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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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과 고흥군 영남면을 잇는 교량 및 도로. 여수시 돌산읍에서 화양면을 경유하여 고흥군 영남면을 잇는 연륙·연도교는 총 길이 39.1㎞이고 11개의 교량은 9.1㎞이며, 폭은 7m로 국도 77호선에 있다. 여수시 돌산읍에서 고흥군 영남면을 잇는 교량이 11개로 잠정적으로 11개 연륙연도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11개 연륙·연도교는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장과 고흥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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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반도·고돌산반도와 돌산도·개도로 둘러싸인 내해. 가막만은 북쪽에 여수반도, 동쪽으로 돌산도, 서쪽의 고돌산반도[화양면], 남쪽으로는 개도를 비롯한 섬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북 방향의 길이 약 15㎞, 동서 방향의 길이 약 9㎞인 타원형의 내만이다. 청정 해역으로 지정되었으며, 가막만의 소호동 앞바다에서는 진주담치 로프 수하식 양식과 돌산과 화양면에서는 굴양식이 활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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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거문도 점령 사건 이후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유촌리에 설치된 진. 영국 해군의 거문도 점령 사건이란 1885년(고종 22)부터 1887년까지 약 2년 동안 영국동양함대사령관 포트 해밀턴 중장이 불법 점령한 사건을 말한다. 영국군 철수 후 경략사 이원희를 보내 동도 유촌리에 거문진을 설치하였고, 첨사 겸 수방장 신석효로 하여금 창사를 건립케 하였다. 그러나 8년 만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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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후삼국시대까지의 전라남도 여수시의 역사. 여수 지역에는 삼한시대 마한연맹체의 하나인 원지국(爰池國)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4세기 후반 백제가 세력을 확장함에 따라 전라남도 지역에 위치한 여러 소국들은 백제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백제는 여러 소국들을 곧바로 군현(郡縣)으로 편제하거나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았다. 소국의 족장세력의 존재를 인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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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6년 후백제 멸망 이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전라남도 여수시의 역사. 개성 지역의 호족 세력으로 발전한 왕건(王建)은 918년 고려를 건국하였다. 935년 신라의 투항을 받아들인 후, 936년 후백제를 멸망시켜 후삼국을 완전히 통합하였다. 940년(태조 23) 전국의 행정 구역을 주(州)·부(府)·군(郡)·현(縣)으로 개편하였다. 이에 통일신라시대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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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지역에서 풍경·풍습·문물 따위를 유람하는 일. 「관광진흥법」에 의한 관광 사업은 관광객을 위하여 운송·숙박·음식·운동·오락·휴양 또는 용역을 제공하거나 그 밖에 관광에 딸린 시설을 갖추어 이를 이용하게 하는 업(業)을 말한다. 여행업은 여행자 또는 운송 시설, 숙박 시설, 그 밖에 여행에 딸리는 시설의 경영자 등을 위하여 그 시설 이용 알선이나 계약 체결의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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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지역에서 차량이나 사람이 건널 수 있도록 설치한 고가 구조물. 여수시에 있는 교량을 일반국도, 지방도, 시·군도로 구분하여 살펴보면 일반국도 위의 교량은 13개의 교량이 있는데, 대표적인 교량으로는 돌산대교[450m], 백야대교[325m] 등이 있다. 2006년 말 현재 교량은 전체 55개소이고 총 연장은 2,538m이다. 이 중 일반국도 상에는 13개소에 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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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돌산 지역은 조선수군진의 하나로 방답첨사진이 자리하였는데, 진영이 석성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지금도 그 흔적을 마을 곳곳에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전기 중종 때 쌓아진 성의 기록을 보면 주위가 2,182척(尺)(661m), 높이가 13척(3.9m)의 사각형 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오랜 역사를 안은 마을답게 땅이름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담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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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는 357.5㏊의 면적에 537세대 1,415명[남자 715, 여자 700]의 주민이 살고 있는 돌산읍에서 가장 큰 법정리 마을로 돌산읍사무소 소재지이다. 군내리라는 마을 이름은 1896년 돌산도를 중심으로 한 도서 지역이 돌산군이 되면서 ‘군이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지어졌다. 돌산이 군이 되었던 것은 당시 완도의 고금도와 흥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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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돌산읍사무소 부근인 332-2번지에는 방답진 시절부터 돌산군 시절, 여수군 돌산읍 시절로 이어지는 군내리와 관련된 여러 인물의 비석이 군집을 이루며 서 있다. 군내리의 여러 곳에 산재하고 있던 비석들이 1976년 4월에 군내리 595번지 벽송정 아래로 옮겨졌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군내리의 교통은 해상 교통이 중심이어서 주민들은 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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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죽포리 봉덕초등학교에 있는 조선 후기 석탑. 금백암지 삼층석탑은 돌산읍 죽포리 뒷산에 있었던 김백암의 폐사지에 있었다. 폐사지에 있었던 탑을 돌산 봉덕초등학교 자연체험학습장 수조 앞 화단 모퉁이에 옮겨놨다. 이종범은 『여수시의 문화유적』에서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였으나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주장도 있다. 언제,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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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평사리에 있는 산. 돌산도의 8대산 중의 하나이며, 돌산 무술목에 봉긋이 솟아난 대미산은 서쪽에 있는 천마산과 함께 여수에서 돌산으로 들어오는 좁은 통로 역할을 한다. 산 정상에 월암성터가 남아 있는데 최근 여수시에서 복원공사를 하였으며. 주변에 있는 봉수대도 복원하였다. 임진왜란 때 대미산에 왜군이 일시 점령한 왜적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대미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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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지역에서 사람이나 차가 다니는 비교적 넓고 큰 길. 도로는 관리 주체 및 기능에 따라 고속도로, 전용도로, 일반국도, 지방도, 시·군도, 농·어촌도로 등으로 구분되며, 도로는 사회간접자본(SOC)의 대표적인 시설로써 방문객과 여행객에게 교통의 편리를 제공함은 물론 여수 시민에게도 쾌적하고 깨끗한 교통 문화를 정립하는 매체가 되고 있다. 또한, 여수국가산업단지의 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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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에 있는 축구장. 월드컵 4강 진출 이후 축구인들의 수는 급격히 늘었다. 여수 역시 지역출신 국가대표와 청소년 대표로 발탁된 사례가 많아 축구에 대한 관심도는 물론 인기종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여수 지역 축구는 엘리트 코스로 명성을 얻고 있는, 미평초등학교와 구봉중학교 축구가 두각을 나태내고 있고, 약 2만 명에 가까운 동호인들이 즐기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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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부터 1914년 사이에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지역에 있던 행정구역. 1896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과거 돌산현의 돌산이라는 명칭을 따 나주부 흥양군[고흥]·순천군·광양군·낙안군[보성 벌교읍·순천 낙안면] 등에 속했던 두남면·남면·화개면·옥정면·삼산면·태인면·봉래면·금산면의 8개면으로 구성된 돌산군이 신설되었다. 뱃길 따라 남해안의 중서부를 가다보면 갑자기 큰 산이 나타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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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남산동과 전라남도 돌산읍 우두리를 연결하는 다리. 돌산도를 연결하는 다리의 특성과 용도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도록 ‘돌산대교’라고 이름 붙였다. 길이는 450m, 폭은 11.7m, 높이는 62m이다. 여수항에 입항하는 대형 선박을 위해 양쪽 해안에 높이 62m의 교각을 설치하였으며, 지름 56~87㎜ 정도의 강철 케이블 28개로 교판을 묶어 무게를 지탱하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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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에 있는 섬. 돌산읍이 있는 돌산도는 한자로는 돌산현(突山縣)·식산현·여산현(廬山縣) 등의 이름을 갖고 있다. 섬의 이름은 8개의 큰 산이 있다는 뜻에서 산(山)·팔(八)·대(大)자를 합하여 돌산도라 했다고 전한다. 돌산 땅이름 유래를 살펴보면 돌산 최초의 군지인 『여산지』에서 섬 가운데 이름난 팔대 명산(천왕산·두산·대미산·소미산·천마산·수죽산·봉황산·금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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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읍. 여수시 남동쪽의 돌산읍을 이루고 있는 돌산도는 우리나라에서 여덟 번째로 큰 섬이다. 1899년 돌산군수 서병수가 편찬한 돌산 최초의 역사서인 『여산지(廬山志)』에 “돌산도에는 섬 가운데 이름 난 팔대 명산이 있어 그 이름을 식산이라 하였고, 방언에는 섬 가운데 돌이 많은 산이 많아서 돌산이라 칭한다.”라고 하였다는 유래가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돌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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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 지방에서 초군들이 풀을 베고 돌아올 때 집단으로 하는 놀이. 돌산에서는 ‘풀들게’라 하여 자연마을 단위로 풀베기 공동 작업을 하는 조직이 있다. 풀을 베기 위하여 무리를 지어 다니는 사람들을 초군이라 하였다. 초군 중에선 지휘자격인 상머슴이 있다. 규율이 엄하며, 우두머리를 장쇠라 하여 연장자가 맡는다. 큰 장쇠는 곤장으로 모든 회원을 엄하게 다스리며, 영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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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평사리 굴전해안에 있는, 겨울을 나기 위해 고니떼가 날아오는 곳. 고니는 기러기목, 오리과에 속하는 물새이다. 고니의 온몸은 순백색으로 몸이 커서 흔히 ‘백조(白鳥)’라고도 한다. 눈 앞쪽에는 노란 피부가 드러나 있고 다리는 검은색이다. 시베리아 넓은 초원의 늪지에서 풀잎과 줄기 또는 흙을 이용하여 둥우리를 틀고 한배에 5~6개의 알을 낳는다. 헤엄을 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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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에 사는 강호경은 본인의 이름보다는 아들 이름인 ‘태연이 어망’이나 ‘해녀집 할머니’로 통한다. 성산 일출봉으로 유명한 서귀포시 성산면 시흥리 출신이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친정어머니는 오빠들 공부 때문에 일본에서 살았고 집에서 자신은 아버지와 함께 산 것으로 기억한다. 집안 형편이 좋은 편이어서 생활의 어려움은 별로 느끼지 못하고 살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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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에 있는 국립 교육기관. 조선시대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과거에는 나라에서 토지, 노비, 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현대에는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조선시대 돌산은 순천부 행정구역에 속하여 방답진(防踏鎭)이 위치하고 있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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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의 종화동·관문동·동산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1998년 여수시의 행정동 통합으로 동산동, 관문동, 종화동을 동문동으로 통합하였다. 동문동의 이름은 조선시대 좌수영성이 있을 때 동문 바깥에 있는 지역이어서 동문 밖이라 하던 고유지명에 근거해서 동문동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여수군 여수면에 소속되었으며, 1941년 여수읍을 동정과 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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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1·4후퇴 당시 미국 상륙용배(L.S.T)를 이용해 대부분 황해도 출신인 수많은 이북 피난민들이 여수와 돌산 등으로 피난을 왔다. 그중 약 70여 명의 감리교인들이 돌산읍 둔전리에 제단을 마련하였다. 또한 총리원에서 파송된 박성태 목사가 둔전감리교회[현 돌산중앙교회]를 창립한 후, 교단으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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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안도리 안도는 금오도와 마찬가지로 왜구가 침입해 왔던 길목 또는 그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명종실록(明宗實錄)』을 보면, 1546년(명종 1) 9월 25일 기사에 전라도수사 김세한(金世澣)의 계본(啓本)을 정원에 내리면서 전교한 내용이 적혀 있다. “바닷물 속에 들어가 조개·미역 등 해산물을 채취하거나 국가의 각급 제사에 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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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에서는 돌산읍의 오랜 숙원이던 읍사무소 신축 공사가 한창이다. 삼국시대부터 돌산현·여산현 등 군이나 현으로 편재되었던 돌산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여수군이 폐현되고 왜구와의 싸움을 기피했던 새 왕조의 공도 정책으로 사람까지 살 수 없었다. 1896년 어렵게 설군되었던 돌산군은 18년 만인 1914년에 교통과 인구 규모 등을 기준으로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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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본산과 천마산 대미산 사이 산으로 둘러싸인 둔전리는 둔전(屯田)과 봉수(烽燧)마을로 마을 뒷산에 방답진의 둔전이 있었으므로 마을 이름이 되었다. 본래 돌산군 두남면[돌산]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여수군 돌산면 둔전리가 되었다. 1980년 돌산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98년 4월 1일 여천군·여천시·여수시의 통합으로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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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가축 사육을 목적으로 만든 목초지, 건물, 목책 등을 설비한 토지. 목장은 국방용·교통용·식용 등으로 일정 동물을 사육하는 곳을 말한다. 조선시대에 목장은 병조 사복시(司僕寺) 소관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별도로 감목관을 두었다가 후에는 지방 수령이 맡거나 도서 지방에 수군이 있는 경우에 해당 수군의 장이 겸하게 하였다. 감목관 아래에는 감목을 두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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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근대 이전의 풍속과 생활 모습이 반영되어 민간에 전하여 오는 놀이. 실제 생활 밖에 있고 물질적 이익이나 효용과는 관계가 없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행위를 놀이라 한다. 여기에 민속이란 말이 붙으면 민중에 의하여 전승되고 향토성과 제의성 등의 요소를 가진 행위라는 뜻으로 그 의미가 제한된다. 곧 민속놀이는 민중에 의하여 지역의 풍속과 생활 모습이 반영된, 향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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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3년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에 설치한 수군 진(陣). 방답첨사진은 지금의 돌산읍 군내리에 있었던, 왜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된 최일선 수군거진(水軍巨鎭)이었다. 원래 돌산은 고려시대까지는 돌산현으로 독립된 행정단위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후 여수현과 함께 폐현시켜 순천부의 일개 면으로 귀속시켜 버렸다. 1523년(중종 18) 전라좌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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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신복리에서 고흥군 영남면 우천리까지 열한 개 해상 교량으로 연결 예정인 도로. 백리섬섬길은 전라남도 여수에서 고흥 간 거리인 ‘100리[백 리]’에 섬과 섬을 잇는 바닷길이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전라남도에서는 2020년 1월 23일부터 15일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신복리에서 고흥군 영남면 우천리 간 39.1㎞[해상 교량 1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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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장수리와 안포리 사이 봉화산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봉수는 변방 국경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 또는 변경의 기지에 알리는 군사상 목적으로 설치된 통신 수단이다. 적이 침입했을 때 현지에서 직접 전투를 담당한 군사적 고지(高地)이기도 하다. 백야곶 봉수대는 화양반도에서 백야도를 왕래하는 관문으로 기능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백야곶 봉수대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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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연기를 이용한 전통 시대의 통신 수단. 봉수제도는 봉(烽, 횃불)과 수(燧, 연기)로써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 수단이다. 서로 마주 볼 수 있는 일정한 간격의 산을 지정하여 밤에는 불빛으로,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보낸다. 우리나라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설치된 봉수제도는 기록상 고려 후기인 12세기에 처음으로 보인다. 봉수는 역마(驛馬)나 인편(人便)보다 시간적으로 단축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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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개도리에 있는 산. 자세한 명칭유래는 알 수 없으나, 산 정상부에 돌산 방답진 봉수대와 마주하는 봉화대가 있어서 봉화산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고 전한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중성화산암류로 이뤄졌으며, 화산마을에서 봉화산으로 오르는 북쪽은 경사가 완만하나 반대편 남쪽은 급경사면이다. 봉화산을 중심으로 해안선은 동쪽과 서쪽이 돌출되어 있으며, 그밖에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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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석가모니와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 불교는 흔히 깨달음의 종교라고 한다. 다른 종교가 사랑·인(仁)·박애 등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는 반면에, 불교는 자연과 우주의 보편 원리로서 개개의 존재에 내재하는 본성을 깨달아 실현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교주는 석가모니이며, 깨달음을 위한 수행 방법을 체계화하여 정리한 불경이 있다. 신도로는 깨달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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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지역에서 주변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 여수는 전반적으로 오랜 침식을 많이 받은 구릉성 산지가 발달해 있다. 남해안에 발달한 리아스식 해안의 영향으로 곳곳에 반도가 형성되어 있고, 복잡한 해안선과 낮은 해저의 간석지가 많은 지형적인 특징을 띄고 있다. 이곳은 소백산맥의 지리산 노고단[1,507m]을 중심으로, 곡성과 순천을 지나 여수반도로 뻗어 내려오는 지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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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현(지금의 여수시)이 세 번 폐현되었다가 네 번째 복현(復縣)을 이룬 것. 1396년(태조 5)에 조정에서 새로운 왕조(王朝)의 건국에 관한 교지(敎旨)를 전국에 내렸는데, 당시 여수의 현령(縣令) 오흔인(吳欣仁)은 태조의 혁명을 단호히 반대하며 사신을 거절하였다. 이로 인해 태조는 대노하여 여수의 폐현을 명하고 순천부에 예속시켰다. 순천에 예속된 여수 백성들은 훗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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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선사시대에 돌을 이용해 만든 도구. 석기를 주도구(主道具)로 사용한 시대를 고고학에서는 석기시대로 부르고 있다. 석기시대는 일반적으로 타제석기를 사용하였던 구석기시대, 마제석기를 사용하였던 신석기시대로 대별된다. 신석기시대에는 마제석기가 제작되었으나 그 중 일부는 석재를 깨뜨려 다듬은 뒤 인부(刃部)만 마연한 것들도 있다. 현재까지 여수에서 구석기시대 석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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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월이면 온 나라의 산과 들에 노란 고들빼기 꽃이 지천으로 피어난다. 이 고들빼기를 식용으로 재배하게 된 것은 20여 년 전쯤이니 그리 오래되지 않은 셈이다. 쓴맛 때문에 1950~1960년대 식량이 부족할 때도 식용으로는 사용하지 않았고 토끼가 잘 먹어서 토끼풀이라고도 했다. 고들빼기는 국화과의 2년초이다. 줄기는 곧고 가지를 많이 치며 봄과 여름이면 녹색이던 잎이 가을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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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살고 있는 동일 인물을 조상으로 하는 혈족 집단. 성씨는 혈연 관계를 나타내 주는 단위로,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고(高)씨, 백제의 시조 온조의 부여(夫餘)씨, 신라의 박(朴)·석(昔)·김(金)씨 등을 시발로 귀족 계급에서 먼저 사용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성씨가 많이 늘어났고, 조선시대에는 일부 천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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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덕양마을에는 다른 면 소재지와 달리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가 있는 곳이다. 소라초등학교는 1921년 6월 20일 개교한 소라공립보통학교의 후신으로 당시 여수군 내에서는 여수서정보통학교와 여수동보통학교 그리고 돌산초등학교에 이어 네 번째로 생겼다. 도로변 학교 교정에는 일본에서 건너온 큰 히말라시다가 여러 그루가 심어져 있어 일제 때 건립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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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이루어지는 화재의 진압 및 예방과 관련되는 활동. 소방이라는 용어의 사용과 근대적인 소방 행정은 갑오경장 이후부터이다. 1894년 7월 14일 지금의 경찰청에 해당하는 경무청(警務廳)을 설치하고 ‘행정경찰장정(行政警察章程)’을 제정하여 치안 업무뿐만 아니라 소방 업무까지 관장하게 하였다. 이듬해인 1895년 4월 29일에는 경무청 직제를 제정하여 경무청에 경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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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2월 돌산군이 설치되고 1897년 5월 여수군이 설치되었는데, 이 지역은 모두 순천부에 속해 있었다. 순천부에 속해 있을 당시 여수 방면의 도로는 순천부에서 여수 방향 16㎞ 지점에 성생원[율촌면 소재], 24㎞ 지점에 무상원[쌍봉역], 32㎞ 지점에 내례원[국동 지역]이 있었던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3개의 역참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여수에는 세 갈래의 간선도로가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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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행해지는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활동. 식생활은 지리적, 기후적,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 역사적 요인 등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가장 합리적인 형태로 식재료와 조리법을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며 변화되어 왔다. 따라서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른 양식을 낳았고, 기호나 식재료를 구하는 용이함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발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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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신복리와 금성리에 있는 조선시대 추정 석축 산성지. 신기산성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그 축성 연대를 알기가 매우 어렵다. 다만, 전해지는 구전에 의하면 임진왜란 전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인해 타지에서 피난해온 사람들이 왜구의 침입을 예방하기 위해 축조했다고 한다. 이 성은 동서를 연결하는 장축의 성으로 길이가 길어 만리성으로도 불린다. 『호남읍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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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안도리에 있는 섬. 섬의 형태가 기러기 모양과 같다고 하여 ‘기러기 안(雁)’ 자를 써 안도(雁島)라고 하다가 1910년 안도(安島)로 개칭되었다. 섬 가운데 자연호가 형성되어 천혜의 선박피난소로 사용되고 있으며, 입구는 좁고 들어갈수록 넓어져 S자형으로 선박이 안전 피항할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안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최고봉인 중앙의 상산[207m]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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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1860년 대화재가 발생하여 안도를 뒤덮은 울창한 삼림이 불에 타고 100여 호가 넘는 민가는 단 한 집만을 남기고 모두 불타 버렸는데, 오갈 데가 없던 주민들은 봉산으로 지정되어 살 수가 없던 금오도로 숨어 들어가 오늘날 남면을 일구게 되었다고 한다. 섬과 섬의 안, 즉 안쪽에 있는 섬이라 하여 ‘안섬’이라고 부르던 데서 유래한다. 한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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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에 설치된 행정구역. 통일신라시대는 통일 후 확대된 영토를 통치하면서 자연히 지방 행정구획의 재편성을 단행하였다. 이 지방 행정조직의 개편은 대개 677년(문무왕 17) 무렵 당의 세력을 밀어내고 687년(신문왕 7)에 걸쳐 완성되었는데, 9주(九州) 5소경(小京)의 제도 형성이 그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신라가 단일 정부로서 중앙에서 백제·고구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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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의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조성된 둘레길. 여수 갯가길은 전라남도 여수시의 꼬불꼬불한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조성된 둘레길이다. 자연 그대로를 간직한 숲길, 벼랑길, 해안길, 그리고 곳곳의 안내판에 소개된 지역의 옛이야기들이 걷는 재미를 더해 주는 힐링 길이다. ‘갯가’는 바닷물이 들었다 빠졌다 하는 바닷가의 가장자리를 뜻한다. 여수 갯가길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리아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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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자생하는 해양 생물. 해양 생물은 큰 범위에서 수계 생물에 포함된다. 수계 생물은 서식 환경에 따라 내수면, 기수역, 해양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해양 생물은 이 중 가장 많은 종과 개체수를 가지고 있어 가장 중요한 수계[수권] 생물로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해양 생물은 바닷물 속 또는 주변에 서식하는 모든 종류의 생물을 지칭하며, 해양 생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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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국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어린이, 다양한 문화체험을 통해 자신감 있게 표현하는 어린이, 기초·기본학력을 토대로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어린이, 스스로 계획하여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여수남초등학교는 해방과 더불어 일본으로부터 돌아온 귀환 동포의 자녀를 포함한 미취학 아동을 수용하기 위하여 일본인의 교육 기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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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여수현을 다시 설치하기 위하여 벌인 동맹 운동. 1896년 2월 완도나 돌산 같은 섬마저 군이 되었으나 여수 만은 열심히 복현 운동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설군(設郡) 문제가 실패하여 여전히 순천부 관할에 묶이게 되었다. 이에 형편에 맞지 않은 조정의 처사에 분개하여 1896년 3월 18명이 고장의 비원을 풀기 위해 동맹하였다. 전라남도 여수현에서 발생한 삼복삼파 이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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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동남부 지역에 있는 행정구역. 여수(麗水)라는 명칭은 고려 전기인 940년(태조 23) 행정구역 개편 때 해읍현(海邑縣)을 여수현(麗水縣)으로 변경하면서 처음 사용하게 되었는데, 3면이 아름다운 바다로 둘러싸인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삼한 시대에는 마한 54개국 중 하나인 원지국(爰池國)에 속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538년(성왕 16) 구지하성이 관할하는 삽평군(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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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신기동에 있는 다문화 가족과 결혼 이민자 지원 기관. 여수 시민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지향하고 돌봄과 존중이 있는 가족 문화를 조성할 수 있도록 건강 가정[취약 위기 가정], 다문화 가족, 외국인 주민에게 수혜자 중심의 맞춤형 종합 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하여 2020년 1월 여수시 건강가정·다문화가족·외국인주민 통합지원센터를 통합 운영하게 되었다.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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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 진남관에 있는 조선 중기 이량이 쌓은 방왜축제를 기념하는 비석. 여수 이량 장군 방왜축제비는 1497년(연산군 3) 전라좌수사로 부임해 온 이량(李良) 장군이 장군도 동쪽과 돌산 북쪽 사이의 해협으로 왜적이 침입하는 것을 봉쇄하고자 둑을 쌓은 사실을 적은 내용으로, 원래 장군성비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고 전한다. 이량의 5세손 이배원(李培元)이 글을 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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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행정구역. 918년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940년(태조 23)에 전국을 주(州)·부(府)·군(郡)·현(縣)으로 행정구역을 개혁하였다. 따라서 신라시대에 해읍현(海邑縣)[여수]·여산현(廬山縣)[돌산]이라 불리던 여수 지방의 이름도, 여수현(麗水縣)·돌산현(突山縣)으로 바뀌었다. 이때 처음으로 ‘여수(麗水)’라는 이름이 나오게 되나, 모두 승평군(昇平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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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국내의 여러 항구 사이를 잇는 항로. 여수 지방의 항로는 여수와 돌산 혹은 여수와 도서 지방의 도선 운항 및 연근해 어업 위주의 어촌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1907년 이후 일본 상인의 이주로 상업이 서서히 활기를 찾기 시작함으로써 선박 항로의 다각화가 모색되기 시작하였다. 당시는 개항된 부산을 통해 개화기 물품이 들어옴으로써, 화물은 부산으로부터 선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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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우두리에 분포된 청동기시대 무덤군.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고인돌 상석은 대부분 무덤의 봉분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으나, 어떤 집단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여수 지역의 고인돌은 남방식 고인돌이 변화된 것으로, 넓고 판판한 1매의 상석을 지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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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신념 체계. 유교의 교리는 공자의 인의(仁義) 정신으로 윤리 도덕과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대도(大道)를 실천하고 보급하여 도의사회(道義社會)를 건설하자는 유학 정신에 기초를 두고 있다. 유교는 현실성을 중시하고 현실 문제를 개혁하려는 데 중점을 둔 교학 사상으로 내세나 이면 세계, 사후 세계는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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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전해 내려오는 유물과 유적에 얽힌 이야기. 여수 지역에 전해지는 유적과 유물과 관련한 전설에는 임진왜란과 같은 전쟁을 통한 설화, 호국 불교를 통한 사찰 연기 설화, 지명의 유래와 관련한 설화, 여수 지역의 자연물과 관련한 전설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여수 지역에는 임진왜란과 관련한 유적과 유물, 그에 따른 민생들의 삶이 농후하게 드러난 이야기가 많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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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의 동쪽에 있는 석전평(石田坪)은 조선시대 교육 기관이던 향교와 함께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등 근대 교육 기관이 들어서 있는 교육 타운이다. 1896년(고종 33) 돌산군이 설치되고 1897년에 이 지방 유림의 오랜 염원이던 향교가 들어서자 돌산의 유림들은 정성을 다하여 향교를 가꾸고 지켜 나왔다. 돌산향교는 전라남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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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와 금성리 사이에 있는 고개. 봉황산과 금오산을 잇는 능선 중간에 놓여 있는 고개로 정상부에는 넓은 주자창이 있고, 율림리 쪽으로 주변 조망이 잘되는 곳이다. 돌산을 일주할 수 있는 군도가 이 고개를 경유하여 율림리와 성두를 연결한다. 율림리 주변에 돌산목장성의 일부였던 만리성터가 있다. 고개에서 북동쪽으로 1㎞ 떨어진 율림이라는 마을 가까이에 있어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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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7년 전라남도 여수시 은적암을 중창할 때 작성한 상량문. 1656년(효종 7) 영변이 화주가 되어 중창한 은적암[현 은적사]이 무너지자, 그 파재를 모아 1777년(정조 1) 정월 수군절도사 최도민의 시주로 다시 중건하면서 쓴 상량문이다. 당시의 본진사도주(本鎭使道主) 수군절제사(水軍節制使) 최도민(崔道敏)이 시주하고 전별장(前別將) 옥필흥(玉弼興) 및 박세보(朴世輔)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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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남도 여수에서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활동한 무신.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자방(子房)이다. 함성군(咸城君) 이종생의 후예이다. 어려서부터 체격이 건장하고 총명했던 이량은 병사가 되어 틈틈이 병서와 무술을 익혔다. 1479년(성종 10) 여진족을 상대로 건주싸움에 출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1480년 무과에 급제하여 삭주부사·회령부사·의주목사를 지냈다. 1497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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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전투를 지휘한 무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아버지는 이정(李貞)이고, 어머니는 초계변씨(草溪卞氏)이다. 이순신은 1545년(인종 1) 서울 건천동에서 4남 중 3남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이백록(李百祿)이 기묘사화(己卯士禍)의 참화를 당한 후로 가세가 기울어 충청남도 아산 외가로 옮겨 살았다. 1576년(선조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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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될 때까지의 전라남도 여수의 역사. 1895년 전라좌수영이 폐지되고, 1896년 도서 지방에 돌산군이 신설되고, 1897년 육지 지역에 여수군이 신설됨으로써 순천도호부에서 분리 독립되어 여수·율촌·삼일·소라의 4개 면을 관할하였다. 후에 여수면이 현내면과 쌍봉면으로 분리되는 등 7개 면으로 분할되었다. 1914면 돌산군이 폐지되었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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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오림동에 있는 백제시대 산성. 전라남도 여수시 오림동 터미널 옆 야트막한 산을 자산(資山)이라고 하는데, 이 산 정상을 중심으로 쌓았다고 해서 자산산성이라고 한다. 자산산성을 척산산성이라고 하는 것은 자산의 자를 길이를 재는 단위인 자[척]로 착각 한 것에서 온 것이다. 자산의 ‘자’는 성의 옛 말로 자산은 성이 있는 산이라는 우리말이다. 성(城)의 우리말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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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 주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지형·지질·기후·자연재해 등의 자연 지리적 환경. 자연지리학은 지표면에서의 자연현상을 지역적인 관점에서 연구하려는 지리학의 한 분야이다. 인간의 생활 무대인 지역의 자연환경을 연구함으로써 그 지역의 지역성을 파악하는 데 연구 목적을 두고 있다. 여수 지역의 자연환경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을 살펴보는 자연 지리적 연구를 통해 여수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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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중앙동에 있는 섬. 장군도와 관련된 풍수설이 있는데, 여수항 중심에 있는 장군도를 사이에 두고 세 마리의 용이 다투는 형국이라는 이야기이다. ‘장군도를 두고 다투는 3용’이라는 풍수설에 의하면 장군도는 여의주 삼아 세 마리의 용이 다투는 형국이라고 한다. 그 첫째 용은 예암산[남산]이요, 둘째 용은 돌산도요, 셋째 용이 경호도이다. 여수에 크고 웅장한 산은 없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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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중앙동에 있는 조선 중기 이량 장군이 장군성을 쌓고 세운 비석. 1497년(연산 3)에 이량 장군이 왜적을 막기 위해 장군도와 돌산 사이에 제방을 쌓았는데, 이것이 국내 유일의 수중성인 장군성이다. 이량 장군이 방왜축제를 쌓은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웠다. 여수시 중앙동 장군도 선착장에서 오른쪽으로 50m 정도 떨어진 바닷가에 있다. 사암으로 된 비신에 비갓이 새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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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에 있는 조선 말기 돌산군수 조동훈의 영세불망비. 여수가 한창 복군(復郡) 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초대 돌산군수로 임명된 조동훈이 종포에 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지방 유지들은 조동훈에게 돌산을 돌산군에 편입시켜 여수에서부터 돌산까지 다스려 달라고 청원하였다. 이에 조동훈은 조정에 여수 네 개 면(面)을 돌산군에 편입시켜 줄 것을 건의하는 한편,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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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함안(咸安). 어계(漁溪) 조려(趙旅)의 후손이다. 조로준은 임진왜란 때 왜구에 항전하기 위하여 돌산에서 수백 명의 의병을 일으켰다. 무기가 없어 궁여지책으로 돌을 긁어모아 이를 무기로 삼고, 야간에 적진에 돌격하여 많은 적을 살상하거나 사로잡는 전과를 올렸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돌산장사라 일컬었다. 조선 영조 때 병조참의(兵曹參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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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산향교 가 들어선 지명을 한자로 석전평(石田坪)이라 표기한다. 1896년 돌산군이 건립되자 돌산의 유림들은 가장 먼저 향교 건립에 나서 1897년에 향교가 건립될 수 있었다. 섬이라는 환경 때문에 업신여김을 당하던 밑바탕에는 배우지 못해 무식한 사람이라고 얕보인다는 자괴감이 팽배해 왔던 상황에서 향교가 건립된 것은 이들의 자부심을 세워주기에 충분한 계기가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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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전라남도 여수의 역사. 1392년 조선 개국시 여수현령 오흔인(吳欣仁)이 신왕조에 불복하였다 하여 1396년(태조 5)에 여수현과 돌산현이 폐지되고 순천도호부에 속한 여수면이 되었다. 소라포부곡은 소라포면, 율촌부곡은 율촌면이 되었으며 삼일포향은 삼일포면으로 개칭되었다. 또한 돌산현은 여수면으로 흡수되고, 인근 섬들은 낙안, 광양, 흥양[현 고흥]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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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속하는 법정동. 여수군 여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종고산(鐘鼓山) 밑에 있어 ‘종개’ 또는 ‘종포’라 하였다. 1946년 일본식 행정구역으로 명칭이 불리던 ‘동정(東町)’이, 좌수영성을 중심으로 종남동[종화동 지역]·동문동[여수우체국 주변]·관동(파크호텔 주변)·동산동[동산동 지역]으로 나누어졌다. 1953년 종남동을 종화동으로, 동문동과 관동을 통합하여 관문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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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주재년 열사의 기념관. 2006년 3월 주재년 열사가 건국훈장 애족장 포상 대상자로 확정되어 2006년 8월 15일 제61주년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유족이 훈장을 받았다. 이에 전라남도에서 다양한 선양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주재년열사현창사업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금성리 작금마을에 있는 주재년 열사 생가 터에 주재년열사기념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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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향일암과 군내리, 여수 방향으로 나눠지는 삼거리에 위치한 죽포리는 소라면의 대포, 삼일의 낙포와 함께 여수의 삼포로 불려오던 큰 항구가 있던 마을이었다. 방죽포에 방죽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마을 앞 조산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전해온다. 죽포리의 본래 이름은 큰 포구란 뜻으로 불렀던 ‘댓[大]개’였으나 이를 한자로 기록하면서 대를 ‘죽(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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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지각을 구성하고 있는 암석과 지층의 성질·상태 및 분포를 이르는 말. 한반도 중부 이남의 주된 지질 중에서, 영남 육괴, 전라남도의 북쪽부에서는 지질 구역인 옥천지향사대, 옥천지향사대 내의 경상 지구, 남해 도서 일대와 다도해역, 중부 지역에서 담양까지 발달하는 경상 화산암대로 구성되어 있고 전라남도를 구성하는 지질 단위는 지질 시대로 보아 크게 4단위로 구분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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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의 지질·산·평야·하천·해안 등 지표의 특징적인 형태. 여수 지역은 전반적으로 오랜 침식을 받은 육지가 많고 구릉성 산지와 만의 해안선 사이에 긴 여수반도가 형성되어 있다. 해안은 침수 해안으로 만의 입구가 길고, 해안선의 드나듦이 복잡한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을 나타내고 있다. 전라남도 동부 지역 산지를 형상하고 있는 소백산맥은 지리산 노고단[1,507m]을 중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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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양면의 입구에 있는 창무마을은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도 ‘문꾸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문꾸지’는 ‘문이 있는 곳’이란 뜻이다. 조선시대 화양면 지역에 곡화목장이 설치되어 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송소마을에서 오천마을에 걸쳐 성을 쌓고, 성문을 이 마을에 두었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다. 지금의 ‘창무’란 이름도 ‘문꾸지’와 관련이 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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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방을 시조로 하고 정계생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우리나라 정씨의 시조는 정덕성(丁德盛)으로 알려져 있다. 정덕성은 853년(문성왕 15)에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도로 귀양 와서 살았고, 후손들이 번성하였다. 장자 정열도(丁烈道)의 계손 정찬(丁贊)은 영광정씨(靈光丁氏), 그 아우 정관(丁寬)은 후창원정씨(後昌原丁氏), 차남 정응도(丁應道)의 계손 정윤종(丁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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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평사리에 있는 산. 돌산도의 8대산 중의 하나이며, 돌산 평사리에 봉긋이 솟아난 천마산은 동쪽에 있는 대미산과 함께 여수에서 돌산으로 들어오는 좁은 통로 역할을 한다. 이 산의 이름은 천마와 용의 전설에서 유래되는 걸로 생각된다. 산 전체의 경사가 가파른 편이다. 산의 정상부는 기반암이 노출되어 바위가 많으며, 산록에는 테일러스(talus)가 곳곳에 발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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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전해 내려오는 지형과 지명에 대한 풍수 이야기. 남북국시대 도선(道詵)[827~898]은 지세의 변화와 풍수의 조화가 인간의 생사까지 결정한다는 풍수지리설을 확립하였다. 그 후 풍수지리설은 우리 민족 생활 저변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여 왔다. 특히, 현재까지 지명과 관련하여 구비 전승되는 많은 이야기가 풍수지리설과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의 마을 이름은 일정한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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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수정동·공화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한려해상국립공원인 오동도를 끼고 있는 행정동으로 한려동이라는 명칭은 한려수도에서 유래되었다. 1997년 7월 25일 삼여통합을 위한 동 통합시 법정동인 공화동과 수정동이 통합되어 오동동으로 개칭하였으나, 오동동이 주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아 주민 여론에 따라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오동도를 연상시키면서 한려수도의 기점이라는 점과 관광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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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바다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지형. 여수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파랑 에너지가 적어 육지부에서는 해식애 발달이 미약한 편이나,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특히 연근해보다는 외해로 나갈수록 해식애와 해식동이 잘 발달되어 있다. 특히 외해는 파랑의 침식 에너지가 강해 시스택과 여(礖)가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여수반도는 지구조운동에 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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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행정구역 명칭.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확대된 영토를 통치하는 데 있어 자연히 지방행정 구획의 재편성을 단행하였다. 지방 행정조직 개편은 677년(문무왕 17) 무렵 당의 세력을 밀어낸 후 687년(신문왕 7)에 걸쳐 완성되었다. 9주(九州) 5소경(五小京)의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신라가 단일정부로서 중앙에서 백제·고구려의 옛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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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지역에서 정치적으로 하나의 단위를 이루는 국가의 영역을 행정상으로 나눈 단위. 지방자치단체의 지역적 관할에서 행정의 편의, 재원 배분 등이 원활히 수행되도록 하기 위해 적정 규모의 행정 구역을 설정하게 된다. 여수시는 1998년 4월 1일 여수시·여천시·여천군이 주민 발의에 의하여 전국 최초로 도·농 통합을 이루어 명실 공히 전라남도 제1의 도시가 되었다. 여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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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전해오는 모든 음식. 향토음식은 전통음식의 개념보다 협의의 개념으로, 그 지방에서 생산되는 재료를 그 고장의 독특한 조리법에 따라 조리하여 과거로부터 그 지방 사람들이 먹어 온 음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향토음식은 지역에서 독특하게 개발한 음식으로서 그 지방의 기후, 토질, 지리적 조건 등의 자연환경에 순응하면서 종교, 정치, 경제, 문화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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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호명동 원호명마을에서 정월대보름과 칠월칠석에 행해온 농악. 호명동은 마을 뒷산과 남쪽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바위가 호랑이같이 생겼고, 호랑이가 우는 입과 같이 생겼다고도 하여 호명 또는 범우리라고 전하여진다. 호명동의 원호명마을에서는 예부터 정월 대보름과 칠월칠석에 매구놀이를 해왔다. 예부터 매구는 매우 엄하게 쳤다고 한다. 옛날에 당산굿을 잘못 쳤다가 상가집에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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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돌산을 중심으로 한 섬 지역이 군이 되면서 개도에 소재지를 두었던 동쪽의 화개면과 옥정면이 통합되면서 화(華)와 정(井) 각 한 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되었다. 또한, 이전의 이름인 화개와 옥정의 이름은 개도의 주산의 이름인 화개산의 이름과 백야도에 있었던 옥정이라는 유명한 우물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본래 순천부 지역으로서 옥정산(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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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화태리에 있는 섬. 1580년경 돌산 신복에 살던 진주소씨 소영길이 처음으로 입도하여 거주하다가 광주로 이주, 일시 무인도가 되었다. 1610년경 고흥에서 밀양박씨 박경사가, 순천에서 김해김씨 김영진이, 소라에서 창원황씨 황동준이 이주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한다. 섬 명칭에 대해서 전라남도에서 편찬한 『도서지』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돌산도에 이순신 장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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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의 자연마을. 힛도는 바다 지명이 육지의 지명으로 바뀐 대표적인 예이다. 힛도는 원래 백야도[화정면 백야리]와 화양반도 사이 좁은 해협을 지칭하는 이름이었다. ‘흰섬’이라고도 불렸는데 해양 지명 중 도진(渡津)[나루터를 중심으로 발달한 취락]의 대표적인 예이다. ‘힛’은 백야도가 하얗게 보였기 때문에 붙여진 접두사이며, ‘도’는 명량(鳴梁)이나 노량(露...