 처음으로 정주학(程朱學)을 연구, 전수하였다고 한다. 1308년(충선왕 1)에 왕이 덕이 없음을 간하다가 예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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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경상북도 안동의 역사와 문화. 경상북도 북부 중앙, 낙동강 상류에 자리 잡은 안동은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북부 지방의 거점 도시로서의 기능을 담당해 왔다. 풍산읍 마애리 구석기 유적을 비롯한 유적과 유물이 곳곳에 남아 있고,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을 비롯한 많은 인물들을 배출한 역사와 문화의 도시이기도 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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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동 지역의 역로에 세워졌던 국영 교통, 통신 및 숙박시설. 역(驛)은 공문서의 전달, 관리 및 외국 사신의 왕래 숙박, 말을 공급하여 관물(官物)의 수송 등을 돕기 위한 기관으로 신라시대인 487년(소지왕 9)에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고려 성종 대에 더욱 구체화 되어 전국 22도(道)에 525개소의 역이 만들어졌다. 1390년(공양왕 2) 중앙의 외방 지역 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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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안동 지역의 공공 업무 수행을 위하여 설치한 교통·통신기관. 역참은 국가의 명령과 공문서 전달,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 및 외국 사신 왕래에 따른 영송(迎送)과 접대, 그리고 공공 물자의 운송 등을 위하여 설치된 교통 통신기관이다. 안동의 경우 고려시대의 자료에 의하면 개경-원주-제천-단양-영주-안동-영주(영천)-동경으로 연결되는 간선이 지나가면서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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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 학자 류정원이 『주역』 관련 제가의 학설을 요약하고, 원문 아래 주기하여 『주역』의 이해를 도모한 책. 안동 월곡면 삼산리에서 태어난 류정원(柳正源, 1702~1761)은 14세에 『상서(尙書)』를 배우고, 15세에 『주역(周易)』을 배웠으며, 이어서 제가(諸家)의 학문을 두루 섭렵하였다. 28세인 1729년(영조 5) 가을 생원시에 합격한 뒤에는 유교 경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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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간행된 안동 출신의 학자 김진과 그의 다섯 아들의 시문집. 『연방세고(聯芳世稿)』는 안동 내앞[천전(川前)]에 세거하던 조선 중기 학자 김진(金璡, 1500~1580)과 그의 다섯 아들인 김극일(金克一, 1522~1585), 김수일(金守一, 1528~1583), 김명일(金明一, 1534~1570), 김성일(金誠一, 1538~1593), 김복일(金復一, 1541~1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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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조선 중기 우물. 이황(李滉, 1501~1570)은 도산서당과 주위의 자연을 7언시와 5언시로 노래한 『도산잡영(陶山雜詠)』을 지었는데, 그중 한 가지가 열정(冽井)이다. 열정은 물이 차고 마시면 마음이 상쾌해진다고 하였다. 열정은 『주역(周易)』의 ‘정렬한천식(井冽寒泉食)’, 즉 ‘물이 맑고 차가우니 마실 수 있네’라는 글에서 이름을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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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대사리에 있는 조선 중·말기 안동부 읍지와 책판. 『영가지(永嘉志)』는 안동 지역의 대표적 향토지 초고본(草稿本)이다. 1602년 권기(權紀, 1546~1624)가 스승인 류성룡(柳成龍)의 명에 따라 권행가(權行可)와 함께 『영가지』 편찬에 착수하였다가 1607년 류성룡의 죽음으로 중단되었다. 이후 안동부사로 부임한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권기·김득연(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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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동 지역 유생들이 집권 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하였던 집단적인 연명 상소. 16세기 이후 유학의 발달, 종법의 보급 등이 본격화하면서 각 지방에는 향교와 서원·동성마을 등이 발달하여 갔고, 이에 따라 유림과 문중의 위상 또한 높아져 갔다. 그리고 학문을 숭상하는 정치와 그에 따른 사림의 꾸준한 성장으로 지방의 유생 수는 빠르게 늘어났다. 유생 또는 유림은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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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동 지역을 중심으로 이황의 성리학설과 학통을 계승한 영남의 학파. 조선왕조의 통치 이념으로 채택된 성리학은 16세기 후반에 접어들자 사림 세력의 정계 장악과 함께 정치적으로는 동서 분당(東西分黨), 학문적으로는 영남학파(嶺南學派)와 기호학파(畿湖學派)로 분열되었다. 영남학파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퇴계(退溪) 이황(李滉)·남명(南冥) 조식(曺植)에 의해 형성된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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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3년(태종 13)부터 1895년까지 안동 지역의 예안면·도산면·녹전면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행정기관. 예안현(지금의 예안면)은 고구려의 매곡현(買谷縣)이었다가 신라 땅이 되었으며, 경덕왕 때 선곡현(善谷縣)으로 고쳐 내령군(奈靈郡, 지금의 영주)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 태조 때 성주 이능선(李能宣)이 고려에 귀순하자 의리를 가상히 여긴 태조의 명으로 예안군으로 승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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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겸중(謙仲), 호는 춘당(春塘). 할아버지는 의령현감을 지낸 오석복(吳碩福), 아버지는 전의현감을 지낸 오언의(吳彥毅),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송재(松齋) 이우(李堣)의 딸이다. 할아버지 오석복이 만년에 함안으로 이거하였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외당숙이 된다. 오수영은 5, 6세 때 외가에서 지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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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간행된 안동 출신의 광산김씨 예안파 김연 계열의 주요 인물들의 저술을 모아놓은 문집. 『오천세고(烏川世稿)』는 조선 중기와 후기 안동 오천의 광산김씨 예안파 김연(金緣, 1487~1544), 김부필(金富弼, 1516~1577), 김부의(金富儀, 1525~1582), 김해(金垓, 1555~1593), 김광계(金光繼, 1580~1646), 김순의(金純義, 1645~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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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옥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옥동 고분군은 위치에 따라 고분군1·2·3·4·5로 구분된다. 옥동 고분군1은 능선을 따라 4기가 분포되어 있다. 옥동 고분군2는 ‘씨레’처럼 남쪽으로 여러 갈래 뻗어 내린 능선에 1기가, 옥동 고분군3은 2~3기가, 옥동 고분군4는 3기가 분포되어 있다. 옥동 고분군5는 동북에서 서남으로 낮아지는 능선을 따라 3기가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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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암각서. 옥연(玉淵)은 하회마을을 감싸고 흐르던 낙동강 물이 이곳에 이르러 ‘옥같이 맑은 못을 이룬다’ 하여 새긴 글씨이다. 풍천면 광덕리 부용대(芙蓉臺) 동쪽에 자리한 하회 옥연정사(河回 玉淵精舍)에서 남쪽으로 3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은 하회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낙동강가로 암각서가 새겨진 바위는 모래사장과 하회 옥연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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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2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이해의 문집. 온계(溫溪) 이해(李瀣, 1496~1550)는 퇴계 이황(李滉)의 형으로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죽었다. 소설 『임꺽정』에 이해의 죽음에 관한 부분이 언급되어 있다. 1772년(영조 48) 후손이 편집, 간행하였다. 저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이다. 원집 4권과 연보를 합쳐 모두 3책이며, 판본은 목판본이다. 표제는 온계선생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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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온혜리 고인돌은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독작골마을에 위치한다. 독작골마을은 도산면 태자리에서 온혜리 방향으로 국도 35호선을 따라 가면 나온다. 고인돌은 국도 35호선에서 동쪽으로 40m 떨어진 밭둑 옆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지형은 서남쪽으로 낮아지는 동차골의 끝부분에 해당한다. 고산재사(高山齋舍)에서 서남쪽으로 35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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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동 지역에 설치된 교통 및 통신 기관. 역(驛)은 신라 소지왕 9년(487)에 처음 시작되었다고 하며, 고려 성종 때 더욱 구체화되었는데, 이때 전국 22도(道)에 525개소의 역이 구성되었다. 고려 공양왕 20년(1390) 중앙의 외방지역 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중앙관을 파견하는 것을 골자로 한 역승제(驛丞制)를 조준(趙浚) 등 개국공신들의 건의에 따라 시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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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 있는 고려시대 테뫼식 산성. 왕모산성(王母山城)은 1361년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왔을 때 주민들이 축성한 성으로, 명칭은 공민왕의 모친이 이곳에 피난하였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17세기 초에 편찬된 예안 지역 지방지(地方誌)인 『선성지(宣城誌)』 고적조(古蹟條)에 “왕모성(王母城)은 천사(川沙) 뒷봉우리에 있다. 돌로 성을 쌓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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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 이야순이 편찬한 이황의 『퇴계집』 주석서. 이황의 저작을 모은 『퇴계집(退溪集)』은 원집 49권 이외에 별집과 외집, 속집이 따로 있는 방대한 분량의 저작이다. 이황의 후손으로서 17~18세기 예안을 대표하였던 학자 이야순은 이황이 살았던 현장에서 평생을 살면서 그 저작을 탐구하였다. 이 자료는 『퇴계집』 각 권에 나오는 주요 인명과 지명 등 고유명사와 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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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 김범구가 안동 지역 선비인 김언기와 김득연, 김득수, 김광원의 문헌을 모아 편찬한 문집. 『용산세고(龍山世稿)』는 조선 중기 안동부 와룡면에서 살았던 선비 김언기(金彦璣)와 김득연(金得硏), 김득숙(金得䃤), 김광원(金光源) 등이 남긴 문헌을 김범구(金範九)가 모아서 편찬한 책이다. 여러 대에 걸친 인물의 저작을 모은 것이므로 ‘세고(世稿)’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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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천장(天章)·탁보(卓甫), 호는 단암(丹巖)·백운당(白雲堂). 단양우씨(丹陽禹氏)의 시조 우현(禹玄)의 7세손이다. 아버지는 우천규(禹天珪)이다. 우탁은 1278년(충렬왕 4) 향공진사(鄕貢進士)가 되고 1290년(충렬왕 16)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영해사록(寧海司錄)이 되었다. 당시 영해에는 팔령(八鈴)이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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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시대 우향계 계첩. 『우향계안(友鄕契案)』은 조선 태종 때 좌의정을 역임한 이원(李原, 1368~1430)의 아들 이증(李增)이 안동 지역으로 낙향하여 학덕 있는 안동의 선비 12명(안동권씨 3명, 흥해배씨 4명, 영양남씨 4명, 안강노씨 1명)과 함께 1478년(성종 9)에 조직한 결사체인 우향계의 계첩이다. 그 뒤 이증의 아들 이굉(李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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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운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바위그림. 바위그림은 동굴 벽이나 자연 암벽에 여러 가지 기하학적인 무늬 또는 동물상 등을 그리거나 새겨 놓은 그림을 말한다. 암각화(岩刻畵), 암화(岩畵), 암채화(岩彩畵)라고도 한다. 바위그림은 구석기시대부터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석기시대를 지나 청동기시대에 전성기를 맞아 활발히 제작되었다. 바위그림에는 선사시대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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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금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 웅파당비(雄波堂碑)는 1838년(헌종 4) 승려 웅파(雄波)의 행적을 기록하기 위하여 세웠다. 웅파당비는 길안면 금곡리 용담사의 부속암자인 금정암 어귀 가까이에 위치한다. 금정암은 용담사 앞을 흐르는 길안천의 지류인 개울을 건너, 남쪽의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1㎞ 정도 떨어져 있는 금학산 8부 능선 북쪽 기슭에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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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원림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두 기의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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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원천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바위그림. 바위그림은 동굴 벽이나 자연 암벽에 여러 가지 기하학적인 무늬 또는 동물상 등을 그리거나 새겨 놓은 그림을 말한다. 암각화(岩刻畵), 암화(岩畵), 암채화(岩彩畵)라고도 한다. 바위그림은 구석기시대부터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석기시대를 지나 청동기시대에 전성기를 맞아 활발히 제작되었다. 바위그림에는 선사시대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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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원천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두 기의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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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 각자(刻字). 월영대(月映臺)란 ‘달이 비치는 대(臺)’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경관 속에서 달빛을 감상하던 임원(林苑)의 암벽에 붙인 이름이다. 깔끔한 해서체로 쓰여 있으나, 필자와 새긴 이는 알 수 없다. 월영대는 원래 안동댐 수몰 이전 월곡면 사월동 산351번지 월곡면사무소 뒷산 송림 중에 있던 금하재(錦下齋)라는 정자와 함께 길쭉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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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6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조목의 문집. 1666년(현종 7)에 아들 조석명(趙錫明)이 유고를 편집하고, 예안현감 이석관(李碩寬)이 간행하였다. 본서의 저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이다. 6권 3책의 목활자본으로 표제는 월천선생문집(月川先生文集)이다. 행자(行字)는 10행 20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기는 가로 16.3㎝, 세로 20㎝이다. 어미는 상하이엽화문어미(上下二葉花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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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에서 활동했던 류진이 편찬한 농업 기술서. 류진(柳袗, 1582~1635)은 안동 출신 명재상인 서애 류성룡(柳成龍)의 셋째 아들이다. 1582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 낙향한 부친을 따라와 안동 하회에서 거주하다가, 1618년에는 상주로 옮겨가 살았는데, 이곳은 그의 부친이 일찍이 목사로 재직하였던 곳이다. 이곳에서 생애의 후반기를 보낸 류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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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류성룡 종손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 문신 류성룡과 관련한 문헌과 자료. 류성룡 종손가 문적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에 도체찰사(都體察使)로 국왕을 보위하고 군무를 총괄하여 전란을 극복하면서 자필로 기록한 문헌과 이 시기에 수집한 각종 자료들이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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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류성룡 관련 유물과 고문서.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은 퇴계 이황의 문인이며, 1566년(명종 21) 문과에 급제하여 공조좌랑, 이조좌랑 등의 벼슬을 거쳐 삼정승을 모두 지냈다. 왜적이 쳐들어올 것을 알고 권율과 이순신을 중용하도록 추천하였다. 또한, 화포 등 각종 무기를 제조하였으며, 성곽을 세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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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이직(而直), 호는 지령(芝嶺)·지령산인(芝嶺山人). 목릉참봉을 지낸 윤백기(尹伯奇)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종부시주부를 지낸 윤관(尹寬)이다. 윤백기가 처음으로 안동에 거주하기 시작하였으며 윤관이 예안으로 옮겨 거주하였다. 윤의정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으며 12세 때 아버지에게 『대학(大學)』을 배웠고 약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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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율세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율세동 고분군은 안동시 율세동 가톨릭상지대학교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경사가 급한 능선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능선으로는 안동시 체육공원의 철제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해발 248m의 주능선에서 남쪽으로 낮아지다가 다시 약간 높아지는 해발 182.1m의 능선 정상부 일대이다. 2003년 12월 이 지역에 대한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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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암각서. 1820년 김상헌(金尙憲)의 7세손인 김학순(金學淳)이 안동부사로 근무하면서 김상헌을 추모하기 위해 새긴 글씨이다. 김상헌은 병자호란 후, 안동 소산으로 물러나 청원루(淸遠樓)에서 생활하다가 서미동으로 거처를 옮겨 초가집을 지어 ‘목석거만석산방(木石居萬石山房)’이라 이름 짓고 은거하였다. 은자암(隱者巖)은 안동시 풍산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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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군 서후면에서 태어난 정부인 안동장씨가 말년에 저술한 음식 조리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은 정부인 안동장씨(1598~1680)가 딸과 며느리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정리한 음식 조리서로서, 17세기 우리 조상들이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먹었는지 식생활의 실상을 잘 알려 주는 문헌이다. 모두 146개 항에 달하는 음식 조리법을 한글로 서술한 최초의 한글 조리서이다.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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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형보(馨甫), 호는 금학당(琴鶴堂).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의 4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충량(李忠樑), 아버지는 현감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로 남응건(南應乾)의 딸이다. 이강(李茳)은 안동부(安東府) 예안현(禮安縣, 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서 이덕홍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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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공보(共甫), 호는 율원(栗園). 할아버지는 이영(李英), 아버지는 이숙인(李淑仁)이다. 할아버지는 평소 조광조(趙光祖)와 교유했는데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나자 안동으로 남하하여 이후 자손들이 풍산현(豊山縣, 현 안동시 풍산읍)에 정착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집현전참봉에 천거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이공은 1567년(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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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 한산(韓山). 자는 휴문(休文), 호는 경실(景實)·소산(小山). 할아버지는 이석관(李碩觀), 아버지는 이태화(李泰和), 어머니는 재령이씨(載寧李氏)로 밀암(密庵) 이재(李栽)의 딸이다. 양부는 이지화(李志和)이며, 형이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이다. 이광정은 안동부(安東府) 일직현(一直縣) 소호리(蘇湖里, 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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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천상(天祥), 호는 눌은(訥隱). 할아버지는 이시암(李時馣)이고, 아버지는 이후룡(李後龍),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이시철(李時哲)의 딸이다. 양부는 이선룡(李先龍)이다. 이광정은 조현명(趙顯命)이 경상도관찰사 재임 중 지방에 학문과 교화를 일으키고자 많은 선비를 뽑을 때 안동부훈도장(安東府訓都長)이 되었다. 하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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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에 있는 조선 전기 신도비. 비석(碑石)은 고인의 사적(事蹟)을 칭송하고 이를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문장을 새겨 넣은 돌을 말한다. 비석의 종류에는 신도비(神道碑)가 포함되는데, 조선시대에는 종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낸 사람만 세울 수 있게 제도화하였다. 이굉(李浤, 1440~1516)은 자는 심원(深源)이고, 호는 낙포(洛浦)·연생당(戀生堂)이며, 본관은 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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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굉중(宏仲), 호는 간재(艮齋). 증조부는 이흠(李欽), 할아버지는 습독(習讀) 이현우(李賢佑), 아버지는 이충량(李忠樑), 어머니는 반남박씨(潘南朴氏)로 박승장(朴承張)의 딸이다. 이덕홍은 영주(榮州) 남촌(南村) 구룡동(九龍洞, 현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호문리) 외할아버지 박승장의 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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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시능(始能), 호는 긍암(肯庵). 아버지는 이수응(李秀應),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생원 권의도(權義度)의 딸이다. 이돈우는 안동부(安東府) 일직현(一直縣) 소호리(蘇湖里, 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가정세제(柯亭世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남다른 재질과 기골이 빼어났는데, 하루는 증숙조(曾叔祖)인 면암(俛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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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군칙(君則), 호는 나은(懶隱). 아버지는 이운익(李雲翼), 어머니는 김기후(金基厚)의 딸이다. 종숙(從叔) 이지온(李之馧)에게 출계하였다. 이동표는 현재의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금릉리에서 태어났다. 17세 때 향교에서 『심경(心經)』을 강론하였다. 30세 때 안동과 예안의 류세명(柳世鳴), 김명기, 이선, 권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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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군직(君直), 호는 고재(顧齋). 할아버지는 이시명(李時明), 아버지는 이융일(李隆逸), 어머니는 광산김씨(光山金氏)로 김해(金垓)의 후손인 처사 김초(金礎)의 딸이다. 이만은 현재의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인 1689년 안동의 동파리에 옮겨 살았다. 10세에 소학을 배운 이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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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근휴(謹休), 호는 신암(愼庵)·암후(巖后).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11세손이다. 할아버지는 병조참판 이태순(李泰淳), 아버지는 통덕랑 이휘운(李彙運), 어머니는 전주류씨(全州柳氏)로 류회문(柳晦文)의 딸이다. 이만각은 안동부(安東府) 예안현(禮安縣) 하계리(下溪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다고 아버지에게 칭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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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순칙(順則), 호는 류천(柳川)이다. 1845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하계마을에서 태어났으며, 1921년 향년 77세로 세상을 떠났다. 1910년 단식 순국한 향산 이만도(李晩燾)의 동생이다. 이만규는 1910년 일찍이 일제의 은사금을 거부하고 조카 이중업과 뜻을 같이 해 파리장서의거에 유림의 일원으로 서명자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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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관필(觀必), 호는 향산(響山)이다. 1842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서 태어났다. 퇴계 이황의 11세손이며, 만화공(晩花公)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이휘준(李彙濬)이며, 이휘철(李彙澈)에게 입양되었다. 이만도(李晩燾)는 23세 되던 1866년(고종 3) 식년시에 장원급제하였다. 그 후 홍문관수찬, 사헌부지평, 병조정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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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호원(浩源). 할아버지는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원(李原), 아버지는 영산현감 이증(李增)이다. 이명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다. 1486년(성종 17) 김일손(金馹孫), 권오복(權五福) 등과 동방(同榜)으로 사마시에 합격하고, 음보(蔭補)로 벼슬에 나아가 형조좌랑에 이르렀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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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효사(孝思), 호는 소백(小白). 할아버지는 이충량(李忠樑), 아버지는 이덕홍(李德弘), 어머니는 이중청(李中淸)의 딸이다. 이모는 안동부(安東府) 예안현(禮安縣, 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서 태어났으며, 일찍부터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하에 나아가 수학하였다. 1610년(광해군 2) 진사시에 합격하고 한림(翰林)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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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신고(信古), 호는 경옥(景玉). 아버지는 진사와 사마 양시에 합격을 하고 태학에 유학을 했으며 글재주와 행실로 칭송을 받은 이이장(李爾樟)이고, 어머니는 장우정(張友程)의 딸이다. 이보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다. 10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자 어머니에게서 엄정한 초학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종숙부인 이이송(李爾松)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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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근회(根晦), 호는 학천(鶴川). 할아버지는 이한(李漢), 아버지는 처사인 이희성(李希聖), 어머니는 양근김씨(楊根金氏)로 어모장군 김세필(金世弼)의 딸이다. 이봉춘은 경상도 안동부(安東府) 일직현(一直縣, 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중후하고 성실했으며 배움에 부지런하고 행실이 검약하여 사림에 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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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자앙(子昻), 호는 나졸재(懶拙齋). 증조부는 이령(李苓), 할아버지는 이명길(李鳴吉), 아버지는 이필(李泌), 어머니는 광주안씨(廣州安氏)로 안칭(安偁)의 딸이다. 이산두의 귀함으로 인해 증조부는 좌승지에, 할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아버지는 호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이산두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으며 권증(權證)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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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만초(萬初)이며, 호는 석주(石洲)이다. 초명은 이상희(李象羲)이나, 1911년 만주 망명 이후 이상룡(李相龍)으로 개명하였으며 계원(啓元·啓源)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858년 지금의 안동시 법흥동 임청각에서 이승목(李承穆)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문적으로는 퇴계 학통을 계승한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의 제자인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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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이상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두 기의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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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 한산(韓山). 자는 경문(景文), 호는 대산(大山). 고조부는 수은(睡隱) 이홍조(李弘祚), 증조부는 이효제(李孝濟), 할아버지는 이석관(李碩觀), 아버지는 이태화(李泰和), 어머니는 재령이씨(載寧李氏)로 밀암(密庵) 이재(李栽)의 딸이다. 고조부 이홍조가 광해군 때 외조부인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이 있는 안동으로 피신해 오면서 그 후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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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약천(若天), 호는 하지(下枝). 증조부는 근사재(近思齋) 이유장(李惟樟), 아버지는 이재기(李載基), 어머니는 동래정씨(東萊鄭氏)로 정지일(鄭之鎰)의 딸이다. 이상진은 권구(權榘)와 권상일(權相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이광정(李光庭)을 비롯하여 박손경(朴孫慶)·권심규(權心揆)·이상정(李象靖)·이광정(李光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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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운서(雲瑞), 호는 경모당(敬謨堂). 할아버지는 이온(李馧)으로, 이온이 후사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나 삼종질(三從姪) 이정즙(李廷楫)을 후사로 삼았으니, 그가 이상흡의 아버지이다. 어머니는 영양남씨로 남국호(南國瑚)의 딸이다. 이상흡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으며, 약관의 나이에 조은(釣隱) 이세택(李世澤)의 문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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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성(眞城). 1856년 지금의 안동시 서후면 교리에서 태어났으며, 1922년 향년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동생인 이현구(李賢求)는 1940년 일제의 일본식 성명 강요(창씨개명)를 거부하여 절식 순국하였다. 1894년(고종 31)부터 안동 지역에서는 전국적인 규모의 의병 활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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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 산림학자 이유장이 편찬한 예학 관련 저서. 이유장(李惟樟, 1625~1701)은 평생을 안동의 풍산현에서 살았던 산림학자였다. 그는 30세에 부친을 여의고, 36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이후 모친의 병환을 돌보는 한편 독서에 전념하였다. 10년 뒤인 45세에 모친상을 당하자 두문불출하면서 강학에 전념하였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저작이 『이선생예설(李先生禮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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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 진성(眞城). 자는 계통(季通), 호는 동병(東屛).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7세손이다. 할아버지는 통덕랑 이주(李柱), 아버지는 통사랑 이수약(李守約), 어머니는 광산김씨(光山金氏)로 통덕랑 김위(金瑋)의 딸이다. 이세태는 안동부(安東府) 예안현(禮安縣, 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이미 『효경(孝經)』의 대의에 통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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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 진성(眞城). 자는 맹윤(孟潤, 孟胤), 호는 조은(釣隱). 퇴계(退溪) 이황(滉)의 8세손이다. 증조부는 이영철(李英哲), 할아버지는 이경(李檠), 아버지는 이수항(李守恒), 어머니는 순흥안씨(順興安氏)로 안노석(安老石)의 딸이다. 이세택은 경상도 안동부(安東府) 예안현(禮安縣, 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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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희안(希顔)·이정(而靜), 호는 청벽(靑壁)·후촌(後村).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6세손이다. 증조부는 이안도(李安道), 아버지는 이실(李宲),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김학배(金學培)의 딸이다. 이수연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으며, 밀암(密庵) 이재(李栽)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23년(경종 3)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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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 우계(羽溪). 자는 영보(英甫), 호는 도촌(桃村). 고조부는 태조를 도와 조선을 개국한 개국공신으로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 도평의사사(都評議司事)를 지낸 이의(李薿), 증조부는 호분위(虎賁衛)를 역임한 이만(李蔓), 할아버지는 덕천군수(德川郡守)를 지낸 이인숙(李仁淑), 아버지는 군자감주부를 지낸 이경창(李景昌), 어머니는 순흥안씨(順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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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대용(大用), 호는 매암(梅巖). 할아버지는 인제현감을 지낸 이흠(李欽), 아버지는 좌찬성을 지낸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효성(權孝誠)의 딸이다. 이숙량은 경상도 안동부(安東府) 예안현(禮安縣) 분천리(汾川里, 현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퇴계(退溪) 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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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 영천(永川). 자는 중립(中立), 호는 선오당(善迂堂). 아버지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제자 이덕홍(李德弘),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로 진사 남응건(南應乾)의 딸이다. 이시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남달리 뛰어나서 13, 14세에 경사(經史)를 통달하였으며 한강(寒岡) 정구(鄭逑)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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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회숙(晦叔), 호는 석계(石溪). 아버지는 이함(李涵)이다. 처는 둘이 있었는데 처음은 광산김씨(光山金氏)로 김해(金垓)의 딸이며, 김씨 사후 1616년(광해군 8) 장흥효(張興孝)의 딸 정부인(貞夫人) 안동장씨(安東張氏)를 계취(繼娶)하였다. 슬하에 이상일(李尙逸)·이휘일(李徽逸)·이숭일(李嵩逸)·이정일(李靖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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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 고성(固城). 자는 경원(景園), 호는 모정(慕亭).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용헌(容軒) 이원(李原)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평지옹(平地翁) 이헌복(李憲復), 아버지는 생원 이주령(李周齡),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학도(權學度)의 딸이다. 이시수의 집은 본래 안동이지만, 이시수가 태어난 곳은 외갓집이 있는 현재의 경상북도 봉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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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요원(遙原)·아몽(阿蒙), 호는 몽재(蒙齋). 할아버지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아버지는 군기시첨정을 지낸 이준(李寯), 어머니는 봉화금씨(奉化琴氏)로 훈도 금재(琴梓)의 딸이다. 아내는 안동권씨이다. 동생은 이영도(李詠道)이다. 이안도가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아내인 권씨 부인이 시동생 이영도의 아들 이억(李嶷)을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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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진성(眞城). 초명은 이유회(李有晦), 자는 경용(景容)·건지(健之), 호는 광뢰(廣瀨). 증조부는 이수약(李守約), 할아버지는 이세관(李世觀), 아버지는 이구휴(李龜烋),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이약송(李若松)의 딸이다. 처는 두 명을 맞이하였다. 첫 번째 부인은 풍산류씨(豊山柳氏)로 류관춘(柳觀春)의 딸인데, 자식 없이 요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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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성여(聖輿), 호는 동암(東巖). 할아버지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아버지는 군기시첨정을 지낸 이준(李寯), 어머니는 봉화금씨(奉化琴氏)로 훈도 금재(琴梓)의 딸이다. 형은 이안도(李安道)이다. 정부인(貞夫人) 안동권씨(安東權氏)와의 사이에 이기, 이억(李嶷), 이계 세 아들을 두었다. 둘째 아들 이억이 상계 종가인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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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 전주(全州). 자는 수언(粹彦), 호는 구애(龜厓). 태종의 서자인 근녕군(謹寧君) 이농(李禯)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영기(李榮基), 아버지는 이시항(李時恒), 어머니는 여주이씨(驪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형은 허직(虛直) 이선(李瑄)이다. 이완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일찍 부모를 잃고 형 이선(李瑄)에게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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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치도(致道), 호는 간암(艮巖). 아버지는 퇴계학맥의 주요 전수자인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어머니는 장수황씨(長水黃氏)이다. 이완은 경상도 안동부(安東府) 일직현(一直縣) 소호리(蘇湖里, 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에서 태어났다. 1771(영조 47)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74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1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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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명중(明仲), 호는 송재(松齋). 아버지는 이계양(李繼陽)이다. 조카가 온계(溫溪) 이해(李瀣)와 퇴계(退溪) 이황(李滉)이다. 이우는 경상도 안동부 예안현 온혜리(溫惠里, 현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났다. 1492년(성종 23)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1498년(연산군 4) 3월 식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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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이운호(李運鎬)는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자는 상오(相五)이며, 호는 대호(大瓠)이다. 1852년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미질리에서 태어났으며, 1930년 향년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1895년(고종 32) 9월 초 일본인들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었다는 소식이 안동 일대에 전해지자 지역 유생들 사이에 반개화·반침략 분위기가 고조되었으며, 이어진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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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하경(夏卿), 호는 고산(孤山)·마애(磨崖)·나암(懶庵)·우원(芋園)·우포(芋圃)·사익당(四益堂). 5대조 이훈(李薰)이 처음으로 풍산(豊山)에 입향하였다. 할아버지는 주부를 지낸 이진(李珍), 아버지는 통덕랑 이정발(李廷發), 어머니는 순천김씨(順天金氏)로 대구부사 김윤안(金允安)의 딸이다. 이유장은 경상부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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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에서 출토된 조선 중기 미투리. 1998년 4월 이응태(李應台, 1556~1586) 무덤에서 애절한 필치로 쓴 원이엄마의 편지와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가 출토되었다. 이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다큐멘터리저널 『내셔널지오그래픽』, 고고학 잡지 『엔티쿼티』와 중국의 국영 텔레비전 CCTV-4 등을 통해 소개되었다. 1998년 4월 안동대학교 박물관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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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에서 출토된 조선 중기 복식 유물. 1998년 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에서 택지 조성을 위해 고성이씨 문중 묘를 이장하던 중 일선문씨 묘가 발견되었고, 20여 일 후 손자인 이응태(李應台, 1556~1586)의 묘가 발굴되었다. 이응태의 묘에서는 총 75점의 유물이 수거되었다. 수의로 저고리와 바지에 철릭을 입고 있었으며, 소렴의(小殮衣)와 대렴의(大斂衣)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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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이의호(李宜鎬)는 자가 의백(義伯)으로 1854년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계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896년 향년 43세로 세상을 떠났다. 1895년(고종 32) 9월 초 일본인들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었다는 소식이 안동 일대에까지 전해지자 지역 유생들 사이에서 반개화·반침략에 대한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이어진 단발령으로 인하여 의병이 조직되기 시작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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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초자는 비언(斐彦), 자는 치양(穉養), 호는 후계(後溪)·만와(晩窩)·긍재(兢齋)·육우당(六友堂)·육우헌(六友軒)·기은(杞隱).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이구몽(李龜蒙), 어머니는 김택동(金宅東)의 딸, 처는 이한우(李漢佑)의 딸이다. 6남 2녀 가운데 차남으로 6형제 중 유일하게 현감 벼슬을 했으며,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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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이인화(李仁和)는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자는 원여(元汝)이며, 호는 지암(芝庵)이다. 1858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났으며, 1929년 향년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1895년(고종 32) 9월 초 일본인들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었다는 소식이 안동 일대에까지 전해지고, 이어서 단발령이 내려지자 이인화는 예안 지역에서 조직된 선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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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유재(幼材), 호는 밀암(密庵)·금수병수(錦水病叟). 할아버지는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할머니는 『음식지미방(飮食知味方)』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정부인(貞夫人) 안동장씨(安東張氏)로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의 딸, 아버지는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어머니는 무안박씨(務安朴氏)로 경력 박늑(朴玏)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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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사성(師聖), 호는 천유자(天遊子). 할아버지는 이충량(李忠樑), 아버지는 이덕홍(李德弘),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로 남응건(南應乾)의 딸이다. 이점은 1579년 8월 8일에 출생하였으며 자태와 성품이 아름다웠으며 머리가 총명하였다. 한강(寒岡) 정구(鄭逑) 문하에서 공부할 때 정구가 천재라 칭찬하며 계몽(啓蒙)의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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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목지(牧之), 호는 우원(尤園). 아버지는 이인섭(李寅燮), 어머니는 풍산류씨(豊山柳氏)로 통덕랑을 지낸 류성구(柳聖久)의 딸이다. 이정국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73(영조 49)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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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이자 의병장.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여직(汝直), 호는 낙금헌(樂琴軒). 할아버지는 이연(李演), 아버지는 이희안(李希顔),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김예범(金禮範)의 딸이다. 양부 이희옹(李希雍)에게 입양되었다.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과는 내외종(內外從)이었다. 형이 송간(松澗) 이정회(李庭檜)이다. 이정백은 경상도 안동부 주촌리(周村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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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경직(景直), 호는 송간(松澗). 할아버지는 이연(李演), 아버지는 이희안(李希顔),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김예범(金禮範)의 딸이다. 동생이 낙금헌(樂琴軒) 이정백(李庭栢)이다.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과는 내외종(內外從)이다. 이정회는 경상도 안동부 주촌리(周村里, 현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주하리)에서 태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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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선경(善慶)·사원(士遠), 호는 두릉(杜陵). 할아버지는 이운익(李雲翼), 아버지는 ‘소퇴계(小退溪)’로 불렸던 이동표(李東標)이다. 이제겸은 현재의 경상북도 예천군 유천면 고산리에서 태어났다. 1714년(숙종 40) 진사시에 합격하고 1724년(경종 4) 문과에 급제한 후 동몽교관, 승문원정자를 역임했고 172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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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학보(學甫), 호는 후산(后山). 아버지는 이덕삼(李德三)이며, 백부 이기삼(李起三)에게 입양되었다. 이종수는 19세에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소산(小山) 이광정(李光靖)의 문하에 들어가 43년 동안 돈독한 사제지의를 맺었다. 대·소산의 후란 뜻으로 이상정이 후산(后山)이라는 호를 지어주었고 이종수도 평생 스스로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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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산보(山甫), 호는 허주(虛舟). 할아버지는 이원봉(李元鳳), 아버지는 이선경(李善慶), 어머니는 문소김씨(聞韶金氏)로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후손인 김몽렴(金夢濂)의 딸이다. 이종악은 어려서부터 기개가 있었다. 8세에 부친상을 당한 후 어머니에게 극진하였고 그 뜻에 온순히 따랐으며, 자신을 돌보지 않고 제사를 잘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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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균(仲勻), 호는 용재(慵齋)·용헌(慵軒)·부휴자(浮休子)·상우당(尙友堂)·태정일씨(太庭逸氏)·장육거사(藏六居士). 할아버지는 대사헌 이승직(李繩直), 아버지는 진사 이시민(李詩敏),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계경(權啓經)의 딸이다. 이종준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5세에 글을 익혀 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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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주지(冑之), 호는 망헌(忘軒). 할아버지는 이증(李增), 아버지는 이평(李泙), 어머니는 양천허씨(陽川許氏)로 군사(郡事) 허추(許樞)의 딸이다. 이주는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평소 성품이 조용하고 담박하여 일체의 권세와 이익에 관심이 없었으며 옛 사람처럼 되기 위해 스스로 힘써 노력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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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평중(平仲), 호는 창애(滄厓).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형인 송재(松齋) 이우(李堣)의 8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소퇴계(小退溪)’로 불렸던 이동표(李東標), 아버지는 이회겸(李晦兼),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벌(權橃)의 6세손 권두인(權斗寅)의 딸이다. 숙부가 두릉(杜陵) 이제겸(李濟兼)이다. 이중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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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이중린(李中麟)은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자는 진백(振伯)이며, 호는 운포(雲圃)·황산(潢山)이다. 1838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용계마을에서 태어났으며, 1917년 향년 80세로 세상을 떠났다. 1895년(고종 32)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이 일어나자 전국 각지의 거병 움직임과 더불어 안동 지역 여러 곳에서도 의병 봉기를 위한 통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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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이중언(李中彦)은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자는 중관(仲寬)이며, 호는 동은(東隱)이다. 1850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서 태어났으며, 1910년 향년 61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다. 1879년(고종 16) 대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과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880년 도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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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중원(仲圓), 호는 효암(曉庵). 할아버지는 이휘정(李彙廷), 아버지는 이만유(李晩逌),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승지를 지낸 김용락(金龍洛)의 딸이다. 묘소는 원당(元塘) 앞산인 효잠산(孝岑山) 병좌(丙坐)의 언덕에 있다. 이중철은 어려서는 족부(族父)인 이만각(李晩慤)에게 배웠으며 뒤에 서산(西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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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유생.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통보(通甫), 호는 용촌(舂村). 할아버지는 이동성(李棟成), 아버지는 이사상(李師尙), 어머니는 함양박씨(咸陽朴氏)로 박희현(朴希賢)의 딸이다. 이태춘은 어려서부터 도량이 넓고 넉넉했으며 외모는 위풍이 있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에게 엄격한 가르침을 받았다. 어머니도 오로지 문학에 힘쓰도록 권면하여 어린 나이에도 박혁(博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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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경명(景明), 호는 온계(溫溪). 할아버지는 진사 이계양(李繼陽), 아버지는 진사 이식(李埴), 어머니는 춘천박씨(春川朴氏)이다. 동생이 퇴계(退溪) 이황(李滉)이다. 이해는 경상도 안동부 예안현 온계리(溫溪里, 현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아버지가 돌아간 후 어머니가 과부의 자식이란 말을 듣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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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여경(餘慶)·비중(棐仲), 호는 농암(聾巖)·소주도병(燒酒陶甁)·설빈옹(雪鬢翁). 할아버지는 이효손(李孝孫), 아버지는 이흠(李欽),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호군 권겸(權謙)의 딸이다. 이현보는 경상도 안동부 분천리(汾川里, 현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지(才智)가 뛰어나고 골상(骨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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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고문서와 전적. 농암 이현보 종손가 소장 문적은 원래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의 종손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던 조선 전기와 중기의 고문서와 전적류, 회화류 등으로 2004년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되었다. 농암 이현보 종손가 소장 문적 중 1994년 7월 29일에 보물 제1202호로 지정된 문적은 교지류(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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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중기 농암 이현보의 영정. 농암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이자 시조 작가로 1498년(연산군 4)에 과거에 급제한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쳤으나 곧은 성품으로 직언을 함에 따라 안동으로 일시 유배되는 등 정치적으로 기복이 심한 생활을 하였다. 76세 때인 1542년(중종 37) 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으나 사임하고 고향인 예안(禮安)으로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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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순국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서규(瑞圭), 호는 우헌(愚軒)이다. 1844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갈전리 원당에서 태어나 도산면 토계리로 옮겨 살았다. 묘는 2008년 5월 15일 대전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 이현섭은 어려서부터 언제나 의리를 앞세워 실천하고 남을 위한 참된 일이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과단성 있게 처리하는 강직한 성품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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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익승(翼昇), 호는 갈암(葛庵). 할아버지는 이함(李涵), 아버지는 이시명(李時明), 어머니는 안동장씨(安東張氏)로 장흥효(張興孝)의 딸이다. 이현일은 경상도 영해(寧海) 인량리(仁良里, 현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서 태어났으며, 퇴계학파의 적통인 외조부 장흥효와 중형 이휘일에게 수학하였다. 1646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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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경회(景會), 호는 풍은(豊隱). 할아버지는 군자감주부를 지낸 이신(李愼), 아버지는 이전(李荃),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홍여려(洪汝礪)의 딸이다. 이홍인은 경상도 안동부 풍산현(豊山縣, 현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일대)으로 옮겨 살았다. 5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혼자서 자랐지만 제사를 모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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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한산(漢山). 자는 여곽(汝廓), 호는 수은(睡隱). 할아버지는 이대형(李大馨), 아버지는 찰방을 지낸 해산(海山) 이문영(李文英), 어머니는 풍산류씨(豊山柳氏)로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딸이다. 1595년(선조 28) 10월 17일에 전라도 함열군(咸悅郡, 현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태어났다. 본가는 경성(京城) 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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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군식(君式), 호는 눌재(訥齋). 할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이승직(李繩直), 아버지는 이시민(李時敏),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현감을 지낸 권계경(權啓經)의 딸이다. 형이 용재(慵齋) 이종준(李宗準)이다. 이홍준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으며, 1486년(성종 17) 진사시에 합격했다. 연산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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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이황은 안동에서 태어나 학문 활동을 하였던 대표적인 성리학자이다. 주자(朱子)의 이기(理氣) 철학 및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 「천명도(天命圖)」 및 『심경(心經)』을 바탕으로 한 경(敬)의 철학을 수립하여 조선 중기 이후 한국의 유학사에 큰 영향을 남겼다. 본관은 진성(眞城). 고조부는 군기시정을 지낸 이운후(李云侯), 증조부는 선산도호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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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퇴계 이황이 제자 권호문에게 보낸 편지와 글씨체본. 퇴도선생필법1책부퇴도선생유첩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 제자 권호문(權好文, 1532~1587)에게 글씨를 가르치기 위하여 써준 체본(體本)과 이황이 권호문에게 보낸 8통의 편지를 첩으로 묶은 것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교리 207번지[교리향교길 45-18]의 권기철이 소장하고 있으며,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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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군목(君睦), 호는 고계(古溪).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귀응(李龜應), 아버지는 이승순(李承淳), 어머니는 경주최씨(慶州崔氏)이다. 백부는 이지순(李志淳), 백모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백부에게 입양되었다. 이휘령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서 태어났다. 1816년(순조 16) 생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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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심보(深父), 호는 복재(復齋). 할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이귀서(李龜書), 아버지는 응교 이가순(李家淳),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언집(成彦集)의 딸이다. 이휘준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가순이 경술문장(經術文章)으로 당세에 이름이 드러났기에 자제들도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학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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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인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바위그림. 바위그림은 동굴 벽이나 자연 암벽에 여러 가지 기하학적인 무늬 또는 동물상 등을 그리거나 새겨 놓은 그림을 말한다. 암각화(岩刻畵), 암화(岩畵), 암채화(岩彩畵)라고도 한다. 바위그림은 구석기시대부터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석기시대를 지나 청동기시대에 전성기를 맞아 활발히 제작되었다. 바위그림에는 선사시대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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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에서 출토된 조선 중기 복식 유물. 1998년 안동시 정상동에서 택지 조성을 위해 고성이씨 문중 묘를 이장하던 중, 이명정(李命貞, 1504~1556)의 합장묘(合葬墓)에서 미라가 발견되었다. 미라는 종8품 봉사(奉事)를 지냈던 이명정의 부인 일선문씨였다. 이명정의 관은 심하게 부식되었지만, 일선문씨의 관은 단단한 회곽묘 덕분에 관 내부가 그대로 유지되어 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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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간행된 안동 출신의 학자 금응협, 금응훈 형제의 문집. 금응협(琴應夾, 1526~1589)과 금응훈(琴應壎, 1540~1616)은 형제간으로 아버지는 금재(琴榟)이다. 두 형제는 어려서부터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형 금응협은 『심경(心經)』, 『근사록(近思錄)』 등에 힘써 공부했고, 동생 금응훈은 『심경』과 『계몽』 공부에 힘썼다. 이황이 손수 「일휴당(日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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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임진왜란 초기 왜군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안동 지역의 지방 유생과 향촌민이 조직한 민병. 경상도 전역에 왜군의 침략 사실과 동래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지방 수령은 도주하고, 백성들은 피난을 떠나기 시작하였다. 지방 수령들의 도망은 임진왜란 초기의 패배 원인으로 흔히 지적되는 당쟁과, 이로 인하여 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점, 또는 적의 최신식 무기인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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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배삼익의 시문집. 1855년(철종 6) 임연재(臨淵齋) 배삼익(裵三益, 1534~1588)의 9세손인 배한주(裵翰周)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저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이다. 6권 3책의 목활자본으로 표제는 임연재선생문집(臨淵齋先生文集)이다. 행자(行字)는 10행 20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기는 가로 17.4㎝, 세로 22.2㎝이다. 어미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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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의 조선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16세기 말 조선에서 동인과 서인의 붕당 정치가 전개되는 동안, 일본에서는 1587년(선조 20)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전국시대를 통일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제후들의 강력한 무력을 해외로 방출시켜 국내의 통일과 안정을 도모하고, 신흥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 조선과 동맹을 맺고 명나라를 치고자 하였고,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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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임하리 고분군은 행정구역상 안동시 임하면 임하2리에 위치한다. 이곳은 반변천과 길안천 사이에 위치하며, 남동에서 북서로 뻗어가는 능선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임하리 고분군의 범위는 북쪽 경계가 임하보조댐 남단이고, 남쪽 경계는 임하1리와 임하2리를 연결하는 시도이며, 동쪽 경계는 반변천, 서쪽 경계는 임하2리 추월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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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간행된 안동 출신의 김임과 그의 아들·손자 등 3대 8인의 문집. 『장고세고(長皐世稿)』는 세 차례에 걸쳐 간행되었으나 언제 초간이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형태도 현재의 문집보다 소략하였으며, 목판본이 경산재사(景山齋舍)에 보관되어 있다가 화재로 일부분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김양진(金養鎭, 1829~1901)이 1890년에 구본에 의거 재각·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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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경당(敬堂). 아버지는 부장(部長) 장팽수(張彭壽),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장흥효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김성일(金誠一), 류성룡(柳成龍)을 사사하고, 뒤에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평생토록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제자가 수백 명에 달하였다. 1633년에 창릉참봉(昌陵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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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 지역에 세거한 재령 이씨 영해파 종가에 전래된 고문서. 재령 이씨(載寧李氏) 영해파는 조선 전기 이애[1480~1561]가 영해 지역으로 입향한 이래 그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되었다. 조선 전기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형성된 재령 이씨 영해파 종가 고문서는 1986년 10월 15일 보물 제876호로 지정되었다. 재령 이씨 영해파 종가 고문서는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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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동 지역 향촌사회의 지배 계층. 재지사족은 대체로 고려의 향리 가문 후예로 고려 말 조선 초에 첨설직(添設職)·동정직(同正職)·군공(軍功)·과거 등을 통하여 이족(吏族)에서 사족(士族)으로 신분이 상승하였거나, 고려 후기 이래 상경종사(上京從士)하였다가 왕조 교체를 포함한 정치적 격변기에 본향(本鄕)·처향(妻鄕)·외향(外鄕)을 따라 낙향하여 재지 기반을 확보하고 있던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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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저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저수지. 저전리 청동기시대 저수지 유적은 2005~2009년에 걸쳐 동양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서후면 저전리에서는 저수지를 비롯한 청동기시대 농경과 관련된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었다. 특히 저수지 안에서 참나무로 만든 절굿공이가 발견되어 눈길을 끌었다. 절굿공이는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유적에서는 처음 발견된 것으로 벼농사와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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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기서(岐瑞), 호는 사헌(思軒). 아버지는 정중섭(鄭重燮),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사예 권만원(權萬元)의 딸이다. 정내성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6세 때에 부친이 달을 가리키며 시를 지으라 하자 “반달이 하늘에 있어 비록 작더라도 천하를 밝히도다(半月在天中 雖小明天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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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여류 문인. 본관은 안동(安東). 아버지는 장흥효(張興孝),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 남편은 이시명(李時明)이다. 아들로 이휘일(李徽逸), 이현일(李玄逸) 등 7형제를 두었다. 정부인 안동장씨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시문·서화에 능하였고 수리학(數理學)에도 통달하였다. 그러나 15세 이후에는 시문과 서화가 부인의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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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명(子明), 호는 지헌(芝軒). 아버지는 사섬시첨정 정두(鄭枓),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식(權軾)의 딸이다. 동생이 매창(梅窓) 정사신(鄭士信)이다. 정사성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유일재(惟一齋) 김언기(金彦璣)에게 수학하였으며 10세 때는 구봉령(具鳳齡)에게 옮겨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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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부(子孚), 호는 매창(梅窓)·신곡(神谷). 증조부는 의영고직장 정윤소(鄭允昭), 할아버지는 진사 정언보(鄭彦輔), 아버지는 정두(鄭枓),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사직 권식(權軾)의 딸이다. 형이 양구현감 정사성(鄭士誠)이다. 정사신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에서 태어났다. 6세 때부터 형 정사성에게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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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정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정산리 고인돌 떼는 두 곳에 나누어져 있다. 정산리 고인돌 떼1은 정산리에서 남쪽으로 도로 999호선을 따라 약 14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곳은 서쪽으로 낮아지는 완만한 경사지에 조성된 밭으로, 해발 200m에 해당한다. 정산리 고인돌 떼2는 정산리에서 남쪽으로 도로 999호선을 약 52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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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경보(慶輔). 호는 석문(石門). 할아버지는 정원충(鄭元忠), 친아버지는 정식(鄭湜), 양아버지는 정조(鄭澡),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제세(權濟世)의 딸, 처는 전주류씨(全州柳氏)로 류복기(柳復起)의 딸이다. 정영방은 경상도 용궁현 포내리[현재의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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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안동 지역에 정착한 문신이자 입향조.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사겸(思謙), 호는 설헌(雪軒). 시호는 문극(文克). 할아버지는 찬성사 정해(鄭瑎), 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정책(鄭㥽), 어머니는 안동김씨(安東金氏)로 문영공(文英公) 김순(金恂)의 딸이다. 외조부는 상락군(上洛君)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이다. 정오와 정포(鄭誧) 형제는 어머니의 고향인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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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자중(子中), 호는 문봉(文峯). 증조부는 군수를 지낸 정난원(鄭蘭元), 할아버지는 생원 정광우(鄭光祐), 아버지는 정목번(鄭穆蕃), 어머니는 경주이씨(慶州李氏)로 이홍준(李弘準)의 딸이다. 정유일은 어려서부터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이황의 가르침을 듣고 전하는데 그치지 않고 반드시 몸소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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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고종 20) 간행된 조선 후기 문신 류치명의 문집.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 1777~1861)은 조선 후기 퇴계학통의 결정이라 할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1781)의 뒤를 계승한 대유(大儒)로서 일생을 경학에 잠심하고 실천에 전력하여 영남의 유풍(儒風) 진작에 지대한 공적을 남겼다. 문인 이돈우(李敦禹)가 지은 「문집고성문(文集告成文)」에는, 류치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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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수보(壽甫), 호는 송오(松塢). 할아버지는 정두(鄭枓), 아버지는 양구현감을 지낸 정사성(鄭士誠), 어머니는 남순효(南舜孝)의 딸이다. 정전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정사성을 통하여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학문을 이어받았으며,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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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중칙(仲則), 호는 우천(愚川)·우천노인(愚川老人)·소와(笑窩)·와운옹(臥雲翁). 할아버지는 정두(鄭枓), 아버지는 매창(梅窓) 정사신(鄭士信), 어머니는 영춘이씨(永春李氏)로 관찰사 이광준(李光俊)의 딸이다. 정칙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가정에서 수업한 뒤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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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약포 정탁이 적은 일기, 서간 등을 비롯하여 왕이 내린 공신 교서 등 고문서. 약포(藥圃) 정탁(鄭琢)[1526~1605]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왕을 의주까지 호종한 공로로 호성공신(扈聖功臣)에 녹훈되었다. 정탁 문적-약포 유고 및 고문서는 1968년 12월 19일 보물 제494호로 지정되었다. 정탁 문적-약포 유고 및 고문서 가운데 증시 교지(贈諡敎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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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정하동에 있는 고려시대 고분. 낙동강과 반변천이 합류하는 지점 남쪽 야산 지대에 있다. 유적이 있는 야산 북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강변에는 귀래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능선은 최고 해발 156m, 강변 평지는 해발 약 90m로 표고 차이는 66m이다. 고려 민묘가 있는 능선 아래로 성희여자고등학교가 있다. 한국토지공사에서 시행하는 안동 정상동 택지 개발에 따른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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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정하동에 있는 통일신라 말기와 고려 전기에 걸쳐 있던 기와가마군. 정하동 기와가마는 1998년 안동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총 11기의 기와가마를 조사되었는데, 통일신라 말기와 고려시대에 걸쳐 조성되었다. 발굴 조사가 끝난 뒤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절대연대 측정을 의뢰하였고,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시료를 채취하고 일본 후지야마 대학에서 시료를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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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김성탁의 문집. 제산(霽山) 김성탁(金聖鐸, 1684~1747)은 남인의 명문인 천전김씨(김진의 후손)의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촉망받는 학자였으나, 또한 그로 인해 노론의 집중적인 공척(攻斥)을 받아 유배지에서 생을 마쳤다. 김성탁의 유문을 처음 수집하여 정리한 사람은 아들 구사당(九思堂) 김낙행(金樂行)이었으나 미처 정사(淨寫)도 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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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는 조선시대 암각서. 경당 장선생 제월대는 능주목사(綾州牧使)를 지낸 김진화(金鎭華, 1793~1850)가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 1564~1633)를 추모하기 위하여 새긴 암각서이다. 장흥효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관계 진출을 단념하고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현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22호로 지정되어 있는 광풍정(光風亭)을 지어 30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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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유생.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향경(向卿), 호는 둔암(鈍巖). 할아버지는 조봉징(趙鳳徵), 아버지는 조원익(趙元益), 어머니는 예안이씨(禮安李氏)로 이기만(李基晩)의 딸이다. 형제로 조보양(趙普陽), 조득양(趙得陽), 조의양(趙宜陽), 조몽양(趙夢陽)이 있다. 조규양은 현재의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둔산리에서 태어났다. 이유장(李惟樟)의 수제자였던 이성전(李成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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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횡성(橫城). 자는 사경(士敬), 호는 월천(月川)·동고산인(東皐散人)·부용산인(芙蓉山人). 아버지는 참판 조대춘(趙大椿),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수익(權受益)의 딸이다. 조목은 3세에 글을 읽기 시작하였으며, 12세에 사서삼경을 다 읽었다. 15세 때 이황(李滉)의 문하생으로 들어가서 학업에 더욱 정진하였다. 23세에 어머니 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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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인경(仁卿), 호는 팔우헌(八友軒). 증조부는 조명한(趙鳴漢), 할아버지는 조봉징(趙鳳徵),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조원익(趙元益), 어머니 예안이씨(禮安李氏)로 이기만(李基晩)의 딸이다. 형 조규양(趙葵陽)과 함께 문장이 뛰어나서 난형난제라 불렸다. 증조부는 김응조(金應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할아버지는 이현일(李玄逸)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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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이성(而晠), 호는 일봉(一峯). 증조부는 조봉징(趙鳳徵), 할아버지는 조원익(趙元益), 아버지는 성균생원 조규양(趙葵陽), 어머니는 풍산김씨(豊山金氏)로 김달룡(金達龍)의 딸이다. 조석회는 현재의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둔산리에서 태어났다. 1747년(영조 23)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고, 1773년(영조 49) 증광문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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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동 지역의 역사와 문화. 조선시대 안동 지역은 읍으로서의 격은 그대로 유지한 채 경상도의 중심 지역으로 존재하였다. 세조 때는 잠시 진(鎭)이 설치되어 부사가 병마절도부사를 겸하기도 하였다. 당시 안동 지역의 토지는 척박했으나, 풍속은 농상에 힘쓰고 예양과 절검을 중히 여겼다고 한다.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에 의하면, 안동부의 호구수는 847호 6,859인, 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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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간행된 안동 출신의 문신 김택룡의 문집. 조선 중기의 인물인 김택룡(金澤龍, 1547~1627)은 8세에 조목(趙穆, 1524~1606)의 문하에서 학문을 시작한 이후 퇴계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76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경릉참봉을 제수 받은 이래 1608년 영월군수에 이르기까지 여러 벼슬을 지냈다. 스승인 조목을 도산서원에 종향(從享)하는 데 힘썼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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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의경(義卿), 호는 오죽재(梧竹齋). 아버지는 조원익(趙元益), 어머니는 예안이씨(禮安李氏)로 이기만(李基晩)의 딸이다. 아버지 조원익은 문행(文行)으로 향리에서 중망을 받았다. 조의양은 현재의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둔산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대답에 막힘이 없어 농은(農隱) 이급(李級)이 박아군자(博雅君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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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안동 조탑동 오층전탑이 있는 일직면 조탑리 탑마을 뒤 비봉산 지맥 능선과 산 밑 평지에 대형 봉토분들이 있고, 마을 서쪽 중앙고속도로 남안동 톨게이트가 있는 야산 구릉지에 많은 고분들이 분포되어 있었다. 1963년 안동 지역 유적 조사 일환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이 일직면 조탑리 탑마을 뒤 비봉산 능선과 산 밑 평지의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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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 학자 이재가 이덕홍 등 이황의 문인들이 편찬한 『주자서강록』을 수정 증보한 책. 『주서강록간보(朱書講錄刊補)』의 편찬은 16세기의 거유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황은 주자의 저술 가운데 서간문을 매우 중시하였다. 그러나 그 분량이 많으므로 이를 요약하여 만든 것이 『주자서절요』이다. 이황은 또한 제자들에게도 자주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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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 유학자 이황이 주자의 서간문 가운데 주요 부분을 정선하여 편찬한 책. 이황이 주희의 저작집인 『주자대전(朱子大全)』을 처음 접한 것은 한양에서 벼슬을 하던 중인 1543년의 일이다. 그 뒤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은거한 1549년 이후 이황은 본격적으로 이 책을 탐구하였다. 그 중에도 가장 주목한 부분은 48권에 달하는 서간문들이었다. 여기에는 주희가 사우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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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와룡면 중가구리 무학마을에서 북서쪽으로 540m 정도 떨어진 능선에 위치한다. 산 능선 일대와 정상부에 고분군이 밀집하여 들어서 있다. 이곳은 북쪽에 솟은 와룡산의 남쪽 지맥으로, ‘미드골’ 남서쪽은 ‘고래장등’이라 불려오는데, ‘고려장이 많이 있는 등성’이란 뜻이다. 1964년 9월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에서 4기의 돌방무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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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지내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암각서. ‘갈봉김선생중용암(葛峯金先生中庸巖)’은 갈봉 김득연(金得硏, 1555~1593)이 이상동(伊上洞)에서 아버지 유일재(惟一齋) 김언기(金彦機, 1520~1588)가 살고 있는 가야동을 왕래하며 『중용(中庸)』을 외운 것을 기념하여 새겼다. 중용암이란 이름은 김득연이 가야동을 오갈 때 모두 이곳에서 끝이 나므로 이곳이 중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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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지례리 고인돌 떼는 두 곳에 위치했는데, 지금의 박곡리 지역이다. 지례리 고인돌 떼 1·2는 모두 임하댐 수몰로 인하여 현재 임하호 속에 잠긴 상태이다. 지례리 고인돌 떼1은 임동면 지례리(지금의 박곡리) 지촌종택(芝村宗宅, 문화재자료 제44호)에서 동쪽으로 46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지례리 고인돌 떼2는 지촌종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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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지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지리는 안동시 임동면에 속하지만 지리적으로는 청송군 진보면과 더 가까워진보면에서 들어가는 것이 용이하다. 안동과 진보를 연결하는 국도 34호선을 따라 가다가 추현(일명 가랫재)을 넘고 이곳에서 남쪽으로 반변천을 따라 약 8㎞ 내려가면 주왕산 쪽에서 흘러드는 반변천 지류가 합수되는 지점의 서북쪽 야산 비탈면에 있다. 1989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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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1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정사성의 문집. 『지헌집(芝軒集)』은 정사성(鄭士誠, 1545~1607)의 증손 정선(鄭鍹)이 편집하여 1821년(순조 21)에 간행하였다. 저본은 안동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다. 5권 2책의 목판본으로 표제는 지헌선생문집(芝軒先生文集)이다. 행자(行字)는 10행 18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기는 가로 17.8㎝, 세로 20.3㎝이다. 어미는 상하이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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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 문신 류성룡이 임진왜란 동안에 경험한 사실을 기록한 책. 『징비록(懲毖錄)』은 임진왜란이 종식된 뒤 조정에서 물러난 류성룡이 전시 정국의 최고 책임자로서 전쟁의 발생과 당시의 정국 상황, 조정의 대응 등을 회고, 반성하면서 기술한 저술이다. 『징비록』은 1647년 류성룡의 외손 조수익(趙壽益)이 경상도관찰사로 있을 때 목판본 16권으로 간행되었다. 그 후 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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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간행된 안동 출신의 문신 김기보의 문집. 김기보(金箕報, 1531~1588)는 성수침(成守琛, 1493~1564)의 문하에서 배웠고, 황준량(黃俊良, 1517~1563)과 함께 이현보(李賢輔, 1467~1555)의 손주 사위가 되었다. 향시에 합격하여 음보(蔭補)로 언양현감 등을 지냈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창균집(蒼筠集)』이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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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암각서. 도산서원 어귀의 빼어난 경치를 나타내기 위해 글자를 새겼다. 퇴계 이황은 도산서원(陶山書院) 어귀를 곡구암(谷口巖)이라 하였는데, 곡구암의 동쪽을 천연대(天淵臺), 서쪽은 운영대(雲影臺)라고 한다. 천연대는 도산서원 어귀, 시사단(試士壇)과 마주한 절벽에 새겨져 있다. 천연대 절벽의 바윗면을 따로 다듬지 않고 수직에 가깝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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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천지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산성. 천지리 산성은 길안면소재지에서 서쪽으로 1㎞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은 북쪽으로 낮아지는 능선으로 해발은 200m 내외지만, 길안면소재지를 비롯해 주변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길안면소재지 쪽으로 형성된 계곡부를 감싼 포곡식 산성이다. 성벽은 대부분 삭토법을 이용하여 축조하였으나, 일부 석축한 곳도 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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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청동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의 역사와 문화. 안동 지역 청동기시대의 상징은 고인돌, 선돌, 민무늬 토기, 바위그림, 저수지 유적 등으로 대표된다. 고인돌과 선돌은 안동 지역 곳곳에 분포되어 있고, 민무늬 토기는 임동면 지례리와 남후면 하아리, 서후면 저전리 저수지 유적 등에서 확인된다. 바위그림은 임동면 수곡리, 저수지 유적은 서후면 저전리에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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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2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권벌의 문집. 초간본은 1671년(현종 12) 종손 권목(權霂)에 의해 간행되었고, 중간본은 1705년(숙종 31) 후손 권두경(權斗經) 등에 의해 간행되었다. 중편본(重編本)은 1752년(영조 28) 6세손 권만(權萬)이 편집하고 후손 권빈(權薲)이 간행하였다. 저본은 1752년에 간행된 중편본으로 안동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다. 원집 10권과 연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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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겸부(謙夫), 호는 경렴정(景濂亭). 아버지는 집현전대제학을 지낸 탁문위(卓文位), 처는 문의박씨(文義朴氏)로 박지연(朴之衍)의 딸이다. 동생이 탁광손(卓光孫)이다. 탁지엽(卓之葉)을 시조로 하는 광산탁씨(光山卓氏)의 한 갈래가 안동에 입향한 것은 선조 때 훈련대장을 지낸 탁광무의 후손 탁순창(卓順昌) 때이다. 탁광무는 1331년(충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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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태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태곡리 고인돌 근처에서는 간간히 민무늬토기편이 채집되며, 1983년에는 태곡초등학교 교정에서 돌도끼 한 점이 채집된 바 있다. 돌도끼는 길이 14㎝, 폭 5.5㎝ 정도의 조갯날 도끼로 전체를 정교하게 갈았으며, 석질은 화강암제이다. 태곡리 고인돌은 예안면 태곡리 397-5번지 밭 가운데, 약 80㎝ 의 사이를 두고 2기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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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태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바위그림. 바위그림은 동굴 벽이나 자연 암벽에 여러 가지 기하학적인 무늬 또는 동물상 등을 그리거나 새겨 놓은 그림을 말한다. 암각화(岩刻畵), 암화(岩畵), 암채화(岩彩畵)라고도 한다. 바위그림은 구석기시대부터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석기시대를 지나 청동기시대에 전성기를 맞아 활발히 제작되었다. 바위그림에는 선사시대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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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있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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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태화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태화동 고분군의 조성 시기는 돌덧널의 구조와 유물을 주변 지역과 비교·검토할 때 5세기 전반에서 6세기 중반 사이에 조성되었다고 여겨진다. 능선 정상부의 3호분이나 4호분은 뚜껑돌[개석]을 사용한 점과 돌덧널 축조 방식에서 주변의 유구들과는 구별되며 주변보다 약간 늦은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 당시 고분들은 봉토가 남아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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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바위그림. 바위그림은 동굴 벽이나 자연 암벽에 여러 가지 기하학적인 무늬 또는 동물상 등을 그리거나 새겨 놓은 그림을 말한다. 암각화(岩刻畵), 암화(岩畵), 암채화(岩彩畵)라고도 한다. 바위그림은 구석기시대부터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석기시대를 지나 청동기시대에 전성기를 맞아 활발히 제작되었다. 바위그림에는 선사시대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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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간행된 조선 후기 안동 출신 유학자 류도원이 정리한 『퇴계집』 주석서. 임동면 박실에서 살았던 류도원은 부친 류승현(柳升鉉) 형제에게서 가학을 계승하고 이상정(李象靖)을 통하여 퇴계의 학문을 이어받은 당시 안동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그는 평소 『퇴계집(退溪集)』을 깊이 탐구하였는데, 『퇴계집』 본문에 나오는 인명과 지명, 긴요한 고사들과 자구에 대하여 주석을 붙인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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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 이황의 문집. 이황(李滉, 1501~1570)은 주자의 학문과 사상을 이은 도학자로서 이기호발설 등 성리학 관련 분야에서 고명한 탁견과 학문으로 매우 뛰어난 인물이다. 특히 이황이 당시 군왕인 선조에게 올린 『성학십도(聖學十圖)』는 성학에 대한 선학의 도(圖)와 설(說)에 자신의 견해를 덧붙여 유학의 핵심을 10개의 도(圖)로써 정리한 것으로, 군주는 사단(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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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 이수연이 편찬한 퇴계 이황의 언행록. 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는 퇴계 이황의 언행을 기록한 급문제자(及門弟子)들의 저작들이 산재하여 있었다. 이 중에 특히 유명한 것이 이현일의 문인 권두경(權斗經, 1654~1725)이 편찬한 8권 5책의 『퇴계선생언행통록』이었다. 『퇴계선생언행통록』은 권두경의 사후인 1732년, 당시 경상도관찰사 조현명의 도움으로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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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 있던 조선시대 암각서. 표은(瓢隱) 김시온(金是榲, 1598~1669)을 추모하기 위해 새긴 글씨이다. 김시온은 병자호란 후 도연(陶淵)에 은거하면서 학문에만 전념하여 제자백가 및 경학에 통달하였으며, 후세 사람들이 명나라에 대한 절의를 저버리지 않은 숭정처사(崇禎處士)라 하였다.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 위치한 도연폭포(陶淵瀑布) 주변 절벽에 하남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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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암각서. 풍산홍씨 세장지지(豊山洪氏世葬之地)는 풍산홍씨 문중의 홍중묵(洪重黙)이 시조와 조상들을 추모하기 위해 새긴 글씨이다. 풍산홍씨 세장지지는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 신성포 탑평촌에 건립된 창암정(蒼巖亭) 아래에 있다. 창암정은 탑평촌 서쪽에 솟아 있는 두암(斗巖)이라는 암벽 위에 있는데, 암각서는 두암에 새겨져 있다. 창암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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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상리리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 산성. 17세기 초에 편찬된 안동 지역 지방지(地方誌)인 『영가지(永嘉誌)』 고적조(古蹟條)의 “풍악산성(豊嶽山城)은 풍산현(豊山縣)의 동북쪽 2리 지점에 있으며 지금은 못 쓰게 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늦어도 17세기 초에는 산성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동시 풍산읍 상리리 하지산(下枝山)에 있다. 하지산은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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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 있던 조선시대의 암각서. 하남삼절이란 도연폭포(陶淵瀑布), 격진령(隔塵嶺), 선유창벽(仙遊蒼霹) 세 곳의 빼어난 경치를 말한다. 도연폭포는 안동팔경 가운데 하나이고, 격진령은 표은(瓢隱) 김시온(金是榲, 1598~1669)이 병자호란 후 은거했던 곳이며, 선유창벽은 신선들이 노닐 만큼 아름다운 절벽을 말한다. 도연폭포와 그 주변의 빼어난 경치를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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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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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하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하아리 민무늬토기산포지는 안동시 남후면 하아리 낙동강변 제방에 있다. 남후면 하아리는 낙동강이 풍산읍 마애리를 U자 모양으로 휘돌아 풍산평야 앞을 지나, 풍천면 병산리로 빠지는 강줄기에 세 면이 둘러싸인 야산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강과 맞닿은 하아리의 동쪽은 병풍과 같은 수직 암벽으로 이어져 있고, 암벽이 끝나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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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신전리에 있는 신라시대 포곡식(包谷式) 산성. 학가산성(鶴駕山城)의 최초 사용 시기는 내부에서 출토되는 토기편으로 보아 신라시대로 추정된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했던 곳이라는 전설도 전해진다. 안동시 북후면 학가산 정상부에 있다. 학가산은 안동시와 예천군에 걸쳐 있으며 해발 882m 정도인데, 동쪽으로는 안동 시가지, 남쪽으로는 풍산읍, 서쪽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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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서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비석. 학봉 신도비 및 묘방석은 조선 중기 문신이며 학자였던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신도비와 묘소 바로 옆에 위치한 묘방석이다. 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이며, 묘방석은 묘의 바로 옆에 두어 묘의 주인공을 밝혀두는 것이다. 안동시 와룡면 서지리 김성일의 묘에서 약 50m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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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9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김성일의 문집.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은 안동의 호계서원과 임천서원에 배향된 인물로,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과 더불어 퇴계의 학통을 이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김성일의 퇴계학맥은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에게 전수되었고, 다시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밀암(密庵) 이재(李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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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 김휴가 나라 안에 퍼져 있던 670여 종의 도서를 해제(解題)한 책 김휴(金烋, 1597~1639)는 여헌 장현광의 제자이다. 그는 1616년경 장현광의 집에서 중국의 『문헌통고(文獻通考)』 경적고(經籍考)를 처음 보았는데, 이를 계기로 『해동문헌총록(海東文獻總錄)』을 편찬하게 되었다. 그는 먼저 영남 지방에서도 임진왜란의 전란을 면한 봉화, 영주, 예안,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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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안동 출신 김성일이 1590년 일본에 다녀와서 지은 사행록. 1590년을 전후한 시기 일본은 전국을 통일한 관백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당시 일본의 요청이 있던 데다, 정세를 파악하기 위하여 조선은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하였는데, 김성일(金誠一)은 부사로 임명 받아 사행의 일원이 되었다. 대마도를 거쳐 일본의 막부가 있는 에도까지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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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에서 활동한 강필효의 문집 및 편저. 강필효(姜必孝, 1764~1848)는 22세에 윤광소(尹光紹, 1708~1786)에게 학문을 배웠다. 천거로 여러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퇴계선생문집』과 『우계선생문집』을 교감하는 데 참여하였다. 주자학에 정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학에도 뛰어나 많은 저술을 남겼다. 문하에서 성근묵(成近默)을 비롯해 많은 학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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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안동 출신 의병장 김해가 기록한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 일기. 김해(金垓, 1555~1593)는 1589년 증광시에 급제한 뒤 승문원권지정자와 예문관검열을 지낸 문신 관료였다. 고향에서 지내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해는 왜적의 침입 소식을 들은 날부터 경주의 의병 진영에서 순국하기 직전까지 전투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김해의 일기는 후손이 보관하고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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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현내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두 기의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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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학자 류휘문의 문집. 류휘문(柳徽文, 1773~1832)은 아홉 살에 중부(仲父)인 류명휴(柳明休)에게서 처음 가학을 전승받았고, 이후 류장원(柳長源, 1724~1796), 남한조(南漢朝, 1744~1809), 정종로(鄭宗魯, 1738~1816)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닦았다. 조부와 스승의 유작인 『역해참고(易解參攷)』와 『상변통고(常變通攷)』를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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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안동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적비. 옛날 안동부 내에는 두 개의 커다란 제방(堤防)이 있었는데, 송제(松堤)와 포항제(浦項堤)가 그것이다. 송제는 반변천(半邊川)의 홍수를 막아 ‘맛뜰’을 보호하는 제방이고, 포항제는 낙동강의 홍수를 막아 부의 성(城)을 보호하던 제방이다. 포항제는 임청각(臨淸閣) 밑 개목다리에서 옥야천을 지나 영호루(映湖樓)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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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 고려 초에 안동 지역에서 독립된 세력을 형성하여 지배권을 행사하던 세력. 호족(豪族)은 신라 하대 이후 진골 귀족이 분열되면서 지방에 성읍(城邑)이라는 독자적 영역을 만들어 주민들을 무장시키고 성주·장군을 칭하면서 지방을 독립적·반독립적으로 다스리던 지방 세력을 말한다. 후삼국 통합 전쟁은 독자적인 지방 세력인 호족을 무력이나 회유의 방법으로 흡수하는 과정이었다. 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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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월곡면 절강동(지금의 와룡면)에서 출토된 조선 중기 복식유물. 안동댐 건설로 수몰 예정인 부림홍씨의 14대조 홍극가(洪克家, ?~1670)의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의복이 출토되었다. 1979년 국가민속문화재 제40호 안동홍씨수의로 지정되었으며, 2004년 홍극가묘 출토복식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현재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안동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홍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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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안동 출신 학자 이휘일·이현일 형제가 『서경』의 홍범(洪範) 편에 상세히 해설을 붙인 책. 홍범이란 대법(大法)의 다른 말로서, 천하를 다스리는 큰 원리를 뜻한다. 홍범 편은 다시 그 강목을 아홉 부분으로 나누어 홍범구주(洪範九疇)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경(書經)』에 의하면 홍범구주는 천하를 다스리는 9가지 대법(大法)으로 하(夏)의 우왕(禹王)이 하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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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정이(靜而), 호는 두곡(杜谷)·계곡(桂谷)·두곡기인(杜谷畸人). 할아버지는 영원부원군(寧原府院君) 홍가신(洪可臣), 아버지는 한성서윤(漢城庶尹) 홍영(洪榮), 어머니는 양천허씨(陽川許氏)로 이조판서 악록(岳麓) 허성(許筬)의 딸이다. 할아버지 홍가신은 문학(文學)과 행의(行誼)로 선조조에 이름이 알려졌으며 홍주목사로 재임시 극심한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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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화산 권주의 신도비. 권주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지경(支卿)이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가 일어나 성종이 연산군의 어머니 윤비를 폐위시키고 사사할 때 사약을 가지고 갔다 하여 평해(平海)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교살되었다. 중종 때 우참찬에 추증되었으며, 저서에 『화산유고(花山遺稿)』가 있다. 1711년(숙종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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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 봉강영당에 있는 초상화. 「화원군 영정」은 1728년(영조 4)에 그려진 화원군(花原君) 권희학(權喜學, 1672~1742)의 영정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 공이 있는 인물에게 공신 호칭을 주고, 공신도상(功臣圖像)을 그려 봉안하는 작업이 조선 전기부터 활발하였는데, 「화원군 영정」은 공식적인 공신 도상으로서는 마지막으로 그려진 것으로, 57세 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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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적비. 지금의 황산사인 봉황사는 644년(선덕여왕 13)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나, 확실한 사료가 없어서 누가 언제 세웠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17세기 초에 편찬된 안동 지역 지방지인 『영가지(永嘉誌)』에 “임하현에서 동쪽으로 15리 떨어진 기산(岐山) 아래에 있는 신라 고찰이다.”라는 기록만 전할 뿐이다. 봉황사는 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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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김부필의 종손가에 소장되어 있는 유물. 후조당 유물은 조선 중기의 학자 후조당(後彫堂) 김부필(金富弼, 1516~1577)의 종손가에 소장되어 있는 문적인 『전가보첩(傳家寶帖)』과 『향병일기(鄕兵日記)』이다. 김부필은 퇴계 이황(李滉)의 제자로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참봉을 지냈다. 아우 김부의(金富儀), 사촌 형제 김부인(金富仁)·김부신(金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